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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8,000대가 뒤엉켜 싸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 "쿠르스크 전투" (제2차 세계대전 34화) [지식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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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사 시리즈는 추정호님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 겨울전쟁과 북유럽의 중립정책 (1938-1944) 핀란드와 스웨덴을 중심으로- 장은주
- 제2차 세계대전 독 소 전쟁 초기의 독일과 소련의 군사전략 비교 연구 (초기 전역: 19416.22~12.5)-이종호, 전갑기
- 다른 시선으로 역사 읽기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야기-황동하
-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붉은 군대 전투 역량의 실상과 허상-류한수
- 덩케르크 철수 작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결백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산파 바실 리델 하트: 한 군사학 구루의 명예와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류한수
- 리델하트 군사사상 연구-브라이언 본드, 주은식, 메드멘함 벅스, 홍성태
- "진흙 발의 거상"인가? "붉은" 스팀롤러인가?: 러시아/소련 군대에 관한 서방 세계의 편견과 실상-류한수, 유승현
-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히틀러와 스탈린이 만든 사상 최악의 전쟁-류한수
- 1917년 러시아혁명과 붉은군대의 창성 유토피아적 민병대에서 강철 규율의 정규군으로- 이재훈
- 전격전의 전설 외- 국방과 기술
- 히틀러의 장군들1(만슈타인 평전) 브누아 르메이
- 전쟁론- 키알 본 클라우제비츠
『잃어버린 승리』-만슈타인 좋은땅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리처드 오버리 지식의 풍경
『2차 세계대전사』-존 키건 청어람 미디어
『히틀러의 장군들-만슈타인』- 베노이트 르메이 좋은땅
『2차 세계대전 연구동향과전망=contemporary historiograpy on the second word war』
『전쟁론』- 카를 본 클라우제비츠
『한 군인의 회상-구데리안』- 하인즈 구데리안
『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무장친위대 전사록』- 허진
『겨울 전쟁과 북유럽의 중립정책(1938~1944) 핀란드와 스웨덴을 중심으로』-장은주
『제2차 세계대전 독 소 전쟁 초기의 독일과 소련의 군사전략 비교 연국(초기 전역: 1941.6.22.~12.5)』-이근호, 전갑기
『다른 시선으로 역사 읽기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야기』-황동하
『덩케르크 철수 작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결백한 독일국방군” 신화의 산파 바실 리델 하트: 한 군사학 구루의 명예와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류한수
『리델하트 군사사상 연구』-브라인언 본드, 주은식, 메드멘함 벅스, 홍성태
『“진흙 발의 거상”인가? “붉은”스팀룰러인가?: 러시아/소련 군대에 관한 서방 세계의 편견과 실상』-류한수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 히틀러와 스탈린이 만든 사상 최악의 전쟁』-류한수
『1917년 러시아혁명과 붉은군대의 창설 유토피아적 민병대에서 강철 규율의 정규군으로』-이재훈
『전격전의 전설 외』-국방과 기술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정책과 미국의 견제정책에 관한 연구-중일전쟁 (1937~41)과 태평양전쟁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 이지원
『중일전쟁시기 국민정부의 전시동원에 관한 연구』 - 기세찬
『국민정부의 항일유격전에 관한 연구』 - 기세찬
『용과 사무리아의 결투 중(청)일 전쟁(1894-95)의 군사전략적 평가』 - 강성학
『中日戰爭 初期 國民政府軍의 抗戰戰略과 戰術 再檢討(1937_1938)』- 기세찬
『中日戰爭 初期 國民政府軍의 抗戰戰略과 戰術 再檢討(1937_1938)』- 기세찬
#유럽 #밀리터리​​ #탱크

Пікірлер: 645

  • @chungpojangsu
    @chungpojangsu2 жыл бұрын

    나레이션이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인상적입니. 감사합니다.

  • @elizabeth
    @elizabeth3 жыл бұрын

    최대 규모의 전차전쟁인 만큼 다신 일어나면 안되기도 한 전쟁이긴 한듯..

  • @whatever-it-takes

    @whatever-it-takes

    3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 @user-bl9vs1hu2g

    @user-bl9vs1hu2g

    3 жыл бұрын

    요즘은 핵쏘면 끝난다 ㅋㅋ 대규모도 못한다 밀집하면 핵한방 컷 이누 ㅋ

  • @user-ef1hw8kx1g

    @user-ef1hw8kx1g

    3 жыл бұрын

    @@user-bl9vs1hu2g 그러니까 당신 말은 강대국은 전쟁 시작하자마자 핵을 쏘다고 말하는건가요?

  • @user-th3dy5dq6j

    @user-th3dy5dq6j

    3 жыл бұрын

    @@user-bl9vs1hu2g 만약에, 정말 만약이지만 핵무기가 있는 나라들끼리 전쟁이 나더라도 핵을 함부로 쓰진 못할겁니다 상호확증파괴전략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너죽고 나죽고 하다간 어느 누구도 못 살아 남으니까요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жыл бұрын

    @@user-bl9vs1hu2g 냉전에서 그리 생각하다가 이스라엘 내전 혹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 전차의 쓸모를 다시 알게 됐죠 그리고 핵무기로 실험을 해 봤는데 폭심지나 그 근처에 있는 전차만 박살이 났고 어느 정도 떨어진 전차들은 사용이 가능하단 결과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왜 러시아나 미국 같이 핵무기를 수천 대나 가진 국가들이 지금도 신형 전차를 만들고자 할까요?

  • @0mega_alfa
    @0mega_alfa3 жыл бұрын

    2:54 역시 오비완 케노비의 전술

  • @sunnybang4575

    @sunnybang4575

    3 жыл бұрын

    Hello There~

  • @sunnybang4575

    @sunnybang4575

    3 жыл бұрын

    ???: It's over Anakin. I have the high ground!!!

  • @shsmi925

    @shsmi925

    3 жыл бұрын

    스타워즈 아시는구나

  • @shsmi925

    @shsmi925

    3 жыл бұрын

    디즈니가 다망쳐놈

  • @user-fy5dv8dr2i

    @user-fy5dv8dr2i

    3 жыл бұрын

    난 당신을 증오했어!!

  • @noprcyesroc6383
    @noprcyesroc63833 жыл бұрын

    10:20 위에 다 금이야ㅋㅋㅋ

  • @appi779

    @appi779

    3 жыл бұрын

    군인 아님?

  • @NorthKorea_Wins

    @NorthKorea_Wins

    3 жыл бұрын

    @@appi779 흑백색을 천연색컬러로 변환한 영상이 되서 그럽니다.

