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보장!]고고학이 이렇게 재밌었어?!! 미치도록 재밌는 백제 왕성 풍납토성 발굴 비하인드, 본인등판! 이제는 말할 수 있다!│[MC심용환]

될놈될 삽질의 제왕 신희권 고고학자의 풍납토성 발굴기부터 억울(?)한 풍납토성의 설설설을 전부 풀어낸다! #신희권교수 #고고학 #백제 #백제왕성 #풍납토성 #몽촌토성 #위례성 #발굴

Пікірлер: 188

  • @ineskim1657
    @ineskim16576 ай бұрын

    신희권교수님 업적도 대단하시고 얘기도 넘 재미있게 잘 하시네요 😊😊 차고 넘칠 것 같아요. 영상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 ㅎㅎ

  • @user-go9eb1om5g
    @user-go9eb1om5g6 ай бұрын

    심용환 학자님과 신희권 교수님의 티키타카도 좋았고 내용도 훌륭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정독했습니다. 두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두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user-qi5oh7hd6t
    @user-qi5oh7hd6t6 ай бұрын

    '80년대 중반 고딩 때 받았던 사회과부도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여기 서울 지도에 풍납토성 일대가 '윗바람드리'로 표기되어 있네요. 한강 개발도 필요했겠지만, 보존이 너무 아쉽습니다..

  • @eugenehwang808
    @eugenehwang8086 ай бұрын

    풍납토성은 현재 아파트 단지들이 워낙 많이 들어서 있어서 발굴 및 복원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참 안타깝네... 그리고 수많은 고분군들도 도시개발로 다 파괴되고 소실된 게 너무나도 많던데... 그래서 한성백제 시절의 왕릉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지... 그나마 석촌동 고분군에 3호분을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만 할 뿐이고... 서울이 백제의 500년 수도였다고는 하나 고작 100~200년 밖에 안되는 공주, 부여에 비해서 유물, 유적지들이 부족한 건 너무 안타까움... 그래서 공주, 부여, 심지어 익산까지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는데 비해 한성백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그렇고...

  • @user-nw1be9yj2j
    @user-nw1be9yj2j6 ай бұрын

    다음 이야기 기대되네요.

  • @johnwhite4179
    @johnwhite41796 ай бұрын

    서울 특히 사대문 안의 고층 빌딩들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사라졌을지... 사대문안이 옛모습으로 남아있고, 그 밖이 지금의 현대적 모습이었으면 전세계적으로 유니크한 도시가 됐을텐데 말이죠.

  • @user-vr5zd7cj3w
    @user-vr5zd7cj3w6 ай бұрын

    아끼고 또 아껴서 듣고 싶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두분 모두 건강하시는 한해 되시길♡

  • @semoligic
    @semoligic4 ай бұрын

    신희권 교수님 대단하시네요 ㅋㅋ 다음 출연 기다릴께요!

  • @user-qi5oh7hd6t
    @user-qi5oh7hd6t6 ай бұрын

    마침 다산 선생 출생지가 팔당 두물머리 근처이니, 한양으로 왔다 갔다 하시면서 위례성 유적지를 많이 보셨을 것도 같네요..

  • @user-wq7fw4lb2m
    @user-wq7fw4lb2m6 ай бұрын

    삽질에 뿌듯함이 묻어나는 신희권 교수님의 발로뛰는 역사이야기 듣고있는데 제 가슴이 다 뛰네요..심용환님과 함께 그동안 해오신 발굴 복원 비하인드스토리 다 풀어내 주세요 현장감이 살아있는 역사란 바로 이런것이죠😊😊

  • @jeoniruka
    @jeoniruka6 ай бұрын

    너무 재밌어요 ㅎㅎㅎ

  • @wg6531
    @wg65316 ай бұрын

    넘 재미남 ㅎㅎㅎㅎ

  • @urang-urang
    @urang-urang6 ай бұрын

    신희권 교수님 너무 좋아요! 백제 이야기 더 많이 해주세요!🎉😊

  • @Jjanguagimae
    @Jjanguagimae4 ай бұрын

    완전 재밌게 봤습니다.👍

  • @user-dq2mz9og6b
    @user-dq2mz9og6b6 ай бұрын

    아마 지금도 공사하면서 대충 깨부수고 파묻히는 유적과 문화재들이 제법 될 것 같네요 ㅠㅠ

  • @msoh3075
    @msoh30756 ай бұрын

    오늘 영상 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신희권 교수님 새로운 스타 탄생 이가요? 자주 나오시면 좋겠네요 ^^ 두 분 수고 많으셨고,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edit - 스타탄생 이신

  • @wkshin2599
    @wkshin25994 ай бұрын

    백제의 영토는 위로는 유연제노 아래는 오월에 접한다는데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백제 멸망후 그땅을 발해와 신라가 나눠가졌다는데, 위치상 그게 가능하나.. 대륙 백제 아니고는 설명할수 없다 위례성은 중국 산서성 직산현 이다..

