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vs 일본 전격 국력 비교!! 일본의 압승? 그런데 조선은 어떻게 일본을 무찔렀을까? [임진왜란-4]

Фильм және анимация

우리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실제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축약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으니 그 점 양해 바랍니다.
영상 내 오류나 기타 수정해야 할 사항이 보이신다면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제가 모아서 고정댓글에 게시해 다른 시청자분들이 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훗날 종합본 영상을 만들 때 수정사항들을 반영해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BGM]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괴력난신
메이플스토리 BGM 호영 - 선유산기슭
메이플스토리 BGM 아랫마을 - 금지된 절벽
메이플스토리 BGM 고스트파크 - 고스트하우스
메이플스토리 BGM - 까막산
메이플스토리 BGM - 미남법사의 사원
메이플스토리 BGM - 퀘스트 중 긴급상황
메이플스토리 BGM - 네트의 피라미드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소멸의 여로 - 망각의 호수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시간의 신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시그너스의 정원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에델슈타인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에레브 수련의 숲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엘리니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메이플스토리 BGM - 흩어진 시간 - 국악버전 (feat. flow music)
거상 BGM - 조선 필드
BGM팩토리 - 보드게임의 세계 - 장기
[참고서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 휴머니스트
'조선국왕 이야기' - 임용한 / 혜안
'조선왕조실록 1 태조~세종 편' - 이성무 / 살림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박영규 / 웅진지식하우스
'1분 조선왕조실록 1: 태조~태종' - 정명섭 / 21세기북스
'왕, 왕비, 참모로 산다는 것' -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참고자료]
(유튜브) 최태성 1TV - 전설의 한능검 고급
(유튜브) 황현필 한국사 - 조선사
(유튜브) 임용한TV

Пікірлер: 341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1. 일본의 국토가 한반도 국토의 2배로 표기했는데 이는 요류입니다 현재 일본 국토에서 홋카이도 지방을 제외하면 약 30만 제곱km이고 한반도 면적은 약 22만 제곱km 입니다 여기서 류큐와 센카쿠열도까지 제하면 차이는 더욱 좁혀질 거구요 인구가 최대 2배 차이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걸 착각한 것 같습니다 면적이라도 적어놨으면 실수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2. 관동평야는 센고쿠시대 이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개간한 땅이기에 임진왜란 기준으로 관동평야를 곡창지대라 표현한 건 잘못됐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해당 자료는 제가 아직 조사를 못 해봐서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형으로 따지자면 둘 다 산악지대가 많아서 산악지형은 빼도 될 것 같고요 다만 조선은 북쪽이 너무 추워서 농사짓기가 어려우니 그걸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대충 호남평야의 많은 생산량이 한반도 북부의 적은 생산량으로 인해 상쇄됐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또한 일본은 한반도보다 기후가 따뜻해서 식량 생산엔 더 좋았을거란 의견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 임란 직전 기준으로 조선과 일본의 식량 생산량을 비교해보면 '일본 국토는 조선 국토에 비해 조금 컸다 그 외 조건은 대충 상쇄되는 것 같으니 식량 생산량은 대충 엇비슷하거나 일본이 조금 더 많았을 것이다' 라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조사 자료가 미비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3. 일본 북부 지방의 옳은 표기는 '훗'카이도가 아니라 '홋'카이도입니다 여태 잘못 알고 있었네요 ㅠㅠ 4. 의병에 관한 부분은 문제가 많아 삭제처리 했습니다

  • @zzang-mathis

    @zzang-mathis

    Жыл бұрын

    식량 생산량과 소비 부분도 오류가 있는데, 농지 면적도 일본이 넓지만 토지 생산력도 비교가 안됩니다. 일본의 상당한 지역은 벼만 2기작이 가능한 곳이에요. 호남 평야의 생산량은 일본에 토지에 비하면 곡창이라는 말을 전혀 붙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식량 생산량은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예전부터 지금까지 영남 지방이 호남 지방에 비해 훨씬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하루에 3끼를 먹었다는 것도 오류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세끼를 먹는 문화가 생긴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고 그 전에는 우리 나라도 대부분의 농경 민족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두끼를 먹는 문화가 많았습니다 의병 문제도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분들이 지적해주셨으니

  • @ELBUG-ku1iq

    @ELBUG-ku1iq

    Жыл бұрын

    ​​@@user-qr6hi4fs7r 일본 단위로 쌀 1석이 인구 한명이 1년에 먹는 쌀이었고, 태합검지령은 당대에 실시된 1차 사료이니 태합검지령을 근거로 추정한게 아닐까 합니다. 태합검지령으로 확인된 일본전국토의 쌀 수확량이 1800만 석이었으니, 1500만~1800만 사이쯤이겠죠. 조선의 쌀 수확량은 일본의 친한파교수 키타지마 만지 교수가 당대 일본사료 조선사료 전부 참고해 추산한 결과 1200만 석이니 대충 900만~1200만 사이였다고 보구요.

  • @ELBUG-ku1iq

    @ELBUG-ku1iq

    Жыл бұрын

    @@GJAO 히데요시가 천통한 직후 실시한 태합검지령으로 쌀생산량이 1800만 석이었고 에도시대 후반기 쌀생산량이 6000만 석이었으니 관동과 동북의 개간때문에 조선과 일본의 국력차가 안드로메다로 벌어진 듯 합니다

  • @user-gt2xw9ht9z

    @user-gt2xw9ht9z

    Жыл бұрын

    호남 평야도 대부분 일제시대에 간척+개간한 것입니다.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ELBUG-ku1iq 단순 인구와 쌀 생산량으로만 국력을 가늠하기 어려운게 공업 능력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조선이 비록 사농공상으로 공업과 상업을 천시했지만,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보고 있는 것도 공업 능력이 조선이 일본보다 한참 한 수 위었습니다. 한예로 통신사들이 일본에 갔을 때 조선에서는 서민 밥그릇이 일본에서는 다완이라 부르며 고급 자기로 쓰여지는 걸 봤었죠. 물론 전쟁이후 도공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조선의 은채광술과 대규모 철재주조술등 많은 기술들이 건너가면서 경제력 차이가 본격적으로 났죠. 이는 전쟁 이후 통신사 일지에서도 부유함을 인정합니다.

  • @user-ic2mi2kt1b
    @user-ic2mi2kt1b11 ай бұрын

    음,,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일본을 무찌른건 아니고 토요토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쇼군들이 본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 권력을 사수하려고 한게 임진왜한 종결의 가장큰 이유라고 생각함.

  • @benyoo6711

    @benyoo6711

    6 ай бұрын

    왜군은 전쟁터지고 몇년지나자 경상도 해안가에서 왜성쌓고 버티기했고 일본다이묘들도 전쟁끝내고 퇴각하길 원했습니다. 전쟁비용이 어마어마했거든요. 토요토미가 전쟁을 일으켰으니 뭐라도 받아내고 끝내려고 버틴탓이 제일 큽니다.

  • @user-ug9ux1hq7o

    @user-ug9ux1hq7o

    5 ай бұрын

    맞음 ㅇㅇ 걍 존버로 이긴 거

  • @user-tk8yp5cw8e

    @user-tk8yp5cw8e

    5 ай бұрын

    버텨낸 게 무찌른 건 맞아요. 지금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저 때도 공격하려면 천문한적인 전쟁 비용이 들어가는데, 일본은 전쟁을 수행할 만한 경제력이 아니였으니깐요. 도요토미가 안 뒈졌어도, 저 상태로는 계속 전쟁 수행하기가 무리였어요

  • @qlnmnlp8561

    @qlnmnlp8561

    5 ай бұрын

    그때쯤되면 히데요시가 죽던말던 상관없음 이미 전쟁이 질질 끌려서 조선 전투력이 상향평준화되고 일본은 보급문제에 더 시달리게되면서 더 이상 조선상대로 일본이 거저먹는 전투는 점점 사라지게됨

  • @user-ug9ux1hq7o

    @user-ug9ux1hq7o

    5 ай бұрын

    @@qlnmnlp8561 맞음 왜 입장에선 속전속결로 조선왕 잡지 못한 시점에서 패퇴가 결정된거나 마찬가지였지

  • @kiyongkim7651
    @kiyongkim7651 Жыл бұрын

    저도 명나라의 참전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평양성 함락 이후부터는 일본은 조선과 명, 양국과 싸움을 벌인것이니. 만일 명이 없었다면 조선은 일본의 영토가 되지 않았더라도 국토 전반이 초토화가 되어 국가기능을 거의 상실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 @user-bn1ch8ot7r
    @user-bn1ch8ot7r Жыл бұрын

    일본은 기후가 더 따뜻하고 평야도 많아서 농사 짓기도 한반도의 조선 보다 유리해서 농업생산력에서 앞서고 오랜 내전으로 단련된 군사력, 섬나라 라는 특성으로 외침을 받지 않고 인구도 많은 것이 이유죠. 오늘날 한반도의 대한민국 🇰🇷과 북한, 일본열도의 일본을 비교하면 마찬가지죠.

