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이 10분 간 혼신의 힘으로 복음을 전해봤습니다. 과연 비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은?ㅣ홀리컴뱃 EP.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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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266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BGM을 대부분 빼고 재업했습니다. 그 외 재업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커뮤니티탭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중한 댓글들이 날아가게 되어 죄송합니다. 엠마오님의 복음 설명을 풀버전으로 듣고 싶으시다면? (23분만에 듣는 복음) kzread.info/dash/bejne/iGWf2tZraKS8ZbA.html (BGM) 잔치공동체 - 하늘이 열리고 kzread.info/dash/bejne/f5yhupV-YcarnJs.html

  • @tkfrhtlvdjwuTdmaus
    @tkfrhtlvdjwuTdmaus Жыл бұрын

    저는 아델포스님 말씀을 제일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안티크리스천이었다가 크리스천이 된 입장으로서 아델포스님의 말씀이 가장 와닿았네요. 복음은.. 논리적으로 싸우고 내말이 맞으니 너 믿어라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분이다. 그러니 너도 하나님 믿어.라고 한다고 역시 믿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예를들어 내 친구 한명에 대해 친구에게 얘기하면서 얘는 이런 점이 좋고 저런 점이 좋고 참 완벽하더라 내가 힘들다하면 위로도 잘해주더라 자 너도 이제 걔가 좋아졌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서로가 직접만나 교제해야하는것이죠. 누군가의 논증도 간증도 제 믿음을 생기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두 가지 다 필요하지만요.) 아델포스님의 말씀대로 의심하고 미워하고 다 해보는것이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고 그 분과 교제할 수 있게 되는겁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있다는 확신 자체가 없는데 내가 이것에 시간을 써야한다는 자체가 싫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지적으로 탐구했는데 결국 내게 믿음이 생기지않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로 택정하신게 아니라면? 그분의 계획속에 내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델포스님의 말씀대로 실컷 미워하시고 충분히 의심하세요. 의심한만큼 더 알고자하게되고 미워한만큼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되더이다. 하나님은 그 시간들까지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없으신가요? 당신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복음이 당신에게 들어갔다는 자체가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모든 비그리스도인분들이 그 분을 더 알아가시고 더 나아가 그 분과 교제하시고 동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델포스님 정말 멋지시고 잘하셨다고 말씀드리고싶네요. 한때 비신자였던 입장으로서 그때의 저라면 가장 귀기울였을만한 고귀한 의견이셨습니다.

  • @user-jw3oo6hp9s

    @user-jw3oo6hp9s

    Жыл бұрын

    그렇죠 아예 무관심은 답이 없습니다 의심하고 미워하는것도 역설적으론 관심의 표현이니까요 이 또한 나를 찾고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라란 말씀에 부합하는것이죠

  • @Doubting.Thomas
    @Doubting.Thomas Жыл бұрын

    의심많은도마입니다. 영상이 재업로드되어 다시 댓글 적습니다ㅠ 4라운드에서 탈락한 후 못내 아쉬움이 있었지만, 당시 현장에서 양시무스,조슈아,아델포스님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들으며 그런 개인적인 아쉬움이 싹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번 라운드를 위해 홀리컴뱃이 기획되지 않았나하는 생각마저도 들었습니다. 아울러 차목사님이 깜짝 말씀도 정말 참 좋았고요. 다메섹님과 홀리컴뱃 기획팀, 세 명의 사역자분, 그리고 차목사님께도 응원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의심많은도마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함께할 날들을 기대합니다.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수고하셨습니다 ㅋㅋㅋㅋ

  • @user-gz1hf3wq8u

    @user-gz1hf3wq8u

    Жыл бұрын

    차목사님 점수도 궁금하네요ㅎ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전해졌을지 ㅋ

  • @porvlr1243
    @porvlr1243 Жыл бұрын

    양시무스의 리차드 도킨슨 얘기부터 실존주의 얘기, 삶의 목적이 없는 삶에서 있는 삶으로가자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저 3분에게는 감동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저라는 한 사람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Ddimmu
    @Ddimmu Жыл бұрын

    비신자 입장인 저는 아델포스님과 엠마오님의 말이 살면서 지금껏 들어본 크리스천의 선교중에 가장 와닿았습니다. 교회도 나가보고 여러 크리스천에게 의견을 물어보고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되지않는부분들이 많았었는데, 홀리컴뱃을 쭉 보고나니 그동안 크리스천들에 가졌던 일종의 선입견이 부셔지는 느낌입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홀리컴뱃의 순기능에 대해 드러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jokerking0100

    @jokerking0100

    Жыл бұрын

    완전 공감합니다 ㄷㄷㄷ

  • @profilexxx253
    @profilexxx253 Жыл бұрын

    저는 참가자 세 분 중에서는 아델포스님의 복음이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네요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의견 감사합니다~

  • @suyeolTV
    @suyeolTV Жыл бұрын

    저는 이미 그리스도인이지만, 복음은 논리가 아니라 스토리라는 아델포스님의 말과 그분의 이야기에 제일 빨려 들어가고 마음이 가장 움직였습니다. 저도 성경과 저와 타인의 삶을 재미있고 감동 있게 이야기로 엮어서 전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Toymongmongs
    @Toymongmongs Жыл бұрын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복음의 ㅂ자도 벌벌떨고 가족에게조차도 전하지 못하는 제모습이 초라해집니다. 너무나 귀히쓰시는 목회자분들이 될꺼라 기대되고 기대됩니다

  • @highingi
    @highingi Жыл бұрын

    아델포스님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홀리컴벳 제작진분들 참가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user-ji5jh2xw6u
    @user-ji5jh2xw6u Жыл бұрын

    조슈아님 복음듣고 눈물이 벅차올랐네요ㅠ 감사합니다

  • @user-ji5jh2xw6u

    @user-ji5jh2xw6u

    Жыл бұрын

    아델포스님 거 듣고는 박수가 나왔네요 👏

  • @user-bo9pe2ro6f
    @user-bo9pe2ro6f Жыл бұрын

    보다 눈물 흘렸습니다....

  • @hyungsubkim5033
    @hyungsubkim503312 күн бұрын

    엠마오님의 행복에 관한 질문과 생각이 참 은혜가 됩니다. 참 복음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어서 감사드려요~

  • @user-ss2xp1xr8u
    @user-ss2xp1xr8u Жыл бұрын

    11:30 조슈아님 보이스톤, 눈빛, 발성, 음색, 그리고 표정 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너무 완벽합니다. 말의 속도, 발음 정확도 도 너무 좋아서 더 집중하게되네요 조슈아님 이야기 더듣고싶은데 생각보다 빨리 이야기를 마무리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결승전에 진출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다음주 기대됩니다. 😊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정말 대단하시죠 ㅎㅎ

  • @nina726ify

    @nina726ify

    9 ай бұрын

    저두요, 거장?이 되리라는 기대가 됩니다.

  • @TV-fe5pw
    @TV-fe5pw Жыл бұрын

    어제 몸쌀감기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영상이 떠서 비몽사몽 상태에서 한번 듣고 오늘 다시 자세히 들어봅니다. 참가자 여러분 그리고 스텝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델포스님의“ 복음은 스토리다” 이말에 좋아요 누릅니다.❤

  • @울산부동산재테크
    @울산부동산재테크 Жыл бұрын

    아델포스님 얘기들으니까 집중이 확되었어요

  • @user-tm5sm4bi1w
    @user-tm5sm4bi1w Жыл бұрын

    저도 가슴이 막 뜨거워집니다.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

  • @peace_worship
    @peace_worship Жыл бұрын

    지금껏 댓글 없이 꾸준히 영상을 보며, 멀리서 응원하고 기도했던 목회자입니다^^ 이번 편을 보며 가슴 뜨거워졌습니다. 기획, 준비, 실행하는 모든 순간 어려움도 있으셨겠지만, 그런 수고를 통해 한 영혼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그 어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귀한 일들이 일어나 너무 감사하네요.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있기를, 또 귀한 컨텐츠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복음을 알고, 깨닫고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 @Coram-Deo531
    @Coram-Deo531 Жыл бұрын

    1화부터 너무 재밌게보고있었는데 이번화는 역대급이네요 !! 안믿는 친구들에게 다 보여줄려구요. 이걸보는 모든 비신자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PASTOR.JOSHUA
    @PASTOR.JOSHUA Жыл бұрын

    정말 다들 너무 훌륭하세요!!! 큰 감동,교훈,지혜, 감사합니다!! 섬기신 모든 분들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 @finalfestival4673
    @finalfestival46738 ай бұрын

    아름다운 취지, 멋진 기획....... 도전도 많이 받고, 참으로 좋습니다!!!

