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의문의 정답은 이거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 의문의 정답은 이거다!

Пікірлер: 271

  • @minmanjo5064
    @minmanjo50644 жыл бұрын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만든 비석에 타국의 업적을 적는다? 일본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거임

  • @user-sy8ek1qr1k

    @user-sy8ek1qr1k

    3 жыл бұрын

    장수왕이 아버지 x 장수왕의 아버지 ㅇ

  • @minmanjo5064

    @minmanjo5064

    3 жыл бұрын

    @@user-sy8ek1qr1k ????????????

  • @hajonghyuck

    @hajonghyuck

    3 жыл бұрын

    일제시대때 왜놈들이 광개토대왕비에 자기들이 유리하도록 몇몇 글자들을 고의적으로 파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 @pradeepsumit9870

    @pradeepsumit9870

    3 жыл бұрын

    왜 나라는 그당시 소국형태의 나라로 100개 이상 쪼개져있었고 제일중요한건 철기를 제작할 능력도 없었다 그냥 왜국은 도적 해적단 그이상도 아니었음 중앙집권체제를 갖춘 백제와 신라한테는 그냥 성가신 존재

  • @pradeepsumit9870

    @pradeepsumit9870

    3 жыл бұрын

    자기 업적을 드높이기위해 바퀴벌레같은 도적해적단 공공의 적 왜를 끼어넣은것뿐이다

  • @user-zx6xc9dx5n
    @user-zx6xc9dx5n2 жыл бұрын

    올바른 역사해석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 @sofia-qp8nw
    @sofia-qp8nw2 жыл бұрын

    1 번이 지금까지 본 해석중 문맥상 가장 정합적이고 설득력 있네요. 놀랍습니다.

  • @Heavymetaljeon
    @Heavymetaljeon4 жыл бұрын

    최고의 역사강의 👍왜 우리나라에 청화수님 같은 역사강사가 없는지 화이팅하세요 👏👏👏

  • @user-ir4ne3jn3c

    @user-ir4ne3jn3c

    3 жыл бұрын

    다 일본사학자들한테 배워서

  • @user-lb5rn7ww4x

    @user-lb5rn7ww4x

    3 жыл бұрын

    @@user-kl8ch3ll8c 일본학자한테 배운 식민사관역사를 대한민국 사람이 같은나라 국민에게 교육하려하는거지 중국몽 전나 싫지만 식민사관도 싫다

  • @user-wc8rd4rm3d

    @user-wc8rd4rm3d

    Жыл бұрын

    @@user-lb5rn7ww4x 국뽕사관 환빠들이 제일 극혐

  • @ppq2610

    @ppq2610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은 국뽕사관도 까는데...

  • @aufschlag7761
    @aufschlag77612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참 잘 해석하셨네요 제가 보기엔 1설이 더 영락9년의 내용과 관련해서도 타당하다고 생각되네요 요컨대 광개토대왕의 비문에 파백잔 신라신민이란 큰 공적의 주체를 왜로 절대 새겼다고 볼 수 없죠.

  • @masterjhs
    @masterjhs4 жыл бұрын

    빠른 업로드 감사합니다. 청화수님

  • @user-bm1qv6wr5k
    @user-bm1qv6wr5k4 жыл бұрын

    선 좋아요 후 감상할께요 정말로 설레이는 주제입니다!!!!!!

  • @user-zl7wx6eb1n
    @user-zl7wx6eb1n4 жыл бұрын

    정말 기다리던 주제입니다 감사합니다

  • @user-jt2oq9ow7l
    @user-jt2oq9ow7l4 жыл бұрын

    대단한 연구에 경의를 표합니다

  • @lyongduc9361
    @lyongduc93614 жыл бұрын

    비석이 누구것이냐 로 판가름 난다고 봅니다 비석이 태왕것이면 태왕이주인이고 주인의입장에서 썼다면 자연 해석될겁니다

  • @seon-gyoo238
    @seon-gyoo2382 жыл бұрын

    강의 잘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nominenuda
    @nominenuda3 жыл бұрын

    정인보 선생이 이 문장의 주어는 고구려라고 주장했지만 당대 식민사학자들과 다른 역사학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 @kwonjoongchahn
    @kwonjoongchahn4 жыл бұрын

    와~~ 역시!!! 기대이상의 명쾌한 해석이십니다~

  • @jdj1013
    @jdj10134 жыл бұрын

    최고의 해석 입니다^^ 명료하네요

  • @user-bg5cf1tz9j
    @user-bg5cf1tz9j4 жыл бұрын

    임나일본부 ㅋㅋㅋ 명쾌한 해석잘보았습니다 ㅋㅋ 같이 팀플하는데 갑자기 팀킬을왜하겠음 ㅋㅋ

  • @arisong1414
    @arisong14143 жыл бұрын

    맞는해석같습니다.이렇게 간단한걸 왜 오랬동안 논란이됬을까요.

