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을 지켜낼 순간이 있었다 [신과함께: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김종필 1부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기획한 '4대 의혹 사건']
1부 보러가기: • 초대 중앙정보부장 JP, 그가 기획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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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ee4hq8wm9g
Жыл бұрын
역사에가정은 너들맘속으로나해라
@user-hp6bx5qg6e
10 ай бұрын
Jn7mnu4e😊h🎉88🎉
너무 재미 있네요😊
30분이 순삭. 현대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jp는 조연으로 다뤄져서 그 비중을 크게 못 느꼈는데 확실히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심인물중 한명이었구나를 느낄 수 있는 강의네요.
@user-fu8sb7uc7d
11 ай бұрын
올바른 역사의 진실를 통해 배우지몬함 이런류의 생각의 변화를 느낀다~ 라고 표현을하지 아님 이런류의 빨갱들의 새로운 거짓의 교묘한 선전선동 방식인가?
흥미진진 너무 재밌게 잘들었습니다.감사합니다❤
Wow! 정말 삼프로의 컨텐츠가 다양화 되고 질이 만이 향상되고 있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장하십니다. 앞으로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분석도 많이 해 주세요. 많이 많이 응원 합니다.
너무너무 재미 있습니다. 다음편도 빨리 나오길 기대합니다.
10.26 이후 12.12 이전까지는 권력의 진공상태 였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겉으로는 제일 힘이 세었을때였다. 정승화는 그런 국가의 위기때에 벌써 권력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JP가 이때에 전면에 빨리 나섰다면 정승화나 전두환도 강력하게 제지하지는 못했을 것. 왜냐? 그 시기가 권력의 진공상태였기 때문에. 정승화나 전두환이나 아직 정치인들이 아니었고 그냥 군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발언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음.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25:07 당시 JP는 민주공화당 평당원이 아니라 79년 11월에 공화당 총재로 복귀했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선출된건 그해 12월 6일이었습니다. 민주공화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이기도 했구요. 공화당 총재는 원래 박 대통령이 겸직하고 있던 직책이고 당수이죠. 말씀하신대로 79년 10.26 직후가 JP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아마 12.12가 없고 개헌을 통한 대선을 했으면 JP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때 이미 YS와 DJ는 분열할 기미를 보였고 박 대통령 추모 분위기와 여당 프리미엄으로 JP가 선거에서 이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kwanglee5142
Жыл бұрын
동의합니다. JP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읍니다. 전두환은 12.12사태 이후부터 힘이 세졌지 그전에는 그냥 합수본부장이었읍니다. JP는 79년11월에 승부수를 던졌어야 했어요. JP는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이 되길 원하지 않았겠죠. 그러니 낭만적인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듣는겁니다. 일단 권력을 쟁취하고 나서 자신의 국가경영 꿈을 펼치면 되는데 너무 이상에 집착해서 현실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렸죠. 유신헌법으로 대통령이 되면 박통의 잔여임기를 채우는거라 84년까지는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JP가 집권했으면 광주사태도 없었을겁니다.12월부터 정식대통령이되었으니 최규하같은 무능한 대통령이 아니어서 나라는 안정이 되었을겁니다. 야당의 양김이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이라고 반대운동은 했겠죠. 그래도 박통이 죽고난후이니 JP는 군부를 잘 다독여서 서로 윈윈하는 협상을 해서 나라를 안정적으로 끌고 갔으면 되었읍니다. JP의 한계!
@nasyonaru9333
Жыл бұрын
공감합니다.
박정희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경제 발전과 연관시켜서 해야죠. 정치를 위한 정치 이야기는 당사자들만 아는 거겠죠.
jp는 스스로가 1인자가 되고자 한 적이 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입니다. jp처럼 오랜 기간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2인자로 산 사람 없습니다. 그는 다른 정치인 처럼 돈과 권력에 미치지 않은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그를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 정치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는 말 같습니다.
