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는 일본과는 다르다.

과거없는 미래는 없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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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53

  • @user-ig8wl2hs8r
    @user-ig8wl2hs8r24 күн бұрын

    왜는 바닷가나. 큰강을. 끼고 사는. 동이계. 여러. 부족을. 부른 명칭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왜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감사 합니다❤

  • @jasonckks7295
    @jasonckks729524 күн бұрын

    이런 내용은 널리 공유되고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제대로 관련해서 연구를 했으면 좋겠네요 자기가 공부한 내용이 너무나 사실과 달라도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보네요

  • @user-tb7jn8fr4e
    @user-tb7jn8fr4e24 күн бұрын

    우리 민족의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고 알도록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지속해 주시면 너무너무 감사하겠습니다

  • @happy-rich_5
    @happy-rich_524 күн бұрын

    당시 왜의 위치 지도를 인용하여 설명을 하시니 명쾌하네요

  • @manyounglyu4245
    @manyounglyu424524 күн бұрын

    수고에 김사드립니다

  • @user-dw9hq1ql7d
    @user-dw9hq1ql7d24 күн бұрын

    쿠릴타이~ 존경합니다. 당신이 있어 우리가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가 눈을 뜰 때 세상이 달라집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24 күн бұрын

    강화는 호광성 남단 끝에 대명여지도 중중기본까지 표기. 이후로 삭제되었다가 대만 군사지도에 다시 표기됨.

  • @happyhan608
    @happyhan60824 күн бұрын

    😊👍

  • @user-rj2vl4db5d
    @user-rj2vl4db5d24 күн бұрын

    쿠릴타이선생님 수고 많으십니다.

  • @heontaekim8829
    @heontaekim882924 күн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히 잘보고있습니다.

  • @donyullee853
    @donyullee85324 күн бұрын

    너무 재밌습니다

  • @user-li4lg7xd7c
    @user-li4lg7xd7c24 күн бұрын

    수고하셨습니다ㅡ쿠릴타이도 애국자 역사가 반열에 들어가게 되어 기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24 күн бұрын

    고려의 속주였던 강주는 대명여지도 초기본에서 삭제.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24 күн бұрын

    고려도경의 래주,등주는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에서 삭제. 이후의 자료표기는 방위각만 참고.

  • @hayeonkim7838
    @hayeonkim783824 күн бұрын

    오늘도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정말 유익하고 도움되는 정보 영상 진심으로 많이 감사합니다 ㅎㅎ

  • @HOONMOKMOON
    @HOONMOKMOON22 күн бұрын

    항상 공부 많이 하시고 이를 널리 알려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24 күн бұрын

    서안평은 대명여지도 중초본에서 이동후에 도착지에서 삭제.(대하을 건너지 못한것이 문제가 됨)

  • @user-qx3ey3so6b
    @user-qx3ey3so6b24 күн бұрын

    그시대야마토정권정은이니거갔습니다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24 күн бұрын

    대명여지도 초중본 유주가 도착하지 않음.(늦여짐) 대명여지도 중중초본 상도가 도착함.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24 күн бұрын

    요서와 요주가 산서에 도착 (초중본)

  • @jjj8542
    @jjj854224 күн бұрын

    한자어휘 발음 대부분이 바로 당시 오월지역에서 나왔지요.

  • @simhopp

    @simhopp

    6 күн бұрын

    한자어휘 발음이 오월지역에서 나온게 아니고, 그게 원래 한나라때 발음인데, 중국 장강 북쪽은, 선비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 들이 차례로 정복하고 각각 수백년 동안 다스리면서, 북쪽의 발음은 계속 변하고, 그나마 수나라, 당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의 영향력이 덜한 장강 이남 지역은 원래의 발음이 덜 변한거임. 북방 이민족이 쳐내려올때 마다, 상류 지식인층은 남쪽으로 피난했고, 농민들 같은 못배운 사람들만 북쪽에 남았기 때문이지.

  • @Drunken傀儡썩을윤
    @Drunken傀儡썩을윤24 күн бұрын

    그럼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고대 역사는 모르게 되는 거네요 한반도의 흉노/스키타이 유적 유물이 말 해주는 건 흉노족이 들어 왔단 것인데... 일본 열도의 고분 시대 유적 유물은 반도 남부인들이 건너갔단 것인데... 기록에선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니...

  • @simhopp

    @simhopp

    6 күн бұрын

    일본에서 초대형 고분, 초대형 석조 유물들은, 수천년도 더된 조몬의 문화임. 나중에 야요이 도래인들이 이미 존재하던 고분을 도굴하고, 그걸 다시 자기들의 무덤으로 전용한것이지, 야요이 인들이 처음부터 만들어 낸건 아님. 그게 도래인들의 문화라면, 대륙에도 비슷한게 남아 있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지. 중남이 아즈택, 마야 문명 유적들도, 수천년전에 건설된것에, 그 사람들이 사라져 버리고 천년후 다른 민족들이 와서 남아있던 유적 위에 자기들이 증축한것이 대다수.