  • @user-ox7kl4gn8z
    @user-ox7kl4gn8z Жыл бұрын

    아하~~ 그랬군요ㅋ 열정적으로 임해주신 참가자분들 제작진분들 감사드립니다^^ 오랜동안 함께하니 모두다 연예인분들 같습니다🤣 가장기본적인 복음을 세분들 특성에 맞게 잘전달해주셔서 참좋았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문화의 장이 계속열려지길을 바래보며 모두다 수고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 @jinsong3773
    @jinsong3773 Жыл бұрын

    갑자기 비신자분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하는순간이 있더라고요 유익했습니다

  • @ucreeda
    @ucreeda9 ай бұрын

    너무너무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poby4501
    @poby4501 Жыл бұрын

    네분 모두 너무 멋지십니다 울컥하네요^^

  • @user-xt5ke9dx2p
    @user-xt5ke9dx2p Жыл бұрын

    너무 감동적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 모습들.. 기분 좋은 눈물 흘렸습니다😂

  • @user-wr4tz3lt3y
    @user-wr4tz3lt3y Жыл бұрын

    아델포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제가 진짜 하나님을 믿게 된 순간을 생각을 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멘 ㅜㅜ

  • @user-mf4rd6oh8g
    @user-mf4rd6oh8g Жыл бұрын

    그저 감사합니다...

  • @jhk3069
    @jhk3069 Жыл бұрын

    최고입니다... 이번화를 위한 빌드업이라는 말에 참 공감합니다

  • @KJS2
    @KJS2 Жыл бұрын

    감동이었슴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다시 올리면서도 감동입니다

  • @ylogicmachine6812
    @ylogicmachine6812 Жыл бұрын

    좋다 진짜

  • @theology153
    @theology153 Жыл бұрын

    이번 회차도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기독교 변증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할 때는 다른 언어로 다가야 하니.. (저는 "과학과 신학"에 대해 특강을 할 때에도 즐겁지만, 부흥회나 수련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더욱 행복하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것을 변증하는 이성적 능력이 겸비될 때 최고의 전도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에피소드는 참 신선했습니다. 기획력이 대단하신 듯^^

  • @raynoh7351
    @raynoh7351 Жыл бұрын

    세 분의 복음이야기 모두모두 좋았지만,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이 많은 저로서는 아델포스 님 복음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네요!! 저와 같이 의심의 씨름을 겪는 모든 분들이, 씨름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풍성히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sio20403
    @sio20403 Жыл бұрын

    와! 감동인데요? 왜 감동인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이유는..ㅎㅎ

  • @child00
    @child00 Жыл бұрын

    대림절을 맞이하며 복음을 생각해 보는데, 우리가 그분의 초림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그분의 부활. 이 모든 것이 왜 사랑으로 귀결되는지. 결국 복음이 무엇인지 묵상해봅니다. 각 네분의 스토리를 들으며 마음이 차가워지기도 뜨거워지기도 갈증과 넘침등 다양한 결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워낙 다양하게 표현하시기에 그 모든 걸 다 알 수 없지만, 모두가 하나님과 만나 하나님의 이야기에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미 택하셨고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어!!

  • @user-be9fn8hs9w
    @user-be9fn8hs9w Жыл бұрын

    각 스피치 분들의 설명이 개별 클립으로 영상 올라와도 좋겠네요~ 엠마오님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악함과 죽음에 대한 답을 들어볼 수 있었겠죠?ㅎㅎ

  • @user-jh5oq5hs2n
    @user-jh5oq5hs2n Жыл бұрын

    저는 조슈아님의 이야기가 가장 맘에 와닿았어요!!! 저도 나중에 그렇게 전도하고 싶더라고요~

  • @user-gs8tl3me3l
    @user-gs8tl3me3l Жыл бұрын

    아들이 추천하여 알게 된 유튜브에서 듣게된 목사님들의 설교?! 한국 기독교 미래와 소망을 보게 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영상 기대합니다

  • @rkdgmldnjs57
    @rkdgmldnjs57 Жыл бұрын

    전공시험 3시간 전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

  • @jinjin7889
    @jinjin7889 Жыл бұрын

    횟차가 갈수록 재밌어서지고 감정의 울림이 커지게 되는 영상은 오랜만이네요ㅋㅋ 제가 크리스천이어서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번화는 진지하게 영화보듯 집중해서 봤고 여러번 봤어요. 저는 양시무스님의 내용이 가장 시원했던거 같아요. 영상 만드시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khj3840
    @khj3840 Жыл бұрын

    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user-uw3gt5gi1n
    @user-uw3gt5gi1n Жыл бұрын

    혹시 한분씩 쇼츠로 만들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님 짧은 동영상이라도? 많이 도전받고 감사해요.

  • @달냇
    @달냇 Жыл бұрын

    진짜 이번 5라운드가 이번 홀리컴뱃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기획하신 분들을 칭찬하고 싶네요. 저는 아델포스님의 전달법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엠마오님의 접근법도 무척 좋았습니다만 복음은 이제 그 답 파트가 무엇인지라고 생각해서, 비록 시간 제약이 있지만 그 악함과 죽음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를 짤막하게라도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복음 전달 이전의 빌드업으로서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재업 전 8화를 보진 못했지만 이번에 bgm 같이 들으면서 봤는데 참 좋더군요. bgm 빼기 전의 영상도 궁금하네요.

  • @gwlee4151
    @gwlee41515 ай бұрын

    복음은 너무좋다. 하지만 교회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죠 세상속에서 위로받고 교회에서 상처받는것이 현실이죠.

  • @isaacstars
    @isaacstars Жыл бұрын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씀으로 비그리스도인 분들께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던 것에 진심으로 큰 감사드립니다! 또 혹여 제 말이나 행동이 너무 가볍거나 도가 지나쳐 보이신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특히 이번 화는 제가 좀 정신 없어 보이네요🥲) 그래도, 제 메시지의 진심만은 기억해주시고 언젠가 제 내용이 여러분의 마음과 기억 가운데 위로와 기쁨의 복음으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하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홀리컴뱃! 끝까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조슈아님 화이팅입니다 ㅋㅋㅋㅋ

  • @user-ss2xp1xr8u

    @user-ss2xp1xr8u

    Жыл бұрын

    이번화에서 조슈아님 말하는거 너무좋았는데 시간이 짧아서 살짝 아쉬웠어요. 결승전 기대하겠습니다.

  • @user-gh5hc5fv2h
    @user-gh5hc5fv2h Жыл бұрын

    전 양시무스님의 접근법이 좋았어요. 비신자들은 신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구나 과학 그 너머의 영혼적, 영원적 가치를 추구하잖아요. 모순이죠. 좀 더 디테일하게 풀어낼 수 있으면 아름다운 설교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 @karisacademy
    @karisacademy Жыл бұрын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복음은 날 것으로 섭취를 해야 제 맛입니다.

  • @Billionaire--
    @Billionaire--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혹시 영상과 관련 없는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다마섹님이 미국에 거주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미국 교회 중에 설교 말씀을 듣고 싶은데 유튜브로 찾아볼 수 있는 교회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저도 많이 알진 못하지만, 리디머교회, 힐송교회 추천합니다.

