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조선은 망했는데 일본은 억만금을 벌 수 있었던 이유

우리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실제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축약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으니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영상 내 오류나 기타 수정해야 할 사항이 보이신다면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제가 모아서 고정댓글에 게시해 다른 시청자분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훗날 종합본 영상을 만들 때 수정사항들을 반영해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BGM]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괴력난신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선유산기슭
메이플스토리 BGM 아랫마을 - 금지된 절벽
메이플스토리 BGM 고스트파크 - 고스트하우스
메이플스토리 BGM - 까막산
메이플스토리 BGM - 미남법사의 사원
메이플스토리 BGM - 퀘스트 중 긴급상황
메이플스토리 BGM - 네트의 피라미드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소멸의 여로 - 망각의 호수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시간의 신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시그너스의 정원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에델슈타인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에레브 수련의 숲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엘리니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흩어진 시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거상 BGM - 조선 필드
BGM팩토리 - 보드게임의 세계 - 장기
Artlist.io
[참고서적]
'도자기로 본 세계사' - 황윤 / 살림

Пікірлер: 356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1. 아래 링크를 클릭한 뒤 회원가입을 하시면 됩니다 www.welaaa.com/membership/purchase-form/premium?crmCode=조선왕조실록 2. 인터넷 어플을 통해 '윌라'에 접속 후 회원가입 -> 메뉴 -> 쿠폰등록 -> '조선왕조실록' 입력하시면 됩니다 이 쿠폰은 '신규가입자'만 사용 가능합니다 또한 무료기간 중 언제든 해지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추가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책으로는 먼저 오늘 소개해드린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도 재밌구요 그 외에 조선시대에 일어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엮은 책 '조선기담'과 조선시대 때 나타난 괴물들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도 정말 재밌습니다 그리고 한국사 전체를 훑고 싶으신 분들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를 추천드리고요 세계사에 관심있으신 분들껜 '세계사 컬렉션'을 추천드립니다 그 외에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책들이 등록돼 있으니 쿠폰 사용하셔서 '윌라'를 유용하게 즐길 수 있으시면 정말 좋겠네요!

  • @stivejin9281
    @stivejin9281 Жыл бұрын

    웃긴건 잡혀간 도공들이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는거죠.. 돌아가면 다시 관노비생활, 일본에선 장인대접 받으며 사니...

  • @xzxzxzxz9892

    @xzxzxzxz9892

    Жыл бұрын

    도자기 도공들 일본에서 가문까지 차림ㅋㅋ 애휴

  • @gayile5351

    @gayile5351

    Жыл бұрын

    이삼평이 한국에선 걍 잡혀간 불쌍한 도공 취급인데 알고보면 나베시마 가문에서 도자기 만들라고 아리타에서 공방까지 차려준거임ㅋㅋㅋㅋㅋ

  • @user-kq7ml2wl8f

    @user-kq7ml2wl8f

    Жыл бұрын

    이후 조선도공들이 밀항까지 해서 일본을 들어갔다네요.

  • @user-xw4qm5dc1k

    @user-xw4qm5dc1k

    Жыл бұрын

    지금도 유튜브보면 외국인출연자들보고 ~~~씨 한국 귀화해줘서 고마워요~~ 하잖아. 그거랑 똑같은거임. 개백정 노비 인간쓰레기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장인대접?!?!?! 평생 일본충성한다

  • @user-jg6lw8xg4c

    @user-jg6lw8xg4c

    Жыл бұрын

    지금의 그도공 들이 일본 정치와 경제를 이끌고 있슴~~

  • @jhs2645
    @jhs2645 Жыл бұрын

    ㄹㅇ 조선은 상처 뿐이었던 승리. 상처가 그렇게 많이 났으면 싹 갈아엎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못하고 그대로 다른 의미로 전설인 시대 '조선 후기'로 넘어가버림

  • @only2sea

    @only2sea

    Жыл бұрын

    조선 왕들은 도공들 반환해 달라고 요청 안 하고 조선 임금 묘에 침범한 일본인들 보내달라고 함. ㅋㅋㅋ

  • @xzxzxzxz9892

    @xzxzxzxz9892

    Жыл бұрын

    @@only2sea 10선비 그자체ㄷㄷ

  • @only2sea

    @only2sea

    Жыл бұрын

    @@xzxzxzxz9892 나더러 욕하는 줄 알았네 ㅋㅋㅋ

  • @only2sea

    @only2sea

    Жыл бұрын

    하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이전에는 왕가가 더 중요하지 국가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의 전환이 잘 안 이루어졌다고 봐서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맨날 백성 타령하는 맹자 민본주의 유교사상이라는 것도 그냥 말 뿐이라는 걸 보여줌.

  • @user-ru8ps1dr8p

    @user-ru8ps1dr8p

    Жыл бұрын

    그나마 붕당으로 조선 전기보다 발전했지만 그걸 숙종이 환국정치하면서 '세도정치' 헬게이트 열리면서 나라가 망할 직전으로 감ㅋㅋ

  • @conut933
    @conut933 Жыл бұрын

    좋고 유익한 영상 美친 퀄리티 깜칙한 캐릭터 좋은 목소리 오늘도 영상 잘보고 감니당

  • @ciaosoyeon
    @ciaosoyeon5 ай бұрын

    재미있게 잘보고있어요. 초등 아들과 역사 책 보고 여기와서 영상도봅니다 한중일 세나라가 긴밀히 엮여있어 책으로 임진왜란 읽고 여기와서 영상을 통해 각국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보게되고, 또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댓글들도 열심히 아이랑 봅니다. 이런영상을 보고 비평적인댓글 달거나 식견을 나누는 귀한 자리라 댓글로도 어른세상을 배웁니다. 아이랑 베스트 댓글찾고 이유 생각해봅니다. 정말 유익한영상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qe9zd5ty5z
    @user-qe9zd5ty5z Жыл бұрын

    일본 아직도 백화점 제일 비싼데 가면 기모노하고 도자기 판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야함

  • @D0ne000
    @D0ne000 Жыл бұрын

    완성도 대박이엥요 적지않은 분량인데 삼일만에 업데이트 어떻게 올리신거에옄ㅋㅋㅋㅋ 내용 대본 화면 등등 피땀정성들여 만드신게 다 느껴져요 학부시절 공모전했던게 떠오르네요 ㅠㅠ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워서 감동❤ 숙종 영조 파트도 기다릴게요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노고를 알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ㅠ 덕분에 힘 내서 더 재밌는 영상 만들어볼게요!

