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회 무삭제 확장판] 분열과 번영, 일본 전국시대 6부ㅣ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 YTN2

Ойын-сауық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패권자로 등극한다. 이후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를 제거하기 위해 호코지의 종명 사건을 일으키면서 명분을 쌓는다. 1614년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에 숨은 히데요리를 제거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일으킨다. 마침내 오사카성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는데,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오사카성을 점령하기 위해 이에야스가 실시한 작전은 무엇인가? [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에서는 분열과 번영의 일본 전국시대에 관해 자세히 알아본다.
00:00 시작
00:53 세키가하라 전투, 서군이 패한 원인은?
03:56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상황은?
05:10 이에야스와 히데요리, 둘의 상황은?
08:30 이에야스, 히데요리 공격의 빌미는?
10:27 오사카성은 어떤 곳인가?
12:50 오사카성 공략에 필요한 병력은?
18:42 공격에 실패한 이에야스, 협상 내용은?
24:00 메꿔진 오사카성 해자, 히데요리의 운명은?
34:15 전국시대의 끝, 이에야스의 시대 열리나?
38:17 일본 전국시대가 남긴 교훈은?
#일본전국시대 #도쿠가와이에야스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요토미히데요리 #오사카성 #뉴전사 #허준 #윤지연 #임용한 #임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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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11

  • @polina0616able
    @polina0616able10 ай бұрын

    넘넘 재미있었어요 더 해 주세요♡♡♡

  • @joecho1427
    @joecho14275 ай бұрын

    임박사님 설명진짜 명쾌함

  • @gamevideochannel1550
    @gamevideochannel15508 ай бұрын

    항상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 @user-mt8io9eo1s
    @user-mt8io9eo1s7 ай бұрын

    마님 연기력이 날로 일취월장 하시네요 ㅎ

  • @user-gd5iy1bh3g
    @user-gd5iy1bh3g10 ай бұрын

    정말 유튜브중에서 젤 재밌네요. 더운 여름 시원한얘기 넘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막부의 시작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 @crema_23
    @crema_2310 ай бұрын

    재밌다고....왜다른분들이모르냐고....사랑합니다^^

  • @user-fm1tk5mw9j
    @user-fm1tk5mw9j10 ай бұрын

    역시 딱 6부작 예상했는데 정확히 맞췄다ㅎ

  • @user-iz5cc2dv7u
    @user-iz5cc2dv7u4 ай бұрын

    대명... 스토리가 대단해요

  • @eui-kwanwhwang9393
    @eui-kwanwhwang939310 ай бұрын

    항상 늘 기다려지고 재미있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토전사때 전국시대를 자세히 본 입장이라 기대를 조금 적게 했는데, 그런 제가 어리석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임박사님의 말씀 "경쟁과 자유가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다음 번 방송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cc5ic8yj9p
    @user-cc5ic8yj9p10 ай бұрын

    28:34 임용한 박사님 명언 "항상 전쟁은 이것이 좋은 방법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작전 목표를 달성하느냐가 중요하다."

  • @user-zn5qp7ez7d
    @user-zn5qp7ez7d8 ай бұрын

    뉴전사 ㅎㅇㅌ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philippeauguste9796
    @philippeauguste979610 ай бұрын

    장장 6회에 걸친 시리즈의 결론: 인생은 모리처럼~

  • @Ladri_di_biciclette
    @Ladri_di_biciclette9 ай бұрын

    와우 여기서 다시 볼 수 있군요!

  • @kangsj1977
    @kangsj197710 ай бұрын

    넘넘넘 재밌게 전국시대를 요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uv9hv4cy4j
    @user-uv9hv4cy4j2 ай бұрын

    경쟁과 자유의 효과를 알고 그 부작용을 생각해야 한다. 엄청난 명언이다

  • @shootingStar236
    @shootingStar2369 ай бұрын

    인생은 모리 가문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죠 욕심을 버리고 평탄한 인생을 사는 게 행복일 수도 있죠

  • @user-ge9mj8db4n
    @user-ge9mj8db4n10 ай бұрын

    좋아요

  • @LCHXXCIV
    @LCHXXCIV10 ай бұрын

    진짜 오사카성 해자만 봐도 답이 안나오던데..

