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보고드림] 장영실이 사라져버린 이유 feat 노비에서 대호군까지 장영실 이야기

그는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영실아~ 올해는 가뭄이 너무 심해가 농작물들이 다 말라죽을 판이다. 이 우야면 좋노?"
"걱정마이소...내 이런 날을 대비해가 수차를 만들었다 아입니까?."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 오늘날의 부산광역시에서 살았습니다.
비록 관기의 아들로 태어난 천한 출신이지만 뭐든 만들어내는 기술이 대단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가뭄문제도 장영실이 수로를 파고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게 하는 양수기 펌프같은 기구를 만들어
동래현 사람들의 가뭄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그 지역에서 장영실은 이미 유명 인사였습니다.
"자네가 장영실인가?"
"예.. 무슨 일이신데예?"
"자네... 궁궐에서 일해볼 생각 없는가?"
조선시대에는 각 도의 관찰사가 유능한 인재를 중앙에 추천하는 도천법이 있었습니다.
장영실도 관찰사의 눈에 띄었습니다. 노비에 불과했던 장영실에게도 출세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흔이 세종이 장영실을 발탁하여 조정으로 부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태종대의 일입니다.
"궁에 가면 저는 뭐하면 되는데예?"
"상의원 소속의 기술자가 될 것이다."
"상의원에서는 뭐하는데에?"
#장영실 #조선왕조실록 #세종대왕

Пікірлер: 148

  • @jiktong
    @jiktong11 ай бұрын

    장영실은 실은 원나라 초엘리트집안 출신일 확률이 높음 비록 원나라가 망해서 노비신분으러 떨어졌지만 날때부터 일자무식 수준의 노비들하고 달랐을것..

  • @adios182
    @adios1828 ай бұрын

    저렇게 훌륭한 과학자를 신분 때문에 제대로된 기록조차 없다니.. 너무 안타까운 일이네요

  • @Doctor__game

    @Doctor__game

    2 ай бұрын

    사실 장영실은 과학자라기보다 기술자죠

  • @user-pu1ii7kj4v
    @user-pu1ii7kj4v11 ай бұрын

    누군가의 심기를 건들였을듯 건방져보인거지 천한신분인데 특출나니 사람의 시기,질투가 정말 무섭지

  • @kistoria_official
    @kistoria_official11 ай бұрын

    장영실이 중국 유학까지 다녀왔군요. 천재가 천재를 만나 역사에 이름을 남겼네요.

  • @user-ns1ch6hh1p

    @user-ns1ch6hh1p

    11 ай бұрын

    드라마 만화를 실제로 생각하지 마시길 ㅋ

  • @user-cd7tj1bv5x
    @user-cd7tj1bv5x10 ай бұрын

    외계인 장영실 임무완수하고 안드로메다로 비행접시타고 떠나다~

  • @user-rv3qr3ez2q
    @user-rv3qr3ez2q7 ай бұрын

    가마사건 이후 사라진 장영실은 독일로 건너가 쿠텐베르그의 그 유명한 금속 활자를 만드는데 커다란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네요.

  • @xand175

    @xand175

    7 күн бұрын

    그럴듯한 가설 ..아니 추론입니다.... 그때 독일에서 쿠텐베르크가 동양의 사절단을 만나고 활자를 만들었다는군요.

  • @user-xo6wq8wr3x
    @user-xo6wq8wr3x11 ай бұрын

    잘봤어요 조선의 기술과학천재 장영실 아저씨를 여기서도 다루는군요

  • @hoonhoon1502
    @hoonhoon150211 ай бұрын

    너무 재미있는 결말이네요^^ 장영실이 꼭 이 스토리로 역사에서 사라졌기를요 멋진그림 더 멋진 나래이션 더 더 멋진 역사이야기 저의 최애 유투브 채널입니다 감사합니다

  • @user-nq5my1xy3b
    @user-nq5my1xy3b11 ай бұрын

    제대로 기록을 찾아 주시길...

  • @user-yc7tr6by5u
    @user-yc7tr6by5u11 ай бұрын

    장영실도 천재였구만~~~~

  • @user-cs3ni6gs3o
    @user-cs3ni6gs3o11 ай бұрын

    마지막에 훌륭하신 가설 이셔요. 여기에 제 가설을 추가 하자면 장영실의 존재가 그의 업적 기술력 등이 어떤 새로운 신분을 만들 가능성이 있기에 쳐 낸듯 합니다.^^ 당연히 사대부 기득권에 해가 될테니까요.

