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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싸울까? 피셔논쟁!

#역사 #세계사 #세계대전
참고자료
Berghahn, Volker: Die Fischer-Kontroverse - 15 Jahre danach, in: Geschichte und Gesellschaft 3(1980), pp 403-419.
Kracht, Klaus Große: Die Fischer-Kontroverse. Von der Fachdebatte zum Publikumsstreit, Göttingen 2005

Пікірлер: 142

  • @jiwonmoon9083
    @jiwonmoon9083Ай бұрын

    피셔논쟁은 정치적 맥락을 살펴보지 않으면 그 파급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1차대전후 베르사유 조약 제231조에 따라 전승국들은 1차대전의 책임을 모두 독일에게 돌렸으나 이는 독일 내에 큰 정치적 학문적 반발을 일으킵니다. 독일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1차 대전 발발 전 대규모 외교문서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더군다나 당시 소련이 들어서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의 헛짓거리인 외교의 위선을 까발린다는 명분하에 온갖 외교문서들을 공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상호간에 서로 유리한 점을 취합해서 논쟁이 일단 시작 됩니다. 그리고 특히 요즘에 와서 당시 독일은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을 위주로만 공개했다는게 밝혀졌죠. 여튼 이러한 갈등은 당면한 혼란 상에 묻혀서 잊혀지는듯 하다가 2차대전이 발발하고 종전 되면서 또 가열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2번이나 이를 겪었기 때문에 말씀하셨듯이 AJP테일러 같은 사람들의 독일책임론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냉전이 형성 심화 되면서 그 빛을 잃게 되는데 당시 강력한 소련에 맞서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서독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독일의 전쟁 책임에 대한 타협이 필요했고 그 결과 이때부터 프랑스 독일 학계의 타협을 시작으로 특히 1차대전은 당시 강대국간 동맹구조가 문제였지 어느 한 국가의 책임은 아니며 독일의 행동은 방어적 성격도 있었다 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어 갑니다. 그리고 이걸 평생을 바쳐서 증명하려고 했던게 게르하르트 리터고 그래서 학계는 평온을 찾은 듯 했습니다. 그리고 냉전 시작 즈음 그리고 60년대 즈음에 리터의 세대가 대략 60대로 독일 학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더욱 더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었죠. 그러나 이런 평온을 깨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프리츠 피셔입니다. 프리츠 피셔는 독일통일 이후로 동독의 구 독일제국 문서고에 가장 빠른시기에 접근했던 학자들 중 하나로 원래는 마틴루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피셔는 자기가 그때껏 주장해왔던 것에 아주 잘 들어맞는 독일제국 정부 문서를 발견하는데 그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 1년 반 뒤에 전쟁을 하는 것이 낫다." 1912. 12. 그리고 그 후로 정확히 1년 반 후에 사라예보 사건으로 1차대전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시작되었죠. 물론 전쟁은 문서가 이야기 한 것보다 조금 뒤에 즉 20개월 뒤에 발발하긴 했습니다만 피셔는 이를 독일이 애초에 전쟁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요 증거로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독일 권력층의 정복과 팽창의 욕구가 그것이 빌헬름2세이든 히틀러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며 독일은 결국 팽창을 선택할 것 이라는 식의 의견을 크게 개진 합니다. 근데 이게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뭐냐면 바로 그 논리대로라면 앞으로도 독일은 통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난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독일 내부의 극심한 반발을 사기 시작하죠. 그러나 강력한 증거와 나름의 논리를 내세운 피셔에게 기존 동맹구조론 누구도 책임이 없다 라는 식으로 1차대전을 이야기 하려 했던 리터를 축으로 한 기존 독일의 주류학자들이 제대로 반박을 못하면서 이제 싸움이 개싸움으로 간겁니다. 리터 자신은 히틀러 집권기에 나치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여 계속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던 반면 피셔는 나치에 줄을 대서 대학교수의 지위를 얻은 사람이였기 때문에 리터는 피셔를 나찌새끼라고 하는 원색적인 욕을 하면서 까지 피셔의 주장을 공격합니다. 피셔의 주장의 근간은 결국 히틀러에 몸담았던 자신의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히틀러가 독일의 그 성격과 다르지 않은 즉 독일을 끌고 간 게 아니라 독일이라는 미친 폭주 기관차에 우연히 올라탄 사람이라고 한다고 한거죠. 피셔도 이에 대해 리터를 비난하면서 리터가 1차대전 참전을 했고 그랬기에 그 전쟁을 미화하려고 독일 책임을 없애려고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상호비난이 워낙 흙탕물 싸움이었기에 과연 독일인 들이 냉정한가에 대해 비꼬는 사례로 먹물들이 많이 이야기 하는 사례 입니다.