  • @clench4806
    @clench480610 ай бұрын

    역시 허준씨 포스 감당되는 건 마님뿐

  • @IPO520
    @IPO52010 ай бұрын

    댓글들이 왜케 공격적임... 방송에서 얘기했다시피 이제 냉병기의 시대에 축성술이 우세인 시기에는 10배정도의 병력차가 필요했습니다. 근거를 대라면 콘스탄티노플 함락당시 병력은 보수적으로 7000 vs 80000 이였구요. 콘스탄티노플이나 오사카성이나 당시 대포의 등장 초기이기때문에 냉병기의 전장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자와 10m넘는 성벽등을 고려했을 시 나올 수 있는 수치입니다. 몽골의 미친듯한 공성전 위력을 기본으로 두는 일은 뺍시다.

  • @alexlee3008

    @alexlee3008

    10 ай бұрын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1000년전 지은 성벽이라 비유가 맞지 않음. 그리고 콘스탄티노플도 4차 십자군때 함락 당할때도 오히려 수비측이 가용병력은 더 많았음. 공성전에서 수비측이 훨씬 유리한건 맞아도 10배 이상 필요에 공격부대에 5배 이상 필요하다는건 너무 오바임. 그럼 오사카 성 공략하는데 적정 병력이 100만이었다는건데ㅋㅋ

  • @alexlee3008

    @alexlee3008

    10 ай бұрын

    @@user-nj7cc6gu1g 그럼 도쿠가와는 바보천치라 20만명 끌고감? 애초에 해자 덕분에 100만도 끄덕없었으면 유키무라가 사나다마루 만들어서 공격 분산시킬 이유 자체가 없음. 해자 매꾼게 방어력에 엄청 타격 주긴 했어도 오사카 성 자체만으로도 방어력 강한 성이고 영상과 잘리 5만이면 수성하는데 부족한 병력도 아님. 성 함락은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거

  • @reoars5042
    @reoars504210 ай бұрын

    토전사도 그렇고 소리가 너무 작아요

  • @user-gm8xe2kx9c
    @user-gm8xe2kx9cАй бұрын

    세분 멤버! 넘 좋아요. 예전 토전사부터 팬입니다. 기대감 '빵빵' ~~~ 기대갑!!!!!!!

  • @user-he7yc5bk4v
    @user-he7yc5bk4v10 ай бұрын

    샤를 세환!! 대체 그는 어디있는겐가!!!!

  • @rudalee8004
    @rudalee80044 ай бұрын

    36:39 별건아니지만.. 그리고당연하지만 도쿠가와가문도 남아있습니다.

  • @lym0107
    @lym010710 ай бұрын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배경으로 시작을 하는데 여담이지만 일설에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오사카성 공략에도 참여했다고 해요

  • @mezzohk
    @mezzohk14 күн бұрын

    문제는 미츠나리가 서군의 부대배치를 통솔할 지위가 못되었지요...

  • @user-bn1ch8ot7r
    @user-bn1ch8ot7r10 ай бұрын

    우리의 전국시대, 영웅시대 라고 할 수가 있는 신라 말 고려 초 각지의 호족들이 독자적인 힘을 키우고 견훤과 궁예, 왕건 세 영웅이 등장하는 한국판 삼국지 내지 초한지 라고 할 수가 있는 후삼국시대는 전쟁사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어려울까요? 토전사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신라 말, 고려 초 후삼국 통일 전쟁을 뉴전사에서 전쟁사의 시각으로 다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 @user-xf8xl6sy1f
    @user-xf8xl6sy1f8 ай бұрын

    봄전쟁이 아니고 여름

  • @BATMAN-xf5sd
    @BATMAN-xf5sd3 ай бұрын

    우리나라 전국시대인 후삼국시대도 다루어주시면 좋겠네요 ㅎㅎ

  • @user-oy1xi5zj6n
    @user-oy1xi5zj6n8 ай бұрын

    일본 전국시대는 접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뉴전사를 통해 어느정도 알게 되었네요 인생은 모리처럼

  • @user-ep9bq6uh7x
    @user-ep9bq6uh7x10 ай бұрын

    글쿤

  • @user-fo3es7ze9o
    @user-fo3es7ze9o10 ай бұрын

    NHK 드라마 추천 목록. 사나다마루. 천지인. 공명의 갈림길. 군사칸베에

  • @buzz-ow2zr
    @buzz-ow2zr8 ай бұрын

    도쿄 오사카간의 사이가 안 좋은데는 오랜 역사적인 앙금이 있었군요

  • @user-km4dk6yl6t
    @user-km4dk6yl6t10 ай бұрын

    일본사에서 가장 재밌는 시대지

  • @wepo511.