  • @jftyu6729
    @jftyu6729 Жыл бұрын

    옛 네델란드 지역인 현재 벨기에 지방에 가보니 17세기에 일본에서 도자기 수입했다는 기록이 도시에 있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국적이 달라도 신분차별하지 않고 재능을 귀하게 여기고 알맞은 보상이 있으니 국가적으로 부유하게 되었나봐요

  • @user-we8tc2sk4x

    @user-we8tc2sk4x

    7 ай бұрын

    일본만큼 신분으로 차별받은 나라가 극히 드뭄 거의 인도의 카스트 제도급으로 일본의 장인정신이라는건 태어날때부터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지 않으면 살아갈수가 없었음

  • @starfishtouge

    @starfishtouge

    6 ай бұрын

    봉건신분제 때문에 영주계급들이 영유하는 사치품교역과 사교가 발달한건데요; 봉건제요 봉건..

  • @user-do3py6gx4u

    @user-do3py6gx4u

    6 ай бұрын

    @@user-we8tc2sk4x 천민출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최고의 자리에 앉은것만 봐도 신분차별이 얼마나 심한지 알수가있지

  • @user-gs4jb6xl2e

    @user-gs4jb6xl2e

    6 ай бұрын

    ⁠@@naidoku5334사람들이 오해하는게 있는게 일본 전국시대가 진행되던 전란의 시기에는 재능이 있으면 얼마든지 신분차별에 탈출할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도요토미도 출세할수 있었던거구요 전국시대 이후 평화기인 에도막부에 들어서면서 다시 신분 이동이 불가능 하도록 억제하였습니다

  • @user-gs4jb6xl2e

    @user-gs4jb6xl2e

    6 ай бұрын

    어찌보면 둘다 맞는 말인데 일본 역사적 기간을 따져 신분이동을 억제한쪽이 많았더나 아니면 자유로운 신분 차별이 많았더냐를 구분한다면 신분이동이 안된쪽이 많았습니다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맡은 바에만 최선을 다하는거밖에 할수 없었기에 장인정신이 나올수 있었다고 봅니다

  • @김팝쿤
    @김팝쿤 Жыл бұрын

    잘 보고있어요!🎉❤

  • @minahlee5363
    @minahlee5363 Жыл бұрын

    기술자들과 무신들 박대하더니, 한일 합방은 안일어날 수가 없었네요. 구국영웅도 매번 나타나주는것도 아닐테고, 나타나더라도 나라가 너무 심하게 기울어지면, 구하기 힘들겠죠.

  • @waxihangolang
    @waxihangolang Жыл бұрын

    잘 보고 있어요❤

  • @Moresteponemore
    @Moresteponemore Жыл бұрын

    저 발전 된 도자기를 해외로 수출하면서 거기에 포장된 우키요에를 보고, 고흐, 마네 등이 큰 감명을 받아 자포니즘이라는 하나의 양식을 만들어 냄.

  • @user-bq1bj7fb5e
    @user-bq1bj7fb5e Жыл бұрын

    잘 보고 있어요

  • @user-fv5eq2fv3e
    @user-fv5eq2fv3e Жыл бұрын

    잘 보고 있어요😂

  • @user-dz8uh5dp9j
    @user-dz8uh5dp9j Жыл бұрын

    이번편 퀄리티 대박이네요😊 감사히 잘보겠습니다

  • @user-xl8fb6ow5y
    @user-xl8fb6ow5y Жыл бұрын

    나라가 강해지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되는데 상업을 천시하고 주구장창 성리학이랑 농업에만 목메고 있으니 나라가 잘될리가

  • @GYAV

    @GYAV

    Жыл бұрын

    그것도 오늘날 시각이지요 당시에는 상업이 결국 돈을 밝히게 되고 돈때문에 죽냐 사냐,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조선정부는 이거 싫다 이렇게 하지 말자 해서 상업을 등한시한거죠. 농업은 당장 먹고 살 문제, 성리학은 집권기득권들의 명분을 제공하는 이데올로기였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뭘하라는 건가요? 농업은 당연히 1순위이고 특히 이모작도 하삼도 한정으로 겨우하는 한반도에서는 농업 문제는 심각합니다. 고려말에 산에 올라가 도토리를 주워먹으며 연명했던 시절은 전혀 모르니까 농업을 천시하는 겁니다. 당시 삼모작 안되는 동아시아 국가는 조선과 만주 둘뿐입니다. 어떤 산업을 하든 자원과 기술이 있어야하는데 기후가 사납고 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한반도는 결국 한계가 있어요. 활과 화약조차 재료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수입해서 만듬.

  • @user-bs7zy6oq6v

    @user-bs7zy6oq6v

    Жыл бұрын

    신분제 유지하기 위해선 정당화 할 명분이 필요했죠. 그 명분이 성리학이고, 그 성리학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정책이 중농억상이죠. 상업활동으로 신분을 무시할 정도로 돈을 벌면, 성리학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죠.

  • @hsh6036

    @hsh6036

    Жыл бұрын

    일단 잉여생산물이 넉넉해야 상업이고 뭐고가 가능한겁니다. 근데 조선 초기는 인구수에 비해 농사가 안돼서 잉여생산물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명나라가 해금령 때리고 바다를 걸어잠군 상황이니 상업을 어떻게 살리나요 조선후기 상업이 조금씩 살아난 이유도 모내기로 인해 2모작이 가능해져 농업생산량이 급증해서 가능한거였습니다. 그리고 모내기는 물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농법이라 수리시설을 진짜 대규모로 지어도 가뭄 크게 터지면 농사 망해서 대기근 터지는 리스크 큰 농법이였습니다

  • @hsh6036

    @hsh6036

    Жыл бұрын

    ​@@user-bm9jh4vg9w ㄹㅇ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선은 왜 상업 안키움 ㅇㅈㄹ히는데 일본은 대부분 지역이 부산과 비슷하거나 부산 이남의 따뜻한 지역이라 이모작이 가능한데 한국은 하삼도에서조차 모내기라는 신 농법을 써야 될까말까한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을 고려를 안함

  • @sedumits8231
    @sedumits8231 Жыл бұрын

    애초에 임란때 망했어야할 나라임

  • @sainttongpha3980
    @sainttongpha3980 Жыл бұрын

    구독꾹누르고 갑니다. 다른나라역사도 많이 올려주세요.

  • @cloudrain6440
    @cloudrain6440 Жыл бұрын

    광주국립박물관에 도자기관한 역사가 주로 전시되어있구 남겨있습니다. 거기서 이 도자기전쟁 자세히 알수있습니다.

  • @user-og7fq8sg4v
    @user-og7fq8sg4v Жыл бұрын

    나레이션이 챡챡 감기네요ㅋㅋㅋ인여상&왕즐 일러스트 넘 귀엽습니다 채널 더 커졌으면 좋겠네요😌

  • @user-bo8yu9cr3p
    @user-bo8yu9cr3p Жыл бұрын

    당시 조선은 도공들을 천민취급했고, 일본은 데려가서 좋은대접에 벼슬도 주니 나중엔 끌려갔던 동생이 형을 데리러 온 사건도 있었죠,,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답답 했었는데, 요즘 k팝 드라마로 인정 받고 있는 시점에 잘 지키고 가꿔야 할듯 합니다..