  • @user-ri73bdis88h7

    @user-ri73bdis88h7

    Жыл бұрын

    섬나라가 외침이 없는건 사실이지만 내전이 계속되었으니 인구면에서는 같았을겁니다. 대신에 내전경험으로 군사력은 높은건 인정이구요.

  • @user-g5bs1gh8h

    @user-g5bs1gh8h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이미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 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였고 실제 오다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것도 결국 상업을 통한 경제력 장악이었고 저는 이것도 크다고 생각함

  • @ohmalub

    @ohmalub

    5 ай бұрын

    @@user-g5bs1gh8h 상업 공업 기술이 많이 발전했고 조총은 유럽 전체보다 총이 많았을 정도였죠

  • @user-zw7lk8gu9r
    @user-zw7lk8gu9r11 ай бұрын

    일본군들이 쳐들어와서 식량조달 하려다가...이렇게 가난한 나라도 있구나 하고 놀랐다하죠. 국력차이는 어마어마 했을겁니다.

  • @user-jjy1015

    @user-jjy1015

    11 ай бұрын

    일본군입장에선 도로도 없고 식량도 없는데 자기들은 듣도보도 못한 의병이 일어나고 밥먹는건 자기들보다 더먹는걸 보고 정말 여러가지로 충격이였을듯

  • @user-cu6vd7pm8v
    @user-cu6vd7pm8v Жыл бұрын

    한반도 생산력이 일본열도 생산력다 낮아진건 고려때부터입니다. 다만 한반도는 통일국가, 일본열도는 분열국가였던 관계로 힘을 모으지 못했죠. 결국 일본열도는 통일 후 더 넓은 영토의 온전한 농업생산량과 더 많은 인구로 조선을 침공하게 됩니다.

  • @user-cw6jf6pv1e
    @user-cw6jf6pv1e Жыл бұрын

    목소리가 너무 좋네요~~ 구독 눌렀습니다

  • @jqgj6692
    @jqgj66924 ай бұрын

    저떄 일본의 경제규모가 진짜 상상초월인듯하다,, 아직 중세인데 그떄라면 유럽나라들도 대부분 가난하고 , 전세계에 아직 풍족하게 사는국가가 없다고 볼떄인데 이미 자본주의 상업의 발달이 완성되있고 , 농사도 잘됫나본지 쌀수확량도높고 인구증가율도 매우높앗던거같음, 무엇보다 몇십만의 군대를 군선까지 건조해서 원정까지 보낼정도의 국력? , 그리고 수십만의 군사들이 조선처럼 징병 농민병이 아니라 월급받는 직업군인 , 그러니까 현대사회에서도 어려운 모병제를 진작에 하고있고 , 규모가 몇십만이상이라니 , 현대국가들도 힘든규모임 , 내생각엔 저떄 일본의 경제규모 군사규모나 전투력등,, 세계유일무이하게 최고수준일거같다 그떄는 유럽도 여기저기 갈라지고 통합도 잘안될때임 ,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칠떄 이미 산업화직전의 수준에 와있다고 봄

  • @user-qm2qi2ei6p
    @user-qm2qi2ei6p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 직전 조선과 일본의 국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둘 중에서 일본의 국력이 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운영자님이 영상에서 대부분 설명하셨기에 추가로 말씀드릴 것은 없지만 굳이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바로 서양과의 직접적인 무역이었습니다. 조선도 무역을 했습니다만 명나라, 일본 외에 다른 나라와 직접적인 무역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이 시기에 서양과의 교역을 통해 조총이라는 신무기의 수입 및 개발과 함께 천주교의 영향으로 인해 서구적인 안목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이 조선 정벌을 실패한 이유는 운영자님이 설명해 주신 것 외에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잠재적인 적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런 이에야스를 따르는 관동 지역의 다이묘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명나라 군대의 참전은 그들이 평양성 전투를 제외하고 조선군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참전한 것 자체만으로 일본군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의병의 등장은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 보급로를 철저히 괴롭혔고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성주성 탈환전을 여러 번 시도하면서 일본군의 후방을 위협했습니다. 특히 함경도는 정문부 장군이 이끄는 의병의 힘으로 수복되었다는 말씀을 함께 드립니다. 정유재란 때 의병이 다시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1차 전쟁인 임진왜란 기간 중 활약했던 의병장들과 의병들이 관군에 편입된 것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김덕령, 이산겸 같은 의병장들이 무고죄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기에 이에 대한 조정에 대한 불신도 분명 작용했을 것입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이번 영상도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선조 수정 실록에서 명나라군이 도움이 안된 것으로 기록이 되었지만, 명나라 군은 북군과 남군으로 나뉘어서 조선에 파병되었습니다. 명의 남군의 경우 조선 처럼 일본의 약탈을 겪은 적이 있어서 대보병 전술이나 무예 등을 적극적으로 알려줘 조선군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귀'라는 장수에 대해서 봐도 굉장히 높게 평하고 있습니다.

  • @drpepperzerosugar

    @drpepperzerosugar

    9 ай бұрын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였죠. 오직 명나라만 사대하는 종속국. 사실상 명나라의 식민지 국가나 다름 없었던터라, 열악한 농업 생산량의 상당부분이 명나라의 조공으로 바쳐져 실제 상황은 더 처참했죠. 일본에 절대 비빌 수 없는 국력의 차이였음. 이에 반해 왜는 명나라와 1:1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군사 강국이었음.

  • @The_Right_Peoples_Life

    @The_Right_Peoples_Life

    6 ай бұрын

    ​@@drpepperzerosugar그건아님;; 당신이 말하는건 괴뢰국수준이지, 조선은 속국수준임. 그리고 그당시 일본이 강국은 맞았지만 명나라에 비빌만큼 강국은 아니였음.

  • @say_one

    @say_one

    6 ай бұрын

    김덕령 이산겸은 애초에 의병활동 신고도 안해놓고 의병한답시고 무기와 식량 뻬돌리고, 지멋대로 지역 장악하고 재판과 사형까지 멋대로 하다가 윤두수한테 혼나니까, 역모를 실제로 대놓고 하려고 수십명 의병장 모으다가 사형당한거아님?? 김덕령의 의병장으로써 전공도 심지어 실록은 물론 당시 남인이나 서인세력의 기록에도 한두줄정도 이치웅치 정도밖에 없음. 김덕령 지들 집안기록에서만 무등산호랑이라면서 미친듯이 빨아재낌.... 의병장들을 견제하려고 누명씌우고 사형시킨거면, 선무공신 받은 다른 수백명의 의병장들은 어케 설명하실꺼?? 심지어 남명조식-현풍곽씨라인의 곽재우같은 의병장은 원래 정5품 현령출신에다가 단독전투로도 3000인급 고니시 부장들 박살낸 정사가 있어서 진짜 백성들의 영웅급 대우받았는데, 조정에서는 질투는 커녕 떠받들고 벼슬주려했는뎅?? 이순신 아들들의 의병공적도 싹다 인정해주고 첫째 이면에게는 정3품 벼슬내렸는뎅??? 이순신 아내에게도 명예직 벼슬 주셨는뎅??? 뭔 시기질투로 의병장을 하대했다하냐 그거 어디서봄??? 진짜 역사교과서 싹다 폐지하고 그냥 고려광종부터 실록들 싹다 강제로 읽게해야됨. 아니 왜 지들 입맛대로 인물의 성격을 예측해서 편집을 하지?? 과거의 사건은 일어난 그대로 해석해야지, 기록에도 없는데, 묘사대충해놓은걸로 성격유추하고 예측을 해버리누.