  • @Billionaire--

    @Billionaire--

    Жыл бұрын

    @@DamascusLiveTV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user-asdfkkwoeooeek
    @user-asdfkkwoeooeek2 ай бұрын

    믿게 하신 그 은혜에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 @chosy10101
    @chosy10101 Жыл бұрын

    사실 복음은 행복을 위한게 아니자나요

  • @agsheuehd
    @agsheuehd Жыл бұрын

    비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인은 아닌 사람인데, 저는 두번째 분 복음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반응이 신기하네요

  • @user-jv7ft8jw9e
    @user-jv7ft8jw9e Жыл бұрын

    목사님들이 굉장히 젊으시네요~

  • @user-so3dd3dg3b
    @user-so3dd3dg3b Жыл бұрын

    전도용으로 공유한후 하나님 더 잘 알고싶은 마음든다고 하는 영상입니다~~♡

  • @user-xt7kj2bv3x
    @user-xt7kj2bv3x5 ай бұрын

    삼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설교나, 성경적 논리나, 학술적 토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오거스틴, 칼빈을 동원한 지식의 향연으로 접근해서 성공적으로 복음이 전달될 수 있을까요? 사영리나 다리예화를 멋지게 설명하면 들은 그 사람은 감동, 동의를 해야 합니까? 참된 변증은 이런 화려하고 이해되지 않는 말잔치가 아니라, 내가 신뢰하는 변함없는 진정한 기독교 전제에 기초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쩔어있는 불신자에게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뭔가를 보여줄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복음으로의 초대가 아닐까요?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세상과는 다른 거룩한 삶을 살 때 세상은 그 사람이 가진 그 소망의 이유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더러는 비웃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긍금증으로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 @user-dp2mw5qv1t
    @user-dp2mw5qv1t Жыл бұрын

    대애애애애박

  • @llilililililillil
    @llilililililillil Жыл бұрын

    25:57

  • @JY-lc5vz
    @JY-lc5vz Жыл бұрын

    계속 아델포스님 복음이 생각나서 옵니다! 15:01

  • @jc207
    @jc207 Жыл бұрын

    조슈아님이 저도 제일 좋았고, 그보다 엠마오님이 좋았습니다. ^^ 그리고 의심많은도마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nina726ify

    @nina726ify

    9 ай бұрын

    저두요.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양시무스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좋아요 눌러주세요!ㅋㅋㅋㅋ

  • @Doubting.Thomas

    @Doubting.Thomas

    Жыл бұрын

    김관성 목사님: 마! 점마는 와 랩을 하노!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Doubting.Thomas ㅋㅋㅋㅋㅋㅋㅋ

  • @user-gz1hf3wq8u

    @user-gz1hf3wq8u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론 가장 설득력 있게 들었는데, 점수가 낮은 것을 보고 충격이었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 복음을 전할 때에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처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는 복음 전파가 되길 기도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고생하셨어요!

  • @fake3k39r

    @fake3k39r

    Жыл бұрын

    잘생겨서 좋아보인다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fake3k39r 핵심을 짚으셨군요

  • @shp6077
    @shp6077 Жыл бұрын

    16:25, 20:38, 21:17, 23:15

  • @jrbrandon7127
    @jrbrandon71272 ай бұрын

    아델포스 굿

  • @user-cm2ww4rv6o
    @user-cm2ww4rv6o Жыл бұрын

    솔직히 홀리컴뱃 보면서 복음을 내세웠지만 결국 세상 프로그램 같은 소위 인기끌기 위한 "쇼"쟈나 했는데(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동없지만...)이번 라운드 만큼은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었든간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 그 복음이 나눠지는 순간인듯 해서 감사히 편견없이 청취했습니다!!!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복음 전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도 끌면 더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렇게 오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gh5hc5fv2h
    @user-gh5hc5fv2h Жыл бұрын

    신이 없다면.. 그분의 약속이 없다면.. 왜때문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비신자분들의 생각을 알고싶습니다. (모태신앙인지라 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아본 적이 없어서요) 답정너처럼 물어본 것 같아서 추가로 적습니다. 죽기전까진 행복감을 누리기 위해서라든지, 누군가를 지켜주고싶다든지, 후세에 지혜를 남기고 싶어서라든지... 삶의 이유나 동력이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 @user-ux3yz1yn4e

    @user-ux3yz1yn4e

    Жыл бұрын

    전 가족이었어요. 부모님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고 살고 싶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혼란스러워졌었습니다. 오랜시간 방황한 끝에 오래전에 포기한 신이 제게 손을 내밀어 주시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부터 신을 찾게 되었습니다.

  • @user-me8mv6gx3z

    @user-me8mv6gx3z

    10 ай бұрын

    저도 이게 너무 궁금했어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신의 부재를 상상 못하겠어요 만약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두려움과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을 것 같아서.. 다른 의미로 비신자들이 굉장하다고까지 여겨져요.. 예수 없이 신의 부재의 상태에서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지

  • @user-sf5yb8ds5i
    @user-sf5yb8ds5i Жыл бұрын

    아델포스님의 영상 또는 개인유튜브 있나요?

  • @DamascusLiveTV

    @DamascusLiveTV

    Жыл бұрын

    개인 유튜브는 없지만 이츠학 아카데미라는 채널에서 교리컴뱃이라는 컨텐츠를 부탁받으신 것 같습니다. 한번 확인해보세요.

  • @kabetaa
    @kabetaaАй бұрын

    불신자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 해야하는 것은 예수가 역사 속의 실존인물이라는 것, 2024년이라는 역사의 기준점이 왜 평범한 목수였던 이스라엘 30대 한 청년의 탄생으로부터 였을까에 대한 사실을 상고해보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장 신뢰할만한 고대 문서라는 사실도 일깨워주어야겠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특히 '부활 사건'이 절대 믿을 수 없는 것인데 목격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 그 목격자들이 이 사실에 전부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 요나의 표적, 부활의 표적밖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존을 확증할 방법이 없겠죠. 역사에, 지구에 창조주가 왔다가시다니...!!!

  • @user-sb6mc3nz9w
    @user-sb6mc3nz9w Жыл бұрын

    양시무스님 아쉬웠던게 비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존재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그냥 인간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존재하고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는걸 전제하고 말하는것 같은 느낌이들어서 괴리감이 생겼어요

  • @user-mx9io2kz1o
    @user-mx9io2kz1o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전도는 단순히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어두운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그를 사로잡고 있는 어두운 악령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파하고 건저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70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악령을 제압하는 능력을 주셨고 그 제자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고 하늘의 능력과 권세로 무장시킨 것입니다 전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 때문에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역의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설득의 말은 그 능력이 흘러가는 도구일뿐입니다 기도하기를 멈추는 사람은 사역을 포기해야 합니다 혹은 타인이 사역자를 위해 기도를 해주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불신자들이 영적으로 어두운영들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증명하는 일을 말하여 왜?그렇게 되었고 그 상태의 결과는 어떻게 되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해야되는 지? 그 부분을 말하겠습니다 왜냐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태나 현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보이는 물리적인 현상이나 혹은 심리적인 현상으로 들어나는 일이 많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 일이 왜?생겨나는 지?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담은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쳐 둔체 즉 성령과 기도를 제쳐둔체 그냥 인간적인 실력으로 해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user-mx9io2kz1o

    @user-mx9io2kz1o

    Жыл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중도이지만 요즘은 비교적으로 보수가 진보보단 더 국가에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보수가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

  • @user-mx9io2kz1o

    @user-mx9io2kz1o

    Жыл бұрын

    참고로 방언은 영적인 일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양궁선수들이 자신의 주특기인 활쏘는 것과 별개로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왜냐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지 자신의 주 특기인 활 쏘는 것을 잘 할수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이렇게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과 올바른 상태로 회복할수있도로 회복시켜주고 또 그 상태를 강하게 해줍니다 자신의 영적인 체력을 회복 튼튼하게 해주죠 그러나 자신의 앎과 의지로써 그 상태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태와 견고함이 무너질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을 자신의 앎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의지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앎과 인식만이 다가 아닙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알고 있어도 마음이 아는 것만큼 먹어지지 않거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 처럼 마음이 먹어질려면 방언 같은 기도도 필요하고 단순히 방언만 있고 아는 것이 없으면 이것도 문제입니다 자신이 앎으로 인식하지 못하여 공중에 붕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상태가 무너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만 하면 자신의 영에게는 덕이 되고 유익이 되지만 자신의 의지의 인식에는 아직 무지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방언을 하는 자는 방언 통역이나 예언의 은사를 받아서 자신의 의지의 인식에도 도움이 되게 해야 합니다 방언을 많이 하여 자신의 영의 기초체력이 강해지면 또 다른 병고침이나 예언 통역이나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기에도 유력해집니다

  •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말씀 감사합니다

  • @user-mx9io2kz1o

    @user-mx9io2kz1o

    Жыл бұрын

    @@엠마오연구소 아닙니다 의례적인 인사라도 하나님께만 진심으로 영광돌립니다 님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 @user-tu3hs5xd8u

    @user-tu3hs5xd8u

    Жыл бұрын

    설득의 말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설득의 말에 숨어있는 하나님의말씀이 능력을 행하실겁니다. 그래서 전도를 성공하더라도 설득자의 능력이 아닌 설득자가 전한 하나님말씀 성경말씀에 능력으로 인한것이기에 겸손할수있습니다.