JP는 서울의 봄때 움직였다면 충분히 권력을 잡을수 있었지만, 당시엔 선거를 통해서도 순리적으로 대권을 잡을수 있을거로 생각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신군부에 뒷통수 맞은 거여요
너무 재미있네요
우와 잼있다 ❤❤
재밌게 들었습니다
역전다방으로 박교수님 알게되었는데 깊은역사스토리 믿고듣게됩니다❤
재밌게 들었슈
진행자 세분 너무 잘하시고 박태균교수님 몰입감 ㄷㄷㄷ 3부 언제하나요
잘 들었습니다.. 근데 너무 짧아요 ㅠ.ㅠ 후속편 기대하겠습니다!~ ^^
마지막 빵 터졌어요 ㅋㅋ잼있게들 들었슈
박태균 교수님 나오는 방송은 들을 때마다 몰입이 되는거 같습니다. 잘봤습니다
👀몰랐던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좋은 말씀에 감사하며 시청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벌써 40년이 넘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이 멀리서 생각하고 판단할 때는, 당연히 상황적으로 모든 게 신군부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최규하를 차기/임시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신군부가 계획한 것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JP에게도 여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 그 당시 JP와 가까운 관계였던 사람들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10.26 사태 전후해서, 불확실성이 매우 컸던 시기였기에, JP가 어떤 결정을 했어도 그 결말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 시기가 JP에게는 최고권자가 될수 있는 거의 마지막 유일한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며, JP 스스로가 최종 결심을 망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JP와 가까운 사람들이 허탈해하며 불평들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JP의 위상으로는, 본인이 대통령 출마한다는 선언한마디가, 없던 세력들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엄청난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개인적 판단으론 아마도 JP가 공백기 때문에, 군 장악이나 군에대한 영향력 행사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JP의 낙천적 개인적 성향인데, 수십년동안 어쨋든 정치에 몸담고,국가 최고 권력주변에서 살아온 JP 스스로가, 강압적/ 독재적 방식보다는 보다 완성된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되길 원했고, 따라서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어떻게든 권력을 잡는다는 것보다는, 권력을 잡은 후 무엇을 이룰까하는 점에 보다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더구나 (부마사태가 박통몰락을 초래했듯이) 성장된 국민의식 수준에 비추어, 신군부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장기간 100%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겁니다. (궁극적인 민주화는, 단발성으로 그친 전통/노통 시기를 거쳐 비록 10년이 지체되었지만,) [신군부 세력]은, 어떤 의미에서 국가 권력공백시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된 군 세력이랄 수는 있겠지만, 준비된 정치세력은 전혀 아니었지요. 선배 장군들 다 몰아내고, 갑자기 영관급에서 장군된 사람들이, 사회/학계/기업들과 연줄을 맺기 위해, 각 대학 특수대학원 석사/연구 과정들에 입학해서, 교수 및 기업/경제계와 연관을 맺기위해 한꺼번에 몰리는, 희한한 현상도 벌어졌었고요. 시기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타도 독재를 외치던 70년대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JP의 인기도는 매우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90년대가 되니, 이젠 노쇠한 구시대 정치인으로 젊은이들에게 낙인 찍혔지만,
@kwanglee5142
Жыл бұрын
신군부에 대해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군부가 그렇게 지독하게 나올줄 몰랐겠죠. JP는 유신헌법이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 헌법에 의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YS-DJ가 야당표를 갈라먹으니 여당표인 자기가 유리할걸로 생각했겠죠. 그런데 12.12사태로 신군부가 대권까지 욕심이 있을줄은 미쳐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몰랐다면 순진했던거고 알고도 그냥 방관했다면 그냥 유약한 지도자인거죠. 79년11월이 절호의 기회였읍니다. 그때를 놓치니 끝난거죠. 11월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출마선언을 했더라면 당선확율은 70-80%는 되었다고 봅니다. 양김은 출마안할거고 최규하-김종필인데 두 후보 중에 누굴 찍겠어요. ? JP.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12.12 전까지는 힘이 세지 않았읍니다.
@velociraptor7871
Жыл бұрын
70년대 대학생에게 JP가 인기있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님. 박통과 JP를 한묶음으로 봤지, 분리할 이유가 없었음.