  • @user-db2mm7og6f
    @user-db2mm7og6f19 күн бұрын

    신라 사관. 거짓은 다 죽는다. 백제는 한반도에도 있었다.

  • @outerlevi6254
    @outerlevi625418 күн бұрын

    중국 대륙에 아직도 와족이 있는데, 키가 작음.

  • @jaydo8421
    @jaydo842121 күн бұрын

    제가 주구장창 주장한 내용 중 일부를 말씀 하시는군요. 다만 왜는 삼한과 연관이 없습니다. 언어도 너무 다르고 이 왜는 월나라를 일컷는 말이고 이 월이 중국어로 위에 동이가 말하기를 다시 단음절로 왜라는 한자 단어로 멸칭 한것입니다. 의자왕 시절 대만은 백제의 지배하에 있으니 말씀 하신건 설득력이 없습니다. 또한 월, 즉 왜는 한반도 서남부에 진출 전방후원분과 옹관묘제를 남겼고 일본열도에 같은 묘제와 전방후원분을 남기게 됩니다. 왜는 백제의 동맹제후국으로 말씀 하시는것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부분이 많은듯 합니다.

  • @simhopp
    @simhopp6 күн бұрын

    일본인들이, 요즘 자기들 조상이 오나라 월나라 에서 온 피난민 들이라고 우기던데. 그런데, 만약에 일본인들이, 양자강(장강) 남쪽 오나라, 월나라 출신들 이라면, 그들이 광동어 같은 동남아계 언어를 써야 정상이다. 왜 일본어는 한국어 같은 문법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지.

  • @user-lt1wi8ec9k
    @user-lt1wi8ec9k24 күн бұрын

    《진서》에 의하면 "왜인은 대방 동남쪽 큰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고 하였습니다. 그때의 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열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방 동남쪽 왜란 말은 왜의 서북쪽에 대방이 있다는 뜻으로 오늘날의 산동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happy-rich_5

    @happy-rich_5

    24 күн бұрын

    해 海는 당시 바다가 아니라 황하와 같은 큰강이나 호수를 해라고 했습니다 지금 북경지도를 함보세요. 자금성 주위에 북해北海 중해中海 남해南海가 보이실겁니다요 ❤ 해海라는 호수가 다수 보이시죠?

  • @jayyoo906
    @jayyoo90624 күн бұрын

    나는 같다고 본다. 일본어 철자는 5세기 상하이 지역에서 중국 왜중이 유입하면서 불경을 일본 왜인들에 설명하기 위한 발음 부호를 만들었다. 한글편제보다 700년 앞 선 이유다.

  • @user-xe8xt4kb5u

    @user-xe8xt4kb5u

    24 күн бұрын

    일본문자는 이미 신라의 각필구결 사용이 먼저일텐데?

  • @simhopp

    @simhopp

    6 күн бұрын

    한자어휘 발음이 오월지역에서 나온게 아니고, 그게 원래 한나라때 발음인데, 중국 장강 북쪽은, 선비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 들이 차례로 정복하고 각각 수백년 동안 다스리면서, 북쪽의 발음은 계속 변하고, 그나마 수나라, 당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의 영향력이 덜한 장강 이남 지역은 원래의 발음이 덜 변한거임. 북방 이민족이 쳐내려올때 마다, 상류 지식인층은 남쪽으로 피난했고, 농민들 같은 못배운 사람들만 북쪽에 남았기 때문이지.

  • @Kampfgruppe9260
    @Kampfgruppe926024 күн бұрын

    신작 소설이냐...