  • @user-rj2ui6bk3i
    @user-rj2ui6bk3i6 ай бұрын

    생각의발상 넘좋아요

  • @user-lq6mq5lz3q
    @user-lq6mq5lz3q6 ай бұрын

    하남 강동쪽 살아서 그런지 더 재미있게 들었어요!! 교수님 이야기 시간가는 줄 모르겠네요 숭례문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 @purple-..-
    @purple-..-6 ай бұрын

    경주를 다녀와서 신라는 정말 멋진 나라였구나란 생각을 했는데 백제도 어떤 나라였을지 궁금해지네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 @user-nc9wv7sf8i
    @user-nc9wv7sf8i6 ай бұрын

    흥미진진합니다

  • @sujungunni5990
    @sujungunni59903 ай бұрын

    11:56 심쌤 살짝 시간과 정신의 방에 계신 표정😅

  • @user-be4vq2io8d
    @user-be4vq2io8d6 ай бұрын

    고려시대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이상 한강 남쪽 허허벌판에 풍납토성, 몽촌토성같은 거대한 성곽에 수많은 왕릉급 무덤들이 있는걸 보고 상식적으로 추정을 할수 있었을텐데 김부식이나 다른 고려시대 역사가들은 어떤 의도로 삼국사기에 위례성의 위치를 모른다고 기록한건지 궁금하네요. 당대에 백제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거나 왜곡해야 할만한 다른 역사적, 정치적 이유 같은게 있었나요?

  • @user-gg2hf3vw1m

    @user-gg2hf3vw1m

    6 ай бұрын

    영상에서 빠진 이야기가 많은데, 요약해서 말하자면 고려시대에 한강변의 거대한 성곽들은 흙더미 위에 파묻혀서 성인줄도 몰랐고, 왕릉급 무덤들은 그냥 돌무더기나 언덕 정도로 봤기에 진짜 증거가 없어서 위례성의 위치를 몰랐다고 보는게 적절합니다. 간단하게 성곽, 무덤으로 나눠 설명해보겠습니다. 성곽? 두 성 모두 토성입니다. 그런데 강남이란 땅이 한강이 폭우로 불어나면 강남을 덮칠 때마다 침수되는게 일상인 땅이죠? 그 때마다 한강이 상류에서 싣고 온 토사들이 강남을 뒤덮습니다. 그래서 강남의 드넓은 허허벌판이 만들어졌고요. 이를 감안할 때, 두 성 모두 버려진 뒤로는 홍수와 퇴적이 반복되며 위에 흙이 쌓이니까 언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풍납토성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성벽이 깎이기 전까지, 몽촌토성은 영상에 나온대로 올림픽공원을 만들기 위해 발굴조사하기 전까지 한강변의 언덕 A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게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고지도입니다(국토지리정보원 사이트가면 공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지도들 성들은 정성껏 따로 표기를 해주는데 일대에 그 표기가 없습니다. 무덤? 왕릉급의 큰 무덤은 '"이것이 '누군가'의 무덤이다" 라는 게 인지가 안되면 그냥 언덕이나 돌무더기에 불과합니다. 경주 대릉원도 발굴조사를 통해 무덤인 걸로 드러나기 전까진 애들이 뛰어노는 동산이었다 하지 않습니까?

  • @user-be4vq2io8d

    @user-be4vq2io8d

    6 ай бұрын

    @@user-gg2hf3vw1m 답변 감사드립니다. 강남쪽이 홍수가 빈번한 지역이었으니 성곽도 파묻혀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한가지 더 궁금한게 일제시대 조사에서 확인된 봉분만 293개라는 왕릉급 백제 고분군들도 그런식인걸까요? 일제시대에 측량이 가능할 정도면 고려시대에는 원형에 더 가까왓을텐데 고구려의 왕도였던 국내성이나 평양성 고분군이나, 신라 경주의 고분군들은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어느정도 규모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걸 보면 잘 이해가 안되서요 그에 비견될 정도의 꽤나 규모가 거대했던 백제 고분군들도 그런식으로 추정이 불가할 정도로 다 땅에 묻혀버려서 후대에 짐작도 할수 없었을거라고 볼수 있을까요?

  • @user-gg2hf3vw1m

    @user-gg2hf3vw1m

    6 ай бұрын

    @@user-be4vq2io8d 그렇다고 봐야되겠지요.