@JLee-hx8re
Жыл бұрын
ㅎㅎ 학생활동에 직접 연관이 없었던 사람들과 외부에서 얼핏 보고 판단하기엔,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겠죠. // 그러나, 참 오래된 이야기이나, 그 당시 대학은 연,고대, 서울대, 그리고, 특히 이념적인(?) 면에서는 서울대 사회학과가 꽤 데모에 연관이 많았었는데, 이게 바로 그들의 분석이었죠. 무조건 다 싸잡아 반대할줄 알았는데 JP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예상외의 내용이었기에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회학과에는 관련된 여러 연구기관이 있었죠) (예를 들어, 선배들은 정부에 들어가 학생데모 막느라 애쓰는 반면, 후배 학생들은 반정부/반 독재 데모에 몰두하느라 난리치고.).
@yyb7887
Жыл бұрын
@@velociraptor7871아니, 대학에 가서 특강도 하고 나름 인기 높았음.
@user-vu7og1gu2o
Жыл бұрын
육사 8기(정규 육사 1기) 부터 4년제 한국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기에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8기 정치 참여는 숙명이었다
결정적 찬스에서 단독으론 절대 루비콘강을 건너지 못하는 점이 바로 JP올시다!!
양질의 컨텐츠 감사합니다. 박교수님 자주 불러주세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삼프로는 1부 찾기가 어렵네요. 광고만 실을게 아니라. 댓글이나 본문에 1부나 2부도 링크좀 달다주세요.
꿀잼ㅋㅋ
안돼~~~~ 너무 진지한데 끊다니요😂 빨리 해주세요❤❤❤ 삼프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세분 같은 자리 뵈서 진짜 반갑구요 이런 고퀄리티를 무료로 안방에서 듣게 해주셔서 다시 한번 꾸벅 감사드립니다
너무너무 잼나네요😅
너무 재밌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들었어요 삼프로님과 박태균교수님 감사 드립니다.
삼프로 포에버~~❤❤
진짜 재미있네요
이거 나중 자료 사진, 영상, 도표등 보강해서. 확장판 만듭시다. 흥미 진진...
재미있게 보았네유~~~
내용도 좋고 초창기 삼프로 느낌도나고 좋네요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네오~~박정희편도 기다릴께요ㅎㅎ
매우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제이피님이 어떤분인지 좀 아는 시간이였습니디 감사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추억의 이름들이 많이 나오네요. 잘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흥미진진!!
JP 후속편 빨리 올려주세요
제임스하우스만은 하사관이 아니라 대위입니다 ㅋ
JP를 바라보는 제 시각이 바뀌는 걸 보며 나이들면 보수화 된다는 걸 실감합니다.
@NaNa-jd8sp
Жыл бұрын
원래가 ㅎㅅㅂㅈ or ㅅㄱㅂㅅ
@user-fm6po4py7u
Жыл бұрын
25에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25 이후에도 진보로 남는다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죠 1923년 월스트리트에 실렸던 말인데 지금 기준으로 50살 정도 봐야할까요? 50대 초반까지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후반부터는 국힘을 지지하니 말이죠
@user-yk3mz9tj3p
Жыл бұрын
@@NaNa-jd8sp 세상은 디지털처럼 0과 1로 보는 사람과 아나로그로 이해히는 사람의 차이일뿐.. 자신은 회색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의심해봐야…
@user-cv4cf1on3y
11 ай бұрын
나이가 들면 현명해지죠^^
@user-zs2rt4kr4v
11 ай бұрын
쿠테타세력들은 보수가 아니고 극우죠
귀한분이 나오셨네
너무너무 재밌게 들었슈!! ㅋㅋㅋㅋ 얼른 다음편 가져오슈!!
꿀잼
이야 박교수님 매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더 빛나는군요. 역전다방에서 볼때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정말 뭔가 있었던 사람.... 뭐 도움 받은 것도 없이 고생 직싸리 해도... 한번 지지한 사람은 끝까지... 정말 갓파더 이상이더라구요 그 분이 생각하신 의원내각제에 대해 뭔가 사료가 있으면 발굴 알려주세요
동아일보 보도에 사형구형! 무기징역 선고!의 기사가 있습니다. 확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1부부터 1시간 20분 정도 쓱 지나갔네요. 두 달 전인가 그날에서는 jp가 1인자가 될 수 있는 타이밍이 결과적으로 없었다라는게 합의점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서울의 봄 때는 미국의 견제도 있었다 이런 식의 의견을 들은 것 같은데) 교수님은 그 때가 유일했지만 있었다고 보시는군요. 박정희와 함께 시작한 516부터 야사 정사 가릴 것 없이 재밌게 들었습니다 ㅎㅎ
삼촌이 박통때 정보부에서 영어 통역관 이었다라고 들어서 재미있게 들었음, 평생 세번밖에 본적이 없지만.