  • @user-fs2yj6vi3s
    @user-fs2yj6vi3s4 жыл бұрын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user-mo7df5vy1u
    @user-mo7df5vy1u2 жыл бұрын

    고급지식을 알려주시네요. 굉장히 감사합니다.

  • @user-eu5fb1py5r
    @user-eu5fb1py5r4 жыл бұрын

    최고의 역사강사! 팩트에 의한해석 👏👏👏

  • @NEXT-ns8to
    @NEXT-ns8to4 жыл бұрын

    일주일 2영상 감사히 잘보겠습니다!!^^

  • @user-fx5jq9dz5c
    @user-fx5jq9dz5c3 жыл бұрын

    지금까지의 광개토태왕비 해석 중 가장 명괘하고 탁월한 해석입니다

  • @user-lu6bm7rd9r
    @user-lu6bm7rd9r4 жыл бұрын

    진짜 잼나네요 감사합니다

  • @user-py6tt3so2e
    @user-py6tt3so2e4 жыл бұрын

    삼별초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삼별초가 오키나와 류쿠왕국에 영향을 끼쳤다는 썰도 자세히 듣고싶네요. 시간나시면 부탁드릴께요! 항상 재미있는 영상 감사합니다!

  • @bhk3466
    @bhk34664 жыл бұрын

    이야.... 오늘도 즐거운 역사 이야기를 만끽.....

  • @sungwonchoi6755
    @sungwonchoi67553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항상 좋은내용 감사합니다

  • @soavo
    @soavo3 жыл бұрын

    자기 나라의 역사 해명은 철저하게 「자주적 입장」에서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의 역사 주장에 침식되어 버립니다. 자국의 역사 해명이라는것은 단순히「탐사」「 탐구」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주권투쟁」이며 자국에 대한 「애국투쟁」 그대로입니다.

  • @spirits3677
    @spirits36773 жыл бұрын

    이건 뭐랄까 역사학이 메인이긴 하지만 그 전에 논리학적으로 논파가 가능했다는 점에 반성 포인트를 봤습니다. 유익한 영상에 감사드립니다.

  • @TV-no5wi
    @TV-no5wi4 жыл бұрын

    내가 개인적으로 임나일본부썰에 관심이 많아 연구 자료를 찾아 본 결과... 백제가 가야지역을 정벌하고 전략적으로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백제와 왜(당시 일본이란 국호는 존재X)가 형동생하며 우호관계에 있어.... 왜의 용병들을 가야지역에 주둔시킴....당시 백제와 왜의 활발한 교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왕족간의 결혼등등)...왜의 용병들을 총 지휘하던 사람이 백제의 “목라근자”와 그 아들 “목만치” ...라는 장수임... 목씨일가는 백제의 유력한 가문이었으나....문제는 백제가 신라에 멸망할 즈음에 왜로 목만치 가족이 망명을 감. 이름을 목만치에서 쇼가만치로 바꾸고 ’쇼가’라는 성의 시조가 됨. 후에 일본서기를 편찬할 때....주로 가문의 족보와 기록을 참고하였는데....결국 백제 귀족이었던 쇼가 가문의 역사가 일본의 역사로 편입된 것임. 쇼가 가문이 임나가야지역을 지배하다 시피 했으니....쇼가의 역사는 곧 일본의 역사....이지랄하면서 갖다 쓴것임. 최근에 한일 공동역사 연구위원회에서....역사학자들이 임나 일본부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폐기하기로 결정했으나....이건 우리 역사학자들이 순진하게 일본에 놀아난 것임....일본사학자도 일본이라는 이름이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으니...임나일본부설은 말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음...그래서 임나 일본부설을 포기하는 척하면서....지금은 교묘하게 한반도 남부경영설이라고 다른 이름으로 같은 주장을 함.....사실은 왜가 백제의 속국이나 다름없었슴