    @wepo511.

    9 ай бұрын

    ☺️

  • @user-fb4dp7uq5l
    @user-fb4dp7uq5l10 ай бұрын

    결론: 최후의 승자 모리 가문 처럼 모나지 않게 살자!!

  • @dyyfuyhvv6
    @dyyfuyhvv610 ай бұрын

    모리처럼 살자쿠나

  • @user-kd3iv6iz5d
    @user-kd3iv6iz5d10 ай бұрын

    와 모리가문은 진짜 길~고 길다 근데 도쿠가와도 남아있지않나요? 듣기론 국회의원 중에 도쿠가와성씨가 있다던데

  • @kjg140

    @kjg140

    10 ай бұрын

    오다 가문도 남아있습니다.

  • @user-ud3po1bk7g
    @user-ud3po1bk7g10 ай бұрын

    이에야스는 여기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지만, 대장이 죽는 게 가장 큰 문제라 생각했는지, 건강관리를 동시대 다른 영웅들에 비해 잘 했죠. 어쩌면 그게 전국시대를 종결시킨 가장 큰 요인일지도 모릅니다. 군웅할거의 시대를 보면, 결국 전쟁이나 주어진 능력보다 건강관리를 잘 해서 변수를 줄이고 건강을 유지하고 후계자를 키우는 그런 부분이 더 큰 문제라고 나이 먹으면 점점 들게 됩니다. 특히 말년을 보면, 토요토미보다 오래 살고, 마에다보다 오래 산 거 자체가 큰 힘을 발휘하죠.

  • @user-ok2gb4rm7z
    @user-ok2gb4rm7z10 ай бұрын

    음력 4월은 입하가 있는 달 입니다. 이 때부터 여름입니다. 요즘은 양력 5월을 늦봄이라고 하지만... 근대이전에는 5월이면 맹하 즉 초하입니다.

  • @alexlee3008
    @alexlee300810 ай бұрын

    사나다 유키무라는 유력 다이묘도 아니고 오사카성 전투 전 뚜렷한 족적을 남긴것도 아니지만 이때의 대활약과 안타까운 죽음으로 오늘날까지도 일본에서 제일 인기있는 무장중 하나로 자리잡아 많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중

  • @place01

    @place01

    10 ай бұрын

    인생은 한 방이다라는 걸 몸소 증명. 진짜 하얗게 불태운 인생...

  • @user-cf8do4bp8m

    @user-cf8do4bp8m

    10 ай бұрын

    사나다 가문에 2남 아닌가요?

  • @love2mix

    @love2mix

    10 ай бұрын

    노부유키 횽아 동생하고 아빠가 속을 태워서 93세까지 밖에 못산... 흨흨...

  • @mitsnariishida5320
    @mitsnariishida532010 ай бұрын

    세키가하라는 사실상 도요토미 vs 도쿠가와 가문의 전쟁은 맞았지만 당시 전국시대 다이묘들에겐 이시다 미츠나리(반도쿠가와) vs 도쿠가와 세력의 싸움으로 여겨졌죠. 미츠나리가 전쟁전에 요도도노(히데요리의 어머니)에게 도요토미 가문의 문양 센나리효탄(표주박세개모양의 문양)을 빌리려했지만 만약에 미츠나리가 질경우 도요토미가가 가신인 도쿠가와가문에게 지는형국이 된다하여 도요토미측에서 반대헀음 . 도요토미 은고다이묘(도요토미가 아래서 성장한 다이묘.혹은 도요토미 친인척 조카 등)들이 도쿠가와 측에 많이 붙은게 이 방증임.카토 키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쿠로다 나가마사 는 미츠나리와 사이가 너무안좋았기에 도쿠가와측에서 싸웠고 코바야카와 히데아키(히데요시 정실 네네의 조카)도 결국 미츠나리를 배신했음. 이에야스는 이미 히데요시 사후 전국에서 300만석이 넘는 일인자격 대다이묘였고 미츠나리는 겨우 10만석의 다이묘였음 우에스기가 120만 모리도 그정도였음 즉 한가문이 압도적으로 셌고 모리나 우에스기도 반도쿠가와측에 붙었으나 이들은 자신들의 영지만 지키면 되는 이나카 사무라이 즉 시골 지방 다이묘였기 때문에 일본통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 당연히 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않지 우에스기는 쳐들어오는걸 막았을뿐 이에야스를 쫒지않고 모리는 서군 대장으로 있었으나 싸움엔 적극 가담안하고 관망정도만했음.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이긴후 우에스기나 모리가 멸문당하지않은이유가 이것때문임,대신 우에스기는 아이즈120만석에서 요네자와 30만석으로 엄청나게 세력이 줄어듬. 연봉이 1억2천이었던사람이 연봉3000된거임 생활자체가 궁핍해지고 세력이 급격히 약화됨 이에야스에게 맞섰던 사나다도 고야산으로 추방되고 이에야스측에 섰던 친도쿠가와 다이묘들은 다 영지가늘어남