  • @hawk8873
    @hawk887311 ай бұрын

    장형이란게 제대로 집행하면 80대는 커녕 단 3대에 사람을 치사 시킬 정도로 폭형이지만 반대로 사전 모의만 있으면(뇌물 등등) 소리만 요란한 헛매질이란것도 있었기 때문에 인재 컬렉션에 진심이였던 세종대왕은 이 방법을 택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사고 난것도 아닌 시험 사용중 부서진 것인데도 어가인지라 관대히 넘어가기엔 사안이 컸기 때문에 나름 고심을 한듯 하며 만약 제대로 각잡고 벌을 주었다면 조순생을 방면했을리도 없었을 겁니다. 장영실을 못 마땅하게 여긴 그룹도 이 사실을 다소간 눈치 챘겠지만 어쨌든 장영실을 궁에서 내쫒을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하면서 넘어갔을듯 합니다.

  • @user-dr3cj3hk3z

    @user-dr3cj3hk3z

    11 ай бұрын

    저도 그럴거란 생각 이지만 반대 일거란 생각도 듭니다 저는 가끔 세종에 고개가 갸웃 거릴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비종모법, 수령고발금지법 인데 사실 다른시대에 태어 났다면 노비가 안 될사람이 조선시대 태어나서 노비가 되었다면 그 악법은 엄청나지요.인권 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멀쩡한 사람 노비 만들어 놓고 출산휴가 한달 주는거 보다 그 휴가 안 받고 노비 안되는것이 더 낫지 않나 ? 하는 생각입니다 세조는 노비 종부법을 해서 그부분 만큼은 세종보다 더 애민이 아닌가 합니다 세종이 너무 적폐청산에 치중하자 태종에게 핀잔도 들었다 합니다 어디까지나 가끔 드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hawk8873

    @hawk8873

    11 ай бұрын

    @@user-dr3cj3hk3z /인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였으니까요, 노비가 많이 필요할때는 이처럼 좋은 법이 없었을것이고 순조때 공노비 해방은 양인을 늘려 세금을 부가를 늘리려는 목적이였지 역시 인권 때문에 공노비 풀어준건 아니였지요. 게다가 공노비 풀어주면 관공서 허드렛일은 누가해? 라는 순진한 질문은 세금은 세금대로 부가하면서도 일 부려먹을 방법은 많이 있었으니까 해방시켰다고 답이 나올겁니다. 그 시대 배경 상황을 봐야 정답이 나올 문제일듯 합니다. 그것 때문에 세종 대왕 까기는 그렇죠. 뭐 썩 좋은 제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에는 필요성이 있었던 제도다,,, 정도.

  • @dip12sdc82

    @dip12sdc82

    11 ай бұрын

    그건 곤장 넓적한 노 처럼 생긴 도구고 도적떼 , 군법 , 역모 같은 큰 죄가 있을때나 사용 하던거고 그 마저도 조선후기때 등장.. 장형은 1.2미터 12mm 정도의 회초리로 맞는 형벌 이었습니다 물론 묶어 놓고 있는 힘것 풀스윙으로 내려치는 엄청난 매질이었지만 이게 곤장과는 비교가 불가죠 그러나 장형도 횡문근 융해증,세균감염,쇼크로 사람이 드물지만 죽기도 했다네요

  • @darkelf815

    @darkelf815

    11 ай бұрын

    세종대왕 내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아버지에욧. 기분 째지네요.

  • @libido4388

    @libido4388

    11 ай бұрын

    ​@@user-dr3cj3hk3z어디까지 세종은 500년전 사람이고. 철저한 유학자였습니다. 그걸 생각해야죠. 지금의 인권에 대한 사고와 세종 때 백성에 대한 마음을 같은 라인에 세우면 곤란하죠.

  • @hongjunlee714
    @hongjunlee71411 ай бұрын

    80대 맞아서 불구가 되어 더는 일을 못한거 같다

  • @bymin8957
    @bymin895711 ай бұрын

    아무래도 출생 신분 따져서 시기 질투하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11 ай бұрын

    출세하고 공 세워도 계속해서 은밀하게 겐세이가 들어 왔을 듯... 장영실도 내친김에 은퇴해 버리고...

  • @user-iz8so5dn8h
    @user-iz8so5dn8h11 ай бұрын

    은퇴했으면 저서라도 남겼을 것임. 장 80면 사형이나 다름없음. 맞다가 졸했을 듯.

  • @user-vz3uf3jq7d
    @user-vz3uf3jq7d11 ай бұрын

    잘은 모르지만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질이 문제임. 태생 정치 학벌 부모 명예 자산 등등

  • @darkelf815
    @darkelf81511 ай бұрын

    짐 그대의 마지막 가설이 아주 설득력있다 판단하느니라.

  • @user-ft2ex8bb7v
    @user-ft2ex8bb7v9 ай бұрын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에 아래 것들을 철저히 써먹고서 버리는 왕족과 귀족들의 습성은 지금도 지속되는 듯.