  • @user-bu4nz8wb9l

    @user-bu4nz8wb9l

    4 жыл бұрын

    왜는 백제의 속국이 아니라 분국이라고 봐야 합니다 백제의 왕족들이 왜의 지배계층이었다는 뜻입니다 , 백제가 망할때 왜는 2만 몇천명의 지원병을 보내요 이것은 국력을 기울인 지원이었습니다 백제가 망한후에 왜에서 나타나는 기록들은 본국이 망하고 참배할 조상의 묘소가 사라졌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 @user-ld6hh2hc8s
    @user-ld6hh2hc8s4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한달전부터 즐겨보고있는데 운전할때나 쉬는시간에 틀어놓고 잘보고있습니다 여타 다른 비슷한 채널하고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네요 특히 동탁시리즈보고 승자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생각이들었습니다 나중에 기회되신다면 공손찬이나 원술의 패망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 @user-ce5sv9po5s
    @user-ce5sv9po5s4 жыл бұрын

    아주 명쾌한 해석 ! 멋져요 하하하하

  • @user-ih4kj9qr1l
    @user-ih4kj9qr1l3 жыл бұрын

    이찬구 박사께서 얼마전에 광개토대왕 비문 연구 결과를 발표했더군요. 그 내용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왜(倭)자가 아니라 원래 글자는 제(帝)로 추정하더군요.

  • @riverball
    @riverball3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최고!! "왜이신묘년래" 다음에 "도해"가 나오는데... 왜가 신묘년에 도착했는데, 또 다시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말이 안돼죠.. 이미 왔는데 무슨 바다를 건넙니까... 분명 문장은 "래"에서 끝나는 거죠.. 온 것은 왜이고 파백제하고 00신라한 것은 고구려라고 봐야죠..

  • @user-ch1bt2nx3o
    @user-ch1bt2nx3o3 жыл бұрын

    이것 저것 다 떠나서 임나일본설이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게........실제로 그랬다면.....다른 역사서에 임나일본부에 대한 티끌만한 흔적의 기록이라도 있어야지.....더구나 일본은 자랑스러워할테니...더더욱......근데 전혀 없잖아......하다못해 유물조차 없구....여기서부터 말도 안되는거지......

  • @kako4197
    @kako41973 жыл бұрын

    다른점은 다 접어두더라도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캐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위해서 세운비석인데 거기다가 왜의 업적을 쓴다(?) 이건 말도 안됌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만을 써도 모자랄판에 남의 나라에서 속국에와서 난리치고 차지한 일들을 자랑거리도 아니고 쓸리도 없고 써서도 안돼지요 고구려의 위대한 왕의 업적을 알리고 기리기위해서 썼다고만 생각해도 해석은 그렇게 안흘러가지요

  • @catalyst5801

    @catalyst5801

    3 ай бұрын

    딱 지금 매국황국신민들이 지금 일본찬양하는 논리랑 일맥상통하죠

  • @user-df1xn2mi2w
    @user-df1xn2mi2w3 жыл бұрын

    강단사학자100 보다 명확한 해석이네요. 최고네요.

  • @user-zh5sj3ty4s
    @user-zh5sj3ty4s4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JHLEE-mp9to
    @JHLEE-mp9to3 жыл бұрын

    일본군인에 의한 비문글자 조작이야기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오늘 말씀은 명쾌한 논리로 이해가 잘 도고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ur5lb2uw3j

    @user-ur5lb2uw3j

    2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왜를 끼워넣어 조작한것이죠. 왜만 넣고 뒤의 석자를 파쇄해서 의미를 혼돈시키기위한 일본 놈들의 술수입니다.

  • @user-jo6lr4os6v
    @user-jo6lr4os6v4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1명이 우리나라 역사학자 1000명보다 났습니다.

  • @user-fk1zp9qg9w

    @user-fk1zp9qg9w

    3 жыл бұрын

    아직도 #친일사관사학자! 雜것들이 우리나라 사학계주류인게 작금의현실임

  • @guillonpark4733
    @guillonpark47333 жыл бұрын

    파리에 이날코라는 프랑스내의 최대 동양학 학교가 있습니다. 여기 일본학과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어서 2년정도 있었습니다만 일본고대사부분을 보고 너무 기가차더군요.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따와서 한반도는 고대에 이미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라는개소리를.. 그것도 프랑스내에서 일본학 최대 권위자라는 사람이 스스럼없이 하더군요.. 대체 이런 개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때까지 우리 학계는 뭘했는지 정말 묻고싶어지더군요..