  • @HY-hr1jj
    @HY-hr1jj Жыл бұрын

    이번 라운드 주제를 본 순간 소름이..ㅎㅎ 비기독교인(불교신자) 친구와 대화를 나눴는데 이번 라운드와 비슷한 주제였어요. 근데 제가 대답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지혜를 구하고자 댓글을 남겨봅니다. 긴 대화였지만, 최대한 짧게 해보겠습니다. 그 친구가 왜 하나님을 믿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저는 설령 지옥이 있다 하고 내가 거기에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라고 했습니다(진짜 그럴수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은 정말 그렇습니다ㅎ). 여기서 친구가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하면서 지옥을 만들고, 더나아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서 왜 죄를 지을수있는걸 알면서 죄 지을 존재로 만들어서 지옥에 가게 했냐고 했습니다. 저는 자유의지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만약에 내가 전지전능하여 자식을 낳을때 자식을 최고로 만들수있는데도 일부러 그렇게 만들지 않고 죄를 지을수도 있게 한 다음에 벌을준다? 본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전지전능한데 왜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냐고 해서, 그럼 두가지로 생각해볼수있다고했어요. 전지전능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겠지?(여기서부터는 저도 자리에서 생각나는대로 얘기하게됐습니다) 그럼 왜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냐고 하길래. 하나님을 알게하기위해서라고 했더니 본인을 알게하기위해서 지옥을 만들고 전지전능함에도 인간을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든 신을 본인은 신으로 믿을 없고, 그게 어떻게 사랑이냐 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조금 더 정리하고 생각해보고 이야기해준다고 했는데 혹시 이에 대해 생각해보신분이 계실까요?

  • @judoka3747

    @judoka3747

    Жыл бұрын

    내가 전지전능하여 자식을 낳을때 자식을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그냥 사람을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나 기계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데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찬양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그 찬양과 영광돌림이 기계 인간이 감정 없이 찬양하고 영광 돌린다 생각해보세요 과연 진짜 찬양일지?

  • @user-gh5hc5fv2h

    @user-gh5hc5fv2h

    Жыл бұрын

    자유의지를 주신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 @w0nchic_ID_picture

    @w0nchic_ID_picture

    Жыл бұрын

    좋은 대댓글들을 종합해보자면 사랑은 선택입니다 A만 있는 선택지에서 A를 고르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의 다른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A를 고르는 것이 사랑이죠 또한 A가 총을 들고서는 누구를 고를 거냐고 물어봤을 때 무서워서 선택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것은 자유의지와 비교대상이 있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길 바라셔서 우릴 프로그래밍하지도 않으셨고 한 가지 선택지만 주지도 않으셨고 협박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 @user-xf4vk3bq6p

    @user-xf4vk3bq6p

    Жыл бұрын

    많은 의심과 질문이 나올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자유의지'에 대해서 작게나마 끄적여봅니다..! --- 저는 하나님께서 자식을 낳을 때 자식을 최고로 만드신 것처럼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주어졌지 않았을까요 :)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자체로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들과 풍성하고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자 하셨지요. 여기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당신과 사랑의 교제를 나룰 최고의 자식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만약 단지 하나님 당신의 위엄만 드러내고자 하셨다면, 우리를 자동적으로 그 말씀과 위엄 앞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기계로 만드셨겠지요. 그러나 자유의지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의지를 어떤 방향으로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유의지를 '부정적'으로 이해하곤 해서 마치 자유의지가 죄를 짓는 것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유의지가 '긍정적'으로 사용된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본래 목적이자 가장 주된 목적은,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 이후로 죄인으로 태어나게 되면서 '부정적'인 방향이 기본 패시브로 장착되었죠. (그래서 부정적으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처음 목적은 당연히 '긍정적'(사랑을 위한 자유의지)이었을거에요. 그럴 때 진짜 사랑이라는 상호관계가 가능하고, 진짜 교제가 가능하니까요. 이것을 잃어버렸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처음 목적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정'으로 흐르던 자유의지가 '긍정'으로 흐를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본래 목적으로서의 자유의지를 회복한다고 생각합니다 :)

  • @HY-hr1jj

    @HY-hr1jj

    Жыл бұрын

    모든 답변들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이야기했는데요. 저도 그 친구에게 자유의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곧 사랑이고. 근데 그친구의 포인트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본인처럼 인간을 만들수있는데 왜 그렇지 않고 나약하고 죄지을수있도록 만든건지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구요 그게 어떻게 사랑인지. 저도 그친구도 아이가 있는지라 그 친구가 어떤 마음인지 알겠더라구요. 그냥 그 친구가 마음을 닫아 이해를 안하려하건지 저의 설명이나 얘기가 부족했던건지 모르겠네요..ㅎ

  • @zxc-xt6wb
    @zxc-xt6wb Жыл бұрын

    이번화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집중해서 봐서인지 왠지 체감상 가장 긴 분량이었던 것 같군요. 비기독교인을 향한 영상이어서 그런지 왠지 하고 싶은 말이 좀 많군요. 홀리 컴뱃에 비판적인 댓글은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비기독교인을 향해 말하는 에피소드인지라, 여기서는 이야기를 좀 길게 쓰고 싶습니다. 이 댓글이 다른 시청자 분들의 시청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선 양시무스님의 주장은 좀 많이 반박해둬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요.... (조금 공격적으로 느껴지신다면 미리 사과드리지요. 또한, 양시무스님은 무대 위에서 빠르게 즉흥적으로 말씀하셨고, 저는 그것을 찬찬히 들어보고 작성하는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양시무스님께서는 어째선지 기독교 VS 진화론 관점이라는 포지션에서 말씀을 시작하시는데요. 실제 진화론은 모든 게 다 우연이라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정말로 다 우연이면 그건 오히려 진화론에서 말하는 적자생존의 원리에 위배되겠지요. (가령 코로나 백신 제작도 빠르게 변이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진화론 없이는 매우 빠른 변이를 설명 못합니다. 그리고 백신 제작도 마찬가지로 진화론이 포함된 생물학을 학문적 토대로 삼고 있지만, 백신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 ) 또, 사람의 행동이나 가치 대부분은 유전자가 번식을 시키기 위함이라는 식의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고, 논리적 비약이 심한 주장입니다. 인간이 사회와 문화라는 것을 개발하기 이전의 원시 인류에 한정한다면 간신히 동의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문명 사회를 사는 인류에게 있는 그대로 적용시키기에는 거친 주장이죠. (번식은 여전히 현대인의 행동에도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정도였다면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대해 오히려, "기독교인이야말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따라서 번식 가능 여부에만 집착하고, 번식 못하는 동성애를 반대하려는 족속 아닌가요?" 라는 식으로 비아냥을 담아 반문하면, 기독교인도 "그건 너무 거친 요약이다." 라면서 반발할 텐데요.... (그리고 두뇌의 뉴런과 전기적, 화학 작용만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제가 볼 때는 누워서 침뱉기에 가깝게 보입니다만. 기독교인은 두뇌나 신경 활동 없이 신을 믿나요? 그게 가능하다면 인정하지만,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생물학적 인간으로서 두뇌, 화학적 작용은 필수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지 이해가 잘;; 신에 대한 믿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두뇌 활동이 필수라면 이 두뇌 신경 화학 이야기는 안 하느니만 못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삶이 황량하다는 주장도 많은 부분에서 틀렸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을 부정할 뿐이지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자가 아닙니다. 무신론자들은 매우 다양하며, 각자 추구하는 목적이나 이상, 꿈, 희망 등등은 나름의 기준에서 존재합니다. 가령 샘 해리스같은 무신론자는 오히려 종교 없이도 영성 충만한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정도인데..... 아, 물론 양시무스님 말씀대로 실제로 황량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순신이 있죠. 이순신은 기독교의 신을 믿지 않았지만, 충성, 용기, 투쟁심 등등의 우수한 가치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사용하여 치열하게 싸웠으며, 자신의 신념과 나라, 민중을 지켰습니다. (양시무스님께서 살짝 언급하신 니체스러운 삶에 가깝죠.) 말씀대로 이순신의 삶은 황량한 삶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황량함을 면하려고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싸웠고 이순신은 오늘날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인정하는 영웅이자 위인이라는 점을 언급해두고 싶습니다. 그밖에도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그들이 진, 선, 미 등등의 주요 가치를 부정했다거나, 죄다 황량한 허무주의자에 가깝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즉, 신을 부정하는 것은 황량한 삶이라는 주장은 예외 사항이 많고, 실제로 그렇다고 해도 다 형편없는 삶은 아니었다는 것. 이어서 나오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빠른 선택이 자살이라는 이야기는 의아하더군요. 제가 볼 때 이건 앞뒤가 안 맞는대요. 제 상식으로는 일단 생존하고 사고할 수 있는 개체만이 자유를 누리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 있을 텐데, 갑자기 자살이 효율적인 자유 추구다....? 이건 그 교수님이 자유라는 단어를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용도로 쓴 게 아닐까 싶군요.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동의하긴 어렵겠군요. 이어서 종교 없이는 도덕 의미 아름다움 등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도 부족함이 많은 주장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이 사랑 선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증명한 바는 전혀 없죠, 그 보이지 않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이 선행되지 않았는데도 그 신이 사랑 선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떠받들어준다는 양시무스님의 주장은 궤변의 사상누각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듭니다. (증명 안 된 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인 사랑 선 아름다움을 뒷받침하려 드는 행위는 아무리 봐도 궤변으로 느껴지네요.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서로 연결시켜놓는다고해서 갑자기 증명이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을 위해 예수를 희생시켰다는 주장도 논쟁의 여지가 많죠. 인류가 타락했다면(사실 현실적인 선에서 개인적으로는 동의합니다만.) 타락하지 않은 인류 상태는 어떻게 증명할 거냐 같은 문제는 백보 양보해서 에덴 동산~ 이라는 키워드로 대충 넘어간다고 칩시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많습니다. 비기독교인으로서 그냥 머리에 스치는 대로 쓰자면, "그냥 신이 예수의 희생 없이 타락을 해제(?)시켜주면 될 거 아닌가? 신이 전지전능하다며?" 라는 의문은 비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의문입니다. 그러면서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가 사랑이냐." 라고 강변하시는 모습은 과장 좀 보태서 기괴할 정도입니다. "인류 전체를 사랑한다면, 1차적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죽게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구원해야 하지 않나? 그 신의 아들도 인간의 형태로 온 거라며? 그리고 인류 다수는 신의 아들을 죽임으로서 구원해달라고 요청한 바가 애초에 없는데?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알지도 못했고. 정말로 그게 신의 사랑이라면 아주 기괴한 사랑 방식인 듯." 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뭐, 이 정도입니다. 제가 이해한 부분에 오해나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길. 조슈아 님이나 아델포스 님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비기독교인에 대한 대화나 스토리에 가까워서 비판을 생략할까 합니다. (그 오토바이 훔친 불량 청소년이 어떻게 됐는지는 좀 궁금하군요. 허허... 제대로 처벌은 받았나요?) 이어서 엠마오 님의 의견에 대해서는 댓글 분량상 다음으로.....

