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살인자들」
오늘 소개해 드린 작품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살인자들」입니다. 헤밍웨이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여러 명작을 남긴 바 있고, 저희 6분 클래식을 통해 『노인과 바다』를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살인자들」은 그가 1927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매우 짧지만 작가 헤밍웨이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미국 시카고 인근 서밋이라는 작은 도시의 헨리네 식당에서 이야기는 출발합니다. 식당에는 주인인 조지와 손님이자 아마도 조카인 닉, 그리고 요리사 샘이 있었는데요. 늦은 오후 어떤 두 남자가 식당을 방문합니다. 맥스와 앨로 불리는 이들은 고압적인 자세로 시비를 걸더니 사람들을 결박시키고 급기야 올레 안드레슨이라는 사람을 죽이겠다며 기다립니다. 평소 식당을 자주 방문해 저녁을 먹던 안드레슨은 다행히 그날 찾아오지 않았고 ‘살인자들’은 돌아갑니다. 닉은 그 직후 안드레슨을 찾아가 있었던 일을 전하는데요. 안드레슨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칩거 중이었습니다. 닉은 다시 조지에게로 돌아와 안드레슨의 상태를 전하고 자신은 이 끔찍한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며 동네를 떠날 결심을 합니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주령이 실시되던 1920년대 미국의 시카고 지역, 또 그곳에서 극심했던 조직범죄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안드레슨이 권투선수 출신이라는 점과 시카고에서 어떤 일에 연루되어 아마도 배신을 했던 모양이라는 언급 등은 심각한 범죄 행각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작가 헤밍웨이는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서술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쓴 문장들은 무엇도 설명해 주지 않고 그저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를 ‘보여줄’ 뿐입니다. 소설가 백민석은 헤밍웨이 소설 미학의 특징을 입말체 대화법, 빙산 이론, 하드보일드 스타일, 남근중심주의 미학 등 네 가지로 구분했는데요.(백민석, 『헤밍웨이』, 아르테, 2018) 「살인자들」은 짧은 단편이지만 그러한 특성을 고루 담아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남성들의 거친 세계를, 구어를 통해, 일부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죠.
아울러 이 소설은 헤밍웨이의 자전적 인물이기도 한 ‘닉 애덤스’의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1972년 유작으로 발간된 소설집 『닉 애덤스 이야기』는 닉 애덤스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연대기 순으로 재배치하고 있는데요. 「살인자들」은 소년에서 성인으로 막 진입하기 시작한 단계의 ‘닉’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체념하고 있는 안드레슨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닉’이 이후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는 여기에 실린 다른 단편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살인자들」은 헤밍웨이 문학의 특징을 잘 담아낸 정수이자 ‘보여주기’의 소설 전략을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짧은 소설에서 보이는 것을 풍부하게 이해하려면 가려져 있는 빙산은 독자가 직접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가 박태원은 1931년에 이 작품을 번역하여 신문에 싣기도 했는데요. 그가 이 소설에서 읽어냈던 것과 거의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또 조금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 생명력을 갖고 읽히는 고전 작품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면서 이 소설을 음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낭독 및 내레이션 │김성현, 장윤실 배우
평론 │노태훈 문학평론가
일러스트레이터 │이나헌 작가
「살인자들」을 교보문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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