  • @user-qh7mn1vv7k
    @user-qh7mn1vv7k3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다... 태평양 전쟁쪽도 빨리 올려주셨으면 ㅎㅎ

  • @kosanja5073
    @kosanja50732 жыл бұрын

    정말 흥미있고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 @user-lbg1004
    @user-lbg10043 жыл бұрын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yulianhankim
    @yulianhankim3 жыл бұрын

    두 번 다시 없을 전투 양상 1. 쿠르스크 전투처럼 수천대의 전차가 하나의 전투에 한꺼번에 투입되는 경우 2. 전함, 열차포, 초중전차 등 초거대 병기가 만들어져 실전 투입되는 경우 3.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경우 (그것도 겨울에....)

  • @best_soviet

    @best_soviet

    Жыл бұрын

    공격은 유서 깊은 ㅂㅅ이지만 방어는 유서 깊은 최강잨ㅋㅋㅋㅋㅋㅋㅋ

  • @skfn3920
    @skfn39203 жыл бұрын

    1:17 이걸 천안문으로 들은 내 인생이 래전드다..ㅋㅋ

  • @user-it2ll9un8l

    @user-it2ll9un8l

    2 жыл бұрын

    니 인생은 원래 레전드

  • @lettuce_treatment

    @lettuce_treatment

    2 жыл бұрын

    @@user-it2ll9un8l 오우 너무 쌔

  • @agneslee9828

    @agneslee9828

    2 жыл бұрын

    만약 천안문 작전이면 북경 함락 작전일듯~~^^

  • @user-yu7dc4rm6s
    @user-yu7dc4rm6s3 жыл бұрын

    2차 세계대전 기다렸습니다!!

  • @j8663
    @j86633 жыл бұрын

    이 쿠르스크 전투가 알고보니 소련측에서는 민간인들 까지 동원이 된 대규모 전투 였더군요 독일군의 전차들의 진격을 막기 위해 장애물들을 설치했었는데 이걸 공사하는데에 민간인들이 동원 됐었다고 하더군요

  • @ww-iv7fy

    @ww-iv7fy

    Жыл бұрын

    뭐 독일은 유대인도 썼음

  • @user-jm3qp7nq5b

    @user-jm3qp7nq5b

    9 ай бұрын

    ​@@ww-iv7fyㅂㅅ아 ㅋㅋ 미개한 유대인을 전선에 보냈겠냐고 ㅋㅋ 일본은 조선인을 전쟁에 내보냈다 한들 독일은 거의 안그랬다. ㅋㅋ 역사공부 ㄱㄱ

  • @vagobro

    @vagobro

    9 ай бұрын

    전쟁에 민간인 동원하는건 흔한 일인데

  • @black_color228
    @black_color2283 жыл бұрын

    역시 지식스토리는 재밌따

  • @mlt1909
    @mlt19093 жыл бұрын

    막상 보면 독일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 같지만... 소련과 독일의 전투교환비는 최소 2:1에서 최대 10:1에 달할 정도로 장비랑 정예화 수준 차이가 났음

  • @sdsssdd1987

    @sdsssdd1987

    3 жыл бұрын

    그것도 43년까지라서 ㅋㅋ 그 이후에는 그냥 녹아버림

  • @mlt1909

    @mlt1909

    3 жыл бұрын

    @@Supergolem12345 저도 양면전을 택한 이상 독일이 이길 확률은 크지 않았다고 봅니다. 소련의 공업생산력이 강한 것도, 인구로 밀어붙히는 것도 모두 위협적이었지만, 사실 종전정도 쯤 되면 징집층이 엄청 얇아졌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죠

  • @mlt1909

    @mlt1909

    3 жыл бұрын

    @@sdsssdd1987 베를린 공방전, 독일 본토 전쟁에서도 소련의 사상자가 독일 사상자보다 적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국민돌격대같은 민방위급 부대가 대부분일때조차도요.

  • @user-fq4pi5og2t

    @user-fq4pi5og2t

    3 жыл бұрын

    @@mlt1909 베를린 공방전에서는 독일이 엄청나게 당합니다. 사망자 숫자가 10:1 정도 수준이 되죠. 말그대로 아이들,노인,여자들 까지 징집한 부대라서 민간인 학살 수준이 된게 베를린 공방전 입니다.

  • @mlt1909

    @mlt1909

    3 жыл бұрын

    @@user-fq4pi5og2t 그렇지 않습니다. 베를린 공방전에서도 독소 양측 모두 10만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시가방어전이었기 때문에 소련도 희생이 컸습니다.

  • @user-cx3sj2qz9q
    @user-cx3sj2qz9q3 жыл бұрын

    히틀러가 판터출시일을 기다리는 동안 소련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반격을 준비했지 근데 판터가 쿠르스크에서 제대로 움직이기 못하는게 많기도 했지 엔진이 갑자기 화재가 난다거나 하는 그런일이 있어서 폭발시킨 판터가 있었지 판터는 제대로 된 검증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투입한게 실수. 그래서 판터를 기다린게 가장큰 독일군의 실수지

  • @user-kv4hi7se2m

    @user-kv4hi7se2m

    3 жыл бұрын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그 때쯤이면 소련군의 저력이 독일을 넘어서기 시작했어요 중부집단군은 몰라도 남부집단군은 사실상 만슈타인이 아니었으면 말이 집단군이지 여기저기 패잔병들을 긇어모은 수준이었으니깐요 아마 3차 하르코프 공방전이 끝나고 드네프로 방어선을 좀 더 확충한 뒤에 기동방어를 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 @user-cx3sj2qz9q

    @user-cx3sj2qz9q

    3 жыл бұрын

    @@user-kv4hi7se2m ㅇㅈ

  • @insidesound2

    @insidesound2

    3 жыл бұрын

    3차 하르코프당시만해도 소련이 한계에 봉착했지만 랜드리스를 받으면서 그 한계치는 사라졌고 스탈린그라드 이전상태보다 더 강력해짐 독일을 앞서기 시작한것

  • @qkr-pr5fw

    @qkr-pr5fw

    2 жыл бұрын

    만슈타인정도니까.그정도피해

  • @bunningshouse

    @bunningshouse

    2 жыл бұрын

    스탈린그라드 레닌그라드에서 말아먹고 타이밍 다놓친 시점에서 이미 소련한테 진거임 애초에 쿠르스크 전투는 독일이 본토로 후퇴해야하는데 히틀러가 만슈타인 및 장군들 무시하고 공세로 전환시켜서 주코프가 완전 수비진지 구축한곳에 어거지로 꼬라박는 작전임 당연히 못뚫고 그다음에 모아논 소련군 전력1/3 그대로 밀고들어가서 개박살낸거고

  • @user-ki1iw5lv9s
    @user-ki1iw5lv9s3 жыл бұрын

    항상 2차세계대전 영상을 보면 한번씩은 등장하는 장군 독일군의 최고의 두뇌 만슈타인

  • @doChairsExist

    @doChairsExist

    2 жыл бұрын

    만슈타인, 모델, 롬멜 등 어디까지나 추축국을 위해 싸웠지만 명장도 많았네요.