  • @brianjeon8246
    @brianjeon824611 ай бұрын

    장영실: 아싸 은퇴성공! 황희, 조말생: 오 저런 방법이? 세종대왕: 안돼, 두번은 안통해. 황희, 조말생: ㅠㅠ

  • @user-ip5uf1ie9q
    @user-ip5uf1ie9q11 ай бұрын

    마지막 상상이 사실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개연성도 충분하네요.

  • @yejun0704
    @yejun070411 ай бұрын

    영실이...자네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 @user-er1te3ex6g
    @user-er1te3ex6g11 ай бұрын

    영상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근데 해시계는 많이 본거 같은데 자격루는 아직 못본거 같네요. 어디가면 실제로 작동되는 자격루를 구경할수 있을까요? 복원시킨 것이라도 말입니다.

  • @Challenger2040
    @Challenger204011 ай бұрын

    장영실 외계인 납치설. ㅋㅋㅋ

  • @user-fr4rr6ew8w
    @user-fr4rr6ew8w11 ай бұрын

    한국사 끝나면 다른 나라 역사도 다뤄주면 좋겠다 .

  • @kenpark7427
    @kenpark742711 ай бұрын

    세종의 악질, 노비 세습제. 한번 노비면 자식도 노비

  • @user-ti4ol6dd5k

    @user-ti4ol6dd5k

    6 ай бұрын

    곤장 50대면 이미 목숨이 끊어졌다 하는데 80대면... 세종이라는 이氏

  • @sso4156
    @sso415611 ай бұрын

    제가 보기엔 신분제 인게 젤 크지않나 싶네요. 분명 장영실한테 벼슬을 내린다고 할때 신하 그리고 유생들이 엄청 심하게 반발하고 반대했을게 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세종이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가니 신하들이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다가 가마사건을 빌미로 장영실을 파면하고 죽이라고 했을 가능성이 컸을겁니다. 그리고 그땐 세종도 병이 나고 기력이 쇠할때라서 신하들의 주장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했을것이고 결국은 신하들과 합의를 봐서 파면한뒤 중용하지 못한게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애초부터 신분이 노비이니 기록에 남을리가 없고요.

  • @user-xl4uv2tx1i

    @user-xl4uv2tx1i

    11 ай бұрын

    바께스에줄그어. 측우기개발. 조선은 물량재는것도몬할정도로개뵹신이었는디

  • @user-pr6yj6bb9u

    @user-pr6yj6bb9u

    11 ай бұрын

    @@user-xl4uv2tx1i 넌 현대사람인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조선인이면 우짜니

  • @user-zv3ys3lz4q
    @user-zv3ys3lz4q11 ай бұрын

    금속활자 만드는게 뚝딱 만들수 있는게 아닌데 쿠텐베르크는 쉽게 만들었다 미국 전부통령 엘고어 왈 조선이 도와서 만들었다내 그럼 누구겠나 장영실이 가서 도운거지

  • @user-sj5ny2df3z
    @user-sj5ny2df3z11 ай бұрын

    강남아파트는 못참지...

  • @Kimchi_season_leader
    @Kimchi_season_leader11 ай бұрын

    임진왜란이라고 통칭되는 7년전쟁시기에도 원균이 도원수권율에게 출진명을 어긴죄로 곤장을 맞았다고되있는데 또 다른 기록에는 한 군관이 원균을 대신하여 곤장 맞으러 도원수권율에게 가기전에 찾아왔다는 기록이있습니다 최하급관리가 대신 매를 가벼이 형식적으로 맞는 수준도 분명히 고려해볼수있습니다

  • @user-ig7nj1xb5r

    @user-ig7nj1xb5r

    7 ай бұрын

    원균이 직접 곤장을 맞지는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종이 대신 맞는 명예형벌이었다고.

  • @sooncho001
    @sooncho00110 ай бұрын

    갓세종께 뭔가 미운털이 박혀 토사구팽당한 걸지도.... 사람의 감정은 생각보다 단순한 경우가 많으니

  • @user-qt9pu7nw3e
    @user-qt9pu7nw3e11 ай бұрын

    곤장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지도

  • @user-mh9ls7iq7k
    @user-mh9ls7iq7k11 ай бұрын

    원래 중국사람이지. 포로잡혀온 부모에게 태어났고, 그래서노비였고~~

  • @hotworkkim
    @hotworkkim11 ай бұрын

    곤장 맞아서 돌아가신듯요

  • @Tricky_Tricker
    @Tricky_Tricker11 ай бұрын

    80대 맞으면 사실 죽...