  • @browncony900

    @browncony900

    6 ай бұрын

    백제의 위례성은 안타깝게도 삼국사기가 쓰여진 시점인 1145년을 기준으로 해도 버려진지 너무 오래된 성이었습니다. 개로왕이 고구려에게 패해 한성이 함락된 게 475년이니 이미 67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버린 뒤였죠.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1350년대 고려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시대의 유적을 찾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고,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이후에도 동경으로 남아 고려의 역사와 함께한 서라벌과는 너무나도 오래 전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백제가 웅진, 사비로 천도한 후 위례성이 다시금 수도가 되지도 않았고, 재건되지도 않은 채 백제조차 멸망해버려서 고려시대에 정확한 위치나 지명이 전해지지 않는 상황이라 문자 그대로 '모른다'고 기록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대 역사학자들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을 겁니다. 다만 그 심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당대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 @user-be4vq2io8d

    @user-be4vq2io8d

    6 ай бұрын

    @@browncony900 답변 감사드립니다. 당대의 사학자들도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을꺼라는 주장쪽이 더 타당성이 높아보이긴 하네요 영상의 고고학자분께서는 100% 김부식의 의도가 있었을꺼라는 주장을 하셔서, 그렇다면 그 의도가 대체 뭘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구요 삼국사기 작성 당시라고 해도 한성백제는 수백년전의 역사일텐데, 구지 김부식의 주관이나 의도가 개입되기엔 너무 오래전의 일이었을꺼란 생각이 듭니다.

  • @user-my6ie6hq4i
    @user-my6ie6hq4i5 ай бұрын

    고구려의 국내성 환도산성을 보면 풍납토성은 왕성이 아니다. 허허벌판에 무슨 왕성이라니~

  • @02loveu_G
    @02loveu_G6 ай бұрын

    🌿🇰🇷🌿절대공감 합니다?👏👏💦

  • @user-we9lt1ml6v
    @user-we9lt1ml6v6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AA-bf9vk
    @AA-bf9vk6 ай бұрын

    교수님 너무 재밌어요. 자주 나와주세요!❤

  • @geobugi-
    @geobugi-6 ай бұрын

    위례성의 발굴역사 정말 재밌네요 그럼 이병도 박사를 낚은(?) 춘궁리의 궁은 왜 들어갔을까 궁금해지네요ㅎㅎ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6 ай бұрын

    거기가 남한산성 북쪽 사면이고 한강 남쪽이면서 금암산과 객산 두 산줄기로 둘러싸인 요충지 입니다. 객산 능선에 토성 흔적이 옛날부터 있었고 춘궁동 자리는 제법 널찍한 분지로서 그곳이 지역 전설엔 온조가 도읍한 궁터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직 발굴조사를 통해 뭐가 나온건 없지만 삼국사기 백제 초기 기록에 온조왕대 말갈의 침략을 자주 당했다고 나오는데 아마도 온조세력이 처음에는 고구려의 홀본 오녀산성이나 경주의 반월성처럼 춘궁동 분지를 천혜의 방어지로 여기고 초기 근거지로 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6 ай бұрын

    일단 학계에서 인정한 유물은 신라 상대와 중기 사이가 가장 이른 편인데, 최근 연구 중에 춘궁리 유적 성곽 일부에서 백제 것이 제일 밑에 있고 고구려 문화층과 신라 문화층 순으로 표토에 가깝게 쌓여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연관성이 없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성곽은 궁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근처가 옛 광주 치소여서 관아가 있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mjwind7458
    @mjwind74586 ай бұрын

    저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풍납동. 저희집도 외가집도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어요. 그시절 부모님께서 어렵게 장만한 내집이 문화재터가 되는걸 보셨지만 인연이 아니었던거죠. 어쩌다 옛동네에 가면 변해버린 모습에 추억이 없어진것같아 아쉽긴 하지만 역사덕후로서 중요한 역사의 자리에 함께한것같아 의미가 큽니다. 영상 보는내내 토성을 뛰어논 것 같습니다.

  • @user-fe5rd3ko8z
    @user-fe5rd3ko8z6 ай бұрын

    와...겁내 좋은 방송! 진짜 돈내고 보라해도 볼 방송!

  • @user-oc1nt8xx6w
    @user-oc1nt8xx6w6 ай бұрын

    와 잼있다 잼있어~~

  • @user-rf3lo8vf6x
    @user-rf3lo8vf6x6 ай бұрын

    역사학회에서 새로운 별이다 고정출연 해주사고 분량을 대폭 늘려서 발굴이야기 해주십시요!@@@

  • @odissibeena
    @odissibeena6 ай бұрын

    너무너무 재밌어요. 꼭 더 알고 싶으니 계속해서 시리즈 만들어주세요!!

  • @jieunlee261
    @jieunlee2616 ай бұрын

    와 재밌네요.

  • @JungSungMock
    @JungSungMock6 ай бұрын

    그 풍납토성위에서 뛰어다니며 놇았는데 ㅋㅋ 유적발굴해본다고 땅도파고 근데 리버빌아파트 발굴현장은 국민학교다닐때 등교하며 매일 봤는데 너무 대충한거 아닌가요? 그때 부모님들사이에 조합에서 돈좀 넉넉히 찔러넣었다는 후문이.......