  • @hyojinshim9802
    @hyojinshim9802 Жыл бұрын

    역시 역주행님 목소리👍 항상 가게에세 이어폰으로 잘보고있습니다~

  • @user-pj9qr4ii6u
    @user-pj9qr4ii6u Жыл бұрын

    와~~ 끝내주는 내용입니다 ^L^

  • @Utd5
    @Utd5 Жыл бұрын

    웃긴게 일본 유명 사극들 보면 '군사 칸베에', '사나다 마루' 등 보면 오히려 일본의 다이묘나 5봉행 등이 조선을 문화가 찬란하고 뭐 그런 나라라고 대사에서 나옴 ㅋㅋㅋㅋㅋㅋ 서로서로 가진게 다르니 서로가 서로에 없는 걸 높게 쳐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ku9lr7cs9i

    @user-ku9lr7cs9i

    Жыл бұрын

    그나마 군사 칸베에랑 80년대 nhk사극(이름 생각안남)에서 임진왜란이 조금이나마 묘사됐죠 ㅋㅋㅋ

  • @Utd5

    @Utd5

    Жыл бұрын

    @@user-ku9lr7cs9i 최근 사나다 마루에서도 언급되었고 사실상 준주인공인 이시다도 조선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문과라 그런가)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Utd5 당시 일본이 통일 한 후에 글을 읽을 줄 아는 관백이 별로 없었다고 하면, 말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삼국연의 조차도 대부분 모여서 글 읽을 줄 아는 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알고 있었으니.

  • @ohmalub

    @ohmalub

    5 ай бұрын

    @@user-rm1uo5wk2w 공업기술이나 무력 상업과 많은 식량생산으로 국력은 강했지만 그런건 많이 약했군요 ㅎ

  • @bluefantast
    @bluefantast Жыл бұрын

    의병이 게릴라 전투 위주로 전쟁을 치룬 걸로 알려진 이유는 단독 전투는 게릴라 형식으로 전투를 치뤘고 대규모 전투에는 관군과 함께 전쟁을 치뤘기 때문입니다.

  • @user-xo2dg1mi3l
    @user-xo2dg1mi3l Жыл бұрын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생각보다 불안정해서, 유력 영주들에게 임진왜란 참여유도를 시키지도 못함... 가장 큰 영주인 오대로 중에서 임진왜란에 참가한건 모리, 우키타 뿐이었음... 그나마 우키타 히데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양자여서 총대장으로 임진왜란 참가한거라.....

  • @user-tx2zm3nc2i
    @user-tx2zm3nc2i11 ай бұрын

    임란초기에 회유정책으로 일본군이 점령지에 군량풀었다가 본인들 10일치를 3일만에 먹어치워서 당황했다고 합니다...

  • @jesse5710
    @jesse5710 Жыл бұрын

    역주행님 오늘도 감사히 잘 봤습니다~ 딱딱할수도 있는 내용들을 항상 쉽게 잘 설명해주시는데 아이들을 위한 만화나 책으로도 나오면 정말 좋겠네요👍

  • @user-dz8uh5dp9j
    @user-dz8uh5dp9j Жыл бұрын

    넘 잼있어요

  • @user-io8tx2mn8l
    @user-io8tx2mn8l Жыл бұрын

    아니 성곽보수할돈도 없고 농업국가면서 생산력 ㅈ또없네 저정도면 전쟁을 이긴것보다 나라를 어떻게 유지시킨거에 놀라야될듯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Жыл бұрын

    16세기에 경제와 농업생산에서 압도까진 아니어도 상대적 우위에 있었죠... 다만 봉건제로 역량 집중에 한계가 있으니 조선이 잘 대비했다면 좋았을 것을...;;

  • @user-if1bk9sg3v

    @user-if1bk9sg3v

    Жыл бұрын

    징비록 드라마보다 눈물나서 못보겠더군요. 대비를 안한건 아닌데 이미 총체적난국이였어요.

  • @shotgun2992

    @shotgun2992

    Жыл бұрын

    애초에 귀족(양반)되면 군대 빠지는 나라는 전세계에 조선 하나 뿐이라 대비를 100배를 해도 결과는 비슷비슷했을듯… 죄다 총기 무장해서 기사가 필요없어졌을때도 귀족들이 지 자식은 한두놈 군대 보내서 기병대나 장교라도 하게 했음

  • @user-rq2ip3oz9i

    @user-rq2ip3oz9i

    Жыл бұрын

    @@shotgun2992 중국 일본도 많이 빠졌습니다 서양도 군사 귀족 아니면 많아 빠졌고요

  • @ssamjanghannip

    @ssamjanghannip

    Жыл бұрын

    누가 봉건제 사회인데 일본 전병력 2/3인 40만을 끌고 왔을거라 생각했냐고 ㅋㅋ

  • @drpepperzerosugar

    @drpepperzerosugar

    9 ай бұрын

    16세기 조선과 일본은 압도적인 차이가 난 거 맞음. 조선의 생산량의 상당부분이 명나라에 조공으로 할애되는 바람에 조선의 경제는 처참했음. 그리고 봉건제 핑계대는데, 그 시절에 봉건제 아닌 국가는 없었음.

  • @user-is1ls6qr5m
    @user-is1ls6qr5m Жыл бұрын

    30만 살인병기들이 왔는데 나라 안망한거 보면 진짜 기적이네...

  • @korean_citizen

    @korean_citizen

    Жыл бұрын

    청나라 쌩까고 명나라편 든 이유가...

  • @user-bosndocmx

    @user-bosndocmx

    Жыл бұрын

    이때 일본을 물리치고 쿠테타 한번 일어나서 나라망하고 싹다 바뀌었어야했는데 ㄲㅂ

  • @user-qr3os8so9w

    @user-qr3os8so9w

    Жыл бұрын

    진짜 이순신에 활약이 없었다면 진짜 나라가 패망했을듯 저 30만중에서 이순신이 60~70% 가량을 상대하면서 한번도 패하지 않았고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안겨줬으니 이순신 장군에 활약이 엄청나다는걸 느낌

  • @jhs2645

    @jhs2645

    Жыл бұрын

    이순신이 다 잡은거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로 싹 끊어놓음

  • @niconicnicole

    @niconicnicole

    Жыл бұрын

    망한거와 다름없는 초토화 상태가 되었죠

  • @user-el9us3bo3s
    @user-el9us3bo3s Жыл бұрын

    이순신이 해군 GOAT인 이유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이걸 이긴다고..?

  • @user-nj2ox4uq4v

    @user-nj2ox4uq4v

    Жыл бұрын

    이걸 나진이?

  • @Mikoon3326
    @Mikoon3326 Жыл бұрын

    이미 빠르면 신라 통일 이후, 늦어도 고려시대때 이미 인구,쌀 생산력,전투력등의 국력은 일본에 역전되었다고 본다.

  • @user-mr8bu5eu1o

    @user-mr8bu5eu1o

    11 ай бұрын

    gdp는 그렇고 1인당 gdp는 임란 수십년전에 뒤집혔다 생각해요 연은법 덕이라는거죠 전투력은 문종시절까진 큰차이 안 났을겁니다

  • @user-xf7wn1hx8z

    @user-xf7wn1hx8z

    3 ай бұрын

    고려때 감히?ㅋㅋ 고려때 GDP가 세계 4위였는데. 먼 헛솔일지.