  • @zxc-xt6wb

    @zxc-xt6wb

    Жыл бұрын

    영상 속 엠마오 님의 주장을 듣고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일단, 엠마오 님의 의견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 있는 지점과 그렇지 않은 지점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엠마오 님의 주장은 악과 죽음 때문에 행복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건데..... 뭐, 죽음은 자명한 단어이니 그렇다 치고(여기서는 생물학적 죽음을 말씀하신 게 맞지요?), 악과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요. (일단, 절대적인 행복은 저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의 악을 말 그대로 인간의 선함의 반댓말에 한정되는 개념을 넘어서 모든 인간사의 고통과 부조리와 한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엠마오 님의 행복은 일종의 결과론적이고 궁극적인 행복을 의미하시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실제 행복은 그런 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와 관련해 제가 내린 결론을 바로 내기보다는, 여기에 대해 축구의 예시를 통해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고 싶군요. 만약 누군가가, 축구에는 반칙과 태클이 난무하고, 공을 열심히 점유할수록 반칙과 태클을 당할 확률이 증가하므로 축구를 진정으로 즐기는 건 불가능하다고 해봅시다. 실제로 축구에는 악의적인 반칙과 부상이 난무하고, 모든 심판이 100%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심지어는 공을 뺏기지 않으려다가 오히려 나 자신이 반칙을 범하는 경우마저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 모든 아비규환을 극복해서 시합에 임해도, 예상치 못한 같은 편의 실수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축구를 즐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닙니다. 부상 가능성, 패스 미스 가능성, 패배 가능성, 어이없는 오프사이드 판정, 그리고 이기건 지건 반드시 울리는 종료 휘슬 등의 수많은 한계와 난관을 인정하고도(또는 인정해야만) 진정으로 축구를 즐길 수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인생은 이와 비슷합니다. 인생에는 엠마오 님의 말씀대로 악이 많고, 그 모든 악을 극복하는 게 가능하다고 쳐도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하는 건 자명한 결말이죠. 그러나 그렇다 해서 인생에서 행복을 누릴 수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한 사소함,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 하나하나까지. 인생을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행복과 보람으로 곳곳이 채워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흔히들 고3 시절을 마냥 고통스러운 시간이라고 하지만, 막상 되돌아보면 밤늦게까지 공부에만 몰두하는 그 시절은 좋은 경험이면서 추억이었죠.) 그러므로, 제가 소확행을 주장할 생각은 아닙니다만, 영상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행복한 삶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행복이란 개념을 하나의 결정적인 결과물로서의 무언가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신을 믿건 안 믿건 크고 작은 행복을(아마도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불행도) 넉넉하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 초월자가 내려준 종교에 의존하여 행복을 탐구하기 보다는(실제로 그 종교가 초월자가 준 게 맞는지의 여부 또한 논쟁의 대상이죠. 허허...),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삶 속 곳곳에 스며든 행복과 악을 관찰하고 체험하는 게 더 좋다고 봅니다. 인간의 삶은 무언가의 희생과 역경 등을 토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 삶이 영원하지 않고 끝남을 긍정할 때 행복, 악, 죽음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으며, 인간이 지닌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다~ 라는 게 제 주장입니다. 만약 이러한 전제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월적인 신의 구원이나 영원성을 갖다 붙인다면 한 번 뿐이고 유한하고 불완전한 삶조차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우려되는군요. 이것이 제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초월적인 존재를 가정하고 구원을 바라는 종교에 의존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겠지요. 이어서, 기독교가 세상의 악함과 죽음에 대한 답을 준다는 주장에 관하여. 엠마오 님의 이 부분은 확실히 동의하기 어렵군요. 제가 들어본 바, 기독교가 설명하는 악함과 죽음이 제대로 된 설명인지도 의심스럽고, 모순된 부분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솔직히 구약만 읽었을 때, 많이 악하고 죽음을 잘 퍼뜨리는 것은 신 자신이죠. 이 구약의 신에 대한 설명과 변증들에 대해서는 흐음.... 논쟁의 여지가 매우 크다, 라고만 해두죠.) 한 발 양보해서 기독교가 그것들에 대해 잘 설명을 했다고 쳐도, 그것이 실제로 정답이 맞는지 아닌지는 기독교인들도 당장 증명해내지는 못하는 걸로 압니다만.....(애초에 선악의 기준으로서의 도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죽음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증명된 바가 없지요. 만약 기독교가 악함의 메커니즘과 그걸 막을 방도, 그리고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종교라면, 그리고 그 설명이 소위 말하는 절대적인 진리라면 시대와 문화권과 무관하게 일관되어야 할 것이며, 기독교를 믿지 않는 자들도 검증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입니다. 쓰다 보니 엄청 길게 쓰여졌군요. 댓글 2개로 나누어 썼습니다. 아마 제가 오해한 부분이나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요, 그래도 영상을 2회 보고 3회째 스킵해가면서 쓴 댓글이고, 무신론자의 관점에서 쓴 글임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좋은 하루 되세요!