  • @beeeeee525
    @beeeeee5253 жыл бұрын

    이 기록이 깨지지 않기를

  • @user-gs4vn6io3c
    @user-gs4vn6io3c3 жыл бұрын

    딱 1분 전 영상이군요😘

  • @nahoy350
    @nahoy3503 жыл бұрын

    서부전선: 셔먼 vs 티거 = 4:1 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냐며 토론 중 (이론) 동부전선: 때삼사로 실험하고 있음 (실험)

  • @Ytbjh1544

    @Ytbjh1544

    3 жыл бұрын

    실험(물리)

  • @johnkim4799

    @johnkim4799

    3 жыл бұрын

    근데 때삼사 10 티거 1 교환비가 실화임?

  • @iowa0079

    @iowa0079

    3 жыл бұрын

    물리(실험)

  • @user-fq4pi5og2t

    @user-fq4pi5og2t

    3 жыл бұрын

    @@johnkim4799 순수하게 전차전 티거 대 때삼사 교환비로는 16:1인가 까지 벌어집니다. 전부합한 전차전 교환비가 12:1 정도입니다. 판터, 4호 전차 이런거 까지 합하면요. 그걸 숫자와 공군, 야포 공격, 보병 돌격으로 소련이 상쇄하죠.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жыл бұрын

    @@user-fq4pi5og2t 독일군 전차 1대가 우리 전차 12대를 잡는다->우리는 우리 전차 144대를 가져오면 된다라는 기적의 논리

  • @seungeunjung2770
    @seungeunjung27703 жыл бұрын

    독일: 우리 티거는 10:1교환비다! 소련: 그럼 1000대를 만들어주마.

  • @koli177
    @koli1773 жыл бұрын

    오 오랜만에 전쟁 스토리네요

  • @user-go6kj2sm8e
    @user-go6kj2sm8e3 жыл бұрын

    100만 대군인데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이 남아있다는게 가장 놀랍다

  • @user-ib4qy7rq7d
    @user-ib4qy7rq7d3 жыл бұрын

    드디어 ㅠㅠㅠㅠ

  • @user-nn4ns4th7k
    @user-nn4ns4th7k3 жыл бұрын

    10:30 상륙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 @KOREANJAMMIN214
    @KOREANJAMMIN2143 жыл бұрын

    1분전은 못참지 ㅋ

  • @FirstFrame091
    @FirstFrame0913 жыл бұрын

    오오 드디어

  • @user-km3mh7gl6d
    @user-km3mh7gl6d3 жыл бұрын

    드디어... 나왔어.. 내 월요일을 끝내는 인생의 낙

  • @suqyu6483
    @suqyu64833 жыл бұрын

    ' 세상에는 나쁜 평화도 좋은 전쟁도 없다 '

  • @user-pj2sf9qr7p

    @user-pj2sf9qr7p

    3 жыл бұрын

    뭔뜻임...?

  • @Subin_onepunch

    @Subin_onepunch

    3 жыл бұрын

    @@user-pj2sf9qr7p 좋은 평화랑 나쁜전쟁만 있다는거일듯? 문장이 해석하기에 난해하네

  • @ahura.mazda.

    @ahura.mazda.

    3 жыл бұрын

    이것이 우리시대의 평화임을 믿고있다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불러 일으킴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жыл бұрын

    @@ahura.mazda. 현실에 천국을 세우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을 만든다 - 칼 포퍼 -

  • @juarez1666

    @juarez1666

    3 жыл бұрын

    나쁜 평화가 없다니요 나치가 2차대전에서 이겨 전쟁이 끝났다면 좋은 평화인가요?

  • @user-in9pt7of8s
    @user-in9pt7of8s2 жыл бұрын

    소련이 성공적으로 이겼다는건 수십만씩 갈리면서 얻어낸승리.. 병력 교환비로 보면 이겼다고 말하기도참 그렇긴한데 그냥 저글링물량으로 밀어버린..

  • @user-eg6co4yp8x
    @user-eg6co4yp8x3 жыл бұрын

    드디어 나왔다

  • @jm7783
    @jm77833 жыл бұрын

    전쟁스토리 꿀잼 ㅜ

  • @아리야_이리로와
    @아리야_이리로와3 жыл бұрын

    ㅠㅠ 전쟁스토리 넘 보고 싶었다는 ㅠㅠ

  • @wernerwolff8823
    @wernerwolff88233 жыл бұрын

    영상속 소개된 프로호로프카 전투는 전략상 소련의 승리지만, 전투자체는 독일의 압승이었습니다ㆍ 사실상 전투에 투입된 사단은 LSSAH 1개 ss사단뿐이었습니다