  • @Mikoon3326

    @Mikoon3326

    3 ай бұрын

    @@user-xf7wn1hx8z 국뽕 사절...ㅋ

  • @user-wd4jt3wm7d

    @user-wd4jt3wm7d

    2 ай бұрын

    ​@@Mikoon3326고려때는 아닐건데요 기술단계 차이가큰데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단순 비교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군이 국가대 국가 전면전 경험이 적었지만, 꾸준히 북방 여진족과 전투가 있었고, 선조대에도 니탕개의 난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쪽과 맞닥드인 남쪽지방은 그 동안 후방에 가까워서 방비가 안되어 있었죠. 오히려 우리가 익히 아는 판옥선도 이순신 이전부터 잦은 일본군의 약탈로 이를 막고자 연구 개발된 전투선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자 총통(산탄식 개인화기)도 운영했고, 일본의 3단 조총 사격처럼 3단 화력 사격 전술이 있었습니다. 이는 조선이 이시애의 난때 이미 화력 중심의 내전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의 정예 병력을 사라집니다(더 강력한 화력의 화차로 찍어누름..). 오히려 화력은 일본군이 조선군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았죠.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행주산성 전투와 울산성 전투입니다.(권율은 행주산성 당시 조선군이 정예 병이라 웅치와 이치 전투에 비해 쉬운 전투였다 평하였고, 울산성 전투에서는 조선군이 멀리서 화포로 성벽을 깨부수는 걸 보고 왜군이 당황함) 다만 다른 문화(세계)의 충돌이 가장 크죠. 이미 니탕개의 난을 거치면서 제승방략 체계로 전환되었는데, 일본군은 전쟁을 빨리 끝낼 목적으로 왕을 바로 잡겠다고 레이스를 했고, 이 속도(거의 보름만에 한양 도달)가 너무 빨라서 중앙군이 집결하기 이전에 일본군이 당도해서 와해되는 경우가 많았죠. 애초이 미스테리로 남은 신립의 (무리한) 배수진에 동원된 병력도 정예군이라기 보다는 급히 모집한 징집병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미 (급조한) 중앙군이 깨진 상황에서 한양에서 방어하기는 어려워서 임금이 피난을 갔는데, 일본군 입장에서는 성주가 성을 버린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 했죠. 그리고 기록상 조선군이 일본의 조총보다 가장 성가신것은 긴 창자루였다고 합니다.

  • @user-pj6yu7im8c
    @user-pj6yu7im8c Жыл бұрын

    일본이 저당시 은 생산량이 엄청나게 많았어서 국력차이는 쌀 생산을 빼놓더라도 많이 차이 났을겁니다.

  • @user-cp9wj2ps4c

    @user-cp9wj2ps4c

    Жыл бұрын

    정답 입니다. 제련술이 상당히 발전 하였고 교역도 활발 하였스니다. 나가사키 사쓰마가 그 대표였지요

  • @589stepahead3

    @589stepahead3

    Жыл бұрын

    상당히가 아니고 압도적으로 차이났을듯..

  • @VHG-yn3xp
    @VHG-yn3xp Жыл бұрын

    조선의군대는 사실상 어제는 농민 오늘은 군인이었으니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전투에 참가했을거같네요..(몇몇 훈련된 군인뺴고 대다수는 농민들을 징병해서 싸웠다하네요)

  • @user-zy1dn1oj1u
    @user-zy1dn1oj1u Жыл бұрын

    영상잘보았습니다. 다만 정유재란때 의병이 아예없었던것은 아니고요. 조식의 제자 정인홍이 유일하게 의병을 일으켰다하네요. 앞으로도 좋은 영상 기대할게요~^^

  • @user-bosndocmx

    @user-bosndocmx

    Жыл бұрын

    그리고 그러한 정인홍은 훗날 광해군을 왕위에 올려 북인의 수장으로…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고정댓글을 통해 수정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gx7ch8yk9y

    @user-gx7ch8yk9y

    Жыл бұрын

    원연도 한목했죠 전사하긴 하지만..

  • @user-cp9wj2ps4c

    @user-cp9wj2ps4c

    Жыл бұрын

    @@user-bosndocmx 조선사 덕후 시네요 역사를 좋아하시네요

  • @user-np7ub8vw8f
    @user-np7ub8vw8f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때 이미 일본이 조선보다 국력이 더 강했음 일본이 청일전쟁부로 청나라도 추월한듯 그니깐 국가 경제규모는 그때까진 청나라가 훨씬 컷겠지만 군사,정치제도,외교에서 입지 모든거 고려할때 청일전쟁 이기고 청나라도 넘은듯

  • @user-pm2le9zo8y
    @user-pm2le9zo8y10 ай бұрын

    조선을 일본보다 크게 그린 것은 완전 거짓이지만, 일본을 조선보다 크게 그린 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국토,인구,생산력,전투력 측면에서 조선보다 우월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조선은 그냥 홈그라운드에서 지키는 입장이었고, 명나라 도움까지 받았음에도, 바다 건너 장거리 원정군을 보낸 일본을 7년간이나 몰아내지 못했고, 히데요시 죽고 나서야 일본이 스스로 물러나는 바람에 전쟁이 끝난 것임.

  • @user-oy5fx9dm8b
    @user-oy5fx9dm8b Жыл бұрын

    임란당시에 일본과 조선의 국력차이는 사싫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죠 그래서 추산할수 밖에 없겠지만 저도 여러 유투브를 보다가 보니까 채널 아케치란 채널에서 임진왜란관련 시리즈를 유투브로 만든 동영상이 있는데 여기 참조해 보세요 나름 양국의 당시 자료를 통해서 나름 합리적으로 분석하신거 같더라구요

  • @ELBUG-ku1iq

    @ELBUG-ku1iq

    Жыл бұрын

    그분이 일본중세시대에 대해 가지신 지식이랑 식견은 ㅇㅈ하는데 현재 정치 바라보는 시각이 좀 편향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서 들어가는게 좀 꺼려짐

  • @user-ol5qt8bs9w

    @user-ol5qt8bs9w

    Жыл бұрын

    ​@@ELBUG-ku1iq거의 대부분의 역사 유튜버들이 그러함 전근대쪽은 나름 중립적이면서 객관적인데 반해 근현대쪽으로 오면 정치적인 가치관을 발설해버리죠

  • @user-nb2nt2hy9t

    @user-nb2nt2hy9t

    7 ай бұрын

    잉? 현저하게 차이 났죠 ㅋㅋㅋ 일본군이 부산 급습한 이후로 단숨에 한성 먹고 평양까지 먹었는데 당시 선조는 그냥 중국으로 튈라다가 만력제의 명군 참전 아니였으면 조선은 바로 사라졌습니다

  • @ddfgt3c-4fvb
    @ddfgt3c-4fvb6 ай бұрын

    경지 면적을 지금의 기준으로 보는 건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야 농기계를 이용해서 농작을 할 수 있어서 경작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지만, 그 땐 농업에 쓸 수 있는 거라고는 인력이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면적으로 산출량을 계산하기보단 인력 자체로 추산하는 편이 더 올바를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면적도 한계가 있습니다. 수경재배를 하니 물을 갖다 대야죠, 씨 뿌려야죠, 잡초 뽑아야죠, 가을에 추수해야죠, 곡식 낟알 털어야죠, 농촌에서 살아보면 휴일이 없습니다. 농한기에도 다음해 농사를 위해서 해야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밥그릇 차이도 언급하셨던데, 요즘처럼 식품이 넘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적은데도 많이 먹은 게 아니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먹었던 거라고 추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선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대인데 노동력을 전쟁에 가져다 썼다면 쌀의 수확량은 더 적을 수 밖에 없었겠죠. 그러니 그 당시 일본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됩니다.

