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학/루돌프 스타이너/독일 관념론/몸/혼/영/영혼/영적인 눈/감각세계/혼백/자기의식/의식혼/영적자아/세계영혼/윤회/에테르체 인간 오라/카르마/불타는 욕망/연옥/원초형상

우리는 광활한 우주를 떠도는 한 점의 창백하고 푸른 별, 지구에 살고 있다. 인간은 동식물과 같은 피조물로서, 대우주의 미세먼지 같은 존재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먹고 마시고, 보고, 입고, 만지는 감각세계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사람은 외부대상을 감각 인상과 느낌과 사유라는 세가지 방식으로 자신과 연결시킨다. 인간은 감각인상이 주도하는 몸과 느낌과 의지가 주도하는 혼 그리고 진리에 대한 사유가 주도하는 영의 결합체입니다. 육체로서의 몸은 단순한 광물체이지만, 에테르체가 감각기관을 열게 되면 생명체로 변화되고, 몸은 외부대상으로부터 색깔과 소리, 냄새, 맛, 촉감이라는 감각적 인상을 얻게 된다. 몸은 이러한 감각인상을 혼에게 전달한다. 혼은 그 인상을 본능과 충동, 느낌과 같은 감각내용으로 바꾸어 기억속에 간직한다. 한편 영은 전생에서 유산으로 받은 진선미에 대한 사고내용을 혼에게 전달한다. 혼은 영에게 자기가 체험한 감각내용을 전달하고 영으로 하여금 몸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같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몸과 영을 혼적인 생활로 만들어간다. 결국 혼은 몸과 영을 연결해주는 매개자이며 동시에 지상생활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은 전생에서 받은 진리에 대한 사유내용과 혼으로부터 전달된 몸에 대한 인상과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은 자신이 행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반추하고 사유함으로써 혼에게 진선미의 영원한 법칙을 선물한다.
몸과 혼과 영의 구성요소들은 다음 그림과 같다. 육체는 생명이 없는 광물체일 뿐이다. 광물체에 기와 숨을 불어넣어 생성된 것이 에테르체다. 생명력은 감각뿐만 아니라 영적 형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영의 에피파니를 표현하는 말이 에테르체이다. 인간 에테르체는 사고하는 영을 기준으로 조직되어 있기때문에, 에테르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초감각적인 현상을 인식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필요하다. 육체는 에테르체를 통해서 낮은 단계의 혼과 결합하는데 이를 혼백체라고 부른다. 결국 몸은 육체와 에테르체, 그리고 혼백체로 구성된다.
혼계에서 맨처음 형성된 혼을 감각혼이라고 한다. 감각혼은 본능, 충동, 느낌, 소망 등으로 채워져 있고, 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몸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된다. 그러나 감각혼은 몸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쪽으로는 직관의 문이 있어서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도 있다. 혼은 위쪽으로부터 직관을 통해 영계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아래쪽으로부터는 감각을 통해 물질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감각혼이 지속적으로 직관을 추구하는 경우, 진선미를 사고하는 오성혼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오성혼 역시 아직까지도 느낌, 충동, 본능과 같은 감각적 차원에 연루되어 있다. 즉 느낌에서 오는 좋음과 싫음, 공감과 반감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이기에 진리로 연결될 수 없다. 그럼에도 자기가 느낌으로 선호하는 것을 일단 진실한 것으로 여기는 습속에 매여 있다. 공감도 반감도 없는 진리만이 영원한 것이다. 그러한 영원한 진리 속에 사는 혼의 형태가 바로 의식혼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은 18세기 독일의 관념론자들이 사용하던 자기의식이다. 이는 자기가 자신의 생각, 감정, 의식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잘 알아차리는 절대의식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지점에서 독일어의 Ich, 나는, 몸과 혼의 껍질속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몸과혼의 작용을 샅샅이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형안자, 일깨워진 “나”로 규정한 것이다. 나를 영적자아, 혹은 영적인간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가진 자로 간주했다.
그런면에서 의식혼은 인간 의식의 핵심이며, 혼중의 혼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혼과 오성혼은 충동, 욕망, 격정 등과 같은 무상성과 덧없음이 아직까지 짙게 스며들어있다. 그러나 의식혼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자기의식이 작용하므로 몸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사고를 띠게된다. 이때부터 혼은 일시적인 느낌에만 몰두하지 않고 영원히 빛나는 진리와 영적인 질료들을 받아들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의식을 지닌 나가 영계의 주인공으로서 활약하는 것다.
내가 자기자신에게 나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나 자신을 관조하고 통찰하게 되고, 이 세상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는 나가 된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몸과 혼이라는 껍질에서 분리되어 점차 몸과 혼을 통제할 수 있는 주인이 되어간다. 이렇게 초감각적 인식능력을 가지고 몸, 혼, 영을 통찰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을 형안자라고 부른다. 형안자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명체의 기운인 에테르가 영적인 색채로 현시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오라이다. 인간오라는 활성화된 육체 주위에 뭉게구룸처럼 피어오르는 빛의 형상을 말한다. 오라의 색깔과 형상은 선천적 기질과 그 사람이 감각적 체험과 영적 체험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몸과 혼에 종속되면 될수록 나의 오라의 색채는 탁해지는 반면에 내가 몸과 혼을 잘 통제하면 오라의 색채는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몸과 혼은 하나의 도구로서 나라는 존재에 헌신한다. 그리고 나는 영에 헌신하고, 그 영은 나를 가득 채운다. 나는 몸과 혼이라는 껍질속에 살지만 영은 나의 속에서 살아간다. 영은 빛의 형태로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를 껍질 삼아서 그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는 내가 몸과 혼을 껍질 삼아 그 안에서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은 나를 내면에서 외부로 드러내고, 몸은 나를 외부에서 내면으로 형성한다. 이렇게 나를 형성하고, 나로서 사는 영을 영적자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영적자아와 의식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의식혼은 모든 공감과 반감이라는 주관적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서, 진리라는 빛이 비추기 시작하는 단계의 영적인 혼을 말한다. 영적자아는 일깨워진 나, Ich를 통해 진리를 자기 안에 완전히 내재화한 것을 말한다. 즉 영원한 진리가 나와 하나가 되면 나 자체가 영원성에 이르는데 이를 영적자아라고 한다.