  • @user-st7fb9cn7q

    @user-st7fb9cn7q

    Ай бұрын

    WOW...과거를 해석함에 있어서 현재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같네요

  • @Coolmd-it4ck

    @Coolmd-it4ck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에 좋은 댓글👍

  • @user-lu4rm7ie3d

    @user-lu4rm7ie3d

    Ай бұрын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한번에 이해가 되었어요

  • @user-zk5gx5kj7j

    @user-zk5gx5kj7j

    Ай бұрын

    홍상수 영화 제목이 생각나네요.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PsychoWatchDog

    @PsychoWatchDog

    Ай бұрын

    세줄 요약 좀

  • @user-bn2je2ru1g
    @user-bn2je2ru1gАй бұрын

    제 졸업논문이 피셔논쟁 관련이었는데 이걸 다시 보게되니 너무 반갑네요 1차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팽창하다가 필연적으로 화약고가 터졌다고 보던 역사관이, 전쟁 20년도 전부터 잠수함 기지를 지어 해군 증병, 식민지 자원 확보를 하는 등등 독일의 치밀한 세계대전 계획에 의해 일어났다는 독일 책임론으로 완전히 관점이 변했죠 여기에는 국무회의 회의록과, 빌헬름이 여기저기 보냈던 서신들의 연구가 한몫 했습니다 피셔는 독일이 오스트리아에 백지수표를 준 것이 결정적이라 했지만, 정작 독일은 본인들이 오스트리아에 준 백지수표의 무게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육군, 해군 총사령관은 그당시 부재, 병가중이었으며 카이저마저도 백지수표를 줘놓고 실상 전쟁가능성은 적다 생각했는지 요트 휴가를 떠나버리죠 총력전을 염두중인 국가가 상식적으로 이럴리가 없죠 카이저는 특히 러시아의 총동원령이 훨씬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미 러시아는 국경에 여러개의 사단을 배치할 준비를 마쳤고, 프랑스도 외교관들의 전보를 통해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역시 비스마르크를 해임하고 국제왕따가 된 것이 업보가 되어 돌아온거죠 독일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이는 러시아제국이나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유럽이 전쟁만을 기다리며 독이 올라있었던거죠. 독일에 전쟁책임이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독일제국 빌헬름2세가 그 시기, 그 방향으로 개전할 계획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jjjunna

    @jjjunna

    Ай бұрын

    @@user-bn2je2ru1g 독일이 전쟁을 노리고있었냐 아니냐 로 따지면 노린게 맞는데 다른 참전국들도 모두 노리고있기는 했다 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 @user-bn2je2ru1g

    @user-bn2je2ru1g

    Ай бұрын

    ​@@jjjunna네 정확합니다

  • @user-ih5zd7ne3b

    @user-ih5zd7ne3b

    Ай бұрын

    역알못이라 그런데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나라들은 식민지에서 달달하게 꿀빠는 중이라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가봐요?

  • @user-bn2je2ru1g

    @user-bn2je2ru1g

    Ай бұрын

    ​@@user-ih5zd7ne3b 이미 다 먹어버린 식민지들을 서로에게서 뺏어오기위한 지배력 싸움은 동남아에서 빈번했고, 식민지를 만드는 대신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던 독일이 뒤늦게 팽창정책을 내세우면서 아프리카의 문제아가 된것도 있습니다.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발칸반도도 영향력 파이다툼의 연장선이고요. 당장 한국이 1890년대~1910년대에 영독미프러일한테 당한 일을 생각해보면 열강들이 만족했다, 전쟁에 회의적이었다 보기는 어려울것같습니다

  • @seongminkim4354

    @seongminkim4354

    Ай бұрын

    @@user-ih5zd7ne3b 프랑스는 보불전쟁의 복수 영국은 독일의 해군확장 억제 등등

  • @Alexander_2024-K
    @Alexander_2024-KАй бұрын

    자국을 까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심지어 저때는 수틀리면 물리적으로 얻어맞는 시기였는데 용기가 대단한 것 같네요.

  • @user-si7lx4xw8x

    @user-si7lx4xw8x

    Ай бұрын

    그냥 헛소리를 해서 다구리당한건데 용기가 대단하다니요;; 일뽕이 우리나라 까는거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됩니다

  • @user-k6h3zifsv8

    @user-k6h3zifsv8

    Ай бұрын

    @@user-si7lx4xw8x에휴

  • @qqqq3500

    @qqqq3500

    Ай бұрын

    ​@@user-si7lx4xw8x엥? 오히려 일본에 대입해서 본다면 자국책임론을 강조한사람이라 볼수있는거 아닌가요..?