  • @user-qz8tu4gw6q
    @user-qz8tu4gw6q11 ай бұрын

    아파트에 연금은 못참지 ㅋ

  • @leejejoon76
    @leejejoon7611 ай бұрын

    지구는 조선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지구"라는 말은 "땅은 둥글다"의 뜻이고 다만 지동설의 이치가 없었다는 겁니다. 지구가 별중에 가장 중앙에 있는 항성?이고 태양 달 별 모두 지구 주변으로 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동설'과 '지구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구설은 삼국시대에 이미 알고있던 이야기입니다. 지구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지동설을 몰랐던 겁니다, '지방'은 단지 동서남북상하의 이야기이고, 조선에서도 지평설은 틀렸고요, 지구설은 알고 있었다는겁니다.

  • @foop491st79
    @foop491st796 ай бұрын

    결국 세종도 부려먹고 버린격이네.

  • @user-hs5pg2nu7f
    @user-hs5pg2nu7f11 ай бұрын

    세종이 조선시대에 태어난 첫왕인데 그런꼼수를 썼겠습니까. 태장도유사중 fm대로맞으면 태형도 쉽지않은데. 장영실이 태종때발탁되었으니 세종보다 연상일거고 결혼하여 가족이 있어도 종모법으로 천민이겠죠. 자기가 면천되었어도 천민의 아버지에게 무슨 기록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제 시작한 나라의 사대부가 입적을 받아줬을리도없고. 미스테리가아니라 세종이 모든면에서 흠없어야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거겠죠

  • @user-yw3sw4qw2b
    @user-yw3sw4qw2b11 ай бұрын

    장영실이 없어 장영실이 남긴 기구들이 운용되지 못하였다, 세종이 간의대를 없앨 것을 논하는데 신하들이 반대하였다, 두 가지가 사실의 실마리가 될 듯 합니다. 우선, 기구들이 장영실이 없어 운용이 안된다는 부분에서 장영실이 파직 이후 궁궐에 접근하지 못한 것은 사실인 듯 하며, 장영실 뿐만 아니라 제자 혹은 동료들도 같이 밀려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기구들의 운용을 포기한 것으로 보아 기구들이 쓸모 없다고 판단했거나, 세종 혹은 정계와 아예 척을 지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간의대의 경우 세종과 신하들의 연극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면, 세종과 장영실이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다고 설명 될 것 같습니다. 흔히 세종이 도덕적인 위인이고 장영실 관련하여 세태의 어려움 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내불당 사건 등을 보면 세종은 현자라기 보단 인간적인 면모 또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세종과 장영실이 인간적인 관계에서 틀어져서 파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 @user-gd3xe4lc9l
    @user-gd3xe4lc9l11 ай бұрын

    장영실이 만든 혁신적인 발명품은 실무자들에겐 혁신 그 자체였겠지만 정치꾼인 유교충들에게는 해괴한 물건으로 혹세무민하는데 되었겠지요

  • @user-gb2fl8ep1z
    @user-gb2fl8ep1z10 ай бұрын

    너무 파격적으로 관직을 높여준만큼 아마도 꾸준히 장영실을 비난하거나 시비거는 상소가 올라올때이고 세종의 건강은 말년에는 눈도 보이지않아 그좋아하던 책도 못읽고 정사를 돌보기 힘들정도로 나빠지죠 장영실을 지켜주지 못할거 같으니 조용히 은퇴시킨건 아닐까 싶네요

  • @JHYEOM
    @JHYEOM11 ай бұрын

    정말 미스테리네요

  • @user-hz9mg3ic3s
    @user-hz9mg3ic3s11 ай бұрын

    강남 아파트는 인정이죠..

  • @user-ff3nk5ne9s
    @user-ff3nk5ne9s11 ай бұрын

    유머가 늘 넘치십니다...

  • @sunk8016
    @sunk801611 ай бұрын

    에휴~ 새로운 게 있나 하고 봤는데... 낚였네!

  • @user-gb2pb3lf4b
    @user-gb2pb3lf4b11 ай бұрын

    뜻을 펼칠 수 없어 망명했나??

  • @kevinjung2624
    @kevinjung262411 ай бұрын

    곤장은 보통 제대로 치면 30 - 40 대에 죽습니다. 실록에 보면 20 여 대의 곤장으로도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당시에도 살살 치느냐 쎄게 치느냐가 분명히 존재 했습니다. 전부터 점쳐온 제 생각에도 마지막 작가님의 정설처럼 80 대의 곤장을 살살 치고 세종이 장영실을 잠시 방치하고 다시 등용하려 했다가 그것이 여의치가 않아서 그대로 장영실이 역사 속으로 묻혀진 것이 가장 있음직한 가설입니다. 이번 작가님의 가설은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번 편에서 세종이 2 번째 왕자였다는 말도 그렇고 전에도 여러번 너무나도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전혀 없으신 작가님이라서 이번 가설도 정녕 작가님의 상상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네요 😢 해명 한번 부탁 드립니다.