몸은 육체라는 껍질 속에서 살고, 영적인간은 그의 영의 껍질 안에 산다. 몸이 육체에 에테르체를 결합하여 구축되듯이, 영의 인간은 영적 에테르체를 통해 구축된다. 이 영적 에테르체를 영적 생명이라 고 부릅니다. 따라서 영이라는 존재는 영적 인간, 영적 에테르체, 영적자아로 구성되어 있다. 혼이 우리 지상생활의 주인인 것처럼 자기의식을 가진 나, 일깨워진 나는 영의 나라의 주인이다.
육체적 현존은 자신을 바쳐서 몸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영과 혼이 활동하도록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 는 자신을 바침으로써 내면에서 영이 활동하게 한다. 영은 혼을 관찰하고 영적세계내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를 혼에 부여한다. 혼은 육체라는 물질안에 들어있지만 언제나 영의 세계로 가기위한 날개를 준비한다.
인간이 몸과 혼의 체험에서 얻은 인상은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지만 그 열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인상은 우리 무의식에 혹은 혼의 한구석에 잠자고 있을 뿐이다. 예를들어 우리가 어릴적에 습득한 외국어스킬을 몇 십 년동안 방치해두다가 다시 공부할 때 우리는 예상보다 빠른 시간내에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는 혼이 외국어 스킬을 몸속에 기억시키고 있다가 다시 시작할 때 영은 처음 배울 때보다 그 능력을 한층 더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생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감각체험은 기억 속에 사라져도, 그 체험의 열매는 영계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이러한 영의 기능 덕분에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감각체험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계와 나와 신, 그리고 나의 감각과 지성과 영성을 통합적으로 관조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혼은 어느 정도 숙명에 의존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영적자아도 마찬가지다. 영적자아는 나Ich라는 새로운 인생, 삶의 껍질을 쓰고 있지만 전생에서 겪었던 유사한 행위를 반복한다. 우리 육체가 지금까지 했던 습속에 따라 행동하듯이, 인간의 영 또한 현생에 살지만 전생에 했던 행위를 재현하려고 한다. 전생의 열매들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혼이 현생을 살면서 전생에서의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는 전생에서의 자신의 카르마가 같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혼이 외부세계에서 어떤 인상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떤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 이 모든 것은 전생에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에 달려 있다. 몸과 혼과 영 이 세가지가 한 인간의 출생과 죽음 사이를 거치는 노정에 모드 관여하고 있다.
몸은 유전 법칙을 따르고, 혼은 스스로 만들어 낸, 카르마를 따른다. 그리고 영은 윤회의 법칙에 따라 반복해서 갱신되고 다음생에 지상에 현시된다. 태어남과 죽음은 물질세계의 법칙에 따라 몸을 지배하지만 영은 결코 죽지 않는다. 영은 몸이 떠나간 뒤에도 계속해서 혼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영은 혼에 의해서 물질세계의 색깔로 채색되고 물질적 성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죽은 후에 혼은 몸과 분리되어 영의 세계에만 관여하게 된다.
죽은 후에도 혼은 육신적으로 현존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는 일정 기간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혼이 육신적인 것에 더 많이 매여있게 될수록 그 습속을 떨쳐내는데 드는 시간과 고통은 더 길어진다. 사실 우리의 욕망은 몸에서 일어나지만 혼이 개입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결과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사라진 이후에는 그 욕망이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큰 갈애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를 탐욕의 자리 혹은 불타는 욕망의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혼이 탐욕의 영역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니다. 혼은 점진적으로 반감을 공감으로 변화시키고 여러단계의 정화과정을 거친다. 혼이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물질적 습속으로 채색되었던 영 또한 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영은 사후에 윤회과정을 거치면서 현생에서 실행했던 영적활동의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고 갱신하여 다음 생의 물질세계로 가져갈 영적 질료들을 더 완벽하게 준비한다.
루돌프 스타이너의 윤회관에 따르면 몸과 혼과 영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의 고리에 의해서 묶여있어 다음생에도 그저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혼과 영은 끊임없이 갱신된다.

Пікірлер: 1

  • @user-bj5qn2kd2d
    @user-bj5qn2kd2dАй бұрын

    인간은 우주의 미세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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