  • @holicsoo4431
    @holicsoo443124 күн бұрын

    펌글 1925년 한참 대륙을 석권하던 시절 왜는 동시에 일본열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이때 대규모로 대륙 동부지역 사람들이 유구제국을 그 훨씬 이전 시대에 제압한 것은 일본열도로 들어가기 위함이었고 일본열도 자체가 유구국의 영역에 속하는 땅이었기에 왜제국은 유구국을 합병한 것이다. 이때 당시 유구왕국은 환태평양문화권과 조선의 유교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였다. 페리제독이 왜에 개항을 요구할 때 먼저 유구국을 거쳤다고 나온다. 당시까지만 해도 유구국은 독립 국가였다고 페리제독은 증언하고 있다. 왜가 지금의 남경에서 가장먼저 한일이 유구국 침공이었다. 그 점령은 곧 일본열도로의 진군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구제도를 이용해 일본열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열리고 이때 일본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토착민들을 포섭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본열도의 사무라이 집단과의 전쟁을 묘사한 사건이 ‘라스트 사무라이’의 영화 내용이다. 대륙의 근대화된 왜 제국군과, 아직 활 쏘고 칼 휘두르는 전쟁문화를 가진 일본열도 토착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서 결코 근대화된 왜 제국군은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군대가 아니다. 이 왜 제국군들은 복건성 일대에서 발흥하여 대만에서도 호응을 하여 이것이 왜 제국의 근간이 되었고, 이때 산동성의 왜 세력은 없어지게 되었다. 산동성의 왜는 임진왜란 이후 토요토미 가문이 덕천가문에 의해 붕괴되어 왜의 중심지는 남경 덕천가문의 중심지로 옮겨지고 산동성의 왜 세력은 거의 없어지고 조선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덕천가강이 왜 이렇게 했을까? 덕천가강은 조선의 충실한 신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도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중심지였던 남경을 에도라고 발음하는 것도 현대 일본어이고 당시 강도 江都라 불린 지역이 이 남경이었다. 1912년 지금의 북경에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중화민국의 남쪽수도를 남경이라고 지칭할 때 일본열도로 아주 일본이 옮겨졌다. 에도막부의 에도는 오도吳都에서 나왔으며 고또江都와 에도吳都를 같이 썼다. 오나라수도가 에도이며 왜는 오나라를 기반으로 한 나라였고 이들이 역사상의 왜이며 왜였고 왜 지역을 침공한 동아시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해적들이 왜구들이었으며 이들을 제압하고 다스리라는 뜻으로 막부에게 평남대장군이라는 직함을 조선에서는 보냈던 것이며, 이 직함 하나로 강호 지역을 평정하게 되니 우리가 중국 무협지에서 강호를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본장군이 그 지역 무사들을 제압하고 우두머리가 되어 조선조정에 충성한 것을 후에 무협지 작가들이 중국의 옷을 입혀서 써낸 소설이다. 강호를 떠돌았다고 하는 무협지의 이야기는 미야모토 무사시 등의 일본무사들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강호의 무사들은 왜 무사들이었고 이것을 일본열도로 옮긴 왜 세력들은 일본열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이 남색을 즐겼다는 기록이 결국 대륙에서 있었던 남색열풍에 편승한 성 풍조였고 이 왜의 성 풍조는 후에 일본열도로 옮겨져 역사가 된 것이다. 당시 대륙 동남부 사람들은 혼도시를 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왜 사무라이 머리는 대륙남부 사람들의 풍속이었다. 원래 왜구들은 머리를 산발한 해적들이었다. 그러나 대륙 왜 사람들은 조선의 풍속을 따라서 상투를 틀었고 그것을 투구를 쓰는데 편리하게 변발 비슷한 앞머리를 깎아 낸 것이다. 왜가 대륙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머리를 했던 것이다. 왜 무사의 그 상투 머리는 대륙의 풍속이었고 상투는 조선의 풍속, 그리고 앞머리를 깎아 버리는 것은 대륙조선 북쪽 올랑해의 풍속이었다. 이들이 이런 상투를 잘라버린 것은 조선을 버리고 서구열강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선언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때 상투를 제거하였다. 중국에 새로운 혁명정부가(1911년 신해혁명) 들어서자 메이지정권은 대륙의 일부지역과 대만을 남겨둔 채 일본열도에서 본격적으로 일본시대를 열게 된다. 이 영향으로 대만은 친일국가가 된다. 대만의 1.21사태는 이런 친일토착민들이 대륙의 중국정권에 대해 반기를 든 사건이며 이때 대륙국민당군대는 학살을 하여 전에 왜인이었던 사람을 제압한다.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어서 대만사람들이 비록 대륙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에는 왜식 이름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대만은 친일국가이다. 대만은 유구왕국의 일부였으며 장개석이 대륙에서 쫓겨 오기 전까지는 왜 땅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 주도 하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이등휘 총통이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했던 것이다.

  • @user-qd1uc3rl1d

    @user-qd1uc3rl1d

    24 күн бұрын

    ????

  • @holicsoo4431

    @holicsoo4431

    24 күн бұрын

    10번읽으세요 안되면 100번 모든 시작은 아편전쟁으로부터~ 명태조고황제 이성계 청태조누루하치 인조대왕

  • @user-qd1uc3rl1d

    @user-qd1uc3rl1d

    24 күн бұрын

    @@holicsoo4431 댁이 제정신이 아니셨나 봐요

  • @holicsoo4431

    @holicsoo4431

    24 күн бұрын

    @@user-qd1uc3rl1d 댁이 공부한 역사책이 조선총독부가 만든거요 조선총독부가 만든 역사는 지식이 아니라 쓰레기요 아니면 공천단? 한글을 아는 짱께이?

  • @user-qd1uc3rl1d

    @user-qd1uc3rl1d

    24 күн бұрын

    @@holicsoo4431 이상한 소리나 하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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