  • @user-oy5fx9dm8b
    @user-oy5fx9dm8b Жыл бұрын

    한가지 덧붙이자면 당시 조선과 일본에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사실은 맞는거 같아요 다만 조선의 경우 과거 신숙주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작성한 해동제국기를 기본으로 일본을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세조때 지도를 가지고 판단하는건 좀 무리가 있어보여요 물론 같은시대이긴 한데 해동제국기가 생각보다 일본을 잘 분석한 자료라서요! 문제는 이후 조선이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다보니 자료가 업데이트 되지는 않은거 같아요 즉 조선이 일본에 대해서 알고 있던자료가 100년도 더된 자료라는게 문제이긴하죠 그래서 오닌의 난이후 일본의 센코쿠시대에 대해선 정확한 파악이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일본의 경우에도 소요시토시를 위시한 대마도의 도주이하 여러 관리들이 조선을 자주 다녀왔으므로 생각보다는 조선을 잘알고 있기는 했죠 다만 도요토미를 위시한 조선에 건너왔던 주요제장들이 대마도세력과 사카이상인 출신이며 소오요시토시의 장인이었던 고니시유키나가를 제외하곤 조선을 잘몰랐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요 임란전까지 두나라간 워낙 교류가 없기도 없었거니와 상대방에게 신경쓸 여력이 없었죠

  • @Gucci-in6zo
    @Gucci-in6zo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제가 더 감사해요! 재밌게 시청해주시고 후원까지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 @hai_3760
    @hai_3760 Жыл бұрын

    볼때마다 느끼지만 참 좋은 영상👍 이런 채널은 상주자

  • @royalfrigern5297
    @royalfrigern5297 Жыл бұрын

    퀄리티가 아주 좋습니다

  • @user-vl3jt9lq7n
    @user-vl3jt9lq7n Жыл бұрын

    15~16세기 조선과 일본의 국력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일단 인구는 조선의 경우 학자들 마다 주장하는 추정치가 천차만별이라서 700만~1,400만까지 잡는데, 대부분 900~1,000만 정도로 봄. 동시기 일본의 경우 1,200만~1,800만 정도로 잡는데, 1,200~1,500만 정도가 중론에 가까움. 당시 농업생산량으로 보았을 때 토지는 조선과 일본 모두 150만 정보로 두 나라 전부 누락치가 존재할 것을 감안해도 경작지의 크기 자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음. 그러나 문제점은 조선은 밭 중심의 농업 사회였던 반면에 일본은 논 중심의 농업 사회였기 때문에 농업 생산량 측면에서 일본이 유리할 수밖에 없음. 조선의 1인당 농업생산량은 세종 시기 1.8석으로 최고정점을 찍고 꾸준히 하락세에 들어 1.0~1.3석까지 떨어진 반면, 일본은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세종시기 1.0석에 불과하던 일본의 1인당 농업생산량은 임진왜란 직전에는 1.4~1.5석 가까이 증가함.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정치에 불과하고 추정치를 제시한 학자도 한국의 1인당 농업생산량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감소한 것 때문에 실제보다 상당히 과소평가 되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일본의 농업생산량이 더 많았던 것은 사실임. 전체적인 농업생산량은 파악된 것으로는 조선의 경우 대략 1,200만 석 정도로 추정하고 있고, 동시기 일본은 대략 1,500~2,000만 석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즉, 인구는 대략 1.5배, 농업생산량도 1.25~1.6배 가까이 났음. 앵거스 매디슨이 제시한 조선과 일본의 1600년 GDP는 대략 1.5배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하지만 이 당시의 GDP 추정치는 사실상 믿을만한 수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충 아 그 정도 차이가 났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됨. 군사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신분 등의 조건을 감안하고 조선의 군역 동원 가능 인구는 60~70만 정도였으나, 조선에는 보인 제도라는 것이 존재하여 실질적으로 군역을 지는 것은 20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40만 명 이상이 보인으로 돈을 내고 군역을 지지 않았음. 그렇기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동원한 군사는 대략 50만 명으로 여러 썰이 존재하지만 대략 일본의 동원 가능 인구의 50%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고 보았을 때 큰 차이를 보임. 거기에 일본은 5만 명 이상의 대군을 한번에 상륙시킬 수 있을 만큼의 수송선이 존재하였는데, 조선의 경우 수군의 정원이 대략 2~3만 내외였고, 전시에 동원되는 조운선 등을 다 합친다고 보았을 때 수군의 질적, 양적 수준은 비슷했다고 봄. 여기에 세입의 경우 일본은 봉건제의 모습을 띠고 있어 획일화된 세율이 적용되지 않고 지역과 가문마다 제각각의 세율이 적용되었으며,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영주들이 농민을 악착같이 쥐어짰기 때문에 일본의 세입액은 조선에 비해 훨씬 높았을 것임. 동시기 조선의 경우 중앙 조정이 거둔 세입액은 쌀 50~60만 석 내외로 국내총생산의 5%채 안되는 미미한 수치였음.

  • @johnpark657
    @johnpark657 Жыл бұрын

    임란직전 곡물생산 조선 2000만석 일본 1850만석으로 농업기술이 현격하게 차이남 단지 세율이 조선1할 일본6할로 군비면에선 조 200만 일본 1000만 이상으로 5배 차이가 남

  • @user-yu1co6ll2u

    @user-yu1co6ll2u

    8 ай бұрын

    조선의 한석과 일본 석고에서 예기하는 한석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석은 백미기준 180kg 으로 조선의 탈곡 전 두가마 보다 많은 것 같던데, 저도 정확하지는 않아서 찾아봐야겠네요

  • @John_Horace_Kim
    @John_Horace_Kim Жыл бұрын

    만약 서양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하지 않고, 계속 살아남아 일본을 통일하고서 '오다 막부'를 세웠다면 동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 @sslee1418
    @sslee1418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영상에서 훗카이도라고 말하시길래 정정 댓글 남김니다. 홋카이도가 더 현지어와 비슷한 발음입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다음부터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bc9de8hz6h
    @user-bc9de8hz6h8 ай бұрын

    어쩌니저쩌니해도 명나라가 당시에 엄청난 규모의 군사와 식량을 지원해주었다! 선조가 잘한것은 없지만, 명나라의 도움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 @miniz0217
    @miniz0217 Жыл бұрын

    체급차이가 나는것부터 이미 승패는 어느정도 갈렸는데 체급이 차이나도 질적 우위를 통해서 승리하는 사례도 유럽에서 충분히 나오지만 조선은 그러한 질적우위도 없었으니(수군 제외) 명군의 참전이 아니면 사실상 조선은 졌을것이라고 봅니다 제일 큰 공은 명군의 참전 두번째로 이순신 장군님의 활약이 제 생각이네요

  • @user-sg3hs1ud8l
    @user-sg3hs1ud8l5 ай бұрын

    임진 왜란전부터 국력이 앞서던 일본을 메이지 유신 이후에나 앞서나간걸로 착가들 하고 있으니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거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4 ай бұрын

    영상에 나오는 부채는 도요토미 히테요시가 가지고 있던걸로 아는데 충무공 이순신이 전쟁중 노획한게 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 @archangel7882
    @archangel7882 Жыл бұрын

    사실 군대 관련해서는 조선초기 진관체재에서 니탕개의 난으로 제승방략로 바꾸면서 꼬인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의병이 일어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일본과 조선 세율 차이때문에 안 그래서 쳐들어온 것도 짜증난데 세율을 높은 것 (자기들 입장에서는 본토보다 잘 주었다지만) 때문에 전국적 반발이 일어난 것도 영향이 큰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이거 조선 시대는 결국 관군 편입으로 지휘관 통일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기억이 안 나네요)

  •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Жыл бұрын

    징비록에서 제승방략이 잘못된 전략임을 말합니다. 😊

  • @user-jq7bc1pt1o

    @user-jq7bc1pt1o

    4 ай бұрын

    근데 진관체재였어도 찌발림

  • @doitjust2776
    @doitjust2776 Жыл бұрын

    8:11 원래 히데요시의 목표는 명나라를 넘어 인도까지 정복하려 하였지요!

  • @user-iy8no2bs4x
    @user-iy8no2bs4x6 ай бұрын

    유교탈레반으로 시장경제 자체를 조져버린게 큰듯

  • @user-wd1jb6ff2u
    @user-wd1jb6ff2u6 ай бұрын

    결국 보급과 추위 등 있어보니, 자신들이 왔던 농사 잘되고 따뜻한 곳 보다 험악했기에 갈수록 싸울 마음도 줄어들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당시엔 기름 보일러도 비료도 파카도 없던 시절이란는 것...

  • @leedonghyup
    @leedonghyup Жыл бұрын

    대비는 잘 못해도 막상 당하고 나면 잘하는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 @user_775
    @user_775 Жыл бұрын

    일본이 식량 소모가 적은건 세금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임.

  • @user-qr3os8so9w
    @user-qr3os8so9w Жыл бұрын

    선조가 잘한것이 이순신 발탁이 크죠 이순신도 부임이후 전쟁대비해 군사훈련과 물자를 보충하는등 했는대 그게 7년간 전쟁을 이렇게 좌우할줄은 예상 못했죠

  • @KoreaBroadcastingCorporation

    @KoreaBroadcastingCorporation

    Жыл бұрын

    선조가 인재등용은 잘했음 다만 정치가보다는 기업가적 성향이 너무 강한게 문제였지

  • @gray8235
    @gray8235 Жыл бұрын

    솔까 관동평야는 곡창이 라기 보단 이예야스가 개간 한 거라는 데 이게 맞나요?