  • @user-lu1zk1jv2p

    @user-lu1zk1jv2p

    5 ай бұрын

    제가 이런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먼저 올리셨네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그 능력과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서 빛을 발휘합니다. 조선시대때 도공들에 대한 대접은 많이 아쉽지만 옛일을 거울 삼아 오늘과 내일을 위해 능력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그 것을 발휘하도록 대접하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만세입니다.

  • @HyungnamGu
    @HyungnamGu Жыл бұрын

    The popular narrative was questioned by the Japanese historian Nakamura Tadashi in 1992. The stories of founding fathers of early modern pottery including Yi Sam-pyeong's are not confirmed by contemporary sources but were formed as late as the second half of the 18th century. Komiya Kiyora further analyzed the origin of the narrative, largely dismissing it. No contemporary Korean source mentioned him. In fact, historical sources, all in Japanese, never refer to him as Yi Sam-pyeong. The alleged Korean name was coined in the late 19th century, as described below. No contemporary source claims that he was hunted for his talent during the Korean campaign, or even that he took part in pottery in Korea. It is as late as circa 1843 that the official documents of the Saga Domain started to claim that the virtual founder of the domain Nabeshima Naoshige brought six or seven talented potters as "living treasures of Japan." This account was taken from a biography of a local governor of western Saga including Arita, written by his son Yamamoto Tsunetomo in 1707. The historical accuracy of his account is questionable as a mountain, where artisans supposedly started pottery, has no known remains of kilns. These records made no mention of Kanagae Sanbee or the names of other potters. The earliest known source of Kanagae Sanbee was of circa 1653, more than half a century after his arrival in Japan and only few years before his death. It was written by Kanagae Sanbee himself and given to Taku, the ruling family of the region of Taku. In this memorandum, he claimed that after the arrival in Japan, he had taken service with Taku Yasutoshi "for few years," and then had moved with some 18 people, mostly children, from Taku to Arita in 1616. It is not clear how he earned his living for nearly 20 years, between the end of his service and the supposed migration of 1616. A more interesting fact is that he did not claim that he had been a potter before his arrival or brought to Japan for his talent. He claimed that he carried (kiln) cars in his supposed migration of 1616. Also he noted that his men had included three of the "original potters of Taku" (多久本皿屋), whose identity is unclear. The historian Komiya Kiyora points to the existence of earlier pottery even before the Korean campaign of 1592-98. A considerable number of Korean potters were patronized by the Hata clan of Karatsu in northern Saga, who was destroyed by Toyotomi Hideyoshi in 1593. It is known that the kilns in its territory subsequently disappeared. Apparently potters became refugees because the war prevented them from returning to Korea. Komiya presumes that the "original potters of Taku" were one of these refugee groups and that Kanagae Sanbee learned pottery from them for survival. Komiya also questions his alleged discovery of a kaolin deposit in Arita and its supposed date of 1616 since the earliest known porcelain from Arita is of the 1630s and 40s. He points to the fact that the Saga domain tried for a short period of time to launch gold and silver mining. He raised the possibility that the thorough search for the ore body might have resulted in the discovery of kaolin. Komiya presumes that in 1616 Kanagae Sanbee was actually "banished" from Taku. It is confirmed by historical sources that authorities frequently cast out potters. As pottery was accompanied by forest destruction, they faced serious conflicts of interest with farmers. Early potteries were not profitable enough for authorities to protect because they were poor articles for daily use and lacked artistic merit. It seems around the 1630s that technological innovation enabled them to produce profitable, Chinese-like ceramics, and as a result, they got exempted from banishment.

  • @user-bh5ex9fg3o
    @user-bh5ex9fg3o Жыл бұрын

    너무 아쉽다.. 또 한가지 연은분리법이 있었죠.. 조선실록에 기록된 화학실험중 하나였죠 연은분리법을 통해 조선에서 은이 대량으로 유통되었고 실록에서도 "조선 명 국경일대 은이 대량유통되었다" "연은 분리법으로 북경의 물가와 비슷해졌다" "명나라 사신들이 은을 수레에 가득담아 간다"등등 허나 연산군의 폐위와 함께 조선역사에서 사라지면 이 기술은 1526년 일본으로 넘어감으로써 일본을 세계2위 은생산국을 만들어주고 그 은의 생산량을 바탕으로 도요토미는 군자금 , 국고 재정을 확충함과 동시에 서양과의 무역을 통해 일본을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킬수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이미 중국은 송-명-청때만 하더라도 은본위제도로 은의 중요성을 알고 심지어 아편전쟁또한 영국의 은이 중국으로 대량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하니 일으킨 전쟁인데 조선은 약 300년후에나 갑오개혁때 은본위제...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국제정세가 없었던 국가인지 개인적으로 연은분리법을 통해 상공업을 발전과 함께 세수확충을 할수 있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꺼라 생각함.. 정복전쟁이라던지 또는 기득권을 달달볶으면서 라던지 정책적으로도 큰 부담없이 국가재정을 확충할수있는거였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기술이였는데..

  • @JK-xy3zn

    @JK-xy3zn

    5 ай бұрын

    이 얘기를 많은분들이 모르심 ㅠ너무나 안타까운일인데. 현재의 우리도 정신차려야합니다 ㅠ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4 ай бұрын

    조선도 아주 허접은 아닌긴 한데 참 갈수록 가관인게 삼치 문약 조선이라 군사는 약해 기술과 가능성이 있어도 그냥 썩혀 부유함은 떨어져 외교는 그냥 명나라만 최고라 생각하고 태평무사해 집권자들은 솔선수범은 고사하고 자기 안위만 챙겨 신분제는 상대적으로 가장 단단해 학문이라곤 성리학 원툴에 다른걸로도 생각도 안하고 사고관이 그냥 거대담론만 이야기 하고 행동이 없고 같은 성리학이라 해도 타국과 비교되고 밖으로 큰소리 내지 못하고 자국내에서 자기보다 약한 백성들에게 갑질만 일삼아 그냥 안정적인걸 안주만 하고 태평무사하죠 쯧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죠

  • @dominion8998
    @dominion8998 Жыл бұрын

    정말 잘봤습니다 고려의 도자기 제작기술이 일본에 흘러들어가서 많은일본이 많은 이득을 봣지만 조선은 별 이득을 보지 못한게 아쉽네요 현대의 한국도 기술발전과 기술자 대우에 많은 투자를 하여 더 나은 한국이 되길 빕니다