  • @침대장기

    @침대장기

    11 ай бұрын

    팩폭 하나만 할께요^^ 꼼꼼한 건 좋기는 하나 과하면 취지에 벗어나서 무의미하게 서로 피곤하게 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역사 스토리 흐름에 큰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세종이 원래 왼손 잡이 였는데 오른손 잡이 라고 말했다고 달라질 건 없어 보입니다. 어짜피 그 많은 전쟁이 오고 갔던 역사에 실제 역사 기록 이라고 해서 완전 팩트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보지 않으니 '그냥 그랬었구나' 정도로 받아 들이며 재미있게 보는 중입니다. 님 글 내용을 보면 마치 그 시대에 살다가 온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론은 맞춤법 틀렸다고 지적하는 잼민이들의 모습하고 다를 게 없어 보여요. 또한 역사 적인 기본 지식을 잘 아시면 유튜브 영상을 직접 만드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봐 드리겠습니다^^

  • @orrk

    @orrk

    11 ай бұрын

    @@침대장기 진짜 이런 븅신같은 소리를 장문으로 써놓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사유튜브채널에서 고증 신경쓰는게 너무 당연하고 맞춤법도 틀리면 당연히 지적해야지 맞춤법 틀리면 서로간의 의사소통에서 오해가 생기게 되는데 팩폭하나 할게요 ^^ 이러면서 똑똑한척 써놓은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중이 선수한테 왜 그따위로 플레이하냐고 지적하면 관중보고 그렇게 잘하면 니가 나가서 뛰던지 하는거랑 다를게 없는 논리네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dd8sz9ih4g

    @user-dd8sz9ih4g

    10 ай бұрын

    어이쿠야... 역사를 경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 소관이나 역사라는 기록을 남기는 그 의의는 다를 듯 싶으네요.

  • @user-dr2hr6tx9g
    @user-dr2hr6tx9g10 ай бұрын

    14:05 조선시대에 아파트가 있었다구요?? 오바테크날리지 조선...

  • @wlcjfgh121
    @wlcjfgh12111 ай бұрын

    단물만 빨고 버린 것이 결국 신분문제였을것.

  • @soullohen
    @soullohen8 ай бұрын

    장영실과 세종이 모종의 이유로 이미 사이가 틀어져 있었던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신분제 때문이 아니었을까로 많이 추측이 되긴 하지만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때도 신분이 낮은 이들이 글을 쉽게 배우면 위험하다는 사대부 지배층들의 반대를 뿌리쳐가며 만들었던 사람인데 갑자기 뒤늦게 부하의 신분을 따졌을까 싶기도 하고 알 수 없지만 장영실과 그 주변이 정치적인 세력을 이룰 것을 염려했다거나 만약 정말로 신분제와 결합해서 보자면 고려시대때 이의민의 사례를 참고해서 손재주 좋은 기술직 천출이 출세하는 모습이 사회에 또 다른 분란을 만들까 염려해서 이쯤되면 됫다 싶어서 내보낸 것이 아닐까 정도만 예상해 볼 수 있을꺼 같습니다. 물론 어느쪽이든 석연치 않는건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내쳐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 @Red-Creeper

    @Red-Creeper

    7 ай бұрын

    그럼 세종도 나쁜놈이네 조선은 참...

  • @user-rj1eg6mq1x
    @user-rj1eg6mq1x11 ай бұрын

    연금엔딩

  • @nolboo_korea
    @nolboo_korea11 ай бұрын

    구독중인데 제목으로 낚시질 당했네... 진짜이유라더니 개그질;;

  • @seok720429
    @seok72042911 ай бұрын

    장형 80대 집행이 사실이라면 반병신 되어서 궁궐에서 쫓겨났을 겁니다 미리 짜고서 80대를 치는 시늉을 했다고 하기에는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꺼고요 만약 장형중에 죽었다면 어떤식으로든 기록이 남았을것인데 그런게 없는걸로 볼땐 파직후 쫓겨났을 확률이 높아보이네요 왜 세종이 그렇게 총애하던 장영실과 틀어졌냐는 점이 중요할겁니다 어가 제작시기 세종은 당뇨와 안질 매독 등을 앓고 있어서 심신이 피폐해져 있을때 입니다 그래서 국정 최우선 순위가 문종으로의 안정된 정권이양 일텐데.... 때마침 터진 어가 사건으로 신하들에게 본보기를 보인것으로 생각되네요 어차피 명나라의 감시가 심해져서 과학기기 제작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장영실의 활용도가 떨어졌겠죠 또한 건강할때의 세종은 과학기기에 관심이 많았으나 병약해진 뒤부턴 관심밖이었을 꺼구요 장형 80대 이후의 장영실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것은 대역죄인이라서 이후 기록을 남기지 않은거로 보입니다 그러니 장영실이 제작했던 과학기기들의 관리도 안한거겠지요 보통 죄인이라 하더라도 종3품 정도면 시간이 흐른뒤 복직하거나 할텐데.... 그런게 없는걸로 봐서는 장영실과 그 가족들을 전부 한양에서 내쫓은 걸로 보이네요