  • @thisisjeopardy3896

    @thisisjeopardy3896

    3 жыл бұрын

    7-80년대 대학원생 시절부터 도요타재단 사사카와 료이치 재단의 더러운 장학금을 받아 왜완견이 된 대한민국 교수들의 민낯이죠..

  • @SsSs-vx1pl

    @SsSs-vx1pl

    3 жыл бұрын

    @@thisisjeopardy3896 저도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청화수님 처럼 이 짧은 영상하나로도 충분히 명백하고 논리적으로 설명 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단순히 '더러운 장학금'이라는 말로 모두를 폄하, 비난하는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우리나라의 학생, 교수들이 한국의 기업, 단체, 정부가 아닌 일본의 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 일까요? 즉, 당시에 약했던 대한민국의 국력, 경제력으로 인한 결과 아닙니까. 단순히 그런 이유로 일어난 결과들 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된 이유를 찾아내서 그걸 바꾸고 고칠 생각을 해야죠. 반일감정만 드러낼것이 아니라.

  • @pianocello4026
    @pianocello40263 жыл бұрын

    청화수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 @user-mn5gh3kh2s
    @user-mn5gh3kh2s4 жыл бұрын

    좋아요 💗

  • @geemin214
    @geemin2144 жыл бұрын

    화수형님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해요

  • @fitekorea
    @fitekorea2 жыл бұрын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광개토대왕님에 지대한업적 우왕. 장수왕등에. 위엄을 한국은. 자랑스러워해야한다

  • @hanu7050
    @hanu70504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이런 말도 안되는 논란 파혜치는 시리즈 내주세요!!

  • @alcohollovetv5893
    @alcohollovetv58933 жыл бұрын

    와 비석 해석 쩌네요 ㅎ 영상 너무 잘봤습니다 굿굿

  • @user-wg7zm3my7f
    @user-wg7zm3my7f4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지난 30년동안의 갈증이 해결되는거 같습니다.. 히미코 운운하던 일본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 @user-fi1ld8gi2k
    @user-fi1ld8gi2k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 @user-ve2zd2vh3v
    @user-ve2zd2vh3v Жыл бұрын

    너무나 명확한 해석입니다

  • @chrislee2577
    @chrislee257711 ай бұрын

    아 정말 시원한 사이다 해석입니다. 완전 동의!!

  • @macsurigong
    @macsurigong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신묘년조에 대해 말하는걸 보면 이걸 올바르게 해석하는데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게 느껴집니다. 항상 앵무새처럼 오랜 세월동안 한국 사학계가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라는 말은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한 말은 일절 없습니다. 한국인 사학자가 임나일본부 같은 한심하고 매국적인 이론을 지지하는 발언을 듣고나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걸 느낍니다.

  • @user-yk2nq5uq2e
    @user-yk2nq5uq2e3 жыл бұрын

    설명 잘 했어요

  • @user-nz3eq6tv9q
    @user-nz3eq6tv9q4 жыл бұрын

    일단 선댓글 후감상^^

  • @user-zb3st2dd2f
    @user-zb3st2dd2f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의 견해가 탁견이네요. 취신합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논문을 내시던지 사학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 @jung-wancho9140

    @jung-wancho9140

    Жыл бұрын

    교수님들이 내용을 몰라서가 아니라 월급받고 노니 편해서 입니다. 매국노들에게 일본이 돈을 준 이유가 이거죠 너희는 연구안해도 돈들어 온다 다만 옆에서 박수는 좀 춰죠 한번에 천만원

  • @jung-wancho9140

    @jung-wancho9140

    Жыл бұрын

    사학자들이 몰라서 그런게 아니고 사학계의 카르텔을 유지해서 기득권을 지키려고 같은 역사 해석만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 @user-bo9sm4ld9i
    @user-bo9sm4ld9i3 жыл бұрын

    청화수~광개토호태상왕비문,,해석이 젤,명확하게 보입니다,,,

  • @user-em4om1lf2d
    @user-em4om1lf2d4 жыл бұрын

    비문 도해파가 사기 관미성 부분이 틀림없네요 왜 모두 그 생각을 못했지? 1설이 틀림없음을 직관적으로 알겠습니다.

