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룡포 뿅뿅다리 와 비룡산 회룡대 용포대 에서 보는 회룡대의 멋진 풍경

회룡포 뿅뿅다리 와 비룡산 회룡대 용포대 에서 보는 회룡대의 멋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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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지금부터 비룡산 산행을 시작한다
양지산악회회원들과 동행하여 산행을 한다
용주팔경시비가 새워져 있는데 이 시비는 조선후기 이 고장 출신 은둔 시인 구계 김영락(1831~1906)의 시가 새겨져 있다.
"포금산의 밝은 달"
포금산에 뜬 달은 둥글기도 둥근데
계수나무 가을향기 흰이슬 차갑고나
이 밤사 퉁겨내는 열두줄 맑은 소리
선학은 너울너울 구름 끝에 춤을 추네
"무이의 맑은 바람"
무이촌에 묻혀사는 할아범께 묻노니
고기잡고 나무하여 이렇듯 늙어가오
뽕나무 그늘아래 개와 닭이 함께놀고
온갖 세상 풍진 맑은 바람 씻지 않소
B팀은 다리를 건너 마을로 바로 간다
A팀은 비룡산 산행을 한다
처음부터 오르막이다
회룡포가 알려진 것은 2000년도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이며, 2009년도 KBS 2TV 인기프로 1박2일 촬영으로 전 국민이 알게 되어 년간 20만명정도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2008년에는 국토해양부에서 전국 강변 아름다운 마을 최우수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여행작가 100여분이 선정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 1위로 두차례나 1등을 한 곳이기도 하다.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기 전 비룡산 입구에 용주팔경 시비의 오른쪽 산길을 따라 1.3KM정도 올라가면 제1전망대(회룡대)가 있고 회룡대를 지나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 사림재 쪽으로 향하는 길에 제2전망대인 용포대가 나온다. 회룡포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점으로는 회룡대와 용포대 그리고, 남쪽의 사림봉 전망대 등 세 곳이지만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마을과 주변전망이 무엇보다 절경이다.
장안사(長安寺)
삼계는 유심(唯心)이요 만법(萬法)은 유식(有識)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 위로는 금강산이요 아래로는 양산,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용궁(龍宮) 비룡산 장안사이다
현재 본당(本堂)은 대웅전이며,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과거에는 극락전(極樂殿)이었으며, 아미타 삼존불이 모셔져 있었고, 대웅전 기둥에 걸린 주련의 뜻은 부처님은 두루 온 세상에 계시어 과거 현재 미래에 한결같이 크나 큰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니 광대한 깨달음의 바다는 가히 측할량 수 없어라.
2005년 8월23일 명승 제16호로 지정된 회룡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도는 육지속의 섬이다.
내성천 줄기가 마을 주위를 350도 휘감아 돌아 나가서 마을 주위에 고운 모래밭이 펼쳐지며 산과 강이 태극 모양의 조화를 이룬다.
회룡포 뿅뿅다리 와 비룡산 회룡대 용포대 에서 보는 회룡대의 멋진 풍경
비룡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으며 고려의종(1149)때부터 조선(1895)까지 사용하였으며, 1998년 복원하였다. 또한 낙동강, 내성천,금강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깍아 지르는 듯한 이 비룡산 절벽에는 용주성(일명 원산성)이 있으며, 둘레 1KM정도의 또아리를 닮았다 하여 따비성 이라고도 하며 삼국(신라, 백제, 고구려)의 각축장으로 200여년간 전투기록이 삼국시대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면 용궁면은 신라 서북단 변경에 위치한 고을로 남하하는 고구려와 동진하는 백제를 막아내는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이곳에 별동선생의 전설이 전해온다
별동(別洞)선생이 먼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어느 주막에 들게 되었는데
주막에 앉아 밖을 보고 있노라니, 주인의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떨어뜨린 구슬을 거위가 삼키는 것이 아닌가 집안의 가보였던 구슬을 잃어버린 주인은 별동선생을 의심해 관가에 끌고 가려 했지만 병동은 거위가 멀리 못 가도록 묶어 자신과 함께 두면 내일 아침 구슬을 찾을 것이라며 사정했다.
다음 날, 별동 옆에 다리가 묶인 거위가 똥을 누자 똥 속에서 구슬을 찾아낸 주인은 왜 거위가 구슬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별동선생은 허허 웃으면서 "거위가 구슬을 먹었다고 하면 급한 마음에 당장 구슬을 찾기 위해 주인장께서 그 거위을 죽였을 것이니 내가 하룻밤만 고생하면 구슬도 찾고, 거위도 죽이지 않을 것이 아니요"라고 했다
이 별동이 바로 조선초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별동 윤상 선생이다.
다음 이야기는 꿈에서 얻은 용의 알 전설
약포(藥圃) 정탁대감에 얽힌 일화로 약포가 새로 집을 짓고 우물을 팠으나 왠일인지 물이 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애를 쓰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용이 꿩 알 만한 돌을 주면서 "이 돌을 파던 우물 속에 넣으면 물이 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며칠 후 약포는 우연히 본인이 살았던 옛 집터에서 꿈속에서 본 알처럼 생긴 돌을 줍게 되었고, 용이 시킨 대로 파던 우물에 돌을 집어 넣었다. 그랬더니, 우물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약포대감의 우물은 현재까지 예천읍 고평리에 '중간샘'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하늘이 낸 효자 도시복 전설
예천 사람 도시복(都始復)은 1817년 5월15일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에서 태어 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했지만 그럼에도 부모를 모시는 정성이 남달라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했어 도효자라 불렀다
명심보감 속편 효행편에는 시복이 숯을 팔아 근근이 생할하는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어머니 밥상에는 늘 맛있는 음식을 울렸다고 전해지며, 어머니를 위한 그의 효심에 감탄한 하늘과 자연이 도와 한여름에 호랑이를 타고 홍시를 구하고, 솔개가 어머니께 가져다 드릴 고기를 날라 주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강나루 보부상