  • @sheep_maximus

    @sheep_maximus

    Жыл бұрын

    zxc님 우선 제 논증을 꼼꼼하게 봐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zxc님의 반응은 무신론자들이 제 말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반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매우 만족스럽네요. 서로 다른 사상이 부딪히고 경쟁하는 것이 변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진화론이 ‘우연’이라고 주장한다는 부분은 제 의도와 다른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압력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유일신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압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근본적으로 역사에 어떤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접근입니다. 굳이 진화론을 언급한 이유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생물의 기원을 사실상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동이나 가치가 오직 유전자 번식만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번식을 하다보니 그런 행동 특성들이 남게 된 것일테고, 우연찮게 번식이라는 목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특성도 남았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정말 많은 부분은 번식이라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문명사회 또한 그런 부산물 위에 세워졌을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두뇌의 뉴런과 전기적, 화학 작용만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환원적인 시도입니다. 사실 모든 과학은 본질적으로 환원적이죠. 환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떤 본질을 발견하게 해주죠.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사랑이죠.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화학적-물리적 작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류가 아무리 사랑의 가치를 찬양하더라도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어떤 물리적 작용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거기에 어떤 ‘주관적’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 들어가야만 사랑이 ‘고귀한’ 것으로 둔갑을 하게 되죠. 저 또한 무신론자들이 모든 가치를 부정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모든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고’ 살아간다고 볼 뿐이죠. 그래서 앞서 무신론자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했고요. 다만 그런 것들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뿐입니다. 이는 인간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객체가 다른 종(코끼리나 거미)에게는 그냥 다른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객체에 불과한 것과 같습니다. 셸리 케이건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문맥을 이어붙인 것이 맞습니다. 둘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삶에서 자유를 선택하는 가장 빠른 선택이 자살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불행을 계산했을 때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둘을 잇고 싶었지만 장황해질 것 같아서 빠르게 넘겼습니다. 둘을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의 절단면은 zxc님께서 정확히 파악하셨습니다. 종교 없이 도덕, 의미,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인류와 그보다 더 오래된 생명체가 생존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들이 작용한 물리적 결과물일 뿐입니다. 거기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은 개인의 마음이지만, 그것이 어떤 특별한 신이 내 삶을 가치있다고 인정해준다는 믿음과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이 사랑, 선,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떠받들어준다는 말은 신이라는 말이 앞서 말한 가치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체가 신이라는 거대담론이 해체되었을 때 위의 가치들이 같이 해체되는 것을 우려했고, 거기에 대해 우버멘쉬라는 대안을 말한 것입니다. 참고로 저 문단에서 저는 신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을 믿으면 생기는 좋은 것들을 말했을 뿐이죠. 신을 수용했을 때 위의 가치들이 패키지로 따라오는 것뿐입니다. 반면 신을 수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위의 가치들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죠. 저는 그것이 신을 믿는 믿음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제기한 것이고요. 타락한 인간을 위한 대속교리 및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문이 있으시군요. 기독교의 담론 내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야훼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문제이니 효과적인 반증이라고 보이지는 않네요. 제가 진짜 정직한 무신론자라면 저는 제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국 제가 만들어낸 환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인정할 것 같습니다. ‘그래. 나 유전자의 노예다. 유전자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산다. 그래도 이게 좋아서 이렇게 산다는데 뭐 어쩔?’ 이 정도 태도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한 우버멘쉬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저는 그렇게 살 자신은 없습니다. zxc님께서 이런 태도로 살아가신다면 저는 아주 대담하고 멋진 무신론자라고 인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삶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을 하신다면 저는 그냥 웃으면서 자리를 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고 살아가고 싶으시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ㅎㅎㅎㅎ 어쨌든 제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주시고 좋은 반박도 많이 해주셔서 참 기쁩니다.

  • @엠마오연구소

    @엠마오연구소

    Жыл бұрын

    @@zxc-xt6wb 아우 이렇게 자세히 생각을 적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내 이야기에 이렇게 깊게 고민한 비그리스도인이 있다니. ㅠㅠㅠ 엉엉엉

  • @LewisClub

    @LewisClub

    Жыл бұрын

    비그리스도인 입장에서의 감상과 평가 잘 들었습니다. 저는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기독교 담론 내의 환경에서 지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비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는데 자세하게 잘 정리된 말씀을 들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의 내용의 오해나 논리의 오류에 대한 설명이나 지적은 발표를 하신 분들이 직접하셨고 또 그 분들의 소관이기 때문에, 저는 단지 한 명의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런 발표에 대한 기독교인의 감상과 평가를 들려드림으로써, zxc님과 더불어 똑같은 내용에 대해서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은 이런 식으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반응하고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는 경험을 나누고, 그에 따라 서로에 대한 막연한 오해를 조금 줄여가는 계기와 또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보고 싶은 마음에 몇자 글을 남깁니다. 우선 양시무스님께서, 진화론을 언급하시고, ‘진화론이 사실이면 모든 것은 우연이고 결국 사람의 행동과 가치도 유전자 번식을 위함이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기독교인인 저는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 올렸습니다. 사실, 기독교인이 저같은 사람이 이해하는 관점에서, 리처드 도킨스 같은 엄청난 영향력의 무신론적 진화론자가 쓴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 속의 기독교와 관련된 중요한 주장을 2가지 정도 추려보자면, 첫째는, “진화론은, ‘자연법칙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인과율의 관계로 연결된 자연계’만이 존재하는 것의 전부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진화론은 자연계 밖의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라는 것이고, 둘째는, “진화론의 엄청난 과학적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그 결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진화의 결과를 유전자의 수준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의 수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 관점을 바로잡아 진화를 유전자의 수준에서 이해하기 시작하면, 적자생존같은 개체의 비/무도덕적인 성질 뿐만 아니라, 개체가 집단을 위해 갖는 이타성이라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개체의 도덕적인 행동도, 특정 유전자의 보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만의 이유있는(?) 논리적 비약을 가지고, 이해했던 양시무스님이 주장은, “정말로 (리처드 도킨스식의 무신론적)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도킨스의 주장대로) 인간의 도덕적 행동과 같은 가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도 사실 자연법칙(뇌 신경의 전기, 화학작용의 법칙)의 인과율에 의해서 생겨난 자연현상의 일부일 뿐, 본질적인 면에서는 (객관적) 가치나 의미를 가지는 행동이 아님을 인정해야된다”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즉, 기독교인으로서 제가 들은 양시무스님의 주장의 취지는, 어떤 것도 신에 의해 계획되지 않았다는 면에서 모든 것이 우연이고, 인간의 가치 추구 행동 역시 결국 본질적으로는 특정 유전자들의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하는 자연법칙에 의해 결과지어진 행동이라고 믿는 도킨스식 무신론적 세계관과 존재의 근원인 신이 존재하기에 어떤 것도 신의 계획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고, 그런 신의 존재만이 인간이 추구하는 행동의 (객관적) 가치와 의미를 보장해 준다고 믿는 기독교적 세계관만이 (과학적/세속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에게 주어진 (어떤 면에서는) 유일하게 고려해 볼 가치가 있는 두가지 세계관적 선택지라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전제가 옳다는 가정하에 양시무스님이 이끌어 가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향이, 이런 식의 세계관에 근거한 삶의 태도에 관한 철학을 소개하고 평가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무신론적 진화론의 세계관이 옳다면, 거기에 근거한 삶의 태도에 관한 철학은 니체식(독일식) 실존주의적 태도와 (예일대 공개 철학강의 스타인 셀리 케이건을 언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샤르트르식(프랑스식) 실존주의적 태도만이 의미있는 삶의 태도가 된다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니체와 샤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바로 떠올린 이유는, 과학자인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에게 철학자 중에서 보통 기독교와 가장 대척점에 서있는 철학자의 대표적인 사람들로 꼽히는 사람들이며, 발표 중에 말씀하신 관련된 주제로서의 ‘힘의 의지(will to power)’와 ‘자유와 자살(freedom and sucide)’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반기독교적인 의미로 매우 유명한 견해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글이 길어져 다음 댓글로 나누어 올려 보겠습니다.