  • @gpt_rule_the_world
    @gpt_rule_the_world3 жыл бұрын

    쿠르스크 전투? 이건 못참치

  • @cindy2756

    @cindy2756

    3 жыл бұрын

    쿠르스크 전투(러시아어: Курская битва, 영어: Battle of Kursk)은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전투 중 하나이다. 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이었으며 하루 동안 벌어진 지상전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도 꼽히고 있다. 독일군은 오랫동안 이 전투를 준비하여 선제공격을 가했지만, 소련군은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독일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 곧 반격을 개시하여 오룔, 벨고로드, 하르코프를 재탈환하였다. 이 전투는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여름에 승리한 전투로는 최초였으며 이 전투에서 독일군 전력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어 회복에 시일이 걸렸으며, 이후로 독일군은 두번 다시 공세로 전환하지 못하고, 소련의 공세에 동부 전선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이후 소련의 대 반격으로 독일군은 모든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소련의 대공세 앞에서 1943년 봄 하르코프를 탈환한것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은 반격을 계획한다. 히틀러는 중부집단군과 돈집단군에서 새로 개편된 남방집단군으로 하르코프 탈환으로 발생하게 된 쿠르스크를 중심으로한 폭 120마일 길이 60마일의 돌출부에 위, 아래쪽에서 공격을 감행해 동부전선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독일군은 남쪽 지역을 재탈환하거나 북동쪽으로 우회해 모스크바 후방으로 진격해 들어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폰 만슈타인 원수는 소련군이 재편성되어 참호를 파기 전에 공격할 목적으로 공격 날짜를 같은해 5월로 잡고 계획을 진행시켰으나,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갑 부대의 보충과 재편성이 완료되는 6월까지 공격을 연기하는 잘못을 범한다. 후에 히틀러는 전력면에서 우세를 확신하게 된 7월 초까지 공세 개시를 미루었다. 독일군이 최종 준비를 마쳤을 즈음 독일군은 50개 사단으로 편성된 전차-자주포 2,700대, 비행기 2,000대, 대포 10,000문 등 총 90만의 병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소련군 총참모부는 지난 두 해 동안 경험한 독일군의 전투 계획 양상과 독일군이 쿠르스크 북쪽의 오룔과 남쪽의 하르코프 주위의 집중된 것을 보고 여름공격이 쿠르스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정확한 추측을 하였다. 총참모부와 스탈린은 주코프의 종심 전투 구상을 받아들여 소련 역사상 가장 철저한 방어작전을 실행하게 되었다. 방어의 주된 부담은 로코솝스키의 중앙 방면군과 바투틴의 보로네츠 방면군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쿠르스크 주변 지역으로 7개 군을 집어넣고, 150마일 정도 떨어진 후방에서는 코네프의 예비 부대가 집결하였다. 쿠르스크 방어 지역은 여섯 개의 진지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총 3,000마일이 넘는 십자형 참호가 만들어졌다. 그 주위에는 대포와 대전차포가 놓였으며, 또한 400,000개가 넘는 지뢰가 매설되고 가짜 공군 기지 50개가 추가로 지어졌다. 이 방어 작전은 바실레프스키가 후에 "그것은 엄청나고 실로 거대한 작업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소련군 총 인력의 40%와 기갑 부대의 75%를 이 지역에 투입되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의 패배는 소련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독일군은 2개의 집단군으로 나눠 공격을 준비했다. 남부집단군 = 2개군(제4기갑군과 캠프작전단) 병력 : 보병 5개사단, 기갑 8개사단, 기계화보병 1개사단(병사 28만, 화포 2,500문, 전차-자주포 1,500대) 중부집단군 = 제9군 병력 : 보병 8개사단, 기갑 6개사단, 기계화보병 1개사단(병사 27만, 화포 3,500문, 전차-자주포 1,200대) 총합계 = 병사 90만, 화포-박격포 1만문, 전차-자주포 2,700대 소련군도 마찬가지로 2개 방면군으로 나눠 방어를 준비했다. 보로네츠 방면군(적의 주공격이 예상되는 벨고로드지구) 제6친위군, 제7친위군을 제1선, 제1전차군(제6, 제31전차군단, 제3기계화군단)을 제2선 제69군을 코로챠 정면. 방면군예비, 제35친위저격군단, 제2, 제5친위전차군단 방면군 정면 114km 지대를 제6, 제7친위군이 담당. 남은 130km 정면을 제38, 제40군이 담당. 제2항공군이 작전을 지원한다. 앙방면군(포느이리방면을 중심으로 주 공격이 예상됨) 그 정면 95km에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제1선을 제48,제13,제70군. 그 후방 제2선에 제2전차군(제3, 제16전차군단) 연장 200km의 정면에 해당하는 전선에 제65,제60군이 담당. 방면군예비,1개기병군단,2개전차군단(제9,제19). 제16항공군이 작전지원을 한다. 총예비(스탭방면군) 전선후방 리브느이,스타-루이-오스콜의 선에 집결 제5친위군, 제27, 제47, 제53군, 제1기계화군단, 제4친위전차군단, 제10전차군단, 3개친위기병군단. 제5항공군이 작전지원 병력-인원 57만, 화포 7,400문, 전차-자주포 1,500대(이 방면군의 전력은 통상의 예비개념이 아닌 총공격으로 전환시 제1선에 진출하여 공격의 주역을 담당할 전력으로 쓰이는것이 특색이다.) 총합계 = 병사 133만, 화포 2만문, 전차-자주포 3,600대, 항공기 3130기 전투상황은 북쪽에서 공격에 들어갔던 모델의 독일 제9군의 기갑부대는 그날 약 6.5km를 전진하였다. 다음날, 모델은 더 많은 전차를 들여와 고작 10km의 너비의 전선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는 소련 예비 기갑부대에 의해 저지되었으며 심한 손해를 입었다. 7월 7일, 독일 기갑부대는 7마일 이상을 이동하여 "포늬리"라는 마을로 전진하였다. 8일엔 "올호바트카"로 진격하였지만, 진격하는 도중 마을로 들어가는 접근로가 좁아 많은 전차들이 몰려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결국 소련 급강하 폭격기와 포격에 전열이 흐트러지고 많은 전차를 잃었다. 결국 작전 5일째인 7월 9일, 북쪽의 독일군은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한계에 이르렀다. 5일동안의 공세동안 제9기갑군은 겨우 15km밖에 전진하지 못하였다.한편 남쪽은 독일군의 강력한 병력과 소련의 큰 군사적 오판으로, 상황은 훨씬 나았다. 호트 장군의 제4기갑군이 바투틴의 보로네츠 전선군을 제압하며 들어갔다. 호트의 기갑군에는 독일 최정예 9개 기갑사단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나치 친위 사단(SS 기갑군)인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 2 SS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1 SS 기갑 사단 LSSAH 사단들도 있었다. 이들의 활약은 눈부셔서 이틀 만에 쿠르스크 방어지대의 핵심지역인 "쿠르스크-오보얀 도로"를 향해 20마일(30km)이나 전진하였다. 7월 7일을 기점으로 SS 기갑군은 점점 힘에 부쳤고, 결국 소련 제1전차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7월 9일, 호트의 4기갑군은 기갑 사단을 한데 모아 전선에 뚫고 나아가, 해골 사단이 선두로 하는 독일군과 쿠르스크 사이에 있는 마지막 장애물인 프숄 강을 뚫고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는 참호를 파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로 북서쪽인 쿠르스크쪽으로 진격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결국 호트는 주력 공세를 북동쪽의 작은 철도 교차점인 프로호로프카로 돌렸다. 7월 9일부터 14일까지가 쿠르스크 공세에 결정적인 운명을 지었다. 무장 친위대 기갑 사단들-1 SS 기갑 사단 LSSAH, 2 SS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들을 앞세운 독일 기갑 부대는 소련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500대가 넘는 중전차를 굴리며 진격하였다. 이에 7월 6일에 스탈린은 제5 근위 전차군 사령관 로트미스트로프 장군에 생일 축하 겸 하여 손수 전화를 하면서, 그에게 귀중한 예비 병력의 일부를 주고 프로호르프카를 지키라고 하였다. 7월 7일 오전 1시 30분, 소련 5 근위 전차군은 사흘간 370km(230마일)이 넘는 거리를 독일의 Ju-87 급강하 폭격기와 맞닥뜨리며 밤낮으로 행군하여 7월 10일에 전선에 도착하였다. 주코프는 로트미스트로프에게 T-34가 판터와 티거에 화력에서 제압당하지만 기동성이 앞서니 "기계화 부대의 백병전"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7월 12일 아침, 294대 가량의 독일군 전차와 793여대의 소련군 전차가 대치했다.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었으며 역사상 최대의 항공전이었다. 이는 향후 성채 작전의 결과, 그리고 더 나아가 독일의 동부 전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투였다.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전투다 여기서 독일군은 1440대의 전차를 잃고 소련군은 5560대의 전차를 잃는다 독소전쟁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전투였다