  • @user-zc5ve2dk9l
    @user-zc5ve2dk9l7 ай бұрын

    한양 최고부자들 동네에 저택하나 주고 공무원연금 빵빵하게 넣어준다는대 싸물고 은퇴해야지 ㅋㅋ

  • @user-tu6lf1eh5b
    @user-tu6lf1eh5b11 ай бұрын

    걍 80대 맞고 죽었네.. 개같이 일 하다가 근본 없는 출신이라고 걍 버림 받은거 같음

  • @myongdong
    @myongdong11 ай бұрын

    그냥 역사 기록 그대로 봐야.. 그냥 장 80대 맞고 환천후 사망.. . 잘났다고 설쳐댔던 노비의 죽음에 세종조차 무관심.외면 하고 싶지만 진실에 가장 가까움..

  • @hikerfrantz5829
    @hikerfrantz582911 ай бұрын

    치도곤은 10대가 넘어가면 시실상 사형 집행이었고 딱 한대 맞고도 죽은 사례도 있음. 그런 치도곤을 80대를 맞았다면 100% 사망이고 당장에 죽지 않았다고 하들 장독으로 일주일도 못가서 죽었을 것임.

  • @agm1144
    @agm11446 ай бұрын

    가설1. 장형 80대 당하고 파직되었는데 장형 후유증으로 사망 가설2. 사실 그가 관직을 얻었을 때 이미 중년의 나이였고, 그가 어가 문제로 처벌받을 무렵에는 거의 환갑이 다된 고령이라서 파직 이후 노환으로 관직에 복귀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장영실의 아버지가 소주 출신 원나라 관리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장영실의 출생년도가 의외로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 @user-zu7wp5mw4k
    @user-zu7wp5mw4k11 ай бұрын

    이세카이 포탈타고 넘어갔....(픽션소설 대공학자 내용;;)

  • @Jeong-eun
    @Jeong-eun11 ай бұрын

    구라이기 때문에

  • @user-ob7ku8si6s
    @user-ob7ku8si6s11 ай бұрын

    80대맞고 죽었음

  • @user-cy6ju8dx7p
    @user-cy6ju8dx7p11 ай бұрын

    동양의 에디슨 ㄷㄷ

  • @user-nx8jc1se9s

    @user-nx8jc1se9s

    11 ай бұрын

    에디슨 은 발명가 라기 보다는 발명특허 사냥군 이였지요

  • @user-pz1ee1yj4q
    @user-pz1ee1yj4q11 ай бұрын

    장영실 토사구팽

  • @user-dr3cj3hk3z
    @user-dr3cj3hk3z11 ай бұрын

    곤장 맞다가 죽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 되네요

  • @user-gu4kv7zl3o
    @user-gu4kv7zl3o11 ай бұрын

    천재 영실이가 무기를 만들었어야 하는데...스팅거 화살같은 무기말이여. 한번 쏘면 자동으로 날아가 적장의 머리빡만을 맞추는 스팅커 화살... 아니면 연발 조총...

  • @user-ux4sc4ce4f
    @user-ux4sc4ce4f11 ай бұрын

    장형 100대 라고 써놓고 팽형시켜서 죽은사람으로 취급한게 아닐까..?? 세종실록의 사초가 발견된다면 알 수 있을텐데. 조선 극초기의 기록이라 사라졌을꺼 같다.

  • @user-jf9kw9th8w
    @user-jf9kw9th8w11 ай бұрын

    명나라에서 천문분야 핵심개발자 장영실을 해칠까봐 해할까봐 이를 미리 안 세종이 장영실을 살리려고 했단 가설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진짜 진실이 궁금하군요

  • @soridaizin79

    @soridaizin79

    11 ай бұрын

    그건 드라마

  • @user-jf9kw9th8w

    @user-jf9kw9th8w

    11 ай бұрын

    @@soridaizin79 어? 그래요? 난 드라마 본 적이 없어서..

