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 근데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

다음은 원철스님의 책 『아주 오래된 시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에 나오는 ‘남의 잘못에는 추상 같지만, 자기 허물에는 관대했다’라는 글 전문입니다.
견추호지말자(見秋毫之末者) 부자견기첩(不自見其睫)
거천균지중자(擧千鈞之重者) 부자거기신(不自擧其身)
작은 털끝까지 본다는 이도 자기 눈썹은 보지 못하며
천근의 무게를 든다는 이도 자기 몸은 들지 못하는구나
시만으로는 의사 전달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까 “이는 마치 수행자가 다른 사람을 책망하는 것은 분명히 하면서도(猶學者明於責人) 자기를 용서하는 관대함과 조금도 차이를 두지 않았다(昧於恕己者 不少異也)”라는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다.
이 선시는 불안 청원(佛眼淸遠·1067~1120)이 고암(高庵)에게 일러준 것으로 『동어서화(東語西話)』에 실려 있다. 『동어서화』는 천목중봉(天目中峰·1243~1323) 선사의 『광록(廣錄)』 30권 가운데 18·19·20권에 해당된다. 『천목중봉화상광록』은 중봉 선사 열반 후 제자인 북정 자적(北庭慈寂)의 노력에 의하여 1334년 입장(入藏·대장경에 편입됨)될 만큼 원나라 시대의 참선 공부인을 위한 중요 지침서로 대접받았다.
천목중봉은 절강(저장浙江)성 항주(항저우杭州) 전당(錢塘) 출신이다. 천목산(天目山)에서 수행하던 고봉 원묘(高峰原妙, 1238-1295)의 법을 이었으며 이후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않고 수행 삼아 산천과 마을을 찾아 행각했다. 경론과 선어록에도 해박했고 제자백가는 물론 시와 부(賦)에도 뛰어났다. 이 모든 것을 선(禪)으로 귀결시키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지라 당시 사람들에게 ‘강남고불(江南古佛)’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이 선시는 청원 스님이 고암 스님을 만나면서 남긴 인물 관전평이다. 서양 종교의 말을 빌자면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 티끌을 탓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의 잘못에는 추상 같았으나 자기 허물에는 참으로 너그러운 모습을 보다 못해(한두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아한 시문 형식을 빌어 에둘러 한마디 보탠 것이다. 직설적인 표현은 결국 말싸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너무 간접적인 비유를 동원한 탓에 혹여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봐 사족 같은 해설까지 붙여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의 이해를 도왔다. 또 다른 자비심이다. 하긴 이런 경우가 어디 이 두 사람에게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그리고 또 어찌 그 시절뿐이었겠는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사자성어를 만들 만큼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유식학(唯識學)은 ‘내로남불’을 이기심의 극치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이런 이기심을 일으키는 마음바탕인 ‘제7식(第七識)’(숫자로 표시하는 것 역시 가치 중립적이다)을 어감이 별로 좋지 않은 ‘이기식(利己識)’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음역(音譯)한 인도식 언어인 ‘말나식(末那識)’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어찌 보면 또 다른 ‘중국식’ 자비심이라 하겠다.
어쨌거나 이것은 자기를 늘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 영역을 가르킨다. 자기 사랑이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되거나 양이 과도하면 상대에 대한 적대감 혹은 지나친 차별심으로 인하여 스스로를 어리석게 만들고(我癡) 일방적 자기 주장만 앞세우게 되며(我見) 알 수 없는 자신감 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我慢)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과도한 자기집착(我愛)을 만드는 네가지 번뇌와 연결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까지 뇌고(腦苦)롭게 만든다. 어쨌거나 번뇌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 ‘내로남불’의 사례가 주는 대중적 교훈성을 일찍이 간파한 중봉 선사는 후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의미에서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중봉 선사의 별명은 ‘강남고불’이다. 활동 지역이 양자강 하류 남쪽 지방인 항주·소주(쑤저우蘇州)로 대표되는 절강성이기 때문이다. 고봉원묘 선사를 만난 천목산 역시 절강성에 위치하고 있다.
‘고불’은 조주 선사가 원조이다. 조주(778~897) 선사는 말로 하기 어려운 선(禪)을 언어로 잘 표현하여 후학들에게 전달했다. 그 세월이 40년이다. 게다가 120살까지 장수했다. 그래서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고 불렀다. 활동 무대였던 조주의 동관음원(東觀音院) 위치는 하북(허베이河北)성 서쪽이다. 중원에서 본다면 북쪽 지방인데 현재 만리장성과 북경이 위치한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강북고불’인 셈이다.
조주 선사는 언어로 자상하게 선을 잘 설명했고, 중봉 선사는 종횡무진의 글 솜씨로 『동어서화』, 『산방야화(山房夜話)』 등의 저술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참선 공부인을 독려하고 또 경책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고불’은 두 선사의 자비심을 칭송하는 뜻에서 후인들이 붙여준 애칭인 셈이다.
◎◎◎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영화 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이러한 글귀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원철스님 #신형철 #천목중봉 #내로남불 #조주스님 #정확한사랑의실험