  • @Yi-sum
    @Yi-sum6 ай бұрын

    이런 말을 여기에 써도될 지 모르겠지만... 30년전에 하남시 하산곡동 검단산 자락 정심사 바로 아랫집에 살았었지요. 부모님이 집아래 공터를 텃밭을 만드셔서 도와주러 삽질 많이 했었는데 직육면체의 잘다듬어진 돌판이 하도 많이 나와 여기에 무슨 성이 있었었나 의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그 돌들을 모아 만든듯한 돌담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요새 가보니 많이 개발돼 당시의 모습은 전혀 없긴 하더라구요.ㅠ 오지랖이면 죄송하고 그냥 혹시나하는 맘에 적어봅니다.ㅎ

  • @user-ww1xm7sx6c
    @user-ww1xm7sx6c6 ай бұрын

    신희권교수님진짜너무재밋어요! 시간가는줄모르고보게되네요ㅋㅋㅋ

  • @fnkxhdnbs
    @fnkxhdnbs6 ай бұрын

    잼있네요

  • @user-kh3zy8tq8r
    @user-kh3zy8tq8r5 ай бұрын

    다른교수님들도 지켜볼수있고 또 이어져내려온 사학뿌리니까 엄청조심하시네 그래도학설깬거 대단하십니다 리스팩!

  • @user-jc4vu2gt7h
    @user-jc4vu2gt7h6 ай бұрын

    일본도 건드리지 않았던 왕릉급 무덤 280기를 도시개발한다고 밀어버렸다는 게...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 해도 너무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 @user-nn6ov9kp4g

    @user-nn6ov9kp4g

    6 ай бұрын

    무령왕릉발굴만 봐도 뭐...... 진짜 무식한 시대였죠.

  • @walkholic3
    @walkholic35 ай бұрын

    너무 잼있어요. 위례성이 발견된 역사가 너무 감동적이네요. 김부식 얘기도 너무 잼있네요~ㅎㅎ

  •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6 ай бұрын

    그냥 막 되어먹은 상상인데요. 하남 위례성이 《삼국사기》의 기록 탓에 강남 일대로 보이긴 하지만, 그건 후대에 이걸 기록한 글자의 글자만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당대 지명의 한자 표기법을 차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河는 江과 마찬가지로 가람이고, 南은 마입니다. 실제로는 ㄱㆍ마의 형태인데, 이건 검을 이릅니다. 神과도 연결되고, 왕검성과도 연결됩니다. 慰는 성을 표기하기 위해 택한 글자로, 그 뒤에 오는 禮와 합쳐서 클리ㆍ구룬ㆍ구루ㆍ구려ㆍ가라 등을 표기하는 데에도 쓰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게 훗날 다른 찬자에 의해 수집되면서 중원 세력에게 우태 또는 구태 아들 설로 채록된 것이죠. 위례는 뒤에 오는 城과 같은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남 ㆍ하북은 나중에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생긴 오해이고, 이 위례와 합치면 熊城ㆍ儉城ㆍ神城ㆍ漢城 등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지요. 왕성 또는 수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백제 마지막 수도이자 정궁으로 보이는 부여를 흐르는 錦江 또는 湖江도 상류ㆍ중류ㆍ하류의 별칭을 보면 크게 서울강ㆍ부여강ㆍ큰 강 계열이 보입니다. 수부가람은 셔불(순경음 ㅂ)가람의 뜻이고, 금강과 호강은 한강에 무게가 실립니다. 오히려 상류가 부여강 계열이고, 금강은 뜻은 부여강에서 왔지만 읽기를 큰 강으로 읽었기에 이렇게 채록되어 굳어진 것이죠. 이들의 연원이 沸流水 가에 나라를 세웠다가 동명왕에 의해 제일 처음 복속당해 多勿都가 되었던 沸流國이며,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본거지를 흘렀던 비류수가 부여수이고, 지금 지린시를 통과하는 북류 송화강 상류 일대로부터 고고학적으로 원고구려집단이라 추정하는 이들이 머무른 것으로 보이는 現 서북한 압록강 중상류 일대를 불저ㆍ물저(앞선 표기는 多勿都이고, 이 소리를 바탕으로 동천왕 대에 표기한 것이 沃沮)로서 동명왕으로부터 분봉받은 것으로 생각해봅시다. 누리벌왕의 누루구룬 천도 추진과 관련해서 홀본계 귀족들과 힘을 합쳐 부여 조정 또는 부여 연맹의 수장국에게 싸울 때 기록된 것이 패옥의 패를 뜻하던 黃과 라 계열을 뜻하던 龍으로서의 ㅂㆍ라(黃龍國)이며, 양패구상으로 지금의 창춘시 눙안현으로 옮기는 것을 막지 못한 채 동맹의 나머지 축인 홀본계에게 축출당해 조정에 신속하고 남하해 세운 것이 무라ㆍ부라(海頭國, 이때가 남옥저 시절)라고 보고요. 그러다가 이 홀본계가 그 땅을 고스란히 주워담으며 설립한 서울(東扶餘, 새벌. 서울의 옛 형태인 셔벌의 한 표기로 홀본에서 졸본을 거쳐 이렇게 가다듬어짐)이 대부여왕으로 읽어야 하는 대무신왕의 정벌에 망하면서 나온 일파가 남하하며 비교적 영향력이 약해졌던 당대 남옥저 동방 영토를 점령하는 나비효과로 인해 골골대던 찰나, 최리 낙랑국 또는 남대방 자명고 설화의 기반이 되는 정벌전이 일어나면서 다시 쫓겨 내려가는 거죠. 이때 중심지는 지금의 황해남도 재령군 재령강과 황해북도 황주군 황주강 합수 지점 일대 어드메에 수도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내려온 게 임진강보다도 이남에 있던 지금의 한성백제인 거지요. 사실 해두국까지가 비류백제 또는 伯濟 시기인데, 부여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옥저로 표기했던 시절을 싹 지워버리기 위해서 훗날 나라 이름을 온제 즉 百濟로 짓고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십제 이야기는 프로파간다고, 비류백제가 바다 근처에 있어 땅이 염분이 많아 실패했다는 건 옥저로서 표기했던 후기인 해두국 시절 이야기이며, 국명 표기를 우리네 고유언어로 풀어내 차별화하면서 시조를 온조로 날조해 전달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훗날 부여 조정이 동천왕 때 크게 깨지고 백제에도 깨지며 허우적대다가 겨우 국력이 물이 올랐을 때 정식국호를 고려로 고친 후에야 비로소 남쪽에 내려와 다시 세운 부여/비류라고 마부여로 천명하고서는 수도 앞을 지나는 강에 비류수의 후손으로서 부여강이라는 이칭으로도 부르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사고의 흐름인 거지요.😅