  • @shkang8058
    @shkang805811 ай бұрын

    일본에서 다도 문화에 쓰이는 식기가 우리나라에서 개밥그릇으로 쓰는 막사발이였는데 일본은 도자기를 만들 능력이 없어서 우리나라에서 거져 주는 걸 일본에서 엄청 비싸게 팔아서 귀족 아니면 도자기는 구경도 못했죠. 그래서 임진왜란 때 도자기 장인들 납치 해서 자기나라로 데려 가서 장인 취급하면서 극존중을 해줬고 우리나라에서 천대만 받던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에 눌러 살면서 지금 동양의 도자기하면 일본을 떠올리게 됐죠. 오늘날에도 똑같이 기술자들은 노가다꾼으로 천대하고 영어 잘하면 똑똑한 사람 취급하는 dna가 아직 남아 있죠. 기술자 천대 하다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겪어 놓고도 뿌리깊게 박힌 사대 주의 사상은 벗어 날 수가 없나봅니다.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4 ай бұрын

    이책 한번 읽어 봐야겠네요 흥미로워 보입니다

  • @user-qy1os8ij3j
    @user-qy1os8ij3j6 ай бұрын

    근데 도자기 장인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회이지 않았을까.. 조선에서는 천대받던 직업인데 일본에서는 좋아했으니깐…

  • @suntongmax9115
    @suntongmax9115 Жыл бұрын

    여기 유튜브 퀄리티가 진짜 말이 안되네 ㄷㄷ

  • @dexter8820
    @dexter88207 ай бұрын

    일본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인구가 3배나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벼농사가 잘되는 여름에는 덥고 비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었습니다. 대항해 시대때 일본은 은도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당시 멕시코와 더불어 세계 2대 은생산지였습니다.

  • @dexter8820

    @dexter8820

    6 ай бұрын

    @@user-uo1lp1zb7w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user-wk5jv6zn5x

    @user-wk5jv6zn5x

    6 ай бұрын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 때 백제가 황산벌에서 계백이 5 천 결사대로 나당 연합군에 맞섰는 데 이후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일본이 백제에 보내준 군사가 삼만명 이었다..그것도 배로 보내준 군사가.......임진왜란 때 일본이 보유한 조총의 숫자가 이미 전유럽 보다 많았음. 이미 넘사벽 강데국

  • @paxyujina2024
    @paxyujina2024 Жыл бұрын

    도자기 뿐만 아니라 조선이중종때 자체개발하여내다 버린 세계최초은제련기술 가져다 엄청벌었으요 얄본이16~17세기 은생산 점유율 세계 40%차지 이당시 은제련기술은 얄본이 유일했음 후에 스페인이 받아들여 스페인이 비약적으로 발전😢

  • @xzxzxzxz9892

    @xzxzxzxz9892

    Жыл бұрын

    @춘 식 연은 분리법 넘어갔죠 애휴

  • @dominion8998

    @dominion8998

    Жыл бұрын

    연은 분리법도 안타깝습니다

  • @user-ww5ww5uh8o

    @user-ww5ww5uh8o

    6 ай бұрын

    연산군때 개발돼서 장녹수 측근들이 은광사업 독점하고 연산군이 사치를 해서 중종때 금지한 기술입니다 그걸 한 대신이 일본에 건네주고 하필 일본에 세계 최대 미나미 은광이 있어서 일본은 떼돈을 벌어서 무기사서 임진왜란 일으키고 메이지 유신 성공해서 조선을 침략하죠 일본은 625때도 그렇고 역사적으로 조선을 발판삼아 일어난 나라죠

  • @samgukjilover
    @samgukjilover Жыл бұрын

    4:18 인상여는 조나라의 명장이었던 염파와의 ‘문경지교’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추가로 문경지교 뜻은 목을 자르라고 해도 기꺼이 자를 만큼 깊은 우정을 뜻합니다. 13:50 ~13:54 그리고는 중국(청)을 반식민지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조선은…..을사늑약 체결한 뒤 결국 나라를 꿀꺽해버렸죠….ㅎ…ㅎㅎㅎㅎㅎㅎ….(먼산)

  • @user-patyokt
    @user-patyokt Жыл бұрын

    성리학의 교조화랑 상공업의 천시 + 양란으로 인한 피해와 경신대기근까지 겹치면서 망한거죠.

  • @user-dp5lq4pf6p
    @user-dp5lq4pf6p Жыл бұрын

    16세기까지 도자기를 만들수잇는 나라는 중국 조선 베트남 밖에 없었는고 이게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넘어갔고 유럽은 18세기에 가서 만들수있엇음 그래서 18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그집에 도자기를 얼마나 가지고가 있는가가 부의 가치가되었죠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그 시대면 유럽이 기술이랑 생산설비 둘다 최강으로 거듭났고 중국, 일본산은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밖에 없어요. 진품명품에 나오는 물건들처럼요. 생활용품에서 졸업당함.

  • @user-vk3qy4tm4e

    @user-vk3qy4tm4e

    11 ай бұрын

    저기요 19세기면 1800년대에요 ㅋㅋㅋ 비행기가 19세기에 떳습니다 무슨 도자기를 19세기까지 못만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dp5lq4pf6p

    @user-dp5lq4pf6p

    11 ай бұрын

    1600년대 말 네덜란드 등에서 중국 도자기를 똑같이 만들려고 했지만 수많은 시도 끝에 1709년 독일에서 도자기의 핵심 원료인 고령토를 발견해 단단하고 하얀 자기의 몸통을 빚는데 성공했습니다

  • @user-ty1ri3kh6k

    @user-ty1ri3kh6k

    10 ай бұрын

    1800년대 들어서야 가마온도를 올리는데 성공함

  • @jskim8418

    @jskim8418

    5 ай бұрын

    1800년대 영국에선 지하철이 개통되는데 한국선 구석기시대처럼 흙으로 도자기를 굽고있음

  • @HA-ie4cf
    @HA-ie4cf Жыл бұрын

    조선의 도자기공들은 돼지목의 진주목걸이에 불과했다. 진주목걸이가 돼지목에 걸려 있는 한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는 없다. 일본이 도자기공들을 돼지목에 걸린 진주목걸이 취급을 하지 않고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했기 때문에 노리다케와 같은 도자기가 세계적이 될 수 있던 것이고, 조선의 도자기공들은 대대손손 천대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천재들이 의대를 지원하니깐 의대를 강제적으로 지원못하게 외고나 과고 영재고에 입학하면 의대지원을 못하는 제도나 만드는 아이큐 낮은 정책이나 하고 있다. 한국에 천재들이 왜 의대를 가려고 하고 과학기술쪽으로 가지 않는지 우리는 모두 그 원인을 안다. 대우가 뭣같으니 누가 가냐!! 과학자들에게 금전적 정치적으로 전관 변호사 판검사를 능가하는 대우가 되도록 제도적으로 만들면 과학자 된다. 그러나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고 국민들도 천재들이 과학자가 되어 낮은 임금으로 혹사당하면서 봉사하기만 원하지 그들이 나라에 기여하고 그 기여에 대한 대가를 누리는 것을 배아파만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고 그렇고 지금도 미래도 안 바뀐다. 일제강정기, 2차대전, 625, IMF 등 외국의 힘에 의한 강제적인 개혁은 있었지만 스스로 한 개혁은 끝없는 데모뿐이었다.