Пікірлер: 23

  • @user-cj7yt4zf1y
    @user-cj7yt4zf1y2 ай бұрын

    공주출생🙏🙏🙏

  • @monkwonje

    @monkwonje

    2 ай бұрын

    넵 박찬호 옆집에서 태어났다고 뻥치고 다닙니다. ^^

  • @andro273

    @andro273

    2 ай бұрын

    ~~^ 저는 압독국 출생인데 원효대사 태어난 곳이라고 크게 광고 방송하며 성인상에 무임승차 스윽~ 합니다.^

  • @user-cj8wc3zn9i
    @user-cj8wc3zn9i2 ай бұрын

    내 허물 보기를 먼저하고, 내 마음 살피기에 앞장서며.. 선사 스님들의 말씀이 짧지만 큰 울림으로 오는것 같습니다.. 일체유심조⭐️ 어쩜.. 삶이 무상하여.. 나로서 잘 익어가기에도 그리 한가롭지 않다 싶으기도 하고.. 곧장으로 나라는 대상을 잘 관조하며 차곡차곡 눈앞의 ‘나’로서 잘 흘러가 보겠습니다.. 분별을 거두면 비춰진 모습 그대로 지혜가 드러나.. 마음이 알아서 나를 쓴다고 여기게 되고요.. 스님~ 날마다 좋은 날❤️ 오늘도 감사인사 올려 드리며, 늘~ 평온하신 날 되셔요^^ 😊🙏🌻

  • @user-ub2ho5zv8x
    @user-ub2ho5zv8x2 ай бұрын

    고맙습니다 🍒원제 스님 🙏💗

  • @whitelotus12
    @whitelotus122 ай бұрын

    원제 스님 넘 귀여우세요! 그 대답도 조주 스님께서 하신 대답 맞죠?😄 얼핏 기억에.... 제자가 스님께 물었다.(제자는 아닐지도) 무엇이 부처입니까? 조주 스님 이르시기를, "바로 그거다." 🙏🙏🙏 그것이라니....😅😁😄 고맙습니다! 🙏🙏🙏

  • @moowesung
    @moowesung2 ай бұрын

    스님 특별한 오늘 감사합니다.🙏🙏🙏

  • @skysong9588
    @skysong95882 ай бұрын

    스님 제목이 넘 멋집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 @user-ou4fx4ig5e
    @user-ou4fx4ig5e2 ай бұрын

    🎉원제스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

  • @_laon
    @_laon2 ай бұрын

    오랫만에 낙가암 영상을 보게되어 반갑습니다. 건강이 좋아졌다는 신호로 여겨져 더욱 좋습니다. 감이 먹고 싶으면 나무 아래 입 벌리고 앉아 있지 않고 행동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념하셨습니다 🙏

  • @skysong9588
    @skysong95882 ай бұрын

    어렵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user-es6ew8sp7l
    @user-es6ew8sp7l2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 @user-ey9un1uk3r
    @user-ey9un1uk3r2 ай бұрын

    스님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 @mkseo9778
    @mkseo97782 ай бұрын

    영상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고 소중하게 감상하겠습니다🙏💕 생축생축생축😂🎉❤🎂

  • @andro273
    @andro2732 ай бұрын

    🎉🎉🎉~~ 낙가암에서의 설법으로 아침을 열어주시네요~ 조금씩 회복되어 가신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좀더 빠른 속도로 쾌차하셨으면 합니다. 🎉🎉(생신)🎉 🎉🎉🎉🎉🎉 나의 세상 나 중심(실체) 아취 아만의 집착에서 빠져나와 훌~훌~ 건강하게 자유롭게 흐르는 법문입니다. ~ ~ 아껴주면(자유인) 그 뿐...🎵 ⬇️ ㆍ ㆍ 떠오르는 (눈 뜨고 눈 맞추는ㅡ계합) 시간! 이 순간 입니다. 마음에서~~ 🙏🙏🙏

  • @user-tt8gb2lu1j
    @user-tt8gb2lu1j2 ай бұрын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 @mkseo9778
    @mkseo97782 ай бұрын

    이영애 배우의 너나 잘하세요 라는 대사가 떠오르네요 적어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나무라는 일은 없어야겠죠 ☺️ 나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엄격한 찌질이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며 살겠습니다 잘봤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

  • @user-hm7zp2lm7b
    @user-hm7zp2lm7b2 ай бұрын

    🙏🙏🙏 ❤ 감사합니다

  • @user-pi5ue5zr2p
    @user-pi5ue5zr2p2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 @whitelotus12
    @whitelotus122 ай бұрын

    😃😅🙏 귀 쫑긋!🙏

  • @user-tf5hz1en9x
    @user-tf5hz1en9x2 ай бұрын

    감사 합니다.

  • @user-pd8vh2wo2v
    @user-pd8vh2wo2v2 ай бұрын

    🙏 🙏 🙏

  • @user-gf6kk6hw6o
    @user-gf6kk6hw6o2 ай бұрын

    "照顧脚下"와 "계세요. 제가 갈께요"가 떠오르는 법문입니다.👍 잘 실천하겠습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원제스님! 이(是) 곳으로 와(我)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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