  • @phymadori545
    @phymadori5453 жыл бұрын

    Good. Thanks.

  • @user-lf4hi8lq1l
    @user-lf4hi8lq1l3 жыл бұрын

    어렸을떄 일기 쓰실때 "나는" 이라는 말 반복해서 쓰지 마라고 배우셨죠? 같은 이치입니다 ㅎㅎ

  • @user-if2bz6gj4p
    @user-if2bz6gj4p Жыл бұрын

    래도해파ㅡ거친바다를 무릅쓰고 고구려로 왔다. 백제 탱땡 신라와 더불어 위신민ㅡ신민이 되었다. 명쾌한 해석입니다. 존경합니다.

  • @user-dp4fw8id2f
    @user-dp4fw8id2f3 жыл бұрын

    청화수선생님, 가야에 대한 이야기나 탐라, 마한에 대한 영상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GodGoo99
    @GodGoo993 жыл бұрын

    진짜 타임머신있으면 저때가서 광개토대왕님 알현해서 같이 쇠주한잔하면서 저희가 얼마나 치욕적이고 고난의 역사를 보냈는지 아세요 대왕님? 아니 삼국왜 통일안하셨어요? 하고싶다..ㅋㅋ

  • @user-em4om1lf2d
    @user-em4om1lf2d4 жыл бұрын

    1설이 탁월한 해석이며 정확한 진실임을 알겠습니다. 한반도로 몰려오는 왜군을 백제방향에서 막기 위해 관미성을 먼저 공격했군요. 그 다음 신라를 보호하기 위해 동쪽으로 갔습니다. 2설은 고구려가 왜로 들어갔다는 것인데 무리한 해석이고 1설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의견을 누를 수 있는 정말 대단한 최종해석이군요!

  • @masik7993
    @masik79934 жыл бұрын

    웰케빠르지..?! 개이득. 감사히 보겠심더

  • @Sungu0858
    @Sungu08582 жыл бұрын

    좋은글 감사합니다

  • @jhsohn8413
    @jhsohn84134 жыл бұрын

    역사학도는 아닌데 오래 전 이 신묘년조를 제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해 본적이 있어요. 이왜이신묘년래에서 왜가 등장하는 부분은 굳이 필요없는 것 같은데, 倭(왜)라는 한자와 비슷한 한자로 倰(릉)자가 있습니다. 즉 원래의 비문은 이왜이신묘년래가 아니라 이릉이신묘년래이며 해석은 그 앞부분과 연결하여 백제와 신라가 조공을 하여왔으나 이를 업신여기므로 신묘년이 되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그냥 제 나름 생각입니다. 채널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stephen6161
    @stephen6161 Жыл бұрын

    명쾌한 해석 감사합니다. 그런데 비문에 등장하는 왜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찝적거렸던 왜를 현재의 통념대로 '왜=일본'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존재했던 미지의 정치체로 볼 수는 없을까요? 예를 들자면 가야의 별칭이었다던가. 그렇다면 임나 일본부설은 도저히 존속할 수 없는 썰이 되겠죠. 애시당초 4세기 말 현재의 일본 땅에 한반도에 파병할 정도의 정치체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문제의 핵심은 광개토대왕 비문의 작성자가 '왜(倭)'로 지칭한 실체가 대체 무엇이냐를 밝히는 것인데 청화수님께서 이것도 한 번 연구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 @lyongduc9361
    @lyongduc93614 жыл бұрын

    고구려의 수도가 북한의 평양이라는 전제를 깔면 바다를건너 라는 문장이 이상하지만 당시의 평양이 발해만 부근에 있었다면 자연 이해되는것이다

  • @muchsoso8468

    @muchsoso8468

    3 жыл бұрын

    광개토왕 시절에는 평양이 도읍이 아니었습니다.

  • @BourbonPeat

    @BourbonPeat

    3 жыл бұрын

    육지 국경에서 떨어진 해변의 요충지가 되는 성이라면 수군을 이끌고 이동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상식적일 수 있습니다.