  • @LewisClub

    @LewisClub

    Жыл бұрын

    제가 알기로는, 니체의 ‘힘의 의지’의 개념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신의 죽음으로 표현)을 통해, 인간은 삶의 태도를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에 기대어 가질 수 없고, 오직 새로운 진리와 가치를 스스로의 의지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에 기대어 가져야 한다는 개념’으로, 신을 찾는 태도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되는 태도의 삶이 의미있고 인간다운 삶이라는 주장이고, 샤르트르의 ‘자유와 자살’의 개념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을 통해, 인간이 깨닫게된 자유란 이 아니라 객관적 의미나 목적없이 우연히 존재하는 를 말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런 행위를 주체적으로 누리는 삶의 태도를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의미있고 용감한 자유는, 을 의미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건은 이런 사르트르의 논리를, 말기환자의 안락사와 같은 형태의 자살을 포함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까지 고려해 주장하므로써 그 공감대를 더 키워냈다고 보여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도킨스식 무신론을 바탕으로 니체나 사르트르식 실존주의적 삶의 태도를 주장하는 철학을 보통 기독교적 담론에서 매우 신성모독적이고 심지어 악마적인 생각으로 여기는 경우들을 많이 보아왔는데, 양시므스님은 오히려 철학적인 면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생각임을 인정하지만, 단지 (심미적인 측면에서) 황량한 느낌을 주는 세계관이라고 주장하시는 특이한(?)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복음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공격적 선언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신의 존재를 통해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인 진선미를 추구하는 행동에 관한 진정한 의미를 보장받으며 그 위에 심미적 만족까지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원한다면, 기독교적 세계관이 유일한 대한이지 않겠느냐는 제안처럼 드렸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신의 존재와 진선미적인 가치의 (객관적) 존재를 믿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과학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증명해낼 수는 없지만, 그런 세계관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며, 이 또한 현재의 상황에서 분명한 정황증거로서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지만, 이 역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한 대속이라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결되어지는 면이 있다고 매우 조심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주장을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양시무스님의 복음에 대한 내용과 논리가 모두 완벽하고 백퍼센트 동의한다는 의미로 글을 쓴게 아니라, 한명의 기독교인으로서 양시무스님의 발표를 들었을 때, 제 귀에는 위와같은 식의 주장을 하고 계신것으로 들렸다는 말씀을 드리고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간의 소통을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글 속에도 아마 수많은 잘못된 정보나 논리적 비약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심지어, 양시무스님이 zxc님에게 하신 설명에 비추어 보았을 때, 기독교인인 저도 얼마나 많은 넘겨짚음과 제멋대로 추론을 통해 양시무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는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기독교인이기에 양시무스님의 발표를 논리적 비약이나 결점을 발견하기 보다는, 여러면에서 예리하게 현실을 파악하시고 비그리스도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발표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솔찍히 말씀드리면, 변증 대결 시합에서, 변증을 하신 양시무스님은 떨어지고, 간증을 하시거나 변증을 포기하신 두 분이 결승에 올라간 것같은 아이러니한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ㅎㅎ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같은 말과 상황에 대해서도 모두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다름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이 있기를 바래봅니다. 저도 두서없이 글이 길어졌네요, 엠마오님의 말씀에 대한 제 감상과 생각은 기회되는대로 말씀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user-ix8ue2lx2y
    @user-ix8ue2lx2y4 ай бұрын

    결국 기독교에 몸담거나 포교활동에 힘쓰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큰트라우마와 견디기 힘든 고통을 가지고 있음 그렇다는건 그들에게 운이 좋게 힘든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종교따위 찾는일은 없었을꺼임 그냥 본인이 ㅈㄴ 힘든데 어따 하소연할 곳이 없나? 찾다가 종교라는 좋은 감정배설구를 찾은거임 그런데 그게 너무 과몰입에 빠지면 저렇게 되버리는거고…. 그냥 운이 좋은 사람과 없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없이 시련을 이겨낼 정신력이 있고 없고가 종교에 빠지냐 안빠지냐를 결정하는듯 엠마오 저분 말이 그나마 조금 설득력이 느껴진다 산다는건 정말 개ㅈ같은거니깐…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가끔 불쑥찾아오는 행복이 너무도 달다… 아마 우린 그 잠깐의 달콤함을 위해서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게 아닐까?

  • @user-iq2zq2wd4p
    @user-iq2zq2wd4p11 ай бұрын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이야기하는 분은 한 분도 없다는게 가장 충격적!

  • @thelambofgod4015
    @thelambofgod4015 Жыл бұрын

    비그리스도인들 앞에서 목사들이 복음을 저렇게 증거하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고 실망 많이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 삼아 스스로 돌아보고 겸손하게 다시 배우고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joeahn0913

    @joeahn0913

    Жыл бұрын

    이런 찬물 댓글을 볼때마다 여적여 처럼 기독교 최고의 안티는 역시 기독교네요.. 안타깝습니다.

  • @css1111

    @css1111

    Жыл бұрын

    저번에도 그러시더니...또 찬물을..

  • @LewisClub
    @LewisClub Жыл бұрын

    양시무스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계 최초 변증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이번 라운드에서 논리적 변증을 시도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복음은 (논리적으로는) 자신도 아직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던지, “복음은 논리가 아니라 이야기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전제하에 언변을 펼치신 사람들보다, 적어도 논리를 중시하는 변증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인정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짓게 남는 회차였습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도 분명히 참가자들의 답변은 “논리력”과 언변에 맞춰서 판정을 내리라고 했는데도 말이죠.ㅜㅜ 물론 양시무스님의 논리는 너무 구리고, 죠슈아님과 아델포스님의 언변은 너무 뛰어났다고, 판정단님들께서 판정하셨을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남아있으니까, 판정을 문제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ㅋㅋ 단지 논리 과몰입형의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게임에서 떨어져 죽기까지 논리를 사랑하셨던 양시무스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 뿐입니다. 사실 제가 양시무스님같은 분을 좋아하고 많은 기대를 갖는 더 큰 이유는, 제 개인의 생각으로는 현재의 한국의 기독교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 필요한 캐릭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 신앙에 필요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은 성경의 내용을 조직화할 수 있을 정도의 논리력이면 충분하며 나머지는 믿음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급진적인 성경주의(radical biblicism)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진정한 이해력의 근간으로서의 이성적 직관과 논리는 오로지 무신론자의 편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주의적/자연주의적 무신론의 도전에 대하여, 전혀 의미있는 대응(변증)도 하지 못한 채 단지 사람들의 감정적 공감에만 호소하다가 무너져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적 공감 역시 하나님의 선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특징을 가진 선물입니다. 이성적 논리도 하나님의 선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딱딱하고 복잡해 보이며, 대부분의 경우 훈련이 없이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논리적 대화는 쉽게 중구난방 혼란스럽고 무미건조한 말싸움처럼 비춰지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고 나면, 이성적 논리가 가지고 있는 너무나 중요한 성격인, 아름답게 영원히 지속적으로 빛나는 그 찬란한 일관성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감정적 공감에 열광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공감을 지속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금방 시들해질 것입니다. 자신이 시들해지지 않더라도 자신과 같이 열광하던 사람들이 금방 점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자녀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모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민입니다. 그분들은 왜 우리가 그분들이 열광하시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에게 열광하지 못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모 세대와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일시적 공감보다 더 영원하고 지속적인 진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원하기 때문임을 그 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우리의 논리를 들을 수 있는 관심과 훈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 세대가 갖지 못했던 무기를 쓰는 법에 관심을 갖고, 또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시는 분들처럼 그런 무기를 잘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또한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소개하며 훈련하며 실행하는 사람들을 도울 필요가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졌잘싸, 양시무…스님! 화이팅!!!

  • @user-tz2lv7qf8h
    @user-tz2lv7qf8h5 ай бұрын

    진짜 달변가들이네ㅋㅋㅋㅋㅋ 말을 어떻게저렇게 잘하냐

  • @user-vy5kz2rm8e
    @user-vy5kz2rm8e24 күн бұрын

    예배당 안에서도 복음을 말하지 않는데 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철학과 개신교는 전혀 다릅니다.

  • @user-xj7iy7sn4b
    @user-xj7iy7sn4b Жыл бұрын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인간 구원을 위한 복음은 모두 거짓 복음 이지요. 복음은 십자가 지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계시된 말씀 입니다.

  • @Augustinus5607

    @Augustinus5607

    4 ай бұрын

    인류 구원이 아니면 그러면 십자가는 왜지셨나요?….