  • @seedAndc
    @seedAndc10 ай бұрын

    전력이 부족할 때는 최대한 빠른 협상이 유리하다.

  • @mitsnariishida5320
    @mitsnariishida532010 ай бұрын

    미츠나리 패착의 이유 1. 세력도 약한데 도쿠가와에게 싸움을 걸었음.. 도쿠가와는 거의 50 년 이상을 기다렸는데 미츠나리는 40밖에 안됬고 이미 절정의 권력도 누림 2.히데요시아래에서 최고절정의 권력을 누림, 센노리큐. 도요토미 히데츠구 쿠로다칸베 등 정적 혹은 도요토미가에 방해되는 이들을 용서없이 할복시키거나 제거하려했음 3. 실정을 너무많이 했고 정이없고 야박했음.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고함. 한마디로 지만 잘났고 자기만이 정의고 진리. 즉 자기를 지지해줄 세력이 부족 4. 전쟁을 더럽게못했음. 노부나가처럼 전쟁을 잘하는 다이묘는 3000명으로도 3만을 깼음(오케하자마전투.운도 작용했다지만 운도 실력) 미츠나리는 조선에서도 싸움에서 많이 패했고 호죠 공략에서도 성하나 못떨굼. 5. 미츠나리-요도도노 vs 이에야스-네네 이런구도였음 미츠나리 요도가 구세력이라면 이에야스 네네가 신세력. 또한 네네는 히데요시 정실로써 수많은 다이묘들에게 영향력이 있었고 도요토미가 아래서 자란 은고다이묘(카토 키요마사 쿠로다 나가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침 코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네네의 조카인데 서군에 서있다가 마지막엔 이에야스로 가담해 배신함.

  • @user-rs1rn9hl4t

    @user-rs1rn9hl4t

    10 ай бұрын

    잘난척하기는

  • @user-td5en5jp9l

    @user-td5en5jp9l

    10 ай бұрын

    그래도 오타니 요시츠구처럼 자기가 믿음 준 사람한테는 정말 잘해줌 친한 사람과는 정말 목숨도 맡길 정도고 사이나쁜 사람과는 잘 지내지 못해 적으로 만드는 스타일

  • @Eric_Cartman001

    @Eric_Cartman001

    9 ай бұрын

    도쿠가와가 이겼으니 미츠나리를 간신처럼 묘사한 것 뿐 미츠나리가 히데츠구 구원을 위해 노력했다던가 하는 기록도 있기때문에 미츠나리보단 히데요시 본인의 의지임. 미츠나리는 조선 출병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음. 히데요시 뜻에 반발하지 못했을 뿐 앞잡이질 하며 권세를 휘두른 인물은 아님. 그런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었다면 더 교활하게 처세했을거고 세키가하라 전투는 없었을거임. 무단파가 미츠나리 극혐했던 것도 권세를 남용해서가 아니라 무장들 편의를 봐주며 친밀도를 높이기보단 무장들 잘못한거 조목조목 보고하는 깐깐한 감시역을 계속했기 때문임 그리고 전쟁 수행 능력도 애초에 전쟁을 선호하는 성향이 아니었고 대규모 회전을 치룰 만한 직속 세력도 야전 경험도 적었던 것 뿐이지 군재는 괜찮은 수준이었음. 오시성 전투도 미츠나리 본인은 수공은 승산 없다고 했는데 히데요시가 하라고 해서 했다가 죽 쑨거고 성 지형 자체가 습지 투성이에 주요 거점은 고지대라서 병량공격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성이었음.