  • @anamorris485
    @anamorris485 Жыл бұрын

    Agreed. If missing letters or if we do not know, we shouldn't interpret. Just leave it. No need to argue.

  • @user-hg4zg9vi7k
    @user-hg4zg9vi7k Жыл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 @ymc5105
    @ymc51053 жыл бұрын

    광개토 대왕비 일본이 조작했다는 연구가 있던데 나름 신빙성있다고 느낀게 명나라 시대 서체가 뜬금없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비석 만든게 명왕조 건국 약 천년전인데 말이죠 특히 명나라 서체는 그 당시 일본에서 가장 선호하는 서체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합니다.

  • @user-kp2rj6yv7p
    @user-kp2rj6yv7p3 жыл бұрын

    임나일본부설이 수십년간 방치된건.. 우리나라 사학계가 식민사관으로 배워 뻔뻔하게 한자리씩 꿰차고 비루하게 벌어먹느라 그런거겠죠ㅡ

  • @user-di6mo8ex5v
    @user-di6mo8ex5v4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영상 감사히 잘보고 있습니다.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 청화수님 영상외에 다른분들 영상도 보고 있는데요, 고대 요동은 요하쪽이 아니라 하북성쪽이라는 이야기와 수.당이 고구려를 침공할때 집결지가 북경 근처이므로 요동을 요하쪽으로 보면 집결지와 전쟁터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청화수님은 어떡해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user-cm7ec4no8i
    @user-cm7ec4no8i4 жыл бұрын

    비문 자체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나열한거라 당연히 왜가 주체가 될순없고 또한 백제가 주체가 되는 2설도 아니라고 봅니다. 비어있는 글자가 아쉽네여...

  • @user-uc9xq8bt1p
    @user-uc9xq8bt1p3 жыл бұрын

    시시 적인 부분에서 좋은 내용인데 칠지도에 대한 해석도 같은식으로 보고 싶네요

  • @elickmarie9687

    @elickmarie9687

    3 жыл бұрын

    그냥 일본의 역사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왜곡해석하려고한거죠

  • @elickmarie9687

    @elickmarie9687

    3 жыл бұрын

    중국측 기록에도 왜는 그 당시 새해도 몰랐고 남자나 여자나 풀로 몸을 대충 가리고 다녔다라고 되어있습니다

  • @user-el4uh3nm1b
    @user-el4uh3nm1b3 жыл бұрын

    미친놈이 미친소리하느걸 논리적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겠읍니까! 청화수님에 논리적인 분석을 우리모두가 확실하게 잘 알고있으면 될것같습니다

  • @user-lc5um2lj2c
    @user-lc5um2lj2c4 жыл бұрын

    도해파 가 지금에 중국 대련(고구려고토)에서 배를 타고 지금 한국 서해안(백제)으로 온것으로 해석하면 이해가 될수도...

  • @user-lc5um2lj2c

    @user-lc5um2lj2c

    3 жыл бұрын

    @@VitorJKhan 아...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happy-rich_5

    @happy-rich_5

    2 жыл бұрын

    황하를 바다라고 불렸으니 황하를 건너 백제 관미성을 격파하고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볼수도 있을지요?

  • @heatingcoverunsysdigital6688
    @heatingcoverunsysdigital66883 жыл бұрын

    백잔을 파하고 신라를 신민 삼았는데, 태왕께서 직접 바다를 건너서 파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친정하셨다면 따로 기술할 수도.

  • @user-je4jr2gw2c
    @user-je4jr2gw2c3 жыл бұрын

    태극기 너무 아름답죠

  • @MakTooL
    @MakTooL3 жыл бұрын

    신라가 아니라 탐라. 당시 탐라가 고구려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고 백자가 자신들에게는 조공 안한다고 해서 쌍심지 킴.

  • @user-gi4xo9up7q
    @user-gi4xo9up7q4 жыл бұрын

    출근 길에 청화수님

  • @user-rn7ms6wy5j
    @user-rn7ms6wy5j4 жыл бұрын

    👏👏👏🤲

  • @pc475
    @pc475 Жыл бұрын

    👍

  • @user-ps9qq9rg2r
    @user-ps9qq9rg2r3 жыл бұрын

    짧은 견해지만 '백잔' 다음에는 '동쪽의 신라' 또는 '동쪽으로 진군' 이런식의 해석이 가능한 글자가 새겨있었지 않을까 싶네요.