  • @user-ui2ou5ih3d

    @user-ui2ou5ih3d

    3 жыл бұрын

    @@cindy2756 "길다"

  • @gpt_rule_the_world

    @gpt_rule_the_world

    3 жыл бұрын

    @@cindy2756 정리추

  • @user-ll2oc3bk9x

    @user-ll2oc3bk9x

    3 жыл бұрын

    이분결론:소련이 전차 5000대이상을잃고 병력피해또한 더컸지만 전략,전술적으로승리했으며 2차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와함께 전환점으로 작용해 두국가 공격과,수비가 바껴버리게되는 계기가됩니다.

  • @wbinzester2721
    @wbinzester27213 жыл бұрын

    5:04 승리의 핵심

  • @SharkShaark

    @SharkShaark

    2 жыл бұрын

    우리 탈린이가 달라졌어요

  • @El-of7bc
    @El-of7bc3 жыл бұрын

    패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초중전차 8호전차 마우스 와 페이퍼플랜 경전차 마우스를 아시나요?

  • @sunnybang4575
    @sunnybang45753 жыл бұрын

    러시아 해군 원자력 잠수함의 사고이자 대참사 쿠르스크함 사건을 아시나요?

  • @Supergolem12345

    @Supergolem12345

    3 жыл бұрын

    @이그노라_Ignorabimus 사실 K-19는 진수식에서 샴페인 병이 안 깨지기도 했죠(배 진수식에서는 샴페인 병을 배에 내리쳐서 깨는데 샴페인이 안 깨지면 불길한 징조라 여김) 그게 K-19의 비극에 대한 복선이었을지도요

  • @user-rz4kr9ep3x

    @user-rz4kr9ep3x

    3 жыл бұрын

    쿠크다스를 아시나요??

  • @Yamaneko_KR

    @Yamaneko_KR

    3 жыл бұрын

    @이그노라_Ignorabimus 뜬금없이 K-91 생각나네

  • @user-pw5qi6ne1r

    @user-pw5qi6ne1r

    3 жыл бұрын

    @@user-rz4kr9ep3x 이 미친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ll2oc3bk9x

    @user-ll2oc3bk9x

    3 жыл бұрын

    @@user-rz4kr9ep3x 그 먹으면 모든게살살녹을만큼 맛있는 무기인가요?

  • @shhyun5856
    @shhyun58563 жыл бұрын

    독일이 여기서 진 큰 이유가 바로 암호체계가 진즉 뚫려있었다는 점.

