[팩 보고드림]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이 역적이 될뻔한 이유 feat 정천익

원나라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홍건적에 의해 중원에서 쫓겨난 것도 열받는데 믿었던 공민왕은 고려로 돌아가자마자 반원 자주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홍건적은 고려영토까지 침범했습니다. 이에 고려조정은 다시 원나라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원나라는 고려에 삐질대로 삐져있었습니다.
"흥... 반원 어쩌구 지껄일때는 언제고 급하니 이제와서 우리와 관계개선? 웃기고 있네... 공민왕 넌 아웃이야!"
원나라는 공민왕 대신 충선왕의 손자인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세우겠다고 나왔습니다.
이렇게 단단히 삐진 원나라... 고려는 달래주어야 했고 그 일을 문익점에게 맡겼습니다.
"그대가 원나라로 가서 여러가지 오해들을 좀 풀어주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문익점은 일행들과 함께 사신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원나라의 분위기는 살벌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임명하였소... 이에 찬성하는 자는 살아남을것이고 반대하는 자는 무사하지 못할것이오!"
분위기가 공민왕을 지지한다고 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판이었습니다.
협박 뒤에는 회유도 있었습니다.
#문익점 #목화씨 #정천익

Пікірлер: 50

  • @user-gx8ey4of1i
    @user-gx8ey4of1i Жыл бұрын

    목화의 씨를 빼내는 기구를.. '씨아' 라고 하는데 유년기에 본적이 있습니다. 흥미로운점은 나무로 만든 기어가 사용 되었다는 것이지요. 보통의 톱니바퀴 기어 형태라면? 나무가 견디지 못하지요. 그래서 비틀림 기어 형태입니다. 그 형태를 수수께끼로 만들었는데... "청룡 황룡은 비틀어지고 구름은 슬슬 피해가고 별은 뚝뚝 떨어지는게 무엇이냐?" 네 두개의 나무 기어가 비틀리며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청룡과 황룡이 서로 얽혀 돌아가는 모습으로 비유 한것이죠. 또... 목화솜이 압착되면서 빠져나가는 것을 구름이 슬슬 피해간다고 하였고요. 목화씨가 투둑뚝 떨어지는 것은... 별이 뚝뚝 떨어진다고 한였으니 비유가 적절하고 재미 있습니다. 요즈음의.... '제면기' 형태지요. 일체가 나무로 제작된 것이고.. 압착간격의 조절은 직삼각형 형태의 나무 쐐기를 톡톡 박거나 빼서 조절하죠 그렇게 씨를 빼고나면 꼬챙이에 돌돌 말아서 고치 형태로 만들고요. 꼬챙이를 빼낸 고치를 왼손에 잡고 문래를 돌리면 고치끝의 실낱이 돌돌 감기며 길게 풀려나와 실이 되지요. 문래에서 빼낸 실타래를 그대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는데요. 그 실타래를 영감님이 양손에 걸고 마나님이 실패에 감아서 바늘질 할때 쓰지요. 면포를 짜기 위해서는 베틀에 앉아 씨줄폭에 한줄씩 날실을 배처럼 생긴 북으로 이리 저리 보내고 받으며 마냥 짜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날실 한줄 넣고 다지고... 날실 두줄 넣고 다지고.. 에효.... 밤새 찌거덕 찌꺽 몇날 몇일을 작업해야 광목 한필을 짤수 있습니다. 직조기를 베틀이라 하는것은... 대마... 삼껍질로 베포를 짯던것이 시원이기 때문이죠. 베옷은 요즘의 상복으로만 볼수 있지요. 면포가 없던 시절에는 일상복 이였기에 전통을 잇는 상례에 베옷을 입는겁니다. 나름 장점도 있어서... 좀벌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불상의 속에도 넣어 놓았었기에... '부처 밑구녁 들춰봐야 삼껍데기 밖에 안나온다.' 하는 속언이 있는거지요. 올이 굵어서 면포 보다는 쉽게 직조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좀더 올이 가는 고급 직물로는 모시포가 쓰였지요. 여름에 입으면 시원해서 현대에도 고급 옷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요. 모시로 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얇고 짧은 모시 껍질을 가늘게 쪼개고 할매들이 침발라서 무릅위에 비벼서 이어 붙히는 겁니다. 무릎위 허벅지가 빨갛게 닳도록... 비벼대야 하지요. 헤구.... 그 정성이.... 고역이죠. 그리고는 찹쌀풀을 먹여 빳빳하게 만들고 다듬이 돌 위에 밤새 두두리죠. 윤기가 반드르르 하게 만듭니다. 엄청난 노동 집약적인 물품들이였죠.