  • @user-mb1et1oy5t
    @user-mb1et1oy5t6 ай бұрын

    발견되서 정말 다행이네요! 재밌게 보고 갑니다!

  • @jungjaejong7317
    @jungjaejong73175 ай бұрын

    이병도,신석호 같은 식민사학의 대부들을 박사님라고 칭하는 니들이 더큰 문제다

  • @user-mu5wz3kd6j
    @user-mu5wz3kd6j6 ай бұрын

    역사 좋아하고 한때 잠깐이나마 전공 했던 사람으로써 이병도 교수님은 식민사학이라 오히려 우리나라 역사 연구를 퇴보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서가 없어서 넘 자료가 빈약해서 고구려 백제 역사 연구가 안되는게 넘 아쉽습니다

  • @taekyoungyeo2680

    @taekyoungyeo2680

    5 ай бұрын

    이병도가 식민사학이라니 ㅋㅋㅋㅋ

  • @shinhwang885

    @shinhwang885

    5 ай бұрын

    ​@@taekyoungyeo2680맞구만. 뭘 처웃어. ㅋㅋㅋ

  • @taekyoungyeo2680

    @taekyoungyeo2680

    5 ай бұрын

    @@shinhwang885 그 백제-신라 건국연대를 고이왕이랑 내물왕 연대로 끌어올린 양반인데 식민사학이라고 하는건 걍 환스러운 애들이나 하는거지 ㅋㅋㅋㅋ

  • @taekyoungyeo2680

    @taekyoungyeo2680

    5 ай бұрын

    @@shinhwang885 그 이병도를 깔꺼면 역사연구한걸 기반으로 옛날 학설이라서 이제는 더이상 고고학적으로는 맞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로 까면 될 인간인데 굳이 식민사학이라고 들고오는건 걍 한사군 트집 잡는 애들 종특 아닌가?

  • @kangdo-z4h

    @kangdo-z4h

    5 ай бұрын

    식민사학x 주류사학o

  • @user-ck8cw1ec8q
    @user-ck8cw1ec8q6 ай бұрын

    발굴스토리 너무 재밌어요~~ 더줘❤

  • @user-gh1dw4py1c
    @user-gh1dw4py1c6 ай бұрын

    완전 흥미진진 😊😊😊

  • @newplus66
    @newplus664 ай бұрын

    백제 도성하면 웅진 사비 시대만 기억하는데 익산도 추가시켜 주십시오. 아무튼 한성백제의 풍납토성을 발굴해 주신 교수님 너무 고맙습니다.

  • @hoonhoon1502
    @hoonhoon15026 ай бұрын

    너무 흥미롭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 @jungtop890
    @jungtop8906 ай бұрын

    풍납동,다산 다 관계된 얘기라서 너무 흥미롭네요

  • @jonghopark8185
    @jonghopark81856 ай бұрын

    풍납토성 산책하기 정말 좋지요 ㅎㅎ

  • @sufcjoseph88
    @sufcjoseph886 ай бұрын

    교수님과 심용환선생님께서야 이병도 선생의 연구를 "그게 뭐야!" 하는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셨겠지마는.... 노파심에 좀 얘길하자면, 당시 문헌사학자들의 지닌 한계는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그 시대 연구환경의 한계도 있었음을 같이 고려하고 영상을 보아주셨음 좋겠습니다. 모든 현재의 연구는 지난 선배 연구자들의 연구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걸 극복하고 뒤집었든 계승했던 간에 말이죠.... =_=;;

  • @sufcjoseph88

    @sufcjoseph88

    6 ай бұрын

    그리고 하나더 노파심에 얘기하자면 이병도 선생을 식민사학이라고 하는 프레임 씌우는건 대개는 소위 환빠들(좀 더 세게 얘기하면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입니다.... 물론 이병도 선생의 연구가 현재의 연구자들은 물론 시민들의 입장에서 비판받을 소지가 많고, 그걸 극복한 부분이 이제는 많지만 그의 사관이 식민사관은 아닙니다 =_=;; 당시 연구환경에 한계가 명백했을 뿐이지....