  • @user-zc4kq4dk6p
    @user-zc4kq4dk6p10 ай бұрын

    임진왜란편도해주세요

  • @user-ed9pv2bh2f
    @user-ed9pv2bh2f10 ай бұрын

    아나운서. 시원합니다

  • @place01
    @place0110 ай бұрын

    스토리텔링에서 좀 아쉬운 게 세키가하라 편 때 사나다 마사유키-노부시게 부자를 잠깐 다루었으면 14년 유배 생활 끝에 탈출해 오사카 전투에서 맹활약한 유키무라의 이야기도 꿀잼이었을 텐데.... 오사카 오인중 얘기도 아예 안 나오고 좀 아쉽

  • @alexlee3008

    @alexlee3008

    10 ай бұрын

    유키무라도 끝에 잠깐 등장하고 오사카 성 전투의 주인공은 사실 유키무라를 위시한 오사카 오인중인데 묘사가 아쉬움. 유키무라랑 오인중은 개전 시점부터 농성이 아니라 선제공격 주장한것도 스킵이고

  • @fourtytwo-anonymous

    @fourtytwo-anonymous

    10 ай бұрын

    사나다 가 이야기? 대전략 측면에서 전쟁을 바라보는데, 그 정도 전국시대 많고많던 지방영주 들의 곁가지 에피소드 쯤 되는것을 굳이 다룰 건 없어 보입니다.

  • @place01

    @place01

    10 ай бұрын

    @@fourtytwo-anonymous 그렇긴 하지요.. 규모면에서는확실히 대단치 않은 지방 영주였으니까요. 그래도 2대에 걸쳐 두 전투에서 토쿠가와를 곤란하게 한 특이사항이 있다는 점. 세키가하라 전투를 다룰 땐 실질 총대장이자 주장이었던 이시다 미츠나리가 무조건 비중 있게 다뤄지고 동서군 라인업을 한번 쭉 비춰주는 점에 비해서 오사카 전투를 다룰 땐 토요토미측 실질 군 지휘를 맡았던 오인중 비중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거죠

  • @user-up5xj6

    @user-up5xj6

    10 ай бұрын

    시대흐름과 세력의 번성과 쇠락 위주로 관점을 잡고 얘기를 해서 그럴 거에요. 간단히 말하자면 큰 흐름을 보자는 얘기.

  • @naldawson7336
    @naldawson733610 ай бұрын

    일본의 성은 어떻게 저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울까 ㄹㄹㄹ 너무 부럽다

  • @user-lv7xv6fc2u

    @user-lv7xv6fc2u

    10 ай бұрын

    자율과 경쟁의 결과

  • @naldawson7336

    @naldawson7336

    10 ай бұрын

    @@user-lv7xv6fc2u 자유와 경쟁이라는게 저렇게 좋은 것이군요.

  • @user-lv7xv6fc2u

    @user-lv7xv6fc2u

    10 ай бұрын

    @@naldawson7336 근데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이 굉장히 빡세죠. 경쟁이 치열하니까요. 경쟁에서 도태돼서 죽어나가는 사람들도 많고요.

  • @naldawson7336

    @naldawson7336

    10 ай бұрын

    @@user-lv7xv6fc2u 경쟁에서 도태되면 죽어나가요? 이상하네.. 명문대, 대기업 가려고 죽도록 경쟁하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도태되는데.. 다들 잘 살아있지 않나요? 명문대 대기업 못 가면 죽이는 무슨 법이라도 있나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 @user-lv7xv6fc2u

    @user-lv7xv6fc2u

    10 ай бұрын

    @@naldawson7336 아뇨 전국시대 전쟁에서요.

  • @fffoooxxxx7063
    @fffoooxxxx706310 ай бұрын

    간적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괘씸한 가토 요시아키

  • @user-wk4cq9el6s
    @user-wk4cq9el6s3 ай бұрын

    내 눈에는 .....