  • @user-zo2lr5bx3e

    @user-zo2lr5bx3e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좋은정보

  • @user-ox9vt1fe5r

    @user-ox9vt1fe5r

    Жыл бұрын

    이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귀하의 자세한 식견이 널리 널리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 @Gordon-rb7nd

    @Gordon-rb7nd

    Жыл бұрын

    와....진짜 설명만 들어도 숨막히는 작업속도와 엄청난 인내심이 연상되네요...

  • @niro8002
    @niro8002 Жыл бұрын

    익점이 형 때문에 조상들이 솜옷 이불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구나

  • @canopusmr.1748
    @canopusmr.1748 Жыл бұрын

    늘 유익한 콘텐츠 감사합니다.

  • @user-xo6wq8wr3x
    @user-xo6wq8wr3x Жыл бұрын

    잘볼께요^^

  • @user-nm2ms2cu1f
    @user-nm2ms2cu1f Жыл бұрын

    와우 우리 조상님 큰 일을 하셨구나. 운영자님 문익점 대해 더 알고 싶지만 영상 달아줘서 감사해요

  • @JJH5680
    @JJH5680 Жыл бұрын

    이 말도 맞는것 같네요

  • @user-sg3oh3yx3v
    @user-sg3oh3yx3v Жыл бұрын

    이 좋은 컨텐츠가 10만이 이제 보이니 곧 50만이 될것이오..

  • @user-ri6sp8py8j
    @user-ri6sp8py8j Жыл бұрын

    좋은 내용❤ 감사하오😂

  • @user-js2dk6nz5f
    @user-js2dk6nz5f Жыл бұрын

    오늘 날 이런 따뜻한 집념이 어디에~~

  • @donchoo4706
    @donchoo4706 Жыл бұрын

    이 사이트가 너무 좋아서 많은 붇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 @user-ox9vt1fe5r
    @user-ox9vt1fe5r Жыл бұрын

    평생 믿고 살았던 지식과 상식이 허위로 뒤바꿀때의 충격은 진도 8의 지진 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올바른 조기교육이 필요하고. 그 시대에는 한 사람을 역적으로. 또는 영웅으로 만들기가 나무나도 쉬웠네요. 아직까지 알고있는 지식과 상식중에 틀린것이 얼마나 많이 나올까????

  • @jhp4864
    @jhp4864 Жыл бұрын

    굿!

  • @ulrichkesler1220
    @ulrichkesler1220 Жыл бұрын

    팩대학사 오늘도 잘 보았소이다 😊

  • @coffee7420
    @coffee7420 Жыл бұрын

    10만 가즈아!! 실버버튼 가즈아!!

  • @yaegereren8154
    @yaegereren8154 Жыл бұрын

    공민왕이 반원자주정책으로 덕흥군과 싸우고 결국 패배시켜 덕흥군에 회유됐던 문익점이 파직되었군요. 사실 누구든 죽고 싶지 않은데 이를 참작하여 이 정도 선에서 끝내준 거 같습니다

  • @iii2864
    @iii2864 Жыл бұрын

    주인장 아뇽~

  • @user-shoga
    @user-shoga Жыл бұрын

    산업 스파이 아니냐?

  • @user-nm6vw4gv1d
    @user-nm6vw4gv1d Жыл бұрын

    퇘계 남명 우암등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들도 삼우당 선생을 아중 높게 평가 하고 있읍니다

  • @friendly-spidy333
    @friendly-spidy333 Жыл бұрын

    그래도 문익점이 목화를 대량생산한 노력 덕분에, 조상들이 따뜻한 솜을 얻을 수 있었네요 ㅎㅎ

  • @REDSTAR-009
    @REDSTAR-009 Жыл бұрын

    목화에 이런 스토리가... 문익점 정천익 홍원스님.. 3분 덕분에.. 목화 보급이 성공 했네요.

  • @user-bw5rp6fm1o
    @user-bw5rp6fm1o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처음 가져와서 재배해주신 익점이 할배 감사합니다요^^

  • @user-nm6vw4gv1d
    @user-nm6vw4gv1d Жыл бұрын

    고려사의 기록은 1413년 하지만 세종의 사재문의 기록을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세조의 사재문을 보면은 유배 내용이 나오고 있읍니다 특히 정천익의 고려사의 내용이 하나 밖에 없읍니다

  • @user-mi4do3eg7q
    @user-mi4do3eg7q Жыл бұрын

    현대에는 40년 전 쯤에 목화로 노래를 한 가수가 있지~ 남진의 목화따는 아가씨

  • @user-lz1lv5yf8d
    @user-lz1lv5yf8d Жыл бұрын

    경상도 출신이신가요?사투리가 너무 익숙해요:)