  • @brandonann9283
    @brandonann92836 ай бұрын

    👍👌너무재미나요

  • @moisture_-
    @moisture_-5 ай бұрын

    2:44 자막에 한국의 역사 깬다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학계는 다 이병도의 식민사관 아닌가요??

  • @user-cx5pl6cg1g
    @user-cx5pl6cg1g6 ай бұрын

    성남에도 궁내동이라고 있어요~~

  • @jsy5187
    @jsy51874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봅니다.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너무나도 편향된 정보만으로 배워왔던 세대인 저에게.... 한 인간을 평감함에 있어서 평면적으만 보는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느껴봅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싫으니 싫어서 싫어할거야~ 하는 정도의 사고에서 멈추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포함하여 이상하게 외곡된 평가들만 흘러다니는 인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도 귀를 열고 그 시대속에 들어가서 곰곰히 그들 바라볼 생각을 하니.... 숙연한 마음이 먼저 듭니다. 좋은 영상에 감사합니다.

  • @user-my6ie6hq4i
    @user-my6ie6hq4i5 ай бұрын

    동쪽에 높은산? 그런거 없는데~

  • @hyekyungjung4977
    @hyekyungjung49776 ай бұрын

    아파트 주민들이 이형구 교수를 몇시간이나 가둬놓고 사지를 자른다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기업의 의뢰를 받고 풍납토성이 위례성이 아니라고 주장한 학자를 내세워 서울시를 대상으로 소송을 했다가 서울시가 승소를 했지요.

  • @peace77777
    @peace777776 ай бұрын

    잘나가다가~ . 인간 사람 심리 공부 끝이 나면 역사 모두 다 진실ㅡ선견지명 지혜 나온다. 찾을 수 있습니다. 문헌!ㅡ 존중합니다

  • @gwisekor
    @gwisekor5 ай бұрын

    이분 잼있네요

  • @Tuna011
    @Tuna0116 ай бұрын

    아파트 밑에 묻힌 유적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네요.

  • @jamessong8729
    @jamessong87295 ай бұрын

    한성백제 400년이 너무 홀대 받는다니 ㅠㅠ. 공주 부여 다 합쳐도 한성백제 기간이 더 긴데.

  • @duckin5254
    @duckin52545 ай бұрын

    근데 의문점이 하나 있습니다 한강이북이 고구려땅인데 아차산에서 뻔히 보이는곳에 왕궁이 있었다는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말씀중에 천안에 바다가 없다고 하셨는데 직산에서 서쪽으로 둔포까지 직선거리 14km 바다가있고 북쪽으로 거대한 안성천이 흐르죠 온조 사당도있고 천안 직산이 타당한것 같기도 합니다

  • @taekyoungyeo2680

    @taekyoungyeo2680

    5 ай бұрын

    아니 그 천안 직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생각이란걸 해보고 좀

  • @user-yl8or3pf9t

    @user-yl8or3pf9t

    5 ай бұрын

    원래 백제는 산동반도에 있어야 하는게 맞음

  • @Epichero1010

    @Epichero1010

    5 ай бұрын

    초기 백제는 서울일대가 영토의 전부였습니다. 성장하면서 인천 충청 전라로 영토를 확장한거죠. 고구려 또한 초기부터 한강이북을 지배한게 아니라 점차 세력을 확장한겁니다. 의도적으로 고구려 국경 근처에 수도를 정한게 아니고 세월이 흐르다보니 수도 위에 강대국인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게 된 셈이니 이상할게 없죠. 현대 서울도 비슷합니다. 조선시대 동안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심에 위치한 곳이었지만 북한이 갑자기 생기면서 장사정포 사정거리에도 들어오는 국경에서 멀지 않은 땅이 되버렸잖아요. 역사 학사는 위치를 유추해 내고 고고학자는 유물로 그 가설을 증명하죠. 천안 직산도 문헌, 역사서로 유추는 할 수 있죠. 그럼 유물, 유적지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가설이 진리가 되는겁니다. 직산 근처 풍납 몽촌 만한 유적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여러 가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 @tv-funhistorytv1061
    @tv-funhistorytv10616 ай бұрын

    크..!!! 신희권 교수님 오랜만에 뵙네요 ^^😊😊

  • @user-ji4gl4fr8w
    @user-ji4gl4fr8w6 ай бұрын

    그쪽 공부 조금한 분들은 알지요! 사성? 이거 관련된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분통터지고 열 받지요!