  • @user-ci5bs3oe2b
    @user-ci5bs3oe2b Жыл бұрын

    국력에 자신이 있으니 타국 침략을 하는 거죠..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컸습니다. 농경국가시절에 주변 국가랑 비교하면 생산의 포텐셜은 지극히 낮습니다. 하삼도 이모작이 겨우 가능했던 조선이 삼모작이 되는 이웃국가들과의 격차가 벌어졌으면 벌어졌지... 세종대왕이 농사직설을 보급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그 혜택 온전히 못받습니다. 이유? 기후의 유불리 때문입니다. 상공업으로 가기에는 명나라의 해금령의 영향이 컸고요. 공산품 무역으로 가면 중국에게 처발립니다. 그 중국산이 나중에 유럽 공산품에 처발리고요.

  • @xzxzxzxz9892

    @xzxzxzxz9892

    Жыл бұрын

    도자기,조선 완전 특산품인 인삼만 팔아도 돈 ㅈㄴ벌었겠구만 무슨 걍 10선비라 다뺏기고 아무것도 안한거지

  • @user-uw4gn6ut5k

    @user-uw4gn6ut5k

    Жыл бұрын

    유럽에서 죽어라 기술투자해서 가격 낮춘 물건보다 중국에서 그냥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물건이 더 싸고, 없는 물건이 없다보니 유럽이 중국에 팔 게 없었음 중국애들이 직접 만들거나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영국이 오히려 비단과 자기 수입비용 때문에 은이 유출되고 적자가 나니까 고민하다가 마약을 가져다 팔기 시작한거임 유럽 공산품이 경쟁력을 가진 건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기술격차가 중국 스스로는 넘어설 수 없을 만큼 벌어졌을 때의 일이라 대항해시대보다 뒤인 근대시대의 일임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xzxzxzxz9892 도자기는 구하기 힘든 아라비아산 비싼염료를 국산화 할려고 국가에서 꾸준히 지원하다가 왜란-호란-대기근 3단콤보 맞고 절명했지. 기술, 생산설비랑 같이... 그래서 철화백자가 나왔고. 인삼농사 하면 토양 작살나는거 상식인데 당연히 확장에 한계가 있지. 대량생산은 당연히 무리고 대신에 기술발전, 품질관리 꾸준히 해서 인삼이 유일하게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외면하는건 아니지 않나? 돈벌기가 쉬운줄 아는 모양인데 돈버는 만큼 나가는 비용이 있고 조선은 그외에 수입하는게 많았어. 특히 물소뿔, 유황, 주석은 국가 안보랑 관련있는 항목이지. 도자기에 대해 빨간약 하나 먹을 차례인데 17C에 조선이 이리저리 치이고 18C 안정기에 유럽산 청화가 싸게 수입되어서 조선 도자기 사업이 다시 발전하는데 유럽은 이미 도자기 산업 강국이 되었지. 거긴 원하는 염료를 마음껏 쓰니까... 이게 불과 100년차이다. 17C의 조선을 탓하는건 자유인데 앞뒤는 구별해야하지 않을까? 도자기 연구 총책임자는 왕자들이 할 정도로 도자기는 조선에서 특별취급 받은 항목이지. 결코 소홀하게 대한게 아니다. 16C이전의 도자기 산업은 중국과 조선이 각각 평화스러울때 발전했다가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사양길로 가는건 당연하다고 봐야한다.

  • @dominion8998

    @dominion8998

    Жыл бұрын

    기술이 가져다 주는 혜택이 큰데도 기술자들 대우가 현재도 박한 경우가 많은게 아쉽습니다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dominion8998 현대 기술자, 연구자들에 대한 대우를 생각하면 우리가 조선을 욕하는게 내로남불이죠. 조선도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박해도 도자기 산업에 존망을 걸었거든요. 연구 총책임자가 왕자들이고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갔다는게 기술의 유의미한 발전을 말하죠. 염료도 국산화에 힘썼고요. 전근대 노동자 인권을 말하는거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 그 영역이기도 합니다.

  • @killyark
    @killyark5 ай бұрын

    공격이 아닌 방어전만 하니까 승전해도 피해만 보는거. 지금 현대에 와서도 똑같은 실수만 반복할 한심한 나라임

  • @user-jjy1015
    @user-jjy101510 ай бұрын

    5:39 금은 가치를 매길수 있으나 옥은 가치를 매길수 없고 그옥중에서 으뜸은 비취라....

  • @user-qm2qi2ei6p
    @user-qm2qi2ei6p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임진왜란과 도자기의 연관성을 다룬 책들을 서점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읽지는 않았기에 내용은 잘 몰랐는데 운영자님의 설명을 통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네요.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완벽)이라는 단어의 유래까지 알려주시는 본 채널은 너무나 배울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목의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망했는데)라는 표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과의 7년 전쟁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분명 우리 민족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수난의 역사이긴 하지만 국난 극복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은 한 치의 땅도 빼앗기지 않고 왜적을 몰아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 채널 임진왜란 시리즈가 마무리 될 즈음에 제 의견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오래 전부터 유럽, 즉 서양 세력과 교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조총)도 서양 세력을 통해 전래된 무기이니까요. 조선 도공들의 눈물과 능력, 명나라 멸망으로 인해 망명했다고 볼 수 있는 중국 출신 도공들의 능력까지, 어찌 보면 우리 민족과 중국 민족의 수난사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고 기존에 유지되고 있던 서양 세력과의 교역을 확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도자기 제작 고급 원료인 고령토까지 일본 땅에서 발견된 것을 보면 그 시대의 일본은 운이 좋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네요. 이번 영상도 잘봤습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조선은 망했는데’ 는 일본이 많은 이득을 본 것과 대비시키기 위해 자극적으로 제목을 짜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ㅠ 유튜버의 숙명인지라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user-qm2qi2ei6p

    @user-qm2qi2ei6p

    Жыл бұрын

    @@Joseon-Dynasty충분히 이해합니다 언제나 재미와 함께 지식을 주셔서 늘 감사할 뿐입니다 ^^

  •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Жыл бұрын

    임란후 조선의 여유를 즐기는 고급문화는 내리막길 걷습니다 도기가 귀하게되어 차문화가 사라지죠 지금으로 치면 커피숍이 다 사라진거에요

  • @gimgankoomg4168
    @gimgankoomg4168 Жыл бұрын

    일본이 도자기 무역의 탓은 발판이 되었고, 실질적으로 청나라를 넘어선 가장 큰 이유로는 청의 자만심과 특히 서태후 끝판왕 삽질을 꼽을 만 합니다. 그 시기도 당연히 청일전쟁 무렵이고 그것도 총력전이나 전면전으로 이길 정도로 총 국력이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죠. 조건의 경우 초기의 안정적 정치가 문종이후에 세조와 인조를 거쳐 오히려 후퇴하는 도중에 벌어진 사건이 임란이죠. 임란으로 크게 후퇴했다가 숙종에서 정조를 거치며 회복해 갔지만 다시 세도정치로 철저하게 망가진 거죠. 임진왜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조선이 망조가 든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세도 정치이고 또 다른 이유는 일본과 중국에 막혀버린 교역통로 탓입니다. 아무리 조선이 겉으로 청을 형님으로 모셨다고 해도 활발한 교역만 있었다면 배울 것을 웬만큼은 따라갔을 정도의 의지나 판단력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찔끔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 청을 속으로 무시한 탓에 청의 서구 문물까지도 무시했던 거죠.