  • @user-si7lx4xw8x

    @user-si7lx4xw8x

    Ай бұрын

    @@qqqq3500 저게 무슨 뉘앙스냐면요 사실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해준거임 ㅇㅈㄹ하는거랑 똑같아요 결코 정당한 비판이 아니에요 그냥 억까지

  • @qqqq3500

    @qqqq3500

    Ай бұрын

    @@user-si7lx4xw8x 그렇게도 생각할수있네요. 좋은의견 감사합니다

  • @jiwonmoon9083
    @jiwonmoon9083Ай бұрын

    여튼 리터는 리즐러 일기라는 걸 가져와서 독일 군부와 민간 관료 엘리트들을 분리하여 전자는 전쟁이라는 모험 친화적 성향을 보였으나 후자는 그러지 않았다 라는 식으로 피셔에 대해 반박하려고 합니다. 리즐러는 1차대전 당시 독일제국의 수상이였던 베트만-홀베크의 비서로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일기를 남겼다고 여겨 졌습니다. 그러면서 여기 기록을 보면 베트만-홀베크 등의 민간관료들이 군부를 억제하려 했고 그러나 잘되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피셔의 주장이 과장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자료가 됐었죠. 베트만-홀베크가 남긴 기록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기록은 2차대전때 폭격으로 다 불타서 없어졌기에 비서의 기록을 들고 나온겁니다. 피셔는 이런 주장을 보고 리즐러 일기는 그 자신이 조작했거나 아니면 사후에 독일 관료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조작 했을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로 이것이 조작인지 판명 해 보게 됩니다. 즉 일기가 쓰여진 종이의 생성년도를 분석해본거죠 그런데 종이가 1940년대에 생산된 거였습니다 즉 리즐러 일기는 조작이였던 겁니다. 여튼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피셔의 주장은 인기는 없지만 부인 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국제정치 학계에서는 독일이 당시 전쟁의 의도를 가졌다는건 분명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세계정복이 목적이였는지 유러대륙 차원에서의 우위였는지 러시아에 대한 예방전쟁이였는지 아니면 전부 다를 추구한건지를 정확히 특정 할 수 없을뿐이죠. 그리고 이 목적의 차이에 따라 전쟁의 성격이 아예 달라지기 때문에 또 피셔의 주장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해석 할 수 있는거 같습니다. 적어도 독일이 세계대전을 추구한거는 아닐거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보는거죠. 그리고 이미 독일이 통일이 다시 되었기 때문에 피셔가 한 주장의 정치적 민감성은 많이 퇴색되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냉전이 종식되던 시기에 피셔의 주장을 따르면 독일이 통일이 되면 안되는거고 히틀러라는 인물을 강조해서 독일이 히틀러 때문에 전쟁을 한거라면 독일은 통일 되어도 된다는 식의 결론이 나기 때문에 많이 민감하게 싸운 겁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선 통일이 되었기에 후자가 더욱 많이 강조되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또한 연구가 많이 진전되면서 히틀러를 배제하고 2차대전을 이해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도 피셔의 주장이 약화 될 여지가 많아졌죠

  • @jjjunna

    @jjjunna

    Ай бұрын

    정말 대단하십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역시 유튜브 보다는 산문이 내용의 깊이 차이가 어마어마 하네요

  • @stoneschool

    @stoneschool

    6 күн бұрын

    근데 초기에 의도가 어느정도였던 간에 엄청난 자제심이 없는 한 거듭된 승리는 기존보다 강화된 안을, 거듭된 패배는 기존보다 축소된 안을 추구하게 만들 거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애초에 같은 작전안을 가지고도 일제에서 같은 회의를 참가한 이들 중 누군가는 대동아공영권을, 누구는 조선과 만주 정도의 확보를, 누구는 세계를 바라봤을 거고요.

  • @Soso-th8dj
    @Soso-th8djАй бұрын

    피셔논쟁에 대해 다루어주셨으면 한다고 전 영상에 댓글 달았던 구독자입니다! 관련 학부생으로 강의시간에 피셔논쟁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국의 정치,사회 상황과 상충되는 주장을 펼친 피셔와 관련해 계속 생각나서 신청하게 됐는데, 함께하는 세계사님께서 깔끔하게 정리해 주셔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 @Poohon1
    @Poohon1Ай бұрын

    우리나라 국방부가 독립운동가를 역사적 시기와 역사적 사실을 막론하고 단순 좌우로 따지고 배척하려던 시도에 한 기자가 '역사논쟁은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라며 일침하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 @HoeSu

    @HoeSu

    Ай бұрын

    오 궁금하네요 관련일화를 더 듣고싶은데 어디서 찾아볼수 있을까요?