보부상은 '보상'을 합친 말이다
보상은 보자기나 걸망에 걸머지는 봇짐 장수를, 부상은 능이나 지개에 지고 다니는 등짐장수를 가리킨다. 낙동강 뱃길의 종점인 이곳 삼강나루는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배와 농산물의 집하장이자 한양과 영남을 있는 교통의 요충지 였다. 때문에 삼강나루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들에게 요기를 해주거나 숙식처를 제공하는 삼강주막이 번창하였다.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사랍들 중 하나인 보부상들은 뱃길을 이용하여 삼강 나루 장터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사고 팔았다.
황포돛배는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 내륙교통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황포라는 명칭은 돛의 색깔이 누렇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으로 돛의 재료인 광목에 황톳물을 들여 좀을 방지하고 질기며 비바람을 맞아도 변하거나 썩지 않게 하였다.
황포돛배는 내륙지방의 물류와 문화의 교류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조선 후기 기록을 보면 한강을 항해하던 황포돛배 수는 하루 평균 100척 이었고, 배한척에 대략 30가마니의 쌀이나 소금을 실었다고 한다.
한양의 객주에서 구입한 물품을 황포돛배에 실어 지방에 가져다 팔고 다시 그곳에서 쌀, 소금을 황포돛배에 실어 지방에 가져다 팔고 다시 그곳에서 쌀 , 소금, 나무, 생선등을 싣고 와 한양의 포구나 객주에 팔았다. 이를 통해 수도 한양과 지방의 물자와 인구의 이동 문화교류가 이뤄졌고 강을 짜라 나루터와 마을이 형성 되었다.
황포돛배는 우리나라 강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삼강나루의 유래
삼강나루는 문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며,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 내릴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세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으로, 나루터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 내리는 소금 배를 통한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도로 였기에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더구나 이곳에는 강을 이어주는 나룻배 두척이 오갔었는데 큰 배는 소와 각종물류를 수송하는 수단으로, 작은 배는 16명의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으나, 인근 교량설치로 인하여 1980년경 나룻배 운행은 중단 되었다. 2013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나룻배를 재현했다.
회룡포 뿅뿅다리 와 비룡산 회룡대 용포대 에서 보는 회룡대의 멋진 풍경
원산성 유래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 정상부 (191m)에 위치하는 원산성은 그 형태가 둥글어서 원산성(圓山城 따뷔성, 따배이성)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축조한 산성으로 정상부를 중심으로 8부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머리띠식)이다. 성벽은 지형을 따라 돌과 흙을 혼합한 토석혼축식으로 축조하였다.
제2뿅뿅다리의 유래
사진속에서 보았던 노후 된 외나무 다리 대신 1997년 예천군에서 강관과 철발판을 이용해서 다리를 놓았다.
그후 마을주민들이 이 다리를 이용하면서 발판구멍에 물이 퐁퐁솟는다하여 퐁퐁다리라 불렀으나 98년도 신문 및 방송에 뿅뿅으로 잘 못 보도가 되어 뿅뿅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회룡대와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지역은 강변쪽으로 경사가 급해 주변의 경관을 장쾌한 파노라마처럼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하안단구, 범람원 등 하천의 침시과 퇴적현상을 살펴 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지금의 회룡포는 원래는 의성포로 불리었는데 이웃한 의성군에 속하는 지명으로 착각할 것을 우려해 회룡포로 바꿨다고 한다.
의성포의 유래는 곡류하는 내성천에 의해 기묘하게 이루어진 지형이 의로운 자연환경을 이루었다해 "의'자와 내성천의 "성"자를 따서 "의성"이라 하고, 삼면이 강변이나 개천이 끼어 있다해 물가를 의미하는 "포"자를 합해 "의성포"라 명하였다고 한다.
임시가설판의 구멍에 물이 퐁퐁 솟는다해서 새로운 명물이 된 '뿅뿅다리'를 지나고 나서 만나는 실제 마을 내 풍경은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아름다운 마을이다.
회룡포 내에는 현재 경주김씨 9세대, 상주인구 20명 내외로 집성촌이며, 농경지가 22ha(66,000평)로 농촌으로는 부자마을이며 수자원이 풍부하여 가뭄의 피해가 없는 우복동이다.
오늘 비룡산 회룡포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다음산행을기대해 주세요

Пікірлер: 9

  • @skemfdl913
    @skemfdl9133 ай бұрын

    멋진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mm6xq9se7k
    @user-mm6xq9se7k3 ай бұрын

    향상 잘보고갑니다

  • @youtubeaction1

    @youtubeaction1

    3 ай бұрын

    선생님! 어제는 부산실이봉산악회와 광주원산우회 합동산행을 와룡산에서 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 @user-xr4vk4ht6k
    @user-xr4vk4ht6k3 ай бұрын

    영상이 아름답습니다.

  • @youtubeaction1

    @youtubeaction1

    3 ай бұрын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면 돟은 영상을 만드는데 도움이됩니다 감사합니다

  • @popokorea
    @popokorea3 ай бұрын

    회룡대에 올라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죠

  • @youtubeaction1

    @youtubeaction1

    3 ай бұрын

    꼭 가보고 싶은던 곳 다녀왔습니다. 추천여행지 입니다

  • @popokorea
    @popokorea3 ай бұрын

    회룡포 안보셨다면 꾀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 @youtubeaction1

    @youtubeaction1

    3 ай бұрын

    정말 산수가 특이한 곳입니다 꼭한번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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