  • @user-cr3jz3uj2i
    @user-cr3jz3uj2i Жыл бұрын

    조선은 전군 백성 총동원+ 명군합세 해야했는데 일본은 걍 갈아버려도되는인력 ㅅㅂㅋㅋㅋ 그 ㅈㄹ하고도 도쿠가와병력은 그대로 다른 지역 병력도 굳이동원안함 ㅅㅂ..

  •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걍 갈아버려도 되는 인력?ㅋㅋㅋㅋ망상이 심하시네

  • @bw-ee2of
    @bw-ee2ofАй бұрын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세계최초 주식회사고 세계최초 은행또한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져 동양과의 무역은 네덜란드를 부국으로 만들었죠 또한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일본에 서구적인 지식을 가르쳐 줌으로써 일본이 제국이 될수있게 도와줬고 심지어 서양의 여러 정치적 정보들을 일본에 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 @user-hj8uu1mh2e
    @user-hj8uu1mh2e Жыл бұрын

    아이러니하게 잡혀간 노비출신 도공들은 사무라이 직위도 받고 귀히 대접받았음

  • @user-mw5od1hu5c
    @user-mw5od1hu5c Жыл бұрын

    운칠기삼...준비하고 기다린자 때를 만난다

  • @NoName-vm8zq
    @NoName-vm8zq6 ай бұрын

    *천한 관노비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도공 사무라이였던 건에 대하여*

  • @rothgo5119
    @rothgo51195 ай бұрын

    당시 얼마나 대우가 안 좋았으면 가서 안 오겠어요? 잘 한 것이라 봅니다. 현재도 반도체 과학자들에 대한 대우가 안 좋은 경유가 있는지 가끔 지나부족에게 기술 정보를 팔아 먹는 애들이 있죠.

  • @user-vb6bl7ej6u
    @user-vb6bl7ej6u6 ай бұрын

    분로쿠의 원정이라는 말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분로쿠의 역(役) 또는 게이초의 역 또는 분로쿠 게이초의 역 이라고 쓰는데요? 그냥 전쟁이라는 뜻으로요.

  • @user-yr4kq1rd7d
    @user-yr4kq1rd7d6 ай бұрын

    마치 유투브같데 엄청난 기술 지식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유튜브 영업질을 하지 않은 사람과 남보다 좀더 나은 것밖에 없어도 유튜브 영업질로 유명해지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위의 대단한 사람을 뛰어넘어버리는거...

  • @kimchi_taco
    @kimchi_taco5 ай бұрын

    르브르 같은데서 일본 도자기 보면 퀄리티가 국사책에서 보던 조선 백자를 아득히 뛰어넘음. 시작이 조선 백자였을수 있지만, 서구에서 열풍이 불만큼 고도화 시킨건 조선같은 나라는 죽어다 깨도 못함.

  • @user-kw3se9oh3f
    @user-kw3se9oh3f5 ай бұрын

    상식적인 국가와 비상식적인 국가가 보일뿐.

  • @user-uw2qm1bs2w
    @user-uw2qm1bs2w11 ай бұрын

    임진왜란 6.25 모두가 일본의 초성장의 밑거름이된 사건..

  • @user-yg1uj2yd2b
    @user-yg1uj2yd2b5 ай бұрын

    뿌리깊은 사농공상. . 지금도 문제죠

  • @user-bb5hk9zq5h
    @user-bb5hk9zq5h6 ай бұрын

    와...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으로 2차대전의 기틀을 마련했던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름...

  • @gazuaaaa4840
    @gazuaaaa48406 ай бұрын

    제가 아는것과 조금 다른게, 임진왜란 터지기전부터 일본은 서양과 교류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노부나가가 서양에서 조총을 통해 일본 전국을 통일한것임. 그이후 임진왜란이 발생한거고

  • @royalfrigern5297
    @royalfrigern5297 Жыл бұрын

    백자를 화려한 고려시대랑 조선시대엔 달리 검소한걸 좋아하는 문화로 바뀌어 만들게 되었다는 교과서 서술을 몇번 봤는데, 그냥 당시 패권국이던 몽골제국에서 유행하니 따라하게 된것 뿐이네요

  • @user-zn3rd9nd4w

    @user-zn3rd9nd4w

    6 ай бұрын

    그건 개소립니다. 조선이 백자 뿐인 이유는 자기에 필요한 안료를 수입할 돈이 없어서 입니다. 백의민족 이라서 힌색옷 입었다? 정말 그말을 믿습니까?

  • @user-wk5jv6zn5x

    @user-wk5jv6zn5x

    6 ай бұрын

    ​@@user-zn3rd9nd4w조선의 기와집 기와 크기가 통일 신라 시대 기와집의 기와보다 크기가 더 작다....고려 사대 고려 청자는 지금의 에르메스급이지만 조선 막사발은 ㅋ

  • @foreverpericles

    @foreverpericles

    5 ай бұрын

    조선의 그 기운을 위에 김씨일가가 이어가고있지요. 다행인건 대한민국은 고려의 정신을 이어가고있다는 것입니다.

  • @user-sr5rd6qc4m
    @user-sr5rd6qc4m Жыл бұрын

    애보고 있어요 !

  • @user-mh9ls7iq7k
    @user-mh9ls7iq7k5 ай бұрын

    이렇게 시각이 넓은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 @rogue2586
    @rogue2586 Жыл бұрын

    조선의 공업,상업 천시에 대해 다루지 않았군요. 조선의 도자기가 쇠퇴한 직접적인 원인은 힘든 도공일이 힘들고 열악한 처우 였습니다. 태종역시 요업 기피 문제로 고민했고 병역면제를 제시했으나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은 조선의 열악한 처우가 싫어서 돌아가기 싫다고 하여 영주들과 짜고 사망처리 하는 경우도 다반사 였습니다. 이삼평은 조선에 비해 제작환경이 열악한데도 불구 하고 고령토를 찾기 위해 견마노고를 아끼지 않았고 겨우 찾아 세계적인 수준의 아리타 도자기를 만들었죠.