  • @harlibedvii
    @harlibedviiАй бұрын

    전쟁 행위를 악으로 취급하는 현대와 달리 1차대전은 패권을 위해 전쟁을 감수하는 것이 익숙하던 나폴레옹 시대에 가까운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는데, 게다가 1차대전은, 확실히 나쁘다고 규정할 수 있는 민족절멸을 꺼낸 2차와 달리, 이전에도 수없이 익숙히 반복된 성격의 전쟁, 이권을 둔 열강의 패권전쟁이 아닌가요. 독일은 졌을뿐이고

  • @user-xv5qq2we2p

    @user-xv5qq2we2p

    Ай бұрын

    명분도 동맹국한테 있지 황태자가 암살당하고 가만히있는 제국이 어디있어?

  • @hyunsanggwon

    @hyunsanggwon

    Ай бұрын

    @@user-xv5qq2we2p그렇게치면 세르비아에 투자한 프랑스 채권자들은 뭐가됨?? 철도까는돈 군수품 엄청 조달하면서 세르비아에 프랑스가 자본외교해왓었고 프랑스무기로 계속 근처국가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하며 대 세르비아주의뽕 차서 오스트리아도 겁내지않았던거고 프랑스는 세르비아가 돈 못갚길래 세르비아 철도 경영권같은거 가져와서 이제서야 투자원금 이자 뽑고 제대로 식민지태크 돌릴려고하는데 황태자한명 죽엇다고 오스트리아가 점령해버리면 매일 월급받아서 세르비아 채권 투자한 투자자들 그냥 조용히 국가 외교논리에 재산 털리는걸 가만히 보게놔둘까요?

  • @user-yf4ph9py4e

    @user-yf4ph9py4e

    Ай бұрын

    ​@@user-xv5qq2we2p 그건 어디까지나 오헝 이야기지, 독일제국은 상관없는 이야기

  • @user-yf4ph9py4e

    @user-yf4ph9py4e

    Ай бұрын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빈 체제, 이후 그레이트 게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열강들이 충돌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나폴레옹 시기에도 숱한 협상과 강화로 평화를 추구했고요

  • @nmds1254

    @nmds1254

    Ай бұрын

    ⁠@@user-yf4ph9py4e오헝이 세르비아에 최후통첩 날렸는데 동맹 관계도 아닌 러시아가 동원령 내린거부터 이미 당위성은 동맹국이 가져간거임

  • @user-wj3ud7lv5n
    @user-wj3ud7lv5nАй бұрын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인가 하는 책에서는 독일 제국의 전쟁 의도와는 별개로 유럽 전체가 일종의 집단환각에 빠져 전쟁으로 치달았다는 말도 있던데 이에 대해서도 다뤄주실 수 있을까요? 피셔의 주장이 맞다 쳐도.. 1차 대전은 그저 식민강탈 제국들의 아귀다툼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von_osterreich

    @von_osterreich

    Ай бұрын

    그 책 관련된 영상이 이미 있을겁니다 그 영상 마지막에서 언급하셨어요

  • @jiwonmoon9083
    @jiwonmoon9083Ай бұрын

    와우 답글 격려글 감사합니다. 이게 1차대전과 2차대전이 과연 하나의 전쟁이였는가에 대한 국제정치학 특히 외교사 부분에 있어서의 큰 논쟁에 들어가는 주제라 제가 가볍게 알고 있었던 부분이라 AJP테일러류와 피셔의 주장이 좀 혼재 되어 있어서 시기 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개별 역사 관점 말고 국제정치학의 외교사 관점에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간 그리고 곁다리로 강대국과 약소국간 국가 간 외교 의 패턴과 전쟁이라는 결론 그리고 전후체제의 논리적 실질적 안정성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개별 국가 간 역사 이상의 큰틀을 이해하는데에는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만큼 어렵고 복잡해서 훌륭한 저작물 등을 만나기는 더 어려운 거 같고요. 여튼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세계사 인식에 그치는데 그 인식은 과거 E.H.카가 생각했던 20년의 위기 라는 책에서 주장한 독일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입장에서 이야기 하기 때문에 두 전쟁은 분리가 안되죠. 근데 문제는 그렇게 이해하면 지금 1차대전 개전 과정에서 보여졌던 복잡 다단한 플레이어들의 상충되는 인식과 결정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히틀러가 가지는 독일 정책 결정상의 아주 중요한 영향력을 간과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 후에 공격방어균형 이론이라던지 외교정책결정과정론 적 시각이라던지 여러 국제정치학의 이론적 성과가 보태지면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분리해서 보는 설명이 훨씬 설득력 있어졌습니다. 피셔 와 리터의 논쟁은 그 과정에서 역사학적 인식의 한 파편이라고 생각되네요. 물론 히틀러를 악마화 하고 독일과 분리한 다음 독일이라는 신흥 제국의 팽창적 속성을 최대한 약화하고 이를 통해 독일 국가와 국민에 면죄부를 주면서 아주 모범적인 2차대전 전후 미국이 만들어낸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유럽 최강대국이라는 관점이 강해지면서 후자의 역사관이 훨씬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계시죠.

