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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완전 | 교리컴뱃 구원론 몰아보기

교리컴뱃은 이츠학과 아델포스가 함께하는 평신도 교리문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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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츠학멤버십
/ @aqedah
김요환 목사(아델포스), 기독교대한감리회 구성교회
경기 용인시 기흥구 연원로 8(마북동), 수인분당선 구성역 도보 5분
#김요환목사 #교리컴뱃 #아델포스
00:00 시작
00:11 타락과 구원
02:58 구원론
11:17 성화론

Пікірлер: 11

  • @user-ik1pm9xt1g
    @user-ik1pm9xt1g10 ай бұрын

    장로교 청년 평신도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었고 구원의 취소까진 아니지만 악한 나의 행실을 볼 때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수 년을 그런 고민 속에 살다가 이 지점까지 이르게 되었네요. 마음에 울림을 주신 영상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교단에 치우치지 않고 본질은 일치로, 비본질은 자유로, 모든 것은 사랑으로 완전 성화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Martin-mh4my
    @Martin-mh4my17 күн бұрын

    마이클 호튼은 장로교 신학자이며 말씀하신 구원론은 예정에 근거한 칼빈주의 교리인데... ㅎㅎㅎㅎㅎㅎ

  • @OncebestMasterYi
    @OncebestMasterYi10 ай бұрын

    저는 장로교인입니다. 아델포스님 이츠학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성경난제 라던지 더 다양한 주제 다뤄주세요~