  • @user-sf9bk2iv8n

    @user-sf9bk2iv8n

    Жыл бұрын

    지금도 똑같

  • @dominion8998

    @dominion8998

    Жыл бұрын

    선조실록을 보면 도공들중에 일본의 스파이가 된 이가 있어서 처형당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열악한 대우를 받은 도공들도 많았습니다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전형적인 왜곡이죠.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이라고 전부 해피엔딩으로 끝난거 아닙니다. 황금알 낳는 거위 배가르듯이 최후를 맞이한 도공도 있죠. 기술자라는 직업이 고려시대에 어디 소속인지 알고는 있나요? 향-소 소속의 법제적으로는 평민인 사람들 입니다. 거주이전, 직업선택의 자유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박탈 당한채 오로지 국가에서 요구하는 물건만 만들어내는 인간들이요. 수탈당하던 사람들의 처우문제에 대한 사료고 애초에 고려시대에도 수탈당하는게 당연한 사람들이에요. 그게 전근대시대고요. 노동자 멸시는 현대에도 똑같음. 기술훔쳐서 외국으로 도망가도 할말 없음.

  • @tlerset6244

    @tlerset6244

    6 ай бұрын

    @@dominion8998 ㅋㅋㅋ 예외를 전부처럼이야기하네 조선에서는 전부 천시받았단다. 비교가능? 100%노예될래? 아니면 평범한사람들처럼 살더라고 잘하면 신으로 숭배받을 정도의 직업을 할래? 지능이 있다면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건 바로 알텐데 예외들먹이네

  • @dominion8998

    @dominion8998

    6 ай бұрын

    @@tlerset6244 비율이 적어도 심각하니까 언급한건데 전부처럼 이야기한다뇨? 님이 이삼평이 예외인건지 스파이짓한 도공들이 예외인건지 사료 열심히 전수조사해보세요. 임진왜란전 사료들은 일본에게 불탄것도 많구만;;;

  • @shl9877
    @shl98775 ай бұрын

    군사적으로도 조선에서 싸웠기 때문에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됐죠. 일본은 병사는 좀 잃었어도 그외에는 아무 타격이 없었죠. 미국이 절대 본토에서 전쟁을 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도쿄, 나가사키, 히로시마 빼고는 멀쩡했죠. 아마 미국과 일본본토에서 전면전을 했다면 회생불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남북이 사이가 안좋아 전쟁을 하니마니 하고 있는데 누가 이기든 결국 우리만 손해입니다. 한반도내에서는 전쟁하면 안됩니다. 주변국들에게만 어부지리입니다.

  • @user-cq5ms6vc9y
    @user-cq5ms6vc9y5 ай бұрын

    합당한 대우해주고 인종차별 멊으면 나 같아도 득달같이 국접 갈아타겠다! 게다가 치안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지! ㅋㅋㅋㅋㅋ

  • @user-hw9xf2mv8f
    @user-hw9xf2mv8f Жыл бұрын

    0:11 6년 아니에요?

  • @roachmaxbang

    @roachmaxbang

    5 ай бұрын

    자, 세어보세요. 1592, 3, 4, 5, 6, 7, 8 숫자가 몇 개인가요.

  • @hsk2614
    @hsk26146 ай бұрын

    인신매매로도 많이 벌었죠..포르투칼상인에게 그렇게 많이 팔앗다더라구요 조선사람들을요

  • @ChunSik262

    @ChunSik262

    5 ай бұрын

    일본은 자국민도 팔아넘김…

  • @user-ys9ss7kw6c
    @user-ys9ss7kw6c6 ай бұрын

    전리품을 엄청 가져갔지~노예 귀금속 도자기 숙련공등

  • @user-pc8jb5gi7o
    @user-pc8jb5gi7o5 ай бұрын

    진짜 조상들의 저 생존본능은 후대인 우리에게 물려줬으니 이 나라는 절대 안망한다 라고 생각된다

  • @user-ot6tj8fw6t
    @user-ot6tj8fw6t5 ай бұрын

    이거 브금이 메이플 브금이네...

  • @user-cp7re8in6d
    @user-cp7re8in6d3 ай бұрын

    제목에 낚였어..

  • @yongvesterkimtallone
    @yongvesterkimtallone5 ай бұрын

    조선은 기술공을 가짠게 대우 해줬고, 왜나라는 기술공을 귀족 대우 해줬으니.. 당연 일본이 더 발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 @user-de4qj9jk4u
    @user-de4qj9jk4u Жыл бұрын

    정작저때 일본으로간 도공들 대부분은 조선오기를 꺼려했음 조선에서는 사농공상 이라하여 천시했던 기술인들은 일본에선 기술자로 우대해주었기때문 허구헌날 성리학만 최고라며 점점더 절대화시키며 상복몇년입는거 가지고 파벌나눠서 정치질하는데만 열중하고 기술이 발전될리가 있나 결국 망할나라였음 ..

  • @user-wd1jb6ff2u
    @user-wd1jb6ff2u6 ай бұрын

    7살 쯤 때부터 수직서열관계를 강조하는 공맹의 책을 탈탈 외워, 30대 쯤에 한시 시험치고 관료하는 시쟁이들의 국가, 유교근본주의 국가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지금이라도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북)조선 꼴난다.

  • @user-fj1ud7nr6m
    @user-fj1ud7nr6m5 ай бұрын

    이때 도자기는 현재 반도체기술이였다지

  • @JK-xy3zn
    @JK-xy3zn5 ай бұрын

    이거는 ㅠ 교훈으로삼고 개선해나가야하는데 현재도 멍청한 짓거리 똑같이 하고있음

  • @user-mz5nl2rv6e
    @user-mz5nl2rv6e6 ай бұрын

    일본에서는 일본도자기 의 발전은 중국에서 도자기 기술을 직도입 하였다고 하죠.조선도공 과 관련된건 전혀 가르치지 않아요...

  • @user-gi5yu8yo3b
    @user-gi5yu8yo3b Жыл бұрын

    한반도에 전쟁을 낼 때마다 별 보복이나 응징없이 개꿀을 빨다보니 일본의 한반도침략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 @ELBUG-ku1iq

    @ELBUG-ku1iq

    Жыл бұрын

    국가적으로 한반도에 전쟁낸건 임진왜란 뿐인데 무슨말하는거임?

  • @rogue2586

    @rogue2586

    Жыл бұрын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한반도와 평지인 일본이라 경쟉면적, 인구수 부터 기본적으로 차이 나니 국력차이 나는건 당연하죠. 조선 이래 국럭은 역전되어 단 한번도 추월 하지 못했습니다.

  • @user-st1qc4fb6n

    @user-st1qc4fb6n

    Жыл бұрын

    ​@@ELBUG-ku1iq 임진왜란 말고도 잔잔하게 게속 침략함요 일본뿐만 아니라 오랑캐들 하고도 게속 전쟁 했어요

  •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보복이나 응징도 능력이 이썽야 가능한 것임. 약하면 후드러 맞기만 할 뿐이지

  •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rogue2586 일본도 산지면적이 80%임. 무슨 대부분이 평지?ㅋ

  • @cisab7075
    @cisab70755 ай бұрын

    우리가 진거지...