  • @9bowwow9
    @9bowwow9Ай бұрын

    현재 관련 학부생입니다 1차세계대전 책임론에 대해서 수업 들은 적 있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영상 주제처럼 피셔논쟁에 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찍먹했었어요 1차대전은 2차때처럼 뚜렷하고 명백한 범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후 기밀문서들이 해제되면서 피셔논쟁을 비롯해 집단책임론이 나왔듯이요. 그런점에서 하나의 독일 국민이었던 피셔는 자국책임론을 주장하는데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을거고 결국엔 해낸 지점에서,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다시한번 역사가의 본분이 무엇인가 절감하게 되네요. 영상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 @user-fg8sy4zj5j
    @user-fg8sy4zj5jАй бұрын

    1차대전 직전의 유럽은 진짜 난장판인 게 맞았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조차도 전쟁을 국민들이 원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고….

  • @ho458
    @ho458Ай бұрын

    영국 피셔제독 이야기 인줄 알았음 그사람이 독일과 건함경쟁이나 드레드노트급 전함 주창자라서 독일과 전쟁을 유도한건가 짐작하면서 들어왔는데 역사학자 이름이네요

  • @user-xv5qq2we2p

    @user-xv5qq2we2p

    Ай бұрын

    나도 ㅋㅋ

  • @user-vq5xd5bh4v
    @user-vq5xd5bh4vАй бұрын

    피셔논쟁은 마치 한국사학계에서 대한제국은 1910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기 10년전이 1900년부터 의도적으로 일본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한국 엘리트 친일그룹이 존재했었다 라는 수준의 강한 임팩트를 주는 논쟁이었을거같아요. 독일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ㅎ

  • @user-lr7rb7xv9k
    @user-lr7rb7xv9kАй бұрын

    3D 애니메이션은 뭘로 만드는 건가요?

  • @SuperWonder
    @SuperWonderАй бұрын

    나쁜 놈과 조금 더 나쁜 놈의 싸움이 제1차 세계대전 아닐까 하는데요.

  • @Friedrich-ErandelVonEichenwald

    @Friedrich-ErandelVonEichenwald

    Ай бұрын

    다나쁜놈임

  • @hansrordt

    @hansrordt

    Ай бұрын

    1차대전은 딱히 더 나쁘고 자시고도 없어요 그냥 제국주의 열강들이 팽창하다가 폭발한 거.

  • @user-ie9jz8ht6c
    @user-ie9jz8ht6cАй бұрын

    음 1959년의 ‘독일의 전쟁목적’이라는 논문이 시작 아니었음?

  • @Rushmoom9541
    @Rushmoom9541Ай бұрын

    세상 모든 일이 흑과백으로 구분되는것이 아니듯 1차대전에서의 독일에게도 귀책사유가 있겠지만 오로지 독일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과장된 주장 같네요 도화선이 된 발칸에서의 얽히고 설킨 원한과 이해관계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데 말이죠

  • @user-yf4ph9py4e

    @user-yf4ph9py4e

    Ай бұрын

    이게 전형적인 논리도 사실도 없는 절충안. 님 답글의 앞부분(독일에게도 책임이 있지만)과 뒷부분(발칸에서의 ... 원한과 이해관계)이 따로 놀죠?

  • @Rushmoom9541

    @Rushmoom9541

    Ай бұрын

    ​@@user-yf4ph9py4e독일에게도 책임이 있다와 독일에게만 책임이 있다를 구분하는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을줄은 몰랐네요

  • @hansrordt

    @hansrordt

    Ай бұрын

    최근 논문에서 봤을 때,오히려 러시아ㆍ프랑스가 전쟁을 촉발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프랑스 외무장관 푸앵카레가 러시아제국에게,유사시에 프랑스가 적극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고,이 확약을 믿은 러시아가,오스트리아-세르비아 개전 당시에 전국적인 동원령을 내리게 되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이용수,,한국독일사학회,2015

  • @金起燦

    @金起燦

    Ай бұрын

    ​@@user-yf4ph9py4e저능아어필 그만

  • @YJK-je6xq
    @YJK-je6xqАй бұрын

    세균이 들어간 소시지먹기 결투나 주먹으로 싸우진 않았군요

  • @nabi617
    @nabi617Ай бұрын

    제국주의 일본은 일관되게 현재까지도 침략이 아니고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이런 비슷한 논쟁이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 @besuhof9360
    @besuhof9360Ай бұрын

    자국의 사건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그것을 모든 국민들이 공유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독일이, 즉 바이에른에서 발트해까지 걸쳐있는 전체 독일이, 하나의 온전하고 통일된 국가로서 역사적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라는 느낌이 있고, 이와 같이 역사는 현재를 통해 과거를 해석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듬.