  • @user-nm6vw4gv1d
    @user-nm6vw4gv1d Жыл бұрын

    1440년 경신년 세종은 삼우당선생에게 영의정을 추증하고 부민후에 봉하고 재상 남지에게 사제문을 올림.사재문의 일부 내용중 분서관원 언동천황 이라는 내용이 있다 이때 당시에 교서를 불에 태워고 원의 황제와 참소가 잘 못됐다고 세종시대에 적었다

  • @user-ql3dd9io2t
    @user-ql3dd9io2t Жыл бұрын

    영상하나 만들려고 공부 많이 하셨내요 ㅎㅎ

  • @user-ol1mb3pi7y
    @user-ol1mb3pi7y Жыл бұрын

    신라가 당에 바친 목화 면직물을 인삼 같은 특산물 성격으로 봐야지 당에 매우 흔한 물건이었으면 중국 사정을 잘 아는 신라인이 많았는데 그걸 바칠 일은 없었을 것. 중국에 목화가 최초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206년 세워진 한나라 때이다. 중국에서 목화가 대대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는 송 원 시기.

  • @sanglee8431
    @sanglee8431 Жыл бұрын

    최초 밀수 성공

  • @user-wt4vb5yo9t
    @user-wt4vb5yo9t5 ай бұрын

    저 정천익 직계후손입니다 ㅋㅋㅋㅋ 현재 나이 23살 말년병장

  • @user-nm6vw4gv1d
    @user-nm6vw4gv1d Жыл бұрын

    앞으로 삼우 당의 내용을 실을 때는 조심 하시는 것이 좋은것 같아요

  • @ohmalub
    @ohmalub Жыл бұрын

    혹시 씬님이세요? 유튜버?

  • @playergame281
    @playergame281 Жыл бұрын

    음.. 날조에 가깝네 일본탓할게 없는듯

  • @parkgoogle
    @parkgoogle Жыл бұрын

    내 감동 돌려내~ㅋㅋㅋㅋ

  • @ratel7305
    @ratel7305 Жыл бұрын

    100%cotton

  • @user-cy6ju8dx7p
    @user-cy6ju8dx7p Жыл бұрын

    갓침내 여말선초의 또 다른 주인공 산업스파이 모카씨는 문익점 등판 ㄷㄷ

  • @cz1310
    @cz1310 Жыл бұрын

    ㅇ.ㅇ 여기도 Thanks를 좀 해야겠다.맨날 보기만 하네.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Жыл бұрын

    문익점 위인전에선 회유하는 덕흥군을 꾸짖었지만... 역사는...;;

  • @user-pt8bq8jr8h
    @user-pt8bq8jr8h Жыл бұрын

    저…..장인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문익점이 태조 이성계의 형 이원계의 장인이라는 소릴 들은거 깉은데 맞는건기요?

  • @user-qj6lg6if9m
    @user-qj6lg6if9m Жыл бұрын

    개뿔 국제밀수범이지

  • @dsk3038
    @dsk3038 Жыл бұрын

    역사가 아니라 도시전설이었구나..

  • @user-tz4fd2ic2y
    @user-tz4fd2ic2y Жыл бұрын

    신라도 특산물중 초면이란 면직물을 특산품 이였으며 다만 지금에 면화처럼 생산량이 많치는 안았다네요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배가 판옥선보다 빨랐을 것이라 말들하지만 당시 면직물은 조선에서 수입하는 수입품으로 일본배에 돗대에 돗을 충분한 크기로 만들기 힘들었을것으로 보이고 반면 판옥선은 충분한 크기에 돗을 달아 속3ㅗ에 있어선 큰 차이는 없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조선에 면직물은 의식주중 의에 큰변화 뿐만 아니라 전략자산 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

  • @user-zn3yr1wp8d
    @user-zn3yr1wp8d Жыл бұрын

    그럼 고구려나 백제 신라에도 목화씨가 있었다면 어쩌다가 신라에만 없는건지? 이해가 가지않내 그럼 저 목화씨로 전부다 흰옷으로 통일되어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조선옷이 된건가? 목화씨 이전에는 여러가지 색이 있던 옷이 있었을까?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Жыл бұрын

    ㄴㄴ 저 당시에도 흰색 옷을 입었고 주로 삼베와 모시를 입었습니다.

  • @user-ol1mb3pi7y
    @user-ol1mb3pi7y Жыл бұрын

    문익점이 목화씨를 반도에 처음 가져왔다는 건 헛소리. 삼국시대 이미 목화가 반도에 재배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삼국시대 만든 면직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면직물을 만들기 위해 솜만 수입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솜이 대량 필요하면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목화씨를 구해 기후에 맞는 걸 찾아 재배했을 것.

  • @jk3934

    @jk3934

    Жыл бұрын

    개량종자를 가져왔다잖아요.좀 잘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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