  • @user-my8ip7tt5s
    @user-my8ip7tt5s Жыл бұрын

    아우..보는데도 스트레스..조선은 수백년 버틴게 기적임..명나라 아니였으면 임진왜란때 이미 망할 나라..

  • @user-ri73bdis88h7

    @user-ri73bdis88h7

    Жыл бұрын

    오히려 그때 안망한게 독이되었을지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된것처럼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나와야 했는데.

  • @user-jp7kg6oz8u

    @user-jp7kg6oz8u

    6 ай бұрын

    명의 지원에 수군의 이순신이 지닌 존재감이 엄청컸죠.

  • @user-ox3tk8pl9j
    @user-ox3tk8pl9j Жыл бұрын

    사실 늘 궁금한 거 있었는데 이거 아는 사람 있으려나? 일본군이 장전이 오래 걸리는 조총을 시스템화해서 강력한 군대가 된 건 알겠어. 근데 왜 임진왜란에서 왜군이 대포를 사용했다는 묘사나 기록은 없는거야? 이순신이나 조선&명나라 연합군도 대포를 활용해서 일본군을 격퇴한 기록은 많이 봤는데, 그 전에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성주들끼리 싸우던 시절에 왜 대포가 발전하지 않았고, 심지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대포 맛을 본 뒤에도 도쿠가와 이야에스가 도요토미의 잔여세력과 전투를 할 때도 대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종종 궁금했는데 아시는 분~~?

  • @user-rj7sy9li5w

    @user-rj7sy9li5w

    Жыл бұрын

    제가 알기론 육상전에서는 지금처럼 포탄이 날아가서 터지는 작열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냥 큰 쇠구슬을 날리는 정도의 위력 뿐이라 별 의미가 없고 성벽 같은데 날린다 하더라도 수비군에서 복구를 해버리면 그만이니 한번 쏠때 화약 소모량도 많고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해상전에서는 달랐지만 일본의 주력선 문제나 이것저것 다른 분들이 분석한게 많죠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user-rj7sy9li5w 조선에는 임진왜란전에 비격진천뢰 같은 초기형 파열식 포탄이 있긴 했죠. 조선은 이미 화력을 집중해서 화망을 형성하는 전술이 발달한 반면 접근전은 약했습니다. 이는 여진족의 기마전술을 저지하는 위주로 발달한 원인이 큰 것 같습니다. 다만, 당시 화약 무기들은 생각보다 수명이 짧았고, 일본의 공업 생산 능력은 떨어지기도 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륙당시에도 조총병 같은 포수 비율이 많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 @kotparam
    @kotparam Жыл бұрын

    국내에서 흔히 임진왜란 시기 일본 인구가 조선보다 약간 더 많았을 거라 추산하는데, 그러면 1900년경 일본 인구가 조선의 3배 정도였던 것이 설명이 안 됩니다. 17, 18세기 일본의 인구증가요인이 조선보다 많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외국사이트에서 임진왜란 시기 일본인구를 1800만, 조선인구를 600만 정도로 추산했는데, 그게 더 앞뒤가 맞아보입니다. 일본은 12세기부터 이모작을 해 잉여농산물이 많아 화폐사용량이 폭증한 반면, 조선은 봄가뭄 때문에 이양법을 못해 조선후기에야 벼농사가 늘었습니다.

  • @user-rj7sy9li5w

    @user-rj7sy9li5w

    Жыл бұрын

    600만이고 1800만이면..3배 아닌가요?

  • @user-jjy1015
    @user-jjy101511 ай бұрын

    10:14 이와 관련해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길을 질못들어 부산까지 내려가기만 했어도 제2의 임진왜란처럼 될수도 있었다는 말이있고 산조도 아예 명으로 도망갈려고 했으나 신하들이 그럼 니이제 왕대접은 못받을줄 알아라 하면서 대놓고 협박까지 할결과 조선을 떠나지 못했죠.

  • @user-uh9zw5fv6p
    @user-uh9zw5fv6p10 ай бұрын

    원'균' 사실 원균은 역병의 화신 그 자체였던게 아닐까

  • @user-cp9wj2ps4c
    @user-cp9wj2ps4c Жыл бұрын

    이렇게 일본사를 객관적이고 정확히 방송하시는 역주행님 수고 많았습니다. 밥 도꼬데스까에 웃음이 나오네요 사운드이펙트 일러스트 내레이션 그리고 최대한 근거중심 객관적인 일본사는 우리 한국에겐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덕분에 한국이 극일이 아닌 지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조선시대 전부 터 있어 왔는데 일부 권력층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하여 뻘짓을 하는 바람에 아직도 나라가 이리 된 것을 반성하는 국민이 적다는데 문제가 있다 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역주행님 영상은 전부 보아야할 컨텐츠 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 @jhfoever
    @jhfoever5 ай бұрын

    현재 일본의 경작 가능 토지는 남한 경작 가능 토지보다 조금 더 큰 정도입니다. 왜 조선이 대식국으로 불렸고 일본은 소식이 문화가 되었을까요.

  • @user-rc6dv8mm2h
    @user-rc6dv8mm2h Жыл бұрын

    그냥 간단하게 조건이 원정군 20만을 편성할수있는 능력이 있나 생각해보면 됌 ㅋㅋ

  • @user-qr3os8so9w
    @user-qr3os8so9w Жыл бұрын

    그런대 저는 신기한게 센코쿠 시대를 격으면서 수많은 전쟁경험도 쌓았을텐데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을 제압하지 못해서 전쟁을 조선에게 반격에 기반을 만들어줬는대 전쟁경험도 풍부한 일본군이 조선수군을 이끄는 이순신장군을 제압하지 못해서 전쟁을 끝네 이기지 못했다는건 참 ;; 명량해전도 일본이 워낙 유리했는대 그 유리한 이점도 끝네 살리지 못하고 명량해전 이후 일본은 아예해전을 피할려고 했으니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하고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대 해전을 포기한다는건 조선정벌 포기하는거나 다름없어서

  • @-markshin-

    @-markshin-

    10 ай бұрын

    솔직히 이순신 장군이 잘하긴 했지만 명덕분에 이긴거죠. 이순신장군이 막은건 아닙니다.

  • @user-iq9bk5bp5g

    @user-iq9bk5bp5g

    6 ай бұрын

    실상 명나라의 지원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음 ㅋㅋ 나라가 기울 정도로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해버려서 청나라한테 뒤통수가 터질 정도로 맞아버렸죠

  • @user-mz2og7mp1n

    @user-mz2og7mp1n

    6 ай бұрын

    센고쿠시대 전투는 대부분 육지전위주였고 해전은 극소수니까요 임란전엔 일본도 대규모 해전을 해본경험이 없음

  • @user-di7ll4td3m

    @user-di7ll4td3m

    4 ай бұрын

    ​@@user-mz2og7mp1n 궁금한게 조선은 그 이전에 해전이 있었나요? 찾아보니까 판옥선도 당시 만들어진지 얼마 안됬다던데

  • @user-bosndocmx
    @user-bosndocmx Жыл бұрын

    의병이 숫자가 많은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긴함. 경상도 의병의 대표주자 곽재우 뿐아니라 전라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 없을뿐 많이 일어남. 진주성에서 싹 몰상당해서 그렇지

  • @user-hd4yv6yq5q
    @user-hd4yv6yq5q Жыл бұрын

    5:51 이거 완전히 지금이네 ㅎㅎ

  • @jkc0424
    @jkc0424 Жыл бұрын

    고니시가 평양 점령 하고 밍기적 거린거 자체가 명나라의 공격(?)을 대비하려는 성격이 강했다고 봅니다 공세종말점이 와서 그랬다는 말도 맞긴 한데 애초에 목적이 조선 점령이었으면...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컸죠 주요 성 중심으로 순회공연 돌았으면 뭐. 명나라는 꼬장만 부리고 한거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만력제 제사 지내준것만 봐도 조선이 얼마나 고마워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사실 군사적 지원보다도 명 조정의 재정을 털어서 곡물 사다가 대량으로 뿌린게 컸을겁니다.전란에 농사가 잘 될리 없어 식량사정이 어땠을지는 뻔한지라.. 하긴 그쯤되니까 숭명으로 유턴 한거겠죠 그 전엔 사신들 갑질에 공물 바치네 하느라 숭명은 개뿔이었을텐데 말이죠 결과만 보면 공물 바쳐놓은 값을 해준 셈 ㅋ 나중엔 명나라가 그떄 조선 도운다고 국력을 쏟아낸게 다른 스노우볼이 또 굴러간것 보면 이래서 역사는 재밌는것 같습니다

  • @carrot0204
    @carrot0204 Жыл бұрын

    나라를 지켜낸 이유에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켜낸 것도 중요하지만 명의 참전이 1순위가 아닐까 합니다. 명 참전이 없었으면 이순신이 아무리 해봤자 육지로 배급하면 끝이죠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반면 명 장수들은 이순신을 일등 공신으로 쳐줬다죠. 오히려 이순신 존재 자체가 부담으로 행주 산성 전투에서 조운선 보고 이순신인줄 알고 일본군이 후퇴합니다.