  • @capacsis
    @capacsis9 ай бұрын

    IF 시리즈 언급 ㅋㅋ

  • @user-ir8uc5sz4d
    @user-ir8uc5sz4d10 ай бұрын

    여자분 귀여워

  • @user-nh4ri6yc4x
    @user-nh4ri6yc4x10 ай бұрын

    4월이 ‘여름’인 건 음력이라서 그렇지 않을까요ㅎㅎ 음력 4월은 ‘맹하孟夏‘라고 합니다

  • @user-dl1ft8bw8e
    @user-dl1ft8bw8e10 ай бұрын

    이에야스의 명성이 너무 높아서 다들 이에야스를 대단하게 생각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민심이 이에야스한테 쏠릴텐데... 어린 히데요리가 할수있는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히데요리측도 가만히 앉아서 죽을수는 없으니까 큰 건축물이라도 지어서 힘을 과시하고 어그로를 끄는거겠죠. 아직 건재하다는걸 보여줘야 믿고 베팅하는 사람들이 생길테니까요. 그리고 불교 민심이 나쁘지 않으니까 불교 건축물로 했을것이고... 그래도 나름 투자한만큼 얻는것도 있었겠죠. 문제는 이에야스를 막을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실패했다는거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이것이 히데요리측에서 돈을 헛되이 쓴거라면 히데요리측이 어디에다가 돈을 써야 이에야스를 막을수 있었을까요? 군대? 군대도 숫자로만 하는게 아니죠. 군인들도 충성심이 있어야 할텐데... 그래서 민심을 챙기는것도 중요하겠죠.

  • @NICKNAME-ig9vh

    @NICKNAME-ig9vh

    10 ай бұрын

    사람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거고 이에야스가 10년을 더 살지 20년을 더 살지 모르는 상황이긴했지만 이에야스가 10년안에 건강에 문제생긴다에 베팅하고 시간 끄는 방법도 있었죠. 오다 노부나가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적들이 어이없게 사망해서 대권을 가졌던걸 생각해보면 의외로 이런것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 @ejH-Korea
    @ejH-Korea10 ай бұрын

    이쁘네 여전히 윤지윤 아나운서

  • @parkpphyoungkyu9757
    @parkpphyoungkyu97572 күн бұрын

    말이 길지만 간단한거야.. 도쿠가와는 산전수전 다 격은 늙은 여우인데 평범한 미망인하고 20대 초반 도련님이 무슨 상대가 돼겠나,, 같은 20대 초반이어도 알렉산더같은 기량이 있는것도 아니고 엄마품에서 재롱이나 떨던 애가 상대가 돼냐고?

  • @ZARDVANA
    @ZARDVANA10 ай бұрын

    해자를 매꿨을때 부터 ㅈㅈ네

  • @zevines
    @zevines10 ай бұрын

    모리가는 심지어 전후 일본 총리 배출하고 지금도 최고 정치 가문이죠.

  • @user-td5en5jp9l

    @user-td5en5jp9l

    10 ай бұрын

    다른 가문입니다. 모리 데루모토는 毛利가문 일본 총리 모리는 森가문

  • @cleandust530
    @cleandust53010 ай бұрын

    윤지연 아나운서님 언제 복귀하셨어요??????!!!!!

  • @user-gu5hr5yw3f
    @user-gu5hr5yw3f3 ай бұрын

    일본은 히데요시를 더 인정한다죠 역시 ...한국도 광개토왕을 인정하죠 전쟁을 피하지 않고 공격하는 걸 좋아하는게 인간...

  • @user-tr9lr5zt3s
    @user-tr9lr5zt3s10 ай бұрын

    부대장악이 안 되었는데 병사의 우위만 믿고 평지에서 회전을 펼친다? 훨씬 더 쉅게 무너졌을 것 같네요. 왜냐하면 세키가하라 전투를 보면 서군의 병력 위치를 보면 직속 병력을 제외하면 믿지 못한 병력으로 생각하고 배치한걸 보면 회전은 무리였을 겁니다

  • @superflashone436
    @superflashone43610 ай бұрын

    보면 볼수록 도쿠가와 야비하네.