  • @wlrl-df5cm
    @wlrl-df5cm11 ай бұрын

    저도 바른 구원론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김영현님 구원론이 문제가 있어서 바른 구원론, 예정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댓글을 적습니다. 김요환 목사님 이츠학 목사님 좋은 강의감사합니다. 예정론을 사람들이 되게 오해도 많이 하고 어려워 하는데 어려울 수는 있으나 잘 이해하고 공부하면 됩니다. 예정론에 대해서 풀기에 앞서서 알기 쉽게 말씀드리면 두 가지의 섞일 수 없는 논리구조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하나는 인간의 공로가 구원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구원 이라는 이단적 주장입니다. 이 두가지 논리는 절대 섞일 수 없습니다. 예정론에 대해서 풀어보자면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선물이지요. 그래서 오류와 실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예정 작정하심으로 인간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인간의 행위로 절대 구원이 좌지우지 될 수없고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 예정하심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번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류와 실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택자를 정확히 오차없이 모두 구원하시는데 그럼에도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택자들,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으시고 유기하신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이중예정이지요. (웨슬리는 이중예정이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감리회의 교리와 장정에 넣지 않습니다. 칼빈은 이중예정을 지지하고 저 역시 이중예정을 지지합니다. ) 그리고 이어지는 논리는 이렇게 택자와 비택자가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이를 위해 죽으셨다는 만인구원이 아니라 택자들을 위해서만 죽으신 것이여서 제한 속죄가 맞는 것입니다. 이 예정론의 필연적인 논리구조는 절대 행위구원, 구원취소, 예지예정과 같은 논리인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끼친다는 논리와 절대 섞일 수 없습니다. 반대로 행위구원의 논리를 보자면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끼치고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끼치니 내 의지로 구원을 받았다가 버렸다가 하는 구원취소 논리로 나아갑니다. 이런 행위구원에 엮여있는 논리는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여서 예정되어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논리와 반대되는 이단적 주장입니다. 예지예정도 볼까요? 누가 믿을지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후에 구원을 베푼다. 이것도 인간 행위가 구원에 개입한다는 주장이죠. 알미니안이 이 주장을 합니다. 이단적 주장이지요. 역시 행위구원과 연결되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구원취소의 논리는 구원을 마음대로 받았다가 버렸다가 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 말은 즉슨 예수님께서 모든 이를 위해서 죽으셨다 라는 만인구원의 논리와 이어집니다. 모두를 위해서 죽으셨고 인간의 행위로 그 구원을 받을 수도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인데 이 역시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선물과는 반대되는 이단적 주장이지요 이렇게 전적인 은혜 vs 행위구원, 구원취소의 논리는 절대 섞일 수 없고 대립됩니다. 그런데 ftner 김영현님 주장을 보면 1.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지지한다 2. 예지예정을 지지한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지지한다. 4. 구원취소를 지지한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제가 말했듯이 앞뒤가 안맞는 모순적인 주장이죠. 구원은 전적인 은혜를 말하면서 그 논리에 반대에 있는 구원취소를 지지하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면서 또 반대에 있는 행위구원의 갈래에 있는 예지예정을 지지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인간의 자유를 절대 통제하는 것을 지지한다. /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통제하지 못하시고 휘둘리신다. 이런식의 앞뒤가 맞지않는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구원취소를 주장하면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필연적인 논리구조, 예정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니 위와 같은 모순되는 주장과 김영현님은 "계속 사람들이 나에게 행위구원자라고 프레임을 씌운다." 라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말했듯이 바른 예정론에 대한 이해없으니까 저렇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김영현님에게 행위구원자라고 프레임을 씌우는게 아니라. 김영현님이 구원취소와 예지예정을 지지하니 이어서 행위구원적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왜냐면 앞서 말했듯이 같은 필연적인 논리구조에 있는 구원취소를 주장하기 때문이지요. 행위구원과 구원취소, 예지예정 모두 인간의 공로가 구원에 영향을 끼친다는 논리에 함께 걸려있는 같은 논리입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김영현님은 구원론에 바른 이해도가 없으니 1.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되는 주장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주장하면서 그것과 절대 섞일 수 없는 이단적 주장인 구원취소, 예지예정 등을 지지함.) 2. 구원취소, 예지예정 등 이단적 주장 3. 웨슬리가 예지예정, 구원취소를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오해 (웨슬리는 구원은 전적인 은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주장하고 구원취소, 예지예정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예지예정은 알미니안이 주장하는 겁니다. 웨슬리는 알미니안주의의 요소가 있을 뿐 알미니안이 아니라 칼빈주의와 매우 가깝습니다.) 4. 사람들이 나에게 행위구원이라고 프레임을 씌운다고 착각함. (사람들이 프레임 씌우는게 아니라 김영현님 주장은 구원취소를 주장하는 행위 구원이 맞습니다.) 아무튼 이런 것들에 빠져들어가 있는 겁니다. 김영현님께서 구원론, 예정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저런 모순된 이단적 주장을 하고 계신거에요. 그리고 김영현님과 함께 나오신 분도 구원취소를 이단으로 말하기 어렵다. 하시는데 구원론에 이해도가 없는겁니다. 더 하여서 감리회, 성결회는 장로회와 구원론이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흔히하는 오해입니다. 감리회 성결회 장로회 침례회 구원론이 모두 같습니다. 구원론이 다르면 이단입니다. 한 성경에 한 구원론이 있지요. 일단 여기까지 예정론과 행위구원 논리 그리고 ftner가 왜 이단인지를 정리했고요.