  • @tubenoonting
    @tubenoonting10 ай бұрын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체제대결의 양상도 있습니다. 일본의 체급이 이미 조선을 상회했지만, 통일했어도 중앙권력의 통치가 흔들거리는 봉건제로 그 국력을 오롯이 동원하기 힘들었죠. 전쟁에 패한 히데요시 세력이 바로 이에야스에게 갈려나가게됩니다. 그에비하면 오랜평화기로 군사력이 약해진 조선이 버틴것은 수세기 다져진 중앙집권관료제의 힘입니다.

  • @user-bm5il1ey3i
    @user-bm5il1ey3i11 ай бұрын

    이순신이 뛰어난 장군이긴 했지만 당시 조선과 일본의 수군 무기를 보면 조선이 압도적이였습니다. 조선은 화포를 쏘는 방식 일본은 화포는 쏘지만 손으로 들고 쏴서 명중률이 떨어지는 포 그리고 일본은 배에 붙어서 백병전을 하는것을 좋아했죠 하지만 반면에 조선은 왜에 비해 창이나 칼이 짧아 백병전을 안하고 원거리러 싸우려고 했던게 있습니다.

  • @user-dx6el5mx6j

    @user-dx6el5mx6j

    8 ай бұрын

    압도적인데 왜 원균은 발림

  • @The_Right_Peoples_Life

    @The_Right_Peoples_Life

    6 ай бұрын

    ​@@user-dx6el5mx6j걔는 ㅂㅅ이여서

  • @proscourt1
    @proscourt12 ай бұрын

    예나 지금이나 일반 서민들과 가난한 하층민들이 이 나라를 지켜왔다 앞으로도 그럴꺼같다 위정자들은 나라를 망치고 지들 주머니만 채운다 갑자기 드라마에서 했뎌 명언이 생각난다 천년 전에도 강자는 약자를 병탄한다 천년 후에도 강자는 약자를 인탄한다

  • @hyungjunkim7564
    @hyungjunkim75646 ай бұрын

    일단 일본 관동 평야가 우리 한반도 평야 합친거 보다 넓고 이모작 삼모작도 가능해서 결국 한반도가 문명 스타트 빨리 끊었어도 따라잡힐 수 밖에 없는 여건임.

  • @user-qi2jw8bo9h
    @user-qi2jw8bo9h Жыл бұрын

    일본은 실리 주의식으로 나라를 꾸려 왔지만 그에 반해 조선은 성리학이니 유교니 뭐니 뜬구름 잡기식으로 나라 운영 했으니 뭐

  • @wayfereralpha7072

    @wayfereralpha7072

    Жыл бұрын

    @@user-jh6by5ic1q 그럼 뭐 때문에 조선의 국력이 약해진거라고 보시나요?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셈

  • @shu4213

    @shu4213

    Жыл бұрын

    @@user-jh6by5ic1q 엥? 오닌의 난으로 인해 전국시대가 시작된건데, 시간순서가 틀리네요

  • @gkgkgkgk4155

    @gkgkgkgk4155

    Ай бұрын

    ​@@wayfereralpha7072 조선의 국력이 약했으면 명나라 지원오기전에 망했겠지 알못주제에 ㅈㄹ났네 진짜로 ㅋㅋㅋ 실제로 고려는 고작 수만 언저리 왜구 못막아서 멸망 직전까지 갔는데 조선은 을묘왜변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 @hmjeon8609
    @hmjeon86094 ай бұрын

    100년간 계속된 전국시대가 끝날 즈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가진맥진해야 되는데.. 바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전쟁을 계속하면서도 경제적으로 파산하지 얺았다는건 뭔가 특별한게 있다는 것.

  • @TheChurry98
    @TheChurry985 ай бұрын

    결과론적으로 풍신수길이의 야망이 허황된 것이라고는 하는데 객관적인 수치만 보면 전쟁일으킨 것은 합리적인 선택인 것 맞음.

  • @fogsagav1829
    @fogsagav1829 Жыл бұрын

    단기전이 아니라면 장기전은 병참과 군수가 1순위~ 왜군은 전투에서 이기고 병참과 군수가 지원이 잘 안되서 전쟁에 패배~ 남해를 꽉 틀어막은 이순신 장군이 계셔서 엘리전 비슷하게 가서 승리~ 병자호란은 장기전 가 보지도 못하고 단기전으로 패배~

  • @The_Right_Peoples_Life

    @The_Right_Peoples_Life

    6 ай бұрын

    병자호란은 장기전을 갈수가없음. 인도가 파키스탄 정벌한다고 파키스탄이 버틸수없는것처럼

  • @flashwolf3148
    @flashwolf3148 Жыл бұрын

    토요토미가 진지하게 명 본토까지 치려는 목적으로 전쟁 일으켰다면 명이 당연히 조선에 파병 올꺼라는거 충분히 예상하고 조선에 처들어온거 아닌가요? 결정적으로 명의 참전으로 후퇴했다는건 일본도 명의 역량을 과소평가 했나보군요? 아니면 첨부터 목적은 그냥 조선정도였거나

  • @user-vv1uc1jo6u
    @user-vv1uc1jo6u Жыл бұрын

    일본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식량수급 문제를 겪은건 조선의 식량 생산량보다는 두 나라의 인식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의 경우 봉건제 중심의 사회여서 농민들이 세금을 가혹하게 수탈하면 잇키를 일으키기 까지 하는 사회였습니다. 만약 영주끼리 전쟁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산력의 중요요소인 농민들은 건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널리퍼져 있었기 때문에 한 지방을 점령하면 그 지방의 생산력을 거히 완벽하게 흡수가 가능했습니다. 반면 조선은 유교 중심의 중앙집권제 국가이고, 임진왜란 초기 일본이 부산에서 실행한 학살이 농민들의 다수 이탈 및 피난, 그리고 의병을 촉발했다고 봅니다. 농민의 대다수가 떠나버리거나 숨어버리고, 반발하는 활동을 하는 점령지에서 원활한 식량수급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불어 일본은 오랜기간 전쟁을 하면서 농민들이 잇키를 일으킬 정도로 세금의 징수 비율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조선은 그 보다는 적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기에 일본군이 점령지에서 원하는 만큼의 식량확보는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Жыл бұрын

    농업생산량을 극단적으로 비교하는 법. 조선 : 다른 나라와 비교할만한 곡창지대라고 해봐야 나주평야가 끝. 하삼도 한정 이모작이 한계. 여름에는 더럽게 덥고 겨울에는 더럽게 추운 국가. 특히나 저시대는 농업에 더 불리한 기후였음. 일본 : 삼모작도 쌉가능. 동아시아에서 삼모작이 아예 불가능한 국가는 조선과 만주지역임.

  • @user-zj4rb2kn2e
    @user-zj4rb2kn2e22 күн бұрын

    일본인들은 소식 했죠 옛날 부터 그래서 키가 작고 몸집이 작지만 다부지고 근육이 많았음. 주식은 쌀이면서. 우리 나라는 옛날부터. 밥을 고봉밥을 먹었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일만 많이 하고 무식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농사 기술에 많은 힘을 썼고 쌀 생산량 차이가 엄청 났던거 보면. 근데 일본이 무기나 갑옷이 좋았던거 보면.무기 기술 쪽이 발전에 힘썼던거 같고.