  • @brandonkim76
    @brandonkim766 ай бұрын

    조선 중기부터는 정말 답이없는 사대부 들임...

  • @andrewoh7360
    @andrewoh73606 ай бұрын

    文禄慶長の役

  • @user-wp7um1ov1f
    @user-wp7um1ov1f Жыл бұрын

    현재의 최첨단 기술은 전기차, 반도체, 조선, 통신, 발전소 정말 많은 기술들이 있는데 고대에는 최첨단 문물이 도자기가 그중 하나이기는 하지요. 도자기가 참 재밌는게 파키스탄, 이란과 같은 중동에서는 토양이 도자기를 만들어 낼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일회용 도자기 컵도 있다고 하니 도자기는 누구나 만들어 낼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지요.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조선이 도자기 종주국 자리를 지키기에는 경제사정과 자원이 문제였어요. 아라비아산 청화 염료는 비싼데다 중국이 수출통제를 해온 품목이었습니다. 염료 국산화를 위해 연구를 꾸준히 했지만 완벽한 대체는 불가능했고 왜란-호란-대기근 3단콤보로 도자기 산업이 박살난 뒤 화려하고 비싼 염료 대신에 철분을 염료로 쓰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도자기가 아니라 부족함을 채우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죠.

  • @sungjoohan1316
    @sungjoohan13165 ай бұрын

    참 답답한게 왜 조선은 저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이용해 서양과 무역을 하지 않았을까요? 끝까지 우물안에 갇혀 쇄국정책을 하니 고립되는 거지... 그 쇄국정책이 결국 조선을 낙후되게 만들고 일본의 식민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망할 나라였고 러시아나 청나라 식민지 될 운명이었죠

  • @ender560
    @ender56010 ай бұрын

    6. 25전쟁을 계기로 2차 대전 패망 일본이 재기해서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됐음. 이것도 씁쓸하죠.

  • @user-rd1kn8ob9x
    @user-rd1kn8ob9x Жыл бұрын

    이것도 맞지만 도고을 업신여겼던 조선의 유교 사상이 제일문제이죠.,.

  • @user-qo8zw1ei2e
    @user-qo8zw1ei2e5 ай бұрын

    조선 참 노답이다

  • @user-yu8oh2yj8h
    @user-yu8oh2yj8h6 ай бұрын

    노예만해도 10만명이 끌려갂으니까..

  • @jayjeong209
    @jayjeong20911 ай бұрын

    조선이 승리? ㅋㅋㅋㅋ

  • @Studio-letterforyou
    @Studio-letterforyou Жыл бұрын

    두번다시 우리땅에서 전쟁은 안된다. 전쟁은 다른나라땅에서

  • @user-zn2md6os2z
    @user-zn2md6os2zАй бұрын

    오디오북은 너무 아무것도 없던데...뭐 이솝우화정도만 잇는 듯

  • @okay-----
    @okay-----6 ай бұрын

    원래 싸움은 누구 집에서 하느냐에 따라 손익이 크게 갈림

  • @changhwadaang
    @changhwadaang6 ай бұрын

    도요토미가 조선건국 200주년 기념해서 축하사절보내준거ㅋㅋ

  • @user-fq2bk2kb9f
    @user-fq2bk2kb9f5 ай бұрын

    빌어먹을 성리학때문에 한국이 이꼴났지

  • @user-sn8gr9qz7s
    @user-sn8gr9qz7s5 ай бұрын

    조선은 사농공상땜시 도공들이 천대받다 일본에서 환영받고 환대를 받으니 절대 안돌아간다 했음

  • @Freedom-re5kl
    @Freedom-re5kl5 ай бұрын

    제목에 대한 나의 답. 우리는 사농공상으로 상업을 천시 했고 일본은 상업이 발전하고 무역을 했다는 것 ㅋ

  • @fhdebosdl1812
    @fhdebosdl18126 ай бұрын

    동아역사법칙: 한반도에 전쟁은 번마다 일본에는 복음이다

  • @stylerkr2487
    @stylerkr24875 ай бұрын

    일본은 뭘 홈치기 위해서 전댕을 함

  • @user-en6lj1mz9b
    @user-en6lj1mz9b5 ай бұрын

    공무원이 판을 치면 나라가 이꼴이 나는구나........교과서가 여기 있었네요 ㅋ

  • @user-rd5jb5pi2t
    @user-rd5jb5pi2t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

  • @user-lm6dc3fm4k
    @user-lm6dc3fm4k6 ай бұрын

    애초에 일본은 바다로 둘러쌓여있고, 신라 같은 약소국만이 주변에 있어서 국력을 보전 할 수 있어서 이미 고대부터 한반도 약소국들을 거느리던 강대국이었음..

  • @user-es9gk9gg2f
    @user-es9gk9gg2f5 ай бұрын

    거뱅

  • @user-ct1dp9tw5v
    @user-ct1dp9tw5v6 ай бұрын

    배울건 배우자

  • @user-cd1by2vf5f
    @user-cd1by2vf5f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전에도 조선은 극빈국이었음.

  • @PrettyT-rex

    @PrettyT-rex

    Жыл бұрын

    극빈국인데 어떻게 인구가 많을 수 있지

  • @happy-nb9jd

    @happy-nb9jd

    Жыл бұрын

    왜란 전에는 극빈국 아니였다. 역사 알고 말해라.

  • @user-cd1by2vf5f

    @user-cd1by2vf5f

    Жыл бұрын

    @@happy-nb9jd 아~ 증말? 참도 잘살아서 봄마다 보리고개 때 백성들이 죽어나가냐? 역사를 좀 알고 아는척 해라~ 왜란때 일본군들이 훔쳐갈께 없더란다~

  • @user-vl3jt9lq7n

    @user-vl3jt9lq7n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터진 16세기까지만 해도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국가는 조선 포함 10개국도 안됐고, 1인당 소득은 유럽, 아시아 포함해서 세계가 평균적으로 5~700$ 선에서 형성되어있음. 이중에서 조선은 평균 600$ 정도였고. 당시 조선은 세계적으로도 큰 나라였음

  • @user-cd1by2vf5f

    @user-cd1by2vf5f

    11 ай бұрын

    @@user-vl3jt9lq7n ㅍㅎㅎ~ 방글라데시 인구 1억7295만4319명~ 세계 10대 강국이냐? 닭대가리야^^

  • @user-gi4ru5pk7u
    @user-gi4ru5pk7u5 ай бұрын

    어떻게 보면 임진왜란의 나비효과 가 지금까지 온게 아닐까?

  • @user-tu6lf1eh5b

    @user-tu6lf1eh5b

    5 ай бұрын

    수백년 전에 있었던 전쟁 후유증을 아직도 극복 못한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망하는게 맞을듯 걍

  • @dominus2351
    @dominus23516 ай бұрын

    일본인 ,한반도 인, 여진인 과학적으로 제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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