  • @user-if5lz1hy5g

    @user-if5lz1hy5g

    11 ай бұрын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ㅡ 다음 검색 중국 역사는 1911년 중화민국 부터 시작.\ 이전 역사는 전부 우리역사 1920년 동아일보 창간호에 권덕규는 우리나라땅을 6대주로 나누었다 ㅡ 다음 검색

  • @user-nx8jc1se9s
    @user-nx8jc1se9s11 ай бұрын

    지금의 과학자나 다름없네 큰돈 벌지도 못하고 연구만 빡시게. 하다가 이용 당하고 버림. 받음

  • @user-cd8kg7br7h
    @user-cd8kg7br7h11 ай бұрын

  • @user-lt3lg2hb4b
    @user-lt3lg2hb4b11 ай бұрын

    더 재미있는 가설도 있습니다. 세종대 이탈리아 교황청의 사신이 조선에 왔었답니다. 뭐 하느님을 믿으라고 왔지만 그들은 조선에 부탁했던것도 있었는데 바로 활자 기술자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때 장영실이 교황청 사절단과 함께 로마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도 있답니다. ㅎㅎㅎ

  • @user-dd8sz9ih4g

    @user-dd8sz9ih4g

    10 ай бұрын

    오옷 이 가설 좋으네요! 정말 그럴듯 합니다! 곰곰 생각해보고 싶네요!!^~^

  • @user-du1we1no2i
    @user-du1we1no2i11 ай бұрын

    ㅋㅋ 강남의 아파트..택배

  • @user-zt7pm8bf1p
    @user-zt7pm8bf1p11 ай бұрын

    장영실 후손 없나요?

  • @리버티
    @리버티10 ай бұрын

    맞아죽은거네 당시 곤장은 5~10대만 맞아도 사망 가능임

  • @-Ell-
    @-Ell-11 ай бұрын

    본 영상에서는 부정하셨지만, 장영실이 쫓겨난 일의 근본 원인은 역시 신분제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신분제라는 것은 단순히 재산과 기회가 많고 적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사회적, 법적 장치였습니다. 민주사회를 살고있는 우리는 신분제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확인 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조차 신분제적 마인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 기록으로 알 수 있고, 심지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족보를 따지며 신분을 가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합니다. 양반 신분이 아닌 사람이 양반 사회, 즉 당대 최상위 엘리트 사회에 진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는, 지금 현재 강남 학부모들 사이의 정치질이나 갈등만 봐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조차 그러하다면, 하물며 500년 전 조선이겠습니까? 아무리 공적이 많아도 천한 신분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세종이 등용하기는 했으나 탐탁지 않게 여기는 무리는 반드시 존재했습니다. 장영실에게 흠이 생기자 그것을 빌미로 쫓아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역시, 재등용 하지 않는 것과 기록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긴 합니다. 아마 제 생각엔, 여러 사람들이 동의한 것 처럼 곤장을 맞고 곧바로 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그 이름이 잊혀질 때 쯤 조용히 생을 마감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 @dragont400
    @dragont40011 ай бұрын

    훈민정음과 장영실의 빅딜이었다는 견해도 있음.

  • @sffhjkghf
    @sffhjkghf11 ай бұрын

    미국판 장영실이 에디슨이네

  • @donchoo4706
    @donchoo470611 ай бұрын

    중국에서 장영실 기술을 탐내서 ....장영실을 보내 달라고 하니까... 세종이 적당한 이유로 장영실을 보호해 준것 같은데 .;...

  • @user-dd8sz9ih4g

    @user-dd8sz9ih4g

    10 ай бұрын

    반대로 그쪽으로 보낼수 밖에 없었던건 아닌지도...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네요 너무 나갔나요?^~^ㅋ

  • @user-tu5pi8cw3v

    @user-tu5pi8cw3v

    8 ай бұрын

    중국꺼 몰래 보고 와서 배낀게 장영실인데 뭔 신박한 개소리냐?

  • @user-wq5rb4he3j
    @user-wq5rb4he3j4 ай бұрын

    애민정신의 세종대왕이라면 그정도로 베풀었을 듯 하네요^^ 스토리 넘 재밌게 보고 갑니다

  • @hivo2030
    @hivo20306 ай бұрын

    80대면 그냥 죽인거라고 봐야하지 않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ig7nj1xb5r
    @user-ig7nj1xb5r7 ай бұрын

    곤장 맞고 아마 죽었을 듯

  • @javaxerjack
    @javaxerjack11 ай бұрын

    1. 이 시기의 세종은 비만 환자였습니다. 고증을 한다면 그 점을 살렸으면 좋겠네요. 2. 일설에 따르면, 당초 장영실을 끌어 들인건 궁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해 사대부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근데 문제는, 하라는 권력 다툼은 안하고 본업에 지나치게 충실했다는 점이었죠. 결국 그에 대한 인원 교체를 빌미로 한게 가마 사건이 아니었나 싶네요. 3. 참고로 이 가마가 참 비범한 물건인게, 사람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물건을 발주했습니다. 예, 15세기에 자동차를 발주했던 겁니다. 부서졌다는 이야기도 이게 운용 중 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응력 계산에 실패한 것인지 의심가는 상황일 지경이죠.