  • @Sallysally-me5il
    @Sallysally-me5il Жыл бұрын

    아델포스

  • @calvary4180
    @calvary4180 Жыл бұрын

    복음을 말하라는 주제는 제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대되는 질문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귀한 질문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영상을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도 아니고 목사요 강도사라고 하는 세 사역자들의 답변은 한국교회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직면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홀리컴뱃 특성상 돌발스러운 질문들 위주이기에 짧은 시간 안에 답변해야 하는 어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말하라는 질문은 이전 질문들과는 다르게 돌발적인 질문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더욱이 사역자라면 언제나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세 사역자들의 답변은 얼마나 한국교회가 복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바르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세 사역자들 모두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보는 내내 의아했습니다. 목사라는 분은 복음의 원론을 마치 따분한 것처럼 여기며 1분도 넘기지 않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복음을 풀어 설명할 책임이 있는 목사가 원론이라고 하며 겉할기 식으로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리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복음에 대한 설명에 논리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가 갖추어진 설득은 사도행전에 복음을 증거한 제자들의 방식이었습니다. 율법을 풀어서 논리적으로 전개하며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가리키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 사랑 안에는 분명한 논리가 담겨져 있고 그 맥락을 따라 제자들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풀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복음을 말하라고 했지만 복음이 왜 좋은 소식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는 율법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습니다. 율법이 없는 복음은 죄인에게 좋은 소식이 될 수 없기에 율법이 언급되지 않는 복음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0분이라는 시간 안에 이런 기본적인 내용들이 충분히 포함될 수 있었지만 세 사역자들의 답변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또한 소망의 이유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 사회자님께서 기독교가 악함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고 언급해 주셔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복음의 빛을 제시해야 하는 사역자들이 그 빛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복음에 대해 거듭해서 생각해보고 고민해보고 철저하게 갖추어져서 회중들에게 바르게 선포하고 제시해야 이 한국교회가 진리의 복음 안에서 견고하게 세워질 것이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세대도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20년 이상 다닌 교인들 조차 복음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역자들이 복음에 대한 깊은 고민도 준비도 없이 형식적으로나 관념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기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뚜렷한 진리의 빛으로 인도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를 담당하는 사역자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이 현실을 직면하여 회개하고 준비된 그릇으로 소망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뚜렷한 길을 보여줄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calvary4180

    @calvary4180

    Жыл бұрын

    @@why68299 10분이라는 충분히 주어진 시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제시되지 안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본인의 마음에 어떤 간증 내용 때문에 감정이 움직여 굳은 마음이 깨졌을지는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 사역자가 복음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이해했고 또 그것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과 애씀이 있었다면 이렇게 제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작성한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으신 것 같은데 이미 그에 대한 이유를 적었기에 또 반복하는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 @Doubting.Thomas

    @Doubting.Thomas

    Жыл бұрын

    ‘예의바르게 포장된 무례함’이라는 느낌이 드는 댓글이네요. 익명으로 훈수두는 댓글을 적는건 쉬운 일이지만, 다수의 카메라와 대중 앞에서 자기생각을 이야기하는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저번에도 트집성 댓글을 다시더니 이번에도 또 그러시네요.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자신있으시면 시즌2에 나오셔서 자신의 생각을 떳떳하게 드러내시면 됩니다.

  • @calvary4180

    @calvary4180

    Жыл бұрын

    @@Doubting.Thomas 지난번 댓글이 비비크림을 바르지 않는 남성에게는 트집성 댓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겠지만, 비비크림을 바르는 남성에게는 양심이 찔려 트집성 댓글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망이 필요할 때는 책망을 듣고 돌이켜 진리 안에서 굳건히 서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는 책망을 듣고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겠지만 비웃는 자는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고 책망한 자를 미워할 것입니다. 본인이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자중을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 공간이 듣기 좋은 글들로만 적어야 하는 곳이라면 먼지를 털고 돌아서겠습니다. 때로는 듣기 어렵지만 그런 말들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말이고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있고 말고를 떠나서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진리의 빛이 맡겨진 사역자로서 복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자격에 대해 깊이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돌이킴을 통해 바르게 다져지고 준비되어진다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의 빛이 더 이상 흐릿한 것이 아닌 뚜렷한 것으로 제시되어질 것입니다.

  • @Doubting.Thomas

    @Doubting.Thomas

    Жыл бұрын

    @@calvary4180 정당한 비판이라면 당연히 인정하고 수용해야겠지요. 그게 건강한 토론이고 발전이니까요. 다만 님 댓글을 쭉 보노라면 타인을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가르치려는 뉘앙스가 엄청 강합니다. 본인의 생각이 곧 성경의 가르침인가요? 본인이 느낀바가 곧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말이 되나요? 그거 대단히 건방진거에요. 이찬수 목사님 같은 분들도 그런 말씀 함부로 안하십니다. 오히려 겸손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시지요. 저도 홀리컴뱃 출연자 중 한 사람이고, 직접 현장에서 이 세 분의 사역자분들이 열정과 진심을 담아 변증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의견을 개진하는건 좋으나, 좀 겸손하셨으면 합니다

  • @user-yp1jg9gh5w

    @user-yp1jg9gh5w

    Жыл бұрын

    세상사람들(이런 표현으로 굳이 나누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표현해야 저 분이 잘 이해하실 것 같아서)과 깊이 교제해보지 못한분이네요 이분은. 교회안에서만 그저 고여가는 세상의 흐름과 그들의 문화, 관심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래서 공감하지 못하는 분인것 같네요. 겸손하시길 세상에 속해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user-um8hi8ey6e
    @user-um8hi8ey6e Жыл бұрын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했다고는 보여지지는 않아 아쉬워요. 복음을 전했다기 보다는 복음을 전하기전 감정 또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작업인 것 같네요. 누가 더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하는...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성과 상관성으로 충분히 공감대와 관계성을 전할 수 있고 그것이 복음이고 그럴 때 성령께서 더 마음껏 역사하신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각자의 경험이 아닌 예수님의 스토리로 충분합니다.

  • @calvary4180

    @calvary4180

    Жыл бұрын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Doubting.Thomas

    @Doubting.Thomas

    Жыл бұрын

    사람의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사람마다 복음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방식도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 이야기만 하는게 효과적일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전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마음문을 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복음전도에 대한 정고은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만, 무조건 한 가지 방식만 옳다고 여기진 않으셨으면 하네요.

  • @user-gh5hc5fv2h

    @user-gh5hc5fv2h

    Жыл бұрын

    그래서 시간이 더 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 @user-yh7pb5pd1o

    @user-yh7pb5pd1o

    Жыл бұрын

    복음은 스토리다의 말이 정고은님의 의문에 대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가복음에서 복음이란 단어를 그저 십자가 자체로 설명하기보다는 예수의 오심으로 복음이 시작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즉 예수의 모든 삶 자체를 복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복음은 십자가만 설명하는 것이 아닌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달리시고 살아나시고 올라가신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예수의 삶 그 자체입니다. 즉 예수의 스토리라고 할 수 있죠. 이것을 전하기란 정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스토리를 다 담아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온 몸으로 복음을 담아내 살아가는 한 사람의 스토리가 복음을 전하는 너무나도 효과적인 방법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가 내 안에 있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살아가시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견들에 동감합니다. 복음은 나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살아가시고 계십니다.

  • @calvary4180

    @calvary4180

    Жыл бұрын

    ​@@user-yh7pb5pd1o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들의 죄들로부터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이 없는 복음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겠지요. 그분의 삶은 그 구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구원은 곧 밀알 하나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눅 24:44-46은 예수님의 삶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삶 자체도 강조되어야 하고 가르침이 필요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분의 삶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눅 24:44-46) 그분의 삶이 가리키는 바는 죄 없는 분께서 완전한 순종을 통해 죄인들을 구속하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완전한 순종의 삶이 가리키는 바는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대속적 죽음인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그 죗값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는 부활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삶이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바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초점이 아니라면 믿음도 헛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삶 자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그 초점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분명하게 가리킬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7) 로마서는 성경 66권 중 복음을 가장 또렷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진수를 나타내는 로마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달리시고 살아나시고 올라가신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예수의 삶에 대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사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이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완전한 순종을 통해 나타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더 나아가 재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로마서가 강조하며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 @xleon26x
    @xleon26xАй бұрын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의도는 좋지만 좋은 컨텐츠는 아닌거 같습니다!

  • @Sebastian-wc4vg
    @Sebastian-wc4vg3 ай бұрын

    300 받으면 불우이웃돕기해야지..

  • @kioo6115
    @kioo61159 ай бұрын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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