잘 보고 있습니다.
참 쉽게 말한다.
역사에는 학자는 없고 평론가만 있다.
박정희편도 꼭 해주세요~~
79년봄 제가 공주고 3학년때 JP 선배님께서 두어달 교장님실에서 독서하시며 계셨습니다(가끔 월요일 조회때 훈시) 지금 생각하니 이해불가 입니다~~
@seomike9459
Жыл бұрын
쟁취하는 스타일이아니고 임명해주면. 움직이는 사람
박태균 교수님의 한국사가 고정프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연재 부탁드립니다 제발 ㅠㅠ
진실 위에 정의를 세워야지 정의 위에 진실을 세우면 안되겠조? 교수님?
근현대사의 그림자도 좋아요
@user-kg8zy1us7o
Жыл бұрын
지금도 똑같은데요..?
심지어 1212일어나고 5월까지 5개월이 넘는시간동안 jp와 ys는 쿠테타가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었음 그래서1212사태라 부르고 517군사반란이라고 칭하는거임 당시에 유일하게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게 DJ였어서 4월즈음 DJ가 군부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기자회견을 한번했음. 그러나 JP랑 YS는 말도 안된다고 취급했고 한달뒤 세명과 대한민국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어버림
항상 즐겨 시청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7:09 ---> 이 부분에 대한 참조사항. 최규하 대통령 당선은 12월 6일입니다. 12.12.쿠데타 이전이지요. 그때 JP는 거의 대통령은 따논당상이라 생각하고, 체육관 대통령이 아닌 국민 직선제 대통령이 되는 게 모양새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체육관 대통령은 최규하가 하고, 자기는 그 다음의 멋진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했다고 봅니다. 전두환의 야욕을 못 읽은 순진한 생각이었지요. 최규하도 대통령 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JP가 안 할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떠밀려서 나갔고요.
그러니까 전두환이 남자답게 확ㅡ권력을잘잡은거지
불세출의 천재 김종필
수준높입시다
제임스 하우스만도 다시 깊히 복습필요합니다.
재밌당,,,,,옛날 얘기 ㅋㅋㅋ
JP는 자기가 확실히 이긴다는 계산이 없으면 안 움직인거네요.
교수님 정말 고맙습다. 정말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어서. 잘 했으면, 상황이 달랐을텐데.
왼쪽 상부 정수리 인지 오른쪽 상부 정수리인지 가렵다.
한 인물이 국가미래의 주역이 될수 있고없고가 너무 중요한 시기에 주저했던 상황이 너무 아쉽게 느껴집니다.
JP가 통대선거로 일단 대통령이 되어서 권력을 장악했어야 함 우물쭈물 명분에 집착하다가 일생일대의 기회를 날리고 평생 2인자로 생을 마감한 JP
@kwanglee5142
Жыл бұрын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11월에 통일주체국민회의 즉 소위 체육관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어야 했읍니다. JP가 출마했으면 최규하와는 상대가 안되게 표를 얻었을겁니다. 유신체제가 막 끝난때라서 박정희의 그림자가 아직 짙게 남아있을때입니다. JP의 명분에 집착한 태도가 돌이킬수 없는 실책이 되었네요. 그뒤에 전두환도 체육관선거로 7년을 집권했읍니다. 체육관선거로 뽑혀도 7년이나 집권했읍니다. 물론 엄청난 국민 저항에 부딪쳐 결국 6.29선언까지 하게 되었지만요. 전두환이 아니라 JP가 집권했더라면 84년까지 박통의 잔여임기까지 했을거고 우리나라는 더 일찍 민주주의를 향유했을겁니다. 불행한 광주의 학살도 없었을것이구요. 12.12를 통해 등장한 신군부는 그전인 11월에는 힘이 없었어요. 11월에는 누가 선빵을 날리느냐가 중요한 곳이었는데 무주공산의 시기에 JP는 뒷짐만 지고 있었지요. 12.12를 결행한 신군부는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도 무력으로 민주주의 싹을 짓밟아야 했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을 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야당의 양김씨가 너무 군중들을 선동한 것도 신군부에게 구실이 되었지요. 원래 군부는 북한과 대치하는 국가의 상황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읍니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사북 탄광사태 등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죠. JP가 11월 출마하여 12.6일 체육관선거로 대통령이 되었으면 신군부는 그래도 야당보다는 여당이 집권했으니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되진 않겠다고 판단했을거고 정승화 체포동의도 JP와 원만하게 협의하여 순탄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두환이는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육참총장 정도 하고 명예롭게 전역하여 국회의원 정도 했겠죠. 신군부는 JP 대통령 아래에서 군내 주류로 성장하여 핵심보직 누리다가 전역하면 장관이나 뭐 국회의원 하고...그렇게 했겠지요. 신군부가 정규 육사 4년제 출신들이라 이변이 없는 한,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하는건 막을 수 없었을겁니다. 소위 똥별들이 아닌 사람들인건 맞습니다.