  • @TV-pu5ph
    @TV-pu5ph10 ай бұрын

    윤지연 아나운서 토전사때 와 비교해보면 정말 얼굴에 연륜이 느껴진다 ^^

  • @formilesarone3155
    @formilesarone315510 ай бұрын

    공성전에 필요한 병력 수를 이렇게 과장하면 어떡하냐. 포위에 10배, 그리고 공격부대는 별도로 5배? 이러면 인류 역사상 성공한 공성전은 없었겠다. 다른 얘기들도 이미 다 나와있는 이야기를 재탕하는 수준인데, 중간중간 자기들 뇌피셜 추가하면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추가하는 게 큰 문제. 방송 준비로 고작 몇 시간 생각한 걸 가지고 나와서 전문가처럼 말하면 어떡하나.

  • @user-hi5ui9bw6p

    @user-hi5ui9bw6p

    10 ай бұрын

    그럼 근거를 대봐. 당신말이 맞고 저분들이 그렇게 했다는걸~ 임박사님이나 임위원님이나 당신보단 많이 아실꺼 같은데?

  • @formilesarone3155

    @formilesarone3155

    10 ай бұрын

    @@user-hi5ui9bw6p 내가 위에 쓴 공성전 관련 수치의 허황됨은 글자를 읽을 수 있으면 이해할 것이고, 그 외에도 모두 잘해야 50% 맞는 얘기라고 보면 된다. 근거는 각 사안마다 일본역사 전공학자가 쓴 책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이 얼마나 흥미 위주이고, 방송 준비하면서 짧은 시간 얄팍하게 생각한 걸 얘기하는지. 그러니 당연히 틀릴 수밖에. 임용한은 조선초기 전공자이고, 임 아무개도 일본역사 전공자가 아닌데, 뭘 바라나. 관련 “책”을 검색해서 봐라. 또 당신이 늘 하듯이 “인터넷”이나 “유투브”에서 떠도는 정보를 검색하지 말고.

  • @goldenknowledge4051

    @goldenknowledge4051

    10 ай бұрын

    오른쪽 분이 너무 추측이 많아요. 방송인데, 90%의 사람은 본인보다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10%는 더 잘 알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할 듯... 끝으로 15배 병력 차 전투는 역사상 흔치 않죠.

  • @user-hi5ui9bw6p

    @user-hi5ui9bw6p

    10 ай бұрын

    ​@@formilesarone3155그니까 근거를 대라고. 무슨책 어디에 써있는지. 니 뇌속에서 망상한거 까고 있지 말고 글자같은 소리하네. 근거는 한줄도 못대는게

  • @IPO520

    @IPO520

    10 ай бұрын

    ​@@formilesarone3155 음.. 방송에서 얘기했다시피 이제 냉병기의 시대에 축성술이 우세인 시기에는 10배정도의 병력차가 필요했습니다. 근거를 대라면 콘스탄티노플 함락당시 병력은 보수적으로 7000 vs 80000 이였구요. 콘스탄티노플이너 오사카성이나 당시 대포의 등장 초기이기때문에 냉병기의 전장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자와 10m넘는 성벽등을 고려했을 시 나올 수 있는 수치입니다.

  • @jayyoo906
    @jayyoo90610 ай бұрын

    이런 어설픈 일본 얘기가 재미있나?.

  • @user-fx6mm5sv2q

    @user-fx6mm5sv2q

    10 ай бұрын

    아이고 교수님 같은 분은 재미없을수도 있지요 어디 대학 교수님입니까?

  • @user-jn7uh9zs3j

    @user-jn7uh9zs3j

    10 ай бұрын

    @@user-fx6mm5sv2q 그러게요. 어디 교수님이세요?

  • @user-rs1rn9hl4t

    @user-rs1rn9hl4t

    10 ай бұрын

    노가대 입니다

  • @user-cf8do4bp8m

    @user-cf8do4bp8m

    10 ай бұрын

    그럼 어설프지 않은 일본이야기는 누가 했나요?

  • @user-rs1rn9hl4t

    @user-rs1rn9hl4t

    10 ай бұрын

    @@wepo511. 보 ㅈ ㅣ과

  • @kijik7975
    @kijik79758 ай бұрын

    긴 이야기 수고하셨습니다 무척이나 인상 깊고 즐겁게 봤네요 일본이 조선보다 재정이 풍부한 건 알았지만 (세계 은 생산 1위도 했었던 일본)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아예 모든 부문에서 조선을 압도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아니 왜케 조선통신사나 왜관에 목을 맸지?)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임용한 박사님이나 임철균 연구원님만이 아니라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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