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일요스페셜 ㅣ 난곡의 사계 마지막달동네 1년의기록 [지식실험] KBS 2001.12.2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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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fv3bc3gu9h Жыл бұрын
2000년 12월 24일 눈 오는 난곡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날 여친과 헤어진 날, 25일 혼자 슬퍼하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곡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 때, 없이 살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철없게 놀던 그 때, 어른들도 돈은 없지만 정은 많았던 그 때. 너무 가난했던 시절 이지만 그래도 저 곳에서 살던때가 그립습니다. 그래도 저때 저곳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정겨운 곳 이였습니다.
전 여기서 72년도에 태어났지요 45년간 살면서 추억이 많이 든 곳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잠시 어린 추억들이 생각이 나네요 이사만 한 5,6번 정도 난곡 내에서만요 난곡, 국회단지, 법원단지 ㅎㅎ 주변 산세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관악산에 자주 가고 , 여름이면 도시락 싸가지고 서울대 해골 바위가서 수영도 하며, 돌아다니기도 했구요 별애별 사람들 많이 살았죠, 5공화국때 영부인도 왔구요 재개발 한다 하면서요 ^^
@user-dc6ru5tw4f2 жыл бұрын
훌륭한 기록 영상이다. 난곡 사람들은 그래도 이 영상을 보며 옛 삶의 자취를 추억하지 않을까.
현재 저 자리에는 당시 주택공사에서 나름 래미안이나 푸르지오 같은 명품화를 추구하면서 주공답지 않게 고급스럽게 만든 휴먼시아 단지 2개가 생겼습니다. 이 아파트가 생길 당시에는 '휴거'(휴먼시아 거지) 같은 말이 생기기 전이었고 또 44평형 등 큰 평수 아파트들도 있어 꽤 고급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에 고급 외제차들도 꽤 많았구요. 강남, 목동 등지에 살던 젊은 부부들이 많이 입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 동네에 원래 살던 원주민들 주거 대책으로 LH아파트 한 동인가가 세워졌는데, 이 마저도 저 분들은 돈이 없어 입주권을 되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생겼는데 휴먼시아 입주민들이 LH아파트 거주 초등학생들의 그 학교 취학을 반대하는 씁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새로 입주한 주민들이 원래 거주하던 주민들을 몰아내고 차별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죠.
@turinoik9477
효숙이 근황좀.. 머하고 지내나요 지금 33살이겟네요
@user-bs5z9jh2z Жыл бұрын
방송을 볼수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기록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jleesteven2 жыл бұрын
나도 비슷하지만 에구..불쌍하고 안쓰런 우리 서민들..
@melonpan85652 жыл бұрын
저희집이 여기 헐린다음 벽산아파트에 입주하고나서 얼마안돼 군입대를 했는데 훈련소 동기중 한명이 이 판자촌이 헐리기 직전까지 살았다고해서 기분이 복잡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집 옆에 있던 아빠랑 자주갔던 신일이발소, 학교 끝나고 나가서 친구들과 누구건지도 모르는 축구공으로 축구하며, 다방구하며, 농구하며 나이먹기하며 놀던 공중화장실 옆에 있던 놀이터(마지막에 나온 놀이터) 이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저의 난곡속 기억을 영상으로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없이 살아서 이웃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던 정이 많던 난곡. 어르신 말씀처럼 가진 건 없어도 떠나기 싫었던 난곡. 어린시절 저도 떠나기 싫었던 정이 많고 정들 었던 난곡이 그립네요.
@user-xw5ws2wk8v2 жыл бұрын
중학교 시절 한 사오년 난곡 그것도 제일 꼭대기에서 살앗는데 공동 화장실 그리고 물을 지게 매고 또
@jungkim96802 жыл бұрын
이 시대에 알아야 할 정말 귀한 자료에 감사합니다. 서로 아끼고 돕는 이웃의 정에 옛날 우리의 부모님들 생각이 납니다.
@mcchangkr Жыл бұрын
난곡동 신림7동 내 청소년기의 추억이 남아있는곳
@J_JJJJJ
중학교 때인가, 마지막 달동네 난곡이라는 다큐를 본 기억이 나는데 바로 이 영상이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Jhangchangbong2 жыл бұрын
우리들이 모르고 있었던 다른 한켠에서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정도 많고 따뜻한 삶들이 있었네요
Пікірлер: 166
2000년 12월 24일 눈 오는 난곡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날 여친과 헤어진 날, 25일 혼자 슬퍼하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곡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 때, 없이 살지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철없게 놀던 그 때, 어른들도 돈은 없지만 정은 많았던 그 때. 너무 가난했던 시절 이지만 그래도 저 곳에서 살던때가 그립습니다. 그래도 저때 저곳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정겨운 곳 이였습니다.