  • @minkyungkim8420
    @minkyungkim84206 ай бұрын

    학부생 때 신희권선생님 팀에서 아르바이트 했었는데. . . 그때도 재미있으셨는데. . . 학생들이 수업이 재미있어서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겠어요.

  • @하지마이상해
    @하지마이상해6 ай бұрын

    "땀"은 구라치지 않는다.

  • @gounbyun3417
    @gounbyun34176 ай бұрын

    와아- 오늘 국립중앙박물관 애 데리고 오랜만에 가봤는데 풍납토성도 가봐야 겠어요. 너어무 재밌었어요. 꼭 또 모셔주세요!

  • @gounbyun3417

    @gounbyun3417

    6 ай бұрын

    @@user-bj6cs3zj5c 찾아보니 이미 발굴한 걸 덮은 건 아니고, 계획대로 복원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아서 아직도 언덕형태로 남아있나 보네요.

  • @hunlook3178
    @hunlook31786 ай бұрын

    와우, 우리가 배울 때만해도 위례성은 위치가 애매모호하다고 해서 결과적으로는 모른다고 한 것 같은데. . . 업데이트 했네요. 👏👏👏👏👏

  • @hwa1756
    @hwa17566 ай бұрын

    이병도의 일제 사관을 깨주시기 바랍니다.

  • @user-jp1kb2ye9u
    @user-jp1kb2ye9u6 ай бұрын

    천안에 위례성이 있긴있어요 둘레 500 미터짜리 조그마한 토성ㅎ ㅎ백제가 한강유역을 뺏긴후에 지어졌다고 하더라구요

  • @user-ni3rr4bv1u

    @user-ni3rr4bv1u

    6 ай бұрын

    천안 위례산에 5세기 백제 목곽고 발굴 온조의 용샘설화도 내려옴

  • @user-fe7st6gv3z
    @user-fe7st6gv3z6 ай бұрын

    공사하다 항아리 기와 나오면 포크레인으로 퍽퍽 부시고.... 건축주나 건설사에게 정당한 보상이 지급되야 발굴에 속도가 붙겠죠?

  • @Epichero1010
    @Epichero10105 ай бұрын

    좁아터진 사학계는 15년전에도 한쪽에선 절대자이자 진리처럼 추앙받고 다른쪽에선 식민사관 친일파로 비판받았는데 그후로 친일 인명 사전에도 등재되고 죽은지 3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살아있는듯 못까는 구나. 실증사학 한다는 사람이 바람드리 -배암드리- 사성??

  • @dennyhong6198
    @dennyhong61986 ай бұрын

    진짜 역사를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병도의 조선사 편수회는 사기~ 강춰진 역사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letter.4u
    @letter.4u23 күн бұрын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봅시다. 새로운 문이 열릴겁니다.

  • @user-ej1dv9su2b
    @user-ej1dv9su2b5 ай бұрын

    풍납토성 지리적 위치가 안좋앗나??? 나라가 망하고 수도가 사라져도 지리적 위치가 좋았다면 사람은 계속 살지 않았을까 싶은데...

  • @user-uv3ee3to6x
    @user-uv3ee3to6x6 ай бұрын

    1000년 왕국 백제의 수도가 꼴랑 그 정도 규모라고? 각설하고... 풍납토성이 백제의 수도라고 치고... 조선이 수도 한양 근처에 조상의 무덤을 쓰는게 상식이듯이... 백제의 왕들의 무덤은 어디 있느뇨?

  • @user-jw6dc4ep8g

    @user-jw6dc4ep8g

    5 ай бұрын

    저 동네 개발되기전에 규모가 큰 무덤이 몇 개 있었다? 방송이나 제대로 보고 대륙백제 주장하던가!

  • @user-mm1iw3st1y
    @user-mm1iw3st1y6 ай бұрын

    용환님 77 뱀띠 갑장이시네요 ㅋㅋ

  • @user-gk3hw3qo3j
    @user-gk3hw3qo3j6 ай бұрын

    뭐야 이병도 논리가 거의 환단고기 신봉자들 수준이였구나...ㅋㅋ

  • @cooldaz1
    @cooldaz16 ай бұрын

    춘궁동일대 3기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교산일대가 한성백제 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금암산 올라 바라보면 입지가 좋고 절터도 많고 수해도 덜입을 방어에 아주 유리하고 좋은 지형입니다 남한산성과도 멀지않고 발굴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뭐가 나올지 모릅니다 위에 한수(한강)가 흐르고 동쪽에 산이 가로막고(검단산) 서쪽으로 비옥한평야 바다에 접한다에 부합합니다 몽촌 풍납은옆에 산이 없습니다 규모도 작고 상습침수구역인데다 건너편 아차산에 조망이 너무 노출되어있기도 하구요 적군 바로앞에 왕궁을 세우진 않죠. 왕궁근처 필수인 절관련 유적도 의미있는 발견이 안되고 있구요 교산은 근처 감일에 대규모 무덤이 최근발견되었구요 교산에 주춧돌 절터가 많이 산재합니다 이병도를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다산 선생과 이병도의 말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봅니다 교산 개발시작되면 뭐가 터질지 모릅니다 .ㅎㅎ

  • @user-uw3lx9gy4p
    @user-uw3lx9gy4p6 ай бұрын

    백제는 중국에 있지않나...