  • @richman700

    @richman700

    3 жыл бұрын

    위 댓글 Tycoon Andrea Jung 에 따르면 빈 칸의 글자는 "동이신라" 위 댓글 읽어보세요. .

  • @kimn14
    @kimn143 жыл бұрын

    이렇게 당연한걸 무슨... 유물한점 사서한줄에도 없는 터무니 없는 그런걸 ...

  • @MrJps3714
    @MrJps37143 жыл бұрын

    청화수님 글보고 관미성 검색해보니 경기도 파주 오두산성인것 같네요 그러면 고구려가 황해도 쪽에서 바다(서해)를 건너 파주 관미성(오두산성)을 친것이 맞네요. 왜랑 백제는 혈연적으로도 아주 밀접한 관계라 금성을 공격한것이네요 입체적으로 한반도 서쪽은 고구려가 백제 관미성을 공격하고 동쪽은 왜가 신라의 금성을 공격하는 그런 상황인것인것 같네요

  • @user-vf1gf3kq5o
    @user-vf1gf3kq5o3 жыл бұрын

    왜가 신라를 쳐들어와서 신라가 고구려에 왜를 물리쳐달라고 요청해서 광개토대왕이 이를 물리쳣다 이 내용이 아닐까요?

  • @user-mg6qu7xj1n
    @user-mg6qu7xj1n4 жыл бұрын

    와 진짜 청화수님 뭐하시는 분이세요?? 무슨 논문한편을 머리에 넣고 가는 느낌이네요 오늘도 감탄하고 갑니다ㄷㄷ

  • @stan_ms
    @stan_ms4 жыл бұрын

    화수형!!

  • @user-mo5us3kj9u
    @user-mo5us3kj9u3 ай бұрын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기리기위해 대왕비를 건립한것은 고구려의 대대적인 국가일이었을것인데 대왕비 초고나 완결본등이 어딘가있을거며 대왕비 건립행사에 이웃 모든나라에서 참관왔을진데 이대왕비에 대한 자료가 없을까요

  • @user-du7st2zc8v
    @user-du7st2zc8v3 жыл бұрын

    거의 북한뉴스방송에서 일본놈들 후두려 까는 수준으로 통쾌하시네 ㅎㅎㅎ

  • @user-vu1fi7xd7v
    @user-vu1fi7xd7v3 жыл бұрын

    아 저 관미성 저거 위치 고증해내면 대박인데 , 너무 아쉽습니다

  • @963skywolf6
    @963skywolf63 жыл бұрын

    신묘년조의 결자 3자는 `任那加`라고 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신묘년의 내용은 이어지는 영락6년(396년 丙申年)의 정벌을 정당화하기 위함이며 그해에는 대왕께서 수군을 이끈 친정이며 응징한 나라는 백제입니다. 그때에 신라에는 아직 倭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락9년(己亥年)에 대왕이 나라를 순시하면서 평양에 이르렀을때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대왕께 왜인이 국경에 가득하다고 아뢰니 그 이듬해인 영락10년에 대왕은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倭를 공격케 합니다. 관군이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에 이르니 왜가 그 안에 가득하였다.(官軍從南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관병이 이르자 왜적이 바로 물러나 도망하므로 그 뒤를 추격하여 임라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즉시 항복해 왔다.(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에서 `임나가라`라는 명칭이 나옵니다.) 고문헌에 의하면 加羅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국가를 뜻하기도하며 加羅國으로 같은 말이 중복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남제서의 동남이전(東南夷傳)에도 고려국전, 백제국전, 가라국전, 왜국전등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따라서 임나가라는 임나국 즉 하나의 국명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학설이니 참조 바랍니다. 참고로 신라성은 경북 경주가 아닌 대륙의 복건성(福建省)에 유적지로 남아 있으며 복건성 용암(龍巖)에 있어야 할 신라성은 장정현(長汀懸)의 고적으로 신라고성(新羅古城)으로 되어 있다 합니다. 비문에 나타난 왜도 지금의 일본열도가 아닙니다. 그당시 왜의 미천한 항해술로는 절대로 동해나 남해바다를 건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광개토태왕의 활동영역을 한반도에만 국한하여 본다면 그 어떤 역사기록과도 일치하는 점이 없다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모두들 아셨으면 합니다.