  • @luansen0
    @luansen0Ай бұрын

    물고기를 잡는.. 아 그거 아니구나?? 누가 남의 해역에서 청어를 잡아가고 그런 얘긴 줄..

  • @aljja88ify
    @aljja88ify16 күн бұрын

    1차대전 선전포고 소식을 듣고 환호했던건 독일인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죠.

  • @hohohohho
    @hohohohhoАй бұрын

    유튜버님은 마르크스-헤겔주의 같은 '역사철학'에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 @salm2000
    @salm2000Ай бұрын

    피셔 논란을 뒤집어 보면... 만약 영국 왕태자가 저렇게 죽었는데도 영국이 가만히 있겠음? 만약 러시아 황태자가 저렇게 죽었는데도 러시아가 가만히 있겠음? 만약 프랑스 대통령이 저렇게 죽었는데도 프랑스가 가만히 있겠음? 당시 상황으로는 전혀 아니라고 보여지는데요. 당시 국가들은 죄다 군비를 모으고 있었고, 어느 정도 전쟁 계획은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영국만 봐도, 식민지에서, 특히 인도에서 병력을 뽑아올 계획을 수립해 놓은 뒤였으니까요.

  • @user-fb5pi8mm8x
    @user-fb5pi8mm8xАй бұрын

    다륜건 몰라도 피셔가 굉장히 용감하다는건 알겠네요.

  • @Thoughtcrime.
    @Thoughtcrime.Ай бұрын

    독일은 반성했지만 독일 국민은 반성하지 않았죠 2차대전도 그러한데 1차대전은 오죽하겠습니까?

  • @303bren
    @303bren28 күн бұрын

    확실히 독빠들이 많긴 많다는걸 리플보면서 느낄수 있네요

  • @user-nl1me3uj1i
    @user-nl1me3uj1iАй бұрын

    피셔가 주장한 ‘의도성’은 지금 당장 우리 문제기도 합니다. 중국도 전쟁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거죠. 그럼 우리는 어떨까요?

  • @anidrummer8780
    @anidrummer8780Ай бұрын

    그럼 함께하는 세계사님도 자주 싸우는 편인가요?

  • @oceanblue4387
    @oceanblue4387Ай бұрын

    이번영상 보면서 느낀것이 ,,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혼란과 계급간의갈등 을 외부로 해소 하려한것이라는 피셔의 주장을 듣다보면 멀리갈것도 없이 ,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 , 근대화 에성공했다지만 , 역시 거의 흡사한 사회불안 , 경제문제 ,, 의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했던 왜넘들이 생각나고 , 영상뒤에 나오는 독일이 산업화에는 성공했지만 , 민주화는 이루지 못해서 황제와 전쟁위원회의 장군들이 전쟁을 원했다는데 ,, 나원 이거도 보자마다 드는 생각이 1차대전 승전국에 재빨리 붙어서 얻은 이익으로 경제호황을 누리며 사회적으로도 느스해진 분위기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 라고 일본스스로 자화자찬 하는 민주주의 같은 시기를 잠깐 누리다 바로 또 경제문제 및 1차대전 전승국 배분에서 차별받았다면서 분위기를 조성해서 바로 태평양전쟁으로 돌입하는 왜넘들이 거의 복사판이라 ,,,, 참 대단한 유사성이라 느낍니다. 괜히 일본 극우들이 아직도 도이치를 숭배하는게 아니네요

  • @user-wn5ct2ym8f

    @user-wn5ct2ym8f

    Ай бұрын

    모두가 결국 인간이라는 인식으로 바라보면 이해되는게 많습니다 ㅋ 같은 환경에 처하면 비슷한 결말로 가죠

  • @qkrtntjdalsrks
    @qkrtntjdalsrksАй бұрын

    8:25 진짜 상남자 모먼트네요 자신의 의견이 담긴 논문에 허점이 많아도 굴하지 않는 게 리스펙합니다

  • @user-tk5qp6ec6s
    @user-tk5qp6ec6sАй бұрын

    (1+R) = (1+r)(1+h)

  • @whowho1693
    @whowho169316 күн бұрын

    독일 오스트리아 통일을 주변 열강이 견제한 거를 독일이 맞다이로 응수했다는 해석은 맞는건가....흡사 프랑스 혁명 후 삼국 간섭 같은 게 생기자 프랑스는 누굴 내세웠지??? ㅋㅋㅋㅋㅋㅋ란 얘기를 하면 이것도 상당히 어그로가 먹나요?? ㅋㅋㅋㅋ 어쨌거나 상당히 여기도 복잡하구나 ㅎㄷㄷ

  • @homestead1862
    @homestead1862Ай бұрын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이나 제국주의에 대한 사과는 없는 것처럼 아직 세상은 강자의 편이고 억울하면 이겨라 라는 방식이 통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 @Thoughtcrime.