  • @wlrl-df5cm

    @wlrl-df5cm

    11 ай бұрын

    예정론이 나올 때 사람들이 흔히 물어보는 질문 몇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1. 이중예정은 사랑의 하나님을 부정한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을 유기하실 수 있나 (영상에서 김영현님이 이렇게 주장했죠.) 이것은 되게 오만한 생각입니다. 내가 판단하겠다는 선악과를 먹은 타락한 본성을 드러내는 거죠. 마치 본인이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을 판단하겠다는거죠. 이중예정이 사실인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인이 규정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중예정하시는 것을 감히 피조물로써 그게 무슨 사랑이냐 라고 따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이십니다. 2. 웨슬리는 예지예정을 주장하고 구원취소를 주장한다. 이것도 흔히하는 오해입니다. 웨슬리는 행위구원, 구원취소 갈래에 있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웨슬리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웨슬리는 이단이겠지요 그러나 웨슬리도 칼빈과 같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주장합니다. 예지예정을 주장하는 건 알미니안 입니다. 웨슬리가 알미니안 요소가 있는 것이지 알미니안이 아닙니다. 웨슬리는 칼빈에 매우 가깝고 구원론이 같습니다. 견인교리나, 이중예정, 성화에 대한 부분은 조금 다르지만요. 3. 예지예정과 예정예지 예정예지 -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구원이 미래를 보실 수 있는 즉, 예지보다 앞섭니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예정예지를 지지하지요 이유는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기에 예지예정처럼 인간의 공로를 먼저 보고 후에 구원을 베푼다는 주장은 행위구원의 갈래에 있는 이단적 주장입니다. 예지예정을 볼까요? 예지예정 - 예정예지와 반대되는 예지예정이 왜 잘 못되었는가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 믿을 자들을 먼저 아신 후에 구원을 베푸신다는 개념인데 이것은 인간의 공로가 구원에 영향을 끼친다는 소리이죠. 그래서 알미니안이 이단인겁니다. 알미니안이 이 예지예정을 주장하거든요. 또 흔히 오해하기로 웨슬리를 예지예정으로 오해하는데 웨슬리는 예지예정이 아닙니다. 만약 웨슬리가 예지예정이라면 이단이지요. 그러나 웨슬리도 종교개혁자들 처럼 전적인 은혜로 받는 구원을 주장하십니다. 영상에서 ftner 김영현님께서 이 두 가지 오류 모두를 범하시는데 1. 이단주장인 예지예정 지지 2. 웨슬리는 예지예정이라는 오해 이 두가지의 잘 못된 이단적 의견을 예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단이라는 논란은 계속되는거죠. 4.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말하면 구원 받았으니 막살아야지 라고 하니까 구원취소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은 바른 구원론입니다. 그걸로 인해서 막 살아야지 라는 무리가 나와도 구원취소라는 잘 못 된 것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구원취소는 이단이니까요. 그래서 구원취소돼 처럼 이런식으로 행위구원론적인 이단적 사고로 가르치고 빠져들게 하지 말고 바른 구원론을 담지한 언어를 써야합니다. "너의 그런식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지 아닌지 점검해봐." "너는 애초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일 수 있어!" 라고 권면하고 가르쳐야합니다. 또 한구영구이지만 인간의 육안으로는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구원을 점검해야합니다. 성령님을 받은 자 답게 구원 받은 자 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점검하고 깨어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한구영구니까 막살아야지라는 구원파적 주장은 애초에 구원 받지 못했거나, 구원파 이단이거나 아직 성화받지 못했거나 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구원을 점검하라고 권면 해야겠지요. 어찌 무겁게 받은 감격의 믿음인데 하나님 앞에서 한구영구니깐 죄짓고 막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겠습니까 5.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면 막살아도 되지 않나요? 막 살 수없지요. 구원받았다는 것은 성령님을 받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님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막 살 수 없다. 죄를 지어도 근심하고 죄를 끊어내려고 할 것이다. 진정으로 구원받고 성령님 받았다면 말이다. 만약 한구영구니까 죄 짓고 막 살아야지 한다면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자일 가능성이 높다. 구원의 점검을 해봐야하고 구원받은 자로써 성경을 배우고 점점 성화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마저도 전적은혜이지만. 6. 성경에 구원취소를 말하는 것 같은 구절은 어떻게 해석 해야하는가 쉽습니다. 그런 구절은 구원취소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겁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은혜, 한구영구, 제한 속죄, 이중예정이 사실이고 구원취소와는 섞일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에 그 반대의 구원취소로 해석할 필요없고요. 그래서 바울도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담지하고 쓰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바른 구원론, 예정론을 담지한채로 구원에 있어서 깨어있으라! 점검하라! 구절로 잘 해석하면 됩니다. 7. 앞서 말했지만 믿음이 있다고 하는 어떤 사람이 너무 그릇된 길로 간다면 바른 구원론에서 권면을 하자면 "너 그러다 구원취소돼!" 라고 말하면 안되고 "너 애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 구원을 깨어서 점검해."라고 해야한다. 근데 아르미니우스 복음주의에서는 구원 취소, 구원 탈락의 의미를 구원이 정말 취소된다, 칭의 취소를 말하는의미로 쓰는게 아니라 칼빈이 말하듯 애초에 구원 받지 못한 것 아니냐?, 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냐? 라는 의미로 쓴다고 하네요. (근데 개인적으로 이런 언어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안그래도 예정론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바른 의미로 이런 구원취소라는 용어를 쓴다해도 사람들은 이단의 주장의 구원취소로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엄청 많아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익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 @user-bg3wy9jm5m
    @user-bg3wy9jm5m4 ай бұрын