  • @bgkhan4475

    @bgkhan4475

    6 ай бұрын

    중국 ㄴㄴ 대륙

  • @user-jw6dc4ep8g

    @user-jw6dc4ep8g

    5 ай бұрын

    환빠들 못지않게 조심해야될 애들이죠!ㅎ

  • @user-vn2ec7ob2c
    @user-vn2ec7ob2c5 ай бұрын

    한성 백제는 소설~~~ 백제의 왕성은 황해도 재령이다.

  • @user-dp5zy7dd8r
    @user-dp5zy7dd8r3 ай бұрын

    풍납,몽촌토성같네요

  • @user-jq5ke4rr2m
    @user-jq5ke4rr2m6 ай бұрын

    풍납토성에서 왕성증거 하나도 없음..백제시대 무역항으로 봐야함

  • @user-er2uq1nn8s

    @user-er2uq1nn8s

    18 күн бұрын

    맞어 나루터지

  • @minsooseo3102
    @minsooseo31026 ай бұрын

    되요X 돼요O 오타인것 같아요.

  • @bominkim7950
    @bominkim79505 ай бұрын

    🫡🫡🫡🙋‍♀️👨‍🏫👩‍🏫

  • @chajaemyung
    @chajaemyung6 ай бұрын

    아파트 공사를 해야하는데 뭐가 자꾸 나와 ㅎㅎㅎ 진짜 짜증났을 것 같다.

  • @American-drone
    @American-drone6 ай бұрын

    오 신희권 교수님 나오셨네요

  • @user-sk7sy2ky6k
    @user-sk7sy2ky6k6 ай бұрын

    서울은 개발 하면 안됐음. 백제 조선 고대 무덤이나 역사적 유물 발굴 하는 지역으로 했어야. 땅이야 많으니깐. 다른 곳에 수도 정했으면 되는 일인데. 서울이 무분별하게 개발 되면서 귀중한 백제 역사 사라졌음.

  • @SangParker
    @SangParker6 ай бұрын

    300기 이상 백제무덤 어쩔거야

  • @user-cp8sb7ow4j
    @user-cp8sb7ow4j6 ай бұрын

    백제역사가 많이 안알려져서 오히려 재밌던데 풍납토성 발굴이 이렇게 됐군요

  • @letter.4u
    @letter.4u23 күн бұрын

    삼국사기 부실? 식민사관이 부실하지

  • @user-jc5cl9us4g
    @user-jc5cl9us4g5 ай бұрын

    아니 천안 직산은 바다에서 멀다해놓고 서울 강남은 맞아??ㅋㅋㅋ 직선거리 따져봐ㅋㅋㅋ 어디가 더 바다에서 먼지ㅋㅋ

  • @dufosla2
    @dufosla26 ай бұрын

    백만대군을 거느린 500년 도읍지면 한강이남이 번성한 도시로 남아있었겠지. 토성하나 불탔다고 도시가 사라지겠나.그런 수도가 역사에 있나. 평양일대에 있는거 아님?

  • @bluestonejim2500

    @bluestonejim2500

    6 ай бұрын

    땅투기군 뇸아 헛소리 말라 과욕부리다 굥서결이 당선되어 후진국되는것 못 보었냐? 탐욕부리다가 부동산가격 일본처럼 폭망한다

  • @jjs_issle
    @jjs_issle6 ай бұрын

    풍납토성이야기 넘 잼나요.!!!신희권교수님👍

  • @user-bi8hg4ui7l
    @user-bi8hg4ui7l3 ай бұрын

    김부식 왜 의도적 누락 왜 했을까요?

  • @user-qi7rz2gz9l
    @user-qi7rz2gz9l27 күн бұрын

    왕릉급 무덤 280기를 누가 밀었다구요? 카더라 하지 마시고 정확한 증거를 말씀해 주세요~ 경주처럼 고분군이 서울에 280여개가 있었다면 사진이나 자료, 증거들이 충분히 있었을 텐데요~

  • @letter.4u
    @letter.4u23 күн бұрын

    백제를 중국에서 찾아보시길.

  • @tv-funhistorytv1061
    @tv-funhistorytv10616 ай бұрын

    출현하고 싶다 ㅠ 짧은 인연이지만 신희권 교수님도 저를 알아보실 수 있을텐데 ㅠㅠ

  • @co-musician640
    @co-musician6405 ай бұрын

    배암 바람은 좀 억지… 차라리 차가운 북풍을 막는 길고 구불구불한 토성이라 바람성, 뱀성이라고 했으면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15:08 이병도-뱀 :바람 설을 스스로 진짜 추운 바람주는 동네라고 부정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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