    @Thoughtcrime.

    Ай бұрын

    독일은 반성했지만 독일인들은 회피한거죠

  • @pillseung1804

    @pillseung1804

    Ай бұрын

    뭐 계속 반성하래, 계속 쳐맞기만한 국가의 국민 생각인가 신라도 고구려에 반성하라 그래, 중국 끌어들여 망하게 한죄

  • @kju42

    @kju42

    Ай бұрын

    1차대전의 원인에 대한 학계의 주류는 독일만의 책임이 아니라는게 중론! 오히려 양측다 비슷하게 책임이 있는 걸로 결론이 난 상태임. 따라서 굳이 사과할 게재가 아님

  • @mammoth1749

    @mammoth1749

    Ай бұрын

    지긋지긋한 래퍼토리임. 실제로는 박물관까지 만들어가며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음

  • @HoSangYun.

    @HoSangYun.

    Ай бұрын

    ​@@mammoth1749정확히 말하면 같은 대륙인 유럽과 쥬들에게만 사과를 하죠. 독일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만든 국가입니다. 사과해도 별 이득이 없는 아프리카에는 입 한 번 벙긋 안하는 것도 독일이죠. 물론 이건 영국과 프랑스, 심지어 우리나라도 해당되구요.

  • @hyunsanggwon
    @hyunsanggwonАй бұрын

    1975년에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1914 프로젝트라고 해서 1914년에 일어난 중요한 정책결정과정 시시각각 벌어지는 사건들 하루하루 중요한 정책 결정자들(각국의 수상이나 외무장관 왕들 귀족 군대 사령관 등등 ) 그들의 작은 일상(오스트리아 수상은 점심먹고 경마장 자주 갔다느니 평소에 취미가뭐였다 등등 ) 1914발발 전 어떤시기에 뭘 어떻게했는지 작은단서 하나까지도 다 찾아내서 압도적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모두 모아 실시하였고 역사학적 접근방법을 가장 확실하게 채택한 방식이라는 평가가있었습니다 그 결과만 봤어도 피셔논쟁까지 안나와도 될텐데 에초에 스탠포드대학에서 그연구를 하게된것도 결국 역사학계에서 1차대전이 왜 일어났는지 누가잘못한건지 모르겠다.. 상태로 역사학계의 난제상태로 남아 있던 상황이라 대규모 대학연구 프로젝트가 됬던게 기억나네요 여기댓글도 보면 2차대전은 확실한 독일의 책임이었지만 1차대전을 단지 독일만의 탓으로 결정짓는 몇몇분들을 보면 얼마나 식견이 짧은지 ...안타깝습니다 영국옥스포드 마가렛 맥밀런 교수가 영국의 내부의 방대한 외교관련 자료들만 가지고쓴 '파리: 1919 세계를바꾼 6개월'이나 '평화를 끝낸전쟁 1914로 가는길' 같은것만 봐도 영국이 1차대전 시기에 이런짓까지했을까 경악스러운 경우들도 많습니다 영국도 독일과의 전쟁을 바라던 미친놈들이 많았습니다 뭔가 크게 착각하시는분 많으신듯해요 결국엔 정답은 '누구하나의 탓이 아니다' 이고 이미 세계역사학계에선 더이상 1914의 원인이라는 망령을 다시는 안꺼내겟끔 관뚜껑에 못질까지했습니다 고대유물 피셔논쟁까지 갈필요도없음 미국스탠포드가 압도적인 예산으로 영국프랑스독일 러시아 모든 관련자료를 다모았습니다 거기서 이미 결과는 끝난거에요 피셔라는 단 한사람이 독일내에 접근가능한 소박한수준의 몇몇 자료들을 중심으로 근거를 도출한것보다 훨신 많은 인력과 학자들 예산이 들어간 역사학자료였죠 게다가 독일내의 역사학계에서도 금기가있는데 사실 2차대전 이전의 역사는 깊게 잘 안건드린다는점입니다 (패전국이라... 유럽통합주의 eu수장격이라서 분쟁의 소지가될까봐;;; ) 심지어 독일내에 가장존경하는인물에 1위 설문조사에서 콘라트 아데나워 .. 2차대전후 수상 ;; 거의 50위까지 19세기 사람이 좀처럼보이지않습니다 국민들도 금기하는 인물이 있죠 비스마르크도 금기시되고 프리드리히 대왕도 군국주의 시초라고 함부로 존경한다고 말도못합니다 그정도로 독일내부에서 고요한 역사학계였는데 그런데 피셔가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져본거죠 그러니 독일사학계에서도 짜증나서 다들 일어서서 개싸움이된거고 그래서 미국이 이 관련 역사를 제대로 집중해서 파본것입니다