가난이란..정말 이루말할수 없는 고통 가슴이 복잡하다 저분들 건강하게 살고들 계시길 빌어본다
전 여기서 72년도에 태어났지요 45년간 살면서 추억이 많이 든 곳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잠시 어린 추억들이 생각이 나네요 이사만 한 5,6번 정도 난곡 내에서만요 난곡, 국회단지, 법원단지 ㅎㅎ 주변 산세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관악산에 자주 가고 , 여름이면 도시락 싸가지고 서울대 해골 바위가서 수영도 하며, 돌아다니기도 했구요 별애별 사람들 많이 살았죠, 5공화국때 영부인도 왔구요 재개발 한다 하면서요 ^^
훌륭한 기록 영상이다. 난곡 사람들은 그래도 이 영상을 보며 옛 삶의 자취를 추억하지 않을까.
70년대 봉천동에도 달동네가있었는데. 못살아도 정겹고 좋았던 기억이 새롬새롬 떠오르네요. 사람사는맛은 그때가 좋았던거같아요.
현재 저 자리에는 당시 주택공사에서 나름 래미안이나 푸르지오 같은 명품화를 추구하면서 주공답지 않게 고급스럽게 만든 휴먼시아 단지 2개가 생겼습니다. 이 아파트가 생길 당시에는 '휴거'(휴먼시아 거지) 같은 말이 생기기 전이었고 또 44평형 등 큰 평수 아파트들도 있어 꽤 고급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에 고급 외제차들도 꽤 많았구요. 강남, 목동 등지에 살던 젊은 부부들이 많이 입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 동네에 원래 살던 원주민들 주거 대책으로 LH아파트 한 동인가가 세워졌는데, 이 마저도 저 분들은 돈이 없어 입주권을 되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생겼는데 휴먼시아 입주민들이 LH아파트 거주 초등학생들의 그 학교 취학을 반대하는 씁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새로 입주한 주민들이 원래 거주하던 주민들을 몰아내고 차별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죠.
효숙이 근황좀.. 머하고 지내나요 지금 33살이겟네요
방송을 볼수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기록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비슷하지만 에구..불쌍하고 안쓰런 우리 서민들..
저희집이 여기 헐린다음 벽산아파트에 입주하고나서 얼마안돼 군입대를 했는데 훈련소 동기중 한명이 이 판자촌이 헐리기 직전까지 살았다고해서 기분이 복잡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이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쓰신거 같아요. 뭉클함이 있네요
내가,아기때부터살던곳.우리아버지도젊어쓸때,살던곳.지금은 많이변화다.아버지,어머니가 그립다.하늘에잘계시겠지.ㅜㅜㅜ
하늘아래 천사들이 사는곳~♡
중앙교회 맞은편 선교원 내가 다니던 곳.
우리 집 옆에 있던 아빠랑 자주갔던 신일이발소, 학교 끝나고 나가서 친구들과 누구건지도 모르는 축구공으로 축구하며, 다방구하며, 농구하며 나이먹기하며 놀던 공중화장실 옆에 있던 놀이터(마지막에 나온 놀이터) 이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저의 난곡속 기억을 영상으로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없이 살아서 이웃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던 정이 많던 난곡. 어르신 말씀처럼 가진 건 없어도 떠나기 싫었던 난곡. 어린시절 저도 떠나기 싫었던 정이 많고 정들 었던 난곡이 그립네요.
중학교 시절 한 사오년 난곡 그것도 제일 꼭대기에서 살앗는데 공동 화장실 그리고 물을 지게 매고 또
이 시대에 알아야 할 정말 귀한 자료에 감사합니다. 서로 아끼고 돕는 이웃의 정에 옛날 우리의 부모님들 생각이 납니다.
난곡동 신림7동 내 청소년기의 추억이 남아있는곳
중학교 때인가, 마지막 달동네 난곡이라는 다큐를 본 기억이 나는데 바로 이 영상이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우리들이 모르고 있었던 다른 한켠에서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정도 많고 따뜻한 삶들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