  • @cindy2756

    @cindy2756

    3 жыл бұрын

    쿠르스크 전투(러시아어: Курская битва, 영어: Battle of Kursk)은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전투 중 하나이다. 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이었으며 하루 동안 벌어진 지상전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도 꼽히고 있다. 독일군은 오랫동안 이 전투를 준비하여 선제공격을 가했지만, 소련군은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독일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 곧 반격을 개시하여 오룔, 벨고로드, 하르코프를 재탈환하였다. 이 전투는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여름에 승리한 전투로는 최초였으며 이 전투에서 독일군 전력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어 회복에 시일이 걸렸으며, 이후로 독일군은 두번 다시 공세로 전환하지 못하고, 소련의 공세에 동부 전선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이후 소련의 대 반격으로 독일군은 모든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소련의 대공세 앞에서 1943년 봄 하르코프를 탈환한것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은 반격을 계획한다. 히틀러는 중부집단군과 돈집단군에서 새로 개편된 남방집단군으로 하르코프 탈환으로 발생하게 된 쿠르스크를 중심으로한 폭 120마일 길이 60마일의 돌출부에 위, 아래쪽에서 공격을 감행해 동부전선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독일군은 남쪽 지역을 재탈환하거나 북동쪽으로 우회해 모스크바 후방으로 진격해 들어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폰 만슈타인 원수는 소련군이 재편성되어 참호를 파기 전에 공격할 목적으로 공격 날짜를 같은해 5월로 잡고 계획을 진행시켰으나,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갑 부대의 보충과 재편성이 완료되는 6월까지 공격을 연기하는 잘못을 범한다. 후에 히틀러는 전력면에서 우세를 확신하게 된 7월 초까지 공세 개시를 미루었다. 독일군이 최종 준비를 마쳤을 즈음 독일군은 50개 사단으로 편성된 전차-자주포 2,700대, 비행기 2,000대, 대포 10,000문 등 총 90만의 병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소련군 총참모부는 지난 두 해 동안 경험한 독일군의 전투 계획 양상과 독일군이 쿠르스크 북쪽의 오룔과 남쪽의 하르코프 주위의 집중된 것을 보고 여름공격이 쿠르스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정확한 추측을 하였다. 총참모부와 스탈린은 주코프의 종심 전투 구상을 받아들여 소련 역사상 가장 철저한 방어작전을 실행하게 되었다. 방어의 주된 부담은 로코솝스키의 중앙 방면군과 바투틴의 보로네츠 방면군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쿠르스크 주변 지역으로 7개 군을 집어넣고, 150마일 정도 떨어진 후방에서는 코네프의 예비 부대가 집결하였다. 쿠르스크 방어 지역은 여섯 개의 진지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총 3,000마일이 넘는 십자형 참호가 만들어졌다. 그 주위에는 대포와 대전차포가 놓였으며, 또한 400,000개가 넘는 지뢰가 매설되고 가짜 공군 기지 50개가 추가로 지어졌다. 이 방어 작전은 바실레프스키가 후에 "그것은 엄청나고 실로 거대한 작업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소련군 총 인력의 40%와 기갑 부대의 75%를 이 지역에 투입되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의 패배는 소련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독일군은 2개의 집단군으로 나눠 공격을 준비했다. 남부집단군 = 2개군(제4기갑군과 캠프작전단) 병력 : 보병 5개사단, 기갑 8개사단, 기계화보병 1개사단(병사 28만, 화포 2,500문, 전차-자주포 1,500대) 중부집단군 = 제9군 병력 : 보병 8개사단, 기갑 6개사단, 기계화보병 1개사단(병사 27만, 화포 3,500문, 전차-자주포 1,200대) 총합계 = 병사 90만, 화포-박격포 1만문, 전차-자주포 2,700대 소련군도 마찬가지로 2개 방면군으로 나눠 방어를 준비했다. 보로네츠 방면군(적의 주공격이 예상되는 벨고로드지구) 제6친위군, 제7친위군을 제1선, 제1전차군(제6, 제31전차군단, 제3기계화군단)을 제2선 제69군을 코로챠 정면. 방면군예비, 제35친위저격군단, 제2, 제5친위전차군단 방면군 정면 114km 지대를 제6, 제7친위군이 담당. 남은 130km 정면을 제38, 제40군이 담당. 제2항공군이 작전을 지원한다. 앙방면군(포느이리방면을 중심으로 주 공격이 예상됨) 그 정면 95km에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제1선을 제48,제13,제70군. 그 후방 제2선에 제2전차군(제3, 제16전차군단) 연장 200km의 정면에 해당하는 전선에 제65,제60군이 담당. 방면군예비,1개기병군단,2개전차군단(제9,제19). 제16항공군이 작전지원을 한다. 총예비(스탭방면군) 전선후방 리브느이,스타-루이-오스콜의 선에 집결 제5친위군, 제27, 제47, 제53군, 제1기계화군단, 제4친위전차군단, 제10전차군단, 3개친위기병군단. 제5항공군이 작전지원 병력-인원 57만, 화포 7,400문, 전차-자주포 1,500대(이 방면군의 전력은 통상의 예비개념이 아닌 총공격으로 전환시 제1선에 진출하여 공격의 주역을 담당할 전력으로 쓰이는것이 특색이다.) 총합계 = 병사 133만, 화포 2만문, 전차-자주포 3,600대, 항공기 3130기 전투상황은 북쪽에서 공격에 들어갔던 모델의 독일 제9군의 기갑부대는 그날 약 6.5km를 전진하였다. 다음날, 모델은 더 많은 전차를 들여와 고작 10km의 너비의 전선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는 소련 예비 기갑부대에 의해 저지되었으며 심한 손해를 입었다. 7월 7일, 독일 기갑부대는 7마일 이상을 이동하여 "포늬리"라는 마을로 전진하였다. 8일엔 "올호바트카"로 진격하였지만, 진격하는 도중 마을로 들어가는 접근로가 좁아 많은 전차들이 몰려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결국 소련 급강하 폭격기와 포격에 전열이 흐트러지고 많은 전차를 잃었다. 결국 작전 5일째인 7월 9일, 북쪽의 독일군은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한계에 이르렀다. 5일동안의 공세동안 제9기갑군은 겨우 15km밖에 전진하지 못하였다.한편 남쪽은 독일군의 강력한 병력과 소련의 큰 군사적 오판으로, 상황은 훨씬 나았다. 호트 장군의 제4기갑군이 바투틴의 보로네츠 전선군을 제압하며 들어갔다. 호트의 기갑군에는 독일 최정예 9개 기갑사단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나치 친위 사단(SS 기갑군)인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 2 SS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1 SS 기갑 사단 LSSAH 사단들도 있었다. 이들의 활약은 눈부셔서 이틀 만에 쿠르스크 방어지대의 핵심지역인 "쿠르스크-오보얀 도로"를 향해 20마일(30km)이나 전진하였다. 7월 7일을 기점으로 SS 기갑군은 점점 힘에 부쳤고, 결국 소련 제1전차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7월 9일, 호트의 4기갑군은 기갑 사단을 한데 모아 전선에 뚫고 나아가, 해골 사단이 선두로 하는 독일군과 쿠르스크 사이에 있는 마지막 장애물인 프숄 강을 뚫고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는 참호를 파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로 북서쪽인 쿠르스크쪽으로 진격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결국 호트는 주력 공세를 북동쪽의 작은 철도 교차점인 프로호로프카로 돌렸다. 7월 9일부터 14일까지가 쿠르스크 공세에 결정적인 운명을 지었다. 무장 친위대 기갑 사단들-1 SS 기갑 사단 LSSAH, 2 SS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들을 앞세운 독일 기갑 부대는 소련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500대가 넘는 중전차를 굴리며 진격하였다. 이에 7월 6일에 스탈린은 제5 근위 전차군 사령관 로트미스트로프 장군에 생일 축하 겸 하여 손수 전화를 하면서, 그에게 귀중한 예비 병력의 일부를 주고 프로호르프카를 지키라고 하였다. 7월 7일 오전 1시 30분, 소련 5 근위 전차군은 사흘간 370km(230마일)이 넘는 거리를 독일의 Ju-87 급강하 폭격기와 맞닥뜨리며 밤낮으로 행군하여 7월 10일에 전선에 도착하였다. 주코프는 로트미스트로프에게 T-34가 판터와 티거에 화력에서 제압당하지만 기동성이 앞서니 "기계화 부대의 백병전"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7월 12일 아침, 294대 가량의 독일군 전차와 793여대의 소련군 전차가 대치했다.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었으며 역사상 최대의 항공전이었다. 이는 향후 성채 작전의 결과, 그리고 더 나아가 독일의 동부 전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투였다.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전투다 여기서 독일군은 1440대의 전차를 잃고 소련군은 5560대의 전차를 잃는다 독소전쟁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전투였다

  • @wbinzester2721

    @wbinzester2721

    3 жыл бұрын

    서프라이즈?