@kwanglee5142
Жыл бұрын
신군부의 집권이 그후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건 80년 광주 학살 때문입니다. 그것만 없었어도 국민들이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않았을겁니다. JP가 집권했으면 광주사태는 없었을겁니다. 광주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DJ를 구속시킨거 그겁니다.
선글라스 맨… 어디 록 콘서트장?
이런건 십부작 이상으로 미리 예고하고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 제 나이에 제이피는 이인자, 박정희랑 서로 잘 맞았... 삼김 이렇게만 들었지 아는게 하나도 없었어요 너무 재밌네요
한국이 의원내각제를 할 수도 잇었다? 라는 이야기네
요즘 MBC 고전 드라마 제1공화국부터 제2,3공화국까지 보는데 정말 그 시대상이 생각나서 공감하게 됩니다 ㅎㅎ
처삼촌이 한국최고책임자인데, 물리적인 희생을 당한겁니다, 군부도 책임이 반으로 갈려서, 한쪽은 숙청당하고있고, 거기에서 그동안 미국의 압박을 받았다던 jp가 지지자를 믿고 나서기에는, 너무 성급한판단이 되어버리는것은 아닐까싶기도합니다,
Jp는 본인이 쿠데타를 해본 경험으로 12.12때 권력쟁취 보다는 안위를 생각한게 아닐지…..
@kwanglee5142
Жыл бұрын
그러니까 JP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2%가 부족. 자신의 안위를 생각할게 아니라 승부수를 던졌어야지요.
그시대 엘리트들은 군인이었지. 그러다 기업인 엘리트를 거쳐 판검사 엘리트를 거쳐 요즘은 의사 엘리트. 나라를 허접 선동꾼이 아닌 엘리트가 운영해야함
옛날 50~60 년 대는 40대는 완전 할아버지였지요
박태균 교수님 얼굴이 JP랑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주변인들로 부터 JP 닮았다는 소리 좀 들으셨을 듯..) JP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물론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3자 입장에서 보면 박교수님의 김종필에 대한 평가에서 객관성을 훼손할 만한 호의가 느껴진다. 그런 bias 를 감안하고 비판적으로 내용을 들으면, 안타깝고 뼈아픈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재미있게 반추해 볼 수 있는 의미는 있는 것 같다.
박정희시절 나라가 발전할수 있었던 또하나의 원동력을 30-40대 젊은 브레인이 많았다는 겁니다 우리도 젊고 아이디어가 많은 인력을 나라에 더많이 자리를 주어 열정적으로 일하게 해야합니다
@antman4612
Жыл бұрын
노조와 민주당 등에 업은 40-50대 적폐세력부터 조져야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가죠.
@user-yv4rx3de3x
Жыл бұрын
이준석 말을 들어보면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정희와 레닌의 경제정책이 똑같았다고 서로 비교하면서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박정희식은 국가가 끌고 가는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합니다.