  • @user-bm5il1ey3i
    @user-bm5il1ey3i11 ай бұрын

    우리나라도 일본한테 놀란 점도 있지만 일본 또한 조선과 명의 국력에 놀랐다고 합니다. 일단 대규모 기병 전력인데 왜의 경우 말이 왜소하기 때문에 힘들죠

  • @user-kx6vt6mi5o
    @user-kx6vt6mi5o11 ай бұрын

    지금은 안그럴것 같나요?

  • @zard1214
    @zard1214 Жыл бұрын

    5:55 이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네

  • @comet7621
    @comet7621 Жыл бұрын

    솔까 해전을 걍 홀로 캐리한 먼치킨과 갑자기 대가리 깨져서 조선 사랑에 눈 뜬 명나라라는 ㅁㅊ 운빨 아니었음 임진왜란때 국호 바뀌었음

  • @user-cm3iz1cf1m
    @user-cm3iz1cf1m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때 일본의 총병력이 온 것도 아니였음 히데요시의 영향력 하의 30만 가량만 징집되었고 그중에 17만만 조선으로 침략옴 나머지 12만은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본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위한 병력이므로 완전히 복속했다면 추가로 12만에 상응하는 병력을 뽑아낼수 있었음

  • @user-mz2og7mp1n

    @user-mz2og7mp1n

    6 ай бұрын

    그 12만을 힘으로 굴복시킬려고했으면 임란을 못이르킬정도로 병력수가 줄거나 이르켜도 병자호란정도쯤은돼야 국력회복돼서 올텐데 그렇게됐으면 또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진 아무도 모르는일

  • @ramenjoa6790
    @ramenjoa67906 ай бұрын

    영상 잘봤습니다. 임란당시 일본이 조선을 그렇게 압도적이지는 않았고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은 호족연합체라서 국력을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서로 반목했던 것도 있었고...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압도했던 것은 에도시대였던것같아요.

  • @ELBUG-ku1iq
    @ELBUG-ku1iq Жыл бұрын

    엄연히 바다건너오는 원정이었고 명나라까지 참전했으니 이순신 없어도 고생은 더 했겠지만 어케어케 막긴 했을듯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하지만 원균이 출동한다면?

  • @user-ni9vo7pk1r
    @user-ni9vo7pk1r Жыл бұрын

    참고로 강감찬 장군님 도 문관 입니다

  • @user-re5hk1ir3r
    @user-re5hk1ir3r Жыл бұрын

    히데요시가 15만을 드랍시키는 미친놈일줄 누가 알았겠음ㅋㅋㅋ

  • @niconicnicole
    @niconicnicole Жыл бұрын

    아니죠 일본인의 지도는 현실적이죠. 조선은 일본을 자기보다 훨 작게 그렸지만 현실감각이 꽝이란뜻. 일본은 대략 조선보다 두배 크기로 그렸으니 실제와 비슷하잖아요

  • @user-rm1uo5wk2w

    @user-rm1uo5wk2w

    Жыл бұрын

    근데 재미있는 건 서양인이 봤을 때 조선의 지도는 신기한게, 프랑스 등 서양의 주요도시와 북아프리카 도시명이 있는 반면 후에 그려진 일본의 지도는 명나라가 끝임(물론 지면 부족일 수 도 있겠지만). 물론 면적은 상상대로 그렸지만, 어떤 도시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음.

  • @user-sy6fr9iv9b
    @user-sy6fr9iv9b4 ай бұрын

    이순신 없었으면 진짜 나락이였을거 같다.

  • @user-ri1vp2pp5f

    @user-ri1vp2pp5f

    2 ай бұрын

    지금도 나락임

  • @user-ol1fx3kr6e
    @user-ol1fx3kr6e Жыл бұрын

    나니가 뭐에요?

  • @user-ol1fx3kr6e

    @user-ol1fx3kr6e

    Жыл бұрын

    @@kili-uv7jn 감사합니다.

  • @squidward_tentacles92
    @squidward_tentacles92 Жыл бұрын

    솔직히 조선건국 이념이 가난한게 최고다 해서 배고프게 사는게 핵심이다보니 아무것도 없었던게 신의한수였음 배부르면 반란일으킨다고 아예 경제를 박살낸 정도전의 큰그림ㅋㅋㅋㅋㅋ

  • @user-kt9jd9hb1l
    @user-kt9jd9hb1l4 ай бұрын

    명이 본격 참전은 1593년 부터이니 초반 2달 빼고는 이미 소모전으로 가서 명 직접적인 참전 없어도 일본이 조선 먹는것은 쉽지 않아요 즉 개전 1년동안 일본군 사상자가 12만이였을 정도로 괘멸적이였어요

  • @user-wh2iq6ts3p
    @user-wh2iq6ts3p5 ай бұрын

    왜 이런 얘기를 내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는 못 들었나?

  • @user-bn4og8dh7u
    @user-bn4og8dh7u11 ай бұрын

    외적에 대한 대비보다는 국내 반대파 제거와 당파싸움이 더 몰입감 쩔고 재미남 내가ㅡ선조라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왜적보다는 정여립 패거리랑 동인것들 잡는데 몰입했을것같음

  • @Daniel-il2gs
    @Daniel-il2gs Жыл бұрын

    근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차이없는거 같은데? 다만 일본도 우리보단 덜 했지만 막장이란거

  • @user-gk7fc4xv6k
    @user-gk7fc4xv6k9 ай бұрын

    그당시도 조선과 일본의 국력차는 10~50년.도 더 났던. 것 같다

  • @user-wb3qc9dx8s
    @user-wb3qc9dx8s Жыл бұрын

    이미 통일신라나 고려때부터 인구에서 추월당했다

  •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6 ай бұрын

    일본군의 잘못 생각한게 도시를 점령하면 많은 물자를 확보할 줄 알았는데 조선은 상공업이 발전하지 않아 털어도 별로 안 나왔다는 것

  • @user-mf8qv9ob9u
    @user-mf8qv9ob9u6 ай бұрын

    한반도가 일본이랑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상업의 발달 유무임 일본의 상업은 한반도의 고려시대 부터 아득히 멀어지기 시작했고 에도시대에는 현대적의미의 은행업까지 등장하면서 시장이 형성되고 민간에서 창의력이 엄청나게 쏟아졌기때문임 한반도는 조선후기 되어서야 시장다운 시장이 생겼고요

  • @muchsoso8468
    @muchsoso8468 Жыл бұрын

    훗카이도를 제외했는데 어떻게 일본 면적이 한반도의 2배죠? 혼슈가 한반도랑 비슷하고, 큐슈와 시코쿠 합치면 6만평방 킬로미터니, 조선이 약 22만, 일본이 약 28만 평방킬로미터 아닌가요?

  • @user-zy1dn1oj1u

    @user-zy1dn1oj1u

    Жыл бұрын

    아무래도 역조님이 잘못계산하신듯 합니다. 일본이 길쭉하여 칠레처럼 느낄수 있습니다. 그래도 훗카이도와 류큐(오키나와),센카쿠열도가 제외된것이 계산되지 않은것은 명백한 오류라봅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제가 지리를 잘 몰라서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덕분에 고정 댓글을 통해 다른 분들께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Joseon-Dynasty

    @Joseon-Dynasty

    Жыл бұрын

    아.. 류큐까지 빼먹었네요 ㅠ

  • @2day968
    @2day968 Жыл бұрын

    각 국 동시대 사극만 봐도 마인드 시각 존나 다름 ㅋㅋㅋㅋㅋㅋ 초반엔 그냥 당할수 밖에 없어..

  • @user-in7uw5mk9h
    @user-in7uw5mk9h Жыл бұрын

    저때일본은 이미 연은분리법을 조선에서 쌔벼와서 세계은시장2위였고 몇백년동안쌈질해서 전투력은 아시아최강이고 무기동안최강 이였습니다 인구도최소1.5배에5배에차이났습니다

  • @doroshi99
    @doroshi995 күн бұрын

    애초에 국토의 크기, 인구, 경작지부터 일본이 조선보다 우월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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