  • @javaxerjack

    @javaxerjack

    11 ай бұрын

    @@user-jq2em1cz2r 수준이 태권브이 수준이구나. 어떤 물건, 이런 식으로 새로운 물건을 개발 제작할 때는, 팀이 필요하지 만화에서처럼 박사 혼자서 뚝딱 거리고 구상, 설계, 제작을 혼자서 한다고 생각해? 그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구상, 설계, 제작을 총괄하고 마침내 작동 가능하게 한 사람이 장영실이라 봐야 하지, '나는 천재니까 혼자서 다해'라는건 니 수준이야.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는 '길드'조직원이 하나의 권력 구성원이 되었으니 참고하고. 책 권해 줄까?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11 ай бұрын

    실록에 보면 40대의 세종은 당뇨로 급격히 살이 빠졌었습니다. 30대 입었던 옷이 흘러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user-tu5pi8cw3v

    @user-tu5pi8cw3v

    8 ай бұрын

    뭔 개소리인지 비천한 신분을 가진 놈을 가지고 무슨 권세가를 견제해? 그리고 자동차?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만든 물건도 중국꺼 몰래 보고와서 배낀게 대부분인데

  • @test-xe4cl
    @test-xe4cl7 ай бұрын

    문과형들이 꾸민짓

  • @user-mp6zu5ke9u
    @user-mp6zu5ke9u11 ай бұрын

    진짜 이유라고해서 잔득 기대하고 왔더니 미스테리라니... 진짜 실망했다.. 여기도 결국은 썸네일 낚시였네

  • @user-ns1ch6hh1p
    @user-ns1ch6hh1p11 ай бұрын

    실제 장영실의 업적은 없다고 조선실록에 실려있는데 ㅎㅎ 측우기 문종 실제로 천문기계는 이미 고려시대 때 완성되어 있고 이것이 조선으로 넘어왔다는 기록이 있음 사람들이 중국것이 아니냐 하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형평성에 맞게 고려에 제작되어 있었음 장영실의 실제 기록된것은 왕이 타는 왕실마차 그거 부서지는 바람에 장80대를 맞고 쫒겨놨다는 기록이 있는데 ㅋㅋ

  • @Hyuchan1002
    @Hyuchan100211 ай бұрын

    1. 장영실의 사고라기에는 주관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부서질 것을 염려한 듯이 보이는데도 중형을 선고한건 궁내에 아무도 두둔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이걸로 미루어보건대 장영실의 인간관계는 좋은 편은 아니었던듯 2. 유일한 지지세력이었던 임금마저 마음을 돌린 것은 그 사건 이후 간의대마저 치워버리라고 한 것으로도 잘 드러난 듯이 보임 3. 결과적으로 장영실은 본인의 뛰어난 재주만 너무 믿고 건방지게 굴었던 것이 아닌가 싶음 ㅋ 세종도 나름 똑똑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또 자존심도 셈 ㅋ 자격루 제작에서나 훈민정음에서나 모두들 왕을 찬양하는게 기본이고 ㅋ 심지어 왕국임에랴 ㅋㅋ 4. 소설을 써보자면 이 새로운 가마는 실은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려고 했다는 것으로 보아 본래 세종의 작품이 아니었나싶음 ㅋ 이걸 우습게 여기니 불경죄에 걸린 것 ㅋ

  • @Hyuchan1002

    @Hyuchan1002

    11 ай бұрын

    사실 가마를 부숴트린죄는 이미 다 용서 되었음. 왕의 명령대로 만든건데 다른 말이 있을 수 있나 ㅋ 그래서 조말생 등은 풀려난 것

  • @Hyuchan1002

    @Hyuchan1002

    11 ай бұрын

    장형 100대에서 80대로 줄었다는건 ㅋ 세종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한 거짓말 ㅋ 그래서 줄이나마나한 감형이 들어가게 된 것 ㅋ

  • @KAMI75785
    @KAMI7578511 ай бұрын

    아니 파직된 진짜이유 말해준대놓고 장난치나 자기 상상으로 말하는게 진짜이유냐?

  • @user-vh8ni3fe1w
    @user-vh8ni3fe1w11 ай бұрын

    80대 맞았으면 죽었네 죽었으니 임금이 저것 때문에 죽였다고 기록 남기면 좀 스러워 보이잖아

  • @yongwoonlee1663
    @yongwoonlee166310 ай бұрын

    판타지 그만 쓰세요 매맞고 뒤진거임

  • @D.H_J
    @D.H_J10 ай бұрын

    끝에 세종이라고 실드 억지로 치려고 똥싸는거 너무 추하다. 세종이 단물 다 빨아먹고 애매해지니 죽든 말든 그냥 버린거다. 부빈고소금지법이랑 노비종모법의 세종을 무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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