  • @jks9110
    @jks9110Ай бұрын

    독일의 일부 역사학자는 그래도 용기가 있었네.. 반면에 일본은 좌파계열 학자들조차 일본의 전쟁 책임을 꺼내기도 힘들어서 그냥 회피만 하던데...ㅠㅠ

  • @geiej

    @geiej

    Ай бұрын

    일본 좌파는 적군파와 후쿠시마로 망한지 오래

  • @SeoulClass
    @SeoulClassАй бұрын

    만약 독일제국이 1차세계 대전을 안일으키고 계속 유지했다면 오늘날 독일의 역사가 달라졌을려나???

  • @hyunsanggwon

    @hyunsanggwon

    Ай бұрын

    제가볼땐 어찌됫건 1차대전은 식민지 쟁탈 독일 3b 영국 3c정책같은것들이 나와서 점점 세계의 판로를 확장하려는 대립이 계속될거고 2차대전직전 지구에서 모든땅을 다먹은 열강들이 식민지들을 자국 독점 시장권 자국 통화권으로 만들고 자원을 무기로 쓰는 과정까지 당연히 일어나는 수순으로 본다면 전쟁이 한번 일어나긴 했을것이고 불가피했을것임 일본도 석유나 원자재 수입금지당하니 미국 친거고 독일도 시장 넓히려고 해군증강한거고 if는 없지만 반드시 제국주의는 후발주자의 불만에의해 일어날 전쟁임 영국 프랑스가 사이좋게 나눠줫으면 전쟁은 안터졋다고 하지만 그것도 문제가 인간은 공정경쟁보다 관세나 독점무역권 같은걸로 쉽게 경쟁에서 우위가 되는걸 더 좋아함 모두가 자유무역을 갈구하다가 서로가 보호무역 들어가면서 전쟁이 터지는계기가 되는... 지금도 점점 보호무역으로 극에 치닫고 모든 유럽국가나 아시아국가들 재무장하고있죠 에초에 인터네셔날에서 네셔날로 바뀌는흐름에 전쟁이 터지는듯함

  • @user-wn5ct2ym8f

    @user-wn5ct2ym8f

    Ай бұрын

    전쟁은 무조건 났을거라 결말은 비슷했을듯 ㅋ

  • @Impossibility_Theorem
    @Impossibility_TheoremАй бұрын

    개재밌네 진짜

  • @kunufelix
    @kunufelixАй бұрын

    루즈벨트가 일부러 진주만 공습을 유도했다는 설도 믿는 일본인도 많은 세상에 독일이 1차 대전에 불가역적으로 끌려들어갔다고 믿는 독일인이 있는게 뭔 대수겠냐

  • @동결
    @동결Ай бұрын

    피셔라는 이름에 뭐가 있나 다 대단하네

  • @user-kh8ul5xo3l
    @user-kh8ul5xo3lАй бұрын

    한국으로 치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한국의 잘못이다라고 얘기한 꼴이었군요. 마치 반일민족주의 책이 발간되어 어마하게 어그로가 끌렸던 것처럼.

  • @303bren

    @303bren

    28 күн бұрын

    그보다는 일제 침략이 한국이 못나서가 아니라 일본이 다년간 준비해둔 짓거리였다고 일본 학계에다 폭탄 던진격이죠

  • @Tenma_Gabriel_White
    @Tenma_Gabriel_WhiteАй бұрын

    독일이 의도했던 아니던 전쟁을 준비했던건 사실이며 독일과 협상국 때문에 애꿎은 오스트리아 랑 오스만만 갈갈이 찢기고 말았다 협상국 용서할수 없어요

  • @Replica0192

    @Replica0192

    Ай бұрын

    뭐가 애꿎은 오스트리아 오스만임 걔네부터가 먼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던 애들은 아닌데 ㅋㅋㅋ

  • @canetti9651
    @canetti9651Ай бұрын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패권 경쟁이 전쟁의 원인데 영국 프랑스는 책임이 없냐? 제국주의 후손들은 조상이 안 부끄럽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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