  • @user-ie9hl1vi2w

    @user-ie9hl1vi2w

    3 жыл бұрын

    암호체계도 체계다만 원론적으로 그냥 양면전선이라 진거임..ㅋㅋ 미국과 소련을 양쪽에서 상대하는것부터가 미친짓이지 1차대전때 슐리펜작전부터가 양면전선을 피하려고 주력군을 한데모아 프랑스부터 조지고 열차를 이용해서 러시아로 병력을 빠르게 옮기려고 했는데 이번은 뭐냐 연합국의 상륙을 막기위해서 주력군이 서부 동부로 반토막난 독일과 총력전을 펼치는 소련 바르바로사 작전이 실패한건 당연하지 애초부터 계획에도 없던 소련침공이였으니 2차슐리펜 같은 계획도 못세웠고 그냥 소련침공은 볼때마다 아쉬움

  • @user-rz6ks3vi8s

    @user-rz6ks3vi8s

    3 жыл бұрын

    @@user-ie9hl1vi2w 소련 침공을 안했으면 일어났을법한 일이 독일이 서부 먹고 소련 침공 미·독·소 3극 체제로 냉전 위험을 느낀 소련이 먼저 침공 이거 3개중 하나였을듯

  • @LightofEmpire

    @LightofEmpire

    3 жыл бұрын

    @@user-rz6ks3vi8s 미독소일이겠지

  • @johnnyzone72
    @johnnyzone723 жыл бұрын

    정보가 참중요하네요

  • @Bbangsil_chairman
    @Bbangsil_chairman3 жыл бұрын

    전차전은 못참지

  • @user-gd2wm7lu3k
    @user-gd2wm7lu3k3 жыл бұрын

    6:23 부터 나오는 브금알려줄 착한 천사들 구해요

  • @user-vd3pe9zi1v

    @user-vd3pe9zi1v

    3 жыл бұрын

    저도 궁금해요 알아내면 태그좀

  • @냉커피한잔

    @냉커피한잔

    3 жыл бұрын

    Eyes of glory 요 ㅎㅎ

  • @d.m.u.v7011
    @d.m.u.v70113 жыл бұрын

    다음은노르망디다노르망디는못참지

  • @user-nd7xb1et5h
    @user-nd7xb1et5h3 жыл бұрын

    이건 못참지

  • @dolezhangdole8114
    @dolezhangdole81143 жыл бұрын

    무리하게 5호전차 판터를 동원했지만 많은 전차가 고장으로 활약하지못한 실망스런 판터의 데뷔전

  • @user-zo4sd3kt6i
    @user-zo4sd3kt6i3 жыл бұрын

    김영옥 대령도 해주세영🥺

  • @user-qy7dx3bt9g
    @user-qy7dx3bt9g3 жыл бұрын

    오랜만이 유럽이군요. 다음엔 태평양의 과달카날전투로 해주세요!

  • @jasonlee8078
    @jasonlee80783 жыл бұрын

    오랜만의 전쟁스토리다

  • @user-vy1mq6lo4x
    @user-vy1mq6lo4x3 жыл бұрын

    다음은 노르망디군요

  • @jhh7933
    @jhh79333 жыл бұрын

    독소전의 최대 교훈은 물량 앞에 장사 없다 그런데 이건 서부전선도 마찬가지 동부전선은 소련의 물량 서부전선은 미국의 물량을 상대로 독일이 무너짐

  • @vecev8688
    @vecev8688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의 " 경항모 " 다뤄주세요

  • @shsmi925
    @shsmi9253 жыл бұрын

    기다리고 있었다

  • @shsmi925

    @shsmi925

    3 жыл бұрын

    처음으로 와서 기분좋군

  • @Ggarrong

    @Ggarrong

    3 жыл бұрын

    @@shsmi925 ㅋㅋ

  • @user-pn9or8pe2o
    @user-pn9or8pe2o3 жыл бұрын

    이런 전쟁다큐멘타리 광팬입니다. 감사하게 잘보겠습니다.