    반갑습니다 장로교 성도 입니다😊 감리교는 목사님 통해 처음 만나보는데 장로교와 낯설지 않네요? (영상통해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원 취소 주장은 반쪽짜리 주장이라 생각 합니다 완전해 질려면 "한번 구원 취소는 영원한가?"의 답과 같이 주장해야 완전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구원취소도 취소 되어야 겠죠 그들 주장대로 라면 행위로 구원 취소 되었으니 행위로 구원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지 않습니까? 구원이 회복 될려면 예수님께서 또 오셔서 십자가에 또 달리셔야 하는데 심지에 구원 취소 회복이 반복 될테니 몇번이고 계속 오셔야 하는데 이건.. 구원 취소가 될려면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경찰서에 안들어갈 정도만 되면 될까요? 아니죠 기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가 없다함은 7일된 소의 흠 없음 입니다 여기 해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성도들이 구원이 취소될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먼저 구원 취소 되었을 겁니다 "그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자는 영광의 찬송의 자리로 이끄신다"는 빌립보서 말씅을 믿으며 죄악을 반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손 놓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가신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오늘 우리 구원 받은 성도에게도 일어 나고 있음을 믿으며 구원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두들 되길 소망합니다 구원 성도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은혜로 영광의 자리까지 이끌려 가고 있는 것 입니다

  • @user-gn9cu4hg7w
    @user-gn9cu4hg7w11 ай бұрын

    if ..... 아델포스와 에프터너의 토론을 상상해보았다

  • @jesusholy4344
    @jesusholy4344Ай бұрын

    혹시 세례가 죄를씻거나 구원에 필요/중요하다고 믿나요?

  • @user-lo8ts8eq5u
    @user-lo8ts8eq5u10 ай бұрын

    지린다 아델포스 최종보스 🎉🎉

  • @user-yc1ph6lv9u
    @user-yc1ph6lv9u11 ай бұрын

    공개토론에서 구원론에 관해 김영현은 변승우(이단)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엠마오님은 이단은 아니라고 하시네요. 이츠학님과 아델포스님이 FTNER에 대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단체인지 점검 좀 부탁드려요. 홀리컴뱃 참가자들마다 입장이 달라서 혼란스럽습니다.

  • @user-qs9zj1om5w
    @user-qs9zj1om5w11 ай бұрын

    잘 들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가르침은 이럴껄 저럴껄 껄껄껄 론 론 룬이 아닙니다 다나까 입니다 예수님도 맞다 틀리다 라고 하라 했습니다 아마도는 없습니다 또한 종교 개혁자들이 한말들은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절대적 기준은 성경 말씀 입니다 문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봉함이 된것을 모르니 론 론 껄껄껄 아마도로 논쟁을 하고 상대방을 서로 정죄를 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의 새언약 계시록을 가감하면 천국에 못 들어가고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계22,18~19 또 하나님의 뜻은 계시록에서 완성되고 6000년 역사를 끝내십니다 마7,21~23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는 때가 있고 약속을 이루는 때가 있습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은 도의 초보이며 약속이 약속대로 이루어진것을 보고 만지고 아는것이 하나님께서 인정 하시는 구원이며 은혜 이며 영생 입니다 사46,10~11 창1,1 요1 ,1 요19,30 요14,29 계21,6~7 계21,1~4 계22,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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