  • @user-lm7pd6ev8n
    @user-lm7pd6ev8n4 жыл бұрын

    고구려 태조왕 해주세요.

  • @bukyulee
    @bukyulee3 жыл бұрын

    비문 변조설이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침공 부분은 다 깨져 있다고.....

  • @user-nd1pe2ds8k
    @user-nd1pe2ds8k3 жыл бұрын

    제 해석으론"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이었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온 연유로 조공을 지나쳐 왔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 백제와 왜구를 파하고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 破百殘□□新羅以爲臣民 에서 由來朝貢 을 조공을 지나치다 로 □□는 倭寇 로 보입니다

  • @Thoven_Jang
    @Thoven_Jang3 жыл бұрын

    나근하고 부드러운 말투, 그러나 논리 전개에 있어서는 한치의 빈틈 없는 치밀함. (Feat.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사람들 메롱)

  • @minkyukim7354
    @minkyukim73543 жыл бұрын

    모든 건 정치적 이유입니다. 과거 기록이 있어도 해석은 후세사가 마음이고 역사란 게 정치적으로도 많이 휘둘리는 게 현실이죠. 일본이 전후에도 잘나가고 한국은 한창 경제발전해야 되던 시절에 무슨 뻘소리를 일본에서 해도 그 영향력을 의식해 조용했던 거고 지금은 중국이 경제력을 과시하니 이젠 중국이 6.25가 항미원조 정의의 전쟁이네 어쩌네 대놓고 그래도 아무 소리 않는 겁니다. 저 거대한 광개토태왕 비석조차 처음 발견됐을 땐 우리 조상들은 고구려가 아니린 여진족의 금나라 비석일 거라 생각하고 고려상감청자도 이토가 도굴로 입수한 뒤 조선 고종에 보여줘도 그게 우리 조상 것일 리 없다고 스스로 부정했을 정도니 현재의 그 이상한 자학사관(?)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과거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유나 "소국 자처" 근성이 저변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동북아역사재단이란 곳도 그렇죠.

  • @jasonckks7295
    @jasonckks72953 жыл бұрын

    관미성의 위치가 궁금하네요

  • @MrJps3714

    @MrJps3714

    3 жыл бұрын

    파주 오두산성이 아닐까요?

  • @user-hx4rr6lw1x

    @user-hx4rr6lw1x

    3 жыл бұрын

    거제 통영에서 대마도 후쿠오카로 넘어가는 섬중 어딘가에 있었을거라 봅니다

  • @user-ud4vx4qr4t
    @user-ud4vx4qr4t4 жыл бұрын

    역사학을 전공했던 자들 지금도 사학을 전공하는 자들은 뭐하는건지? 청화수님 논리보다도 못하니 .. 생각을 논리적으로 못하는 건가? 참! 답답하고 한심하다.

  • @user-nc3dk6ks6f

    @user-nc3dk6ks6f

    3 жыл бұрын

    어쩌면 그사람들은 역사학이라는(물론 역사학은 인문학 즉 과학 이세상의 모든 학문의 집합체이지만 그들은 딱 역사학만 인문학의 역사학이 아닌 편협한 역사학) 작은 태두리 안에서만 있고 청화수님처럼 타인들과 소통하지 않기에 즉 교차검증이 없기에 마치 광개토대왕비문만 갖고 늘어지고있는 것처럼, 결국 엘리트주의에 빠져있는 오만한 인간이기에 오만하고 자만하지만 동시에 무지한것이지요

  • @user-zw8gd6yv8p
    @user-zw8gd6yv8p3 жыл бұрын

    비류계의 백제가 신묘년 이후 망한 이야기. 기병 위주의 고구려가 역으로 배를 이용해 아래쪽부터 치고 올라옴. 한강유역의 온조계가 항복하고 비류계는 왜로 넘어감. 비류백제는 왜왕조와 거의 같은 나라. 84년도에 읽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에 의한 기억(워낙 강렬한 기억이었음) 청화수의 신묘년조 해석을 적극 지지합니다.

  • @user-mm3gw2vd8l
    @user-mm3gw2vd8l8 ай бұрын

    한가지 이상한 것은 비문은 수천녀에 결쳐 많은 비문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어느정도 일정한 규격과 내용을 지니게 되지않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군요 비슷한 흐름이라면 거기에 맞춰 내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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