@kyuhoyang5485
Жыл бұрын
@@user-yv4rx3de3x 박정희와 레닌이 똑같았은데 결과는 어떻게 다르게나왔지요? 많은 와국의 석학들의 박정희식 경제 연구논문이 나와있으니까 그것들을 참조하셔서 의견개진하세요.
@aljja88ify
Жыл бұрын
브레인의 말뜻이 바뀌었나? 6,70년대 브레인이 많기는 커녕 경쟁 상대국에 비해 나은 수준이 아니었음. 브레인 많다고 나라가 발전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발전이 그렇게 간단하면 왜 우리보다 잘 살았던 아시아 다른나라는 그 모양일까?
@user-tj2hc8lj4i
Жыл бұрын
@@antman4612 노조와 시민단체들 싫어하는 모양인데. 이주 추천드립니다. 당신이 원하는 이상국가가 바로 위에 두나라나 있습니다. 가세요.제발. 제발.떠나주세요.당신같은 파쇼 전체주의자는 이 공동체에선 암적인 존재입니다.
혁명같은소리......
제임스 하우스만. 이 인물에 대해 더 알아야한다.
부싼과 청도의 차이지..
전두환 집권 초기에 "사회정화운동"이라는 미명하에 JP추종세력 숙청하고 나니 공직사회ㅡ공무원과, 공기업ㅡ에 승진의 광풍이 몰아친 기억이 새롭습니다. 요소요소에 JP지지세력 많았지요.
우리가 핫바지유...??
서산목장 뺏길줄 몰랐겠조.
박정희 김종필 욕하는 사람도 그들을 정확히 모르고 무턱대고 찬양하는 사람들도 정확히 모른다고 봅니다.
10.26.이후 당시 "체육관대통령은 안 한다"는 JP의 소식에 차암 철 없는 사람이다 싶었다. 권력은 일단 잡고 봐야되는 격동기였다.
참 귀엽다 여러분 jp가 지가 다했다는 것은 지말이고 dj에 속아서 대중이를 대통령만드는 실수를 했다는 것만으로 그리 똑톡하고 현명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여보 5기가 아니라 8기요 똑똑히 하시요
교수님이 추천하고픈 책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박 정희 JP를 말할때 일본의 36년 2 .26 사건이 빠졌습니다 박통과 그와 결이 같은 JP 외 인물 들이 2ㆍ26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2 26을 서로 논하며 쿠데타를 구상했다고 봄이 ...
가진 놈들 배운 놈들 중 상당수가 보수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네요
@overcome496
Жыл бұрын
학력 무관하게, 살면서 점점 배우고 깨닫다보면 성향은 다를지라도 정치관, 국가관은 일명 '보수' 쪽으로 가야한다는 걸 알게 됨.
JP는 그럴 기회가 없었지
박태균 교수님의 명강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10.26 직후라면 몰라도 12.12 이후 김종필이 운신할 폭은 제한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목숨을 걸고 쿠데타에 성공했고 그들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정적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아니라 자신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김종필였을 텐데 그냥 김종필이 폭주하도록 놔뒀을까요? 전 이 부분은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꺼라고 봅니다. 부정 축재자로 몰아서 숙청할 시기가 당겨졌겠지요
@kwanglee5142
Жыл бұрын
그러니까, 12.12 사건 이전에 김종필이 12.6 통일주체국민회의 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어야 한다는 논지이죠. 저 교수 말씀은요. 저도 그에 동의합니다. 10.26이후 11월은 그야말로 무주공산이었읍니다. 누가 깃발을 들었으면 되는데 아무도 눈치보느라 못 나섰죠. 그때에 JP가 나서서 유신헌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서 84년까지는 대통령했어야 한다는 논리. 그 시대를 직접 몸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12.12사태 이후에 전두환이 득세했지 11월에는 그냥 합수본부장이었읍니다. 김종필이 11월에 별 눈에 띄는 행동을 안했다는거, 그게 결정적 패인이라는 주장.
감종필은 신군부에 게임이 안됐다고 봅니다. 신군부는 정규육사 1기 의식으로 똘똘 뭉쳐 기존 선배기수를 선배로 사실상 안 봐서 김종필도 정승화, 최규하 취급받았을겁니다. 그 예로 쿠데화 이후 김종필은 바로 부정축재자로 엮여 퇴출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