  • @cindy2756

    @cindy2756

    3 жыл бұрын

    내가 설명을 더 하자면 쿠르스크 전투(러시아어: Курская битва, 영어: Battle of Kursk)은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전투 중 하나이다. 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이었으며 하루 동안 벌어진 지상전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도 꼽히고 있다. 독일군은 오랫동안 이 전투를 준비하여 선제공격을 가했지만, 소련군은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독일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 곧 반격을 개시하여 오룔, 벨고로드, 하르코프를 재탈환하였다. 이 전투는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여름에 승리한 전투로는 최초였으며 이 전투에서 독일군 전력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어 회복에 시일이 걸렸으며, 이후로 독일군은 두번 다시 공세로 전환하지 못하고, 소련의 공세에 동부 전선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이후 소련의 대 반격으로 독일군은 모든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소련의 대공세 앞에서 1943년 봄 하르코프를 탈환한것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된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은 반격을 계획한다. 히틀러는 중부집단군과 돈집단군에서 새로 개편된 남방집단군으로 하르코프 탈환으로 발생하게 된 쿠르스크를 중심으로한 폭 120마일 길이 60마일의 돌출부에 위, 아래쪽에서 공격을 감행해 동부전선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독일군은 남쪽 지역을 재탈환하거나 북동쪽으로 우회해 모스크바 후방으로 진격해 들어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폰 만슈타인 원수는 소련군이 재편성되어 참호를 파기 전에 공격할 목적으로 공격 날짜를 같은해 5월로 잡고 계획을 진행시켰으나,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갑 부대의 보충과 재편성이 완료되는 6월까지 공격을 연기하는 잘못을 범한다. 후에 히틀러는 전력면에서 우세를 확신하게 된 7월 초까지 공세 개시를 미루었다. 독일군이 최종 준비를 마쳤을 즈음 독일군은 50개 사단으로 편성된 전차-자주포 2,700대, 비행기 2,000대, 대포 10,000문 등 총 90만의 병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소련군 총참모부는 지난 두 해 동안 경험한 독일군의 전투 계획 양상과 독일군이 쿠르스크 북쪽의 오룔과 남쪽의 하르코프 주위의 집중된 것을 보고 여름공격이 쿠르스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정확한 추측을 하였다. 총참모부와 스탈린은 주코프의 종심 전투 구상을 받아들여 소련 역사상 가장 철저한 방어작전을 실행하게 되었다. 방어의 주된 부담은 로코솝스키의 중앙 방면군과 바투틴의 보로네츠 방면군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쿠르스크 주변 지역으로 7개 군을 집어넣고, 150마일 정도 떨어진 후방에서는 코네프의 예비 부대가 집결하였다. 쿠르스크 방어 지역은 여섯 개의 진지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총 3,000마일이 넘는 십자형 참호가 만들어졌다. 그 주위에는 대포와 대전차포가 놓였으며, 또한 400,000개가 넘는 지뢰가 매설되고 가짜 공군 기지 50개가 추가로 지어졌다. 이 방어 작전은 바실레프스키가 후에 "그것은 엄청나고 실로 거대한 작업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소련군 총 인력의 40%와 기갑 부대의 75%를 이 지역에 투입되었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의 패배는 소련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독일군은 2개의 집단군으로 나눠 공격을 준비했다. 남부집단군 = 2개군(제4기갑군과 캠프작전단) 병력 : 보병 5개사단, 기갑 8개사단, 기계화보병 1개사단(병사 28만, 화포 2,500문, 전차-자주포 1,500대) 중부집단군 = 제9군 병력 : 보병 8개사단, 기갑 6개사단, 기계화보병 1개사단(병사 27만, 화포 3,500문, 전차-자주포 1,200대) 총합계 = 병사 90만, 화포-박격포 1만문, 전차-자주포 2,700대 소련군도 마찬가지로 2개 방면군으로 나눠 방어를 준비했다. 보로네츠 방면군(적의 주공격이 예상되는 벨고로드지구) 제6친위군, 제7친위군을 제1선, 제1전차군(제6, 제31전차군단, 제3기계화군단)을 제2선 제69군을 코로챠 정면. 방면군예비, 제35친위저격군단, 제2, 제5친위전차군단 방면군 정면 114km 지대를 제6, 제7친위군이 담당. 남은 130km 정면을 제38, 제40군이 담당. 제2항공군이 작전을 지원한다. 앙방면군(포느이리방면을 중심으로 주 공격이 예상됨) 그 정면 95km에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제1선을 제48,제13,제70군. 그 후방 제2선에 제2전차군(제3, 제16전차군단) 연장 200km의 정면에 해당하는 전선에 제65,제60군이 담당. 방면군예비,1개기병군단,2개전차군단(제9,제19). 제16항공군이 작전지원을 한다. 총예비(스탭방면군) 전선후방 리브느이,스타-루이-오스콜의 선에 집결 제5친위군, 제27, 제47, 제53군, 제1기계화군단, 제4친위전차군단, 제10전차군단, 3개친위기병군단. 제5항공군이 작전지원 병력-인원 57만, 화포 7,400문, 전차-자주포 1,500대(이 방면군의 전력은 통상의 예비개념이 아닌 총공격으로 전환시 제1선에 진출하여 공격의 주역을 담당할 전력으로 쓰이는것이 특색이다.) 총합계 = 병사 133만, 화포 2만문, 전차-자주포 3,600대, 항공기 3130기 전투상황은 북쪽에서 공격에 들어갔던 모델의 독일 제9군의 기갑부대는 그날 약 6.5km를 전진하였다. 다음날, 모델은 더 많은 전차를 들여와 고작 10km의 너비의 전선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는 소련 예비 기갑부대에 의해 저지되었으며 심한 손해를 입었다. 7월 7일, 독일 기갑부대는 7마일 이상을 이동하여 "포늬리"라는 마을로 전진하였다. 8일엔 "올호바트카"로 진격하였지만, 진격하는 도중 마을로 들어가는 접근로가 좁아 많은 전차들이 몰려 우왕좌왕하게 되었고, 결국 소련 급강하 폭격기와 포격에 전열이 흐트러지고 많은 전차를 잃었다. 결국 작전 5일째인 7월 9일, 북쪽의 독일군은 더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한계에 이르렀다. 5일동안의 공세동안 제9기갑군은 겨우 15km밖에 전진하지 못하였다.한편 남쪽은 독일군의 강력한 병력과 소련의 큰 군사적 오판으로, 상황은 훨씬 나았다. 호트 장군의 제4기갑군이 바투틴의 보로네츠 전선군을 제압하며 들어갔다. 호트의 기갑군에는 독일 최정예 9개 기갑사단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나치 친위 사단(SS 기갑군)인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 2 SS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1 SS 기갑 사단 LSSAH 사단들도 있었다. 이들의 활약은 눈부셔서 이틀 만에 쿠르스크 방어지대의 핵심지역인 "쿠르스크-오보얀 도로"를 향해 20마일(30km)이나 전진하였다. 7월 7일을 기점으로 SS 기갑군은 점점 힘에 부쳤고, 결국 소련 제1전차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7월 9일, 호트의 4기갑군은 기갑 사단을 한데 모아 전선에 뚫고 나아가, 해골 사단이 선두로 하는 독일군과 쿠르스크 사이에 있는 마지막 장애물인 프숄 강을 뚫고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는 참호를 파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로 북서쪽인 쿠르스크쪽으로 진격은 더이상 불가능해졌다.결국 호트는 주력 공세를 북동쪽의 작은 철도 교차점인 프로호로프카로 돌렸다. 7월 9일부터 14일까지가 쿠르스크 공세에 결정적인 운명을 지었다. 무장 친위대 기갑 사단들-1 SS 기갑 사단 LSSAH, 2 SS 기갑 사단 다스 라이히, 3 SS 기갑 사단 토텐코프-들을 앞세운 독일 기갑 부대는 소련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500대가 넘는 중전차를 굴리며 진격하였다. 이에 7월 6일에 스탈린은 제5 근위 전차군 사령관 로트미스트로프 장군에 생일 축하 겸 하여 손수 전화를 하면서, 그에게 귀중한 예비 병력의 일부를 주고 프로호르프카를 지키라고 하였다. 7월 7일 오전 1시 30분, 소련 5 근위 전차군은 사흘간 370km(230마일)이 넘는 거리를 독일의 Ju-87 급강하 폭격기와 맞닥뜨리며 밤낮으로 행군하여 7월 10일에 전선에 도착하였다. 주코프는 로트미스트로프에게 T-34가 판터와 티거에 화력에서 제압당하지만 기동성이 앞서니 "기계화 부대의 백병전"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7월 12일 아침, 294대 가량의 독일군 전차와 793여대의 소련군 전차가 대치했다.이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었으며 역사상 최대의 항공전이었다. 이는 향후 성채 작전의 결과, 그리고 더 나아가 독일의 동부 전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투였다.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전투다 여기서 독일군은 1440대의 전차를 잃고 소련군은 5560대의 전차를 잃는다 독소전쟁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전투였다

  • @user-pn9or8pe2o

    @user-pn9or8pe2o

    3 жыл бұрын

    @@cindy2756 추가적인 설명 감사합니다.

  • @xvwsxvws
    @xvwsxvws3 жыл бұрын

    시작 음악이 ebs 2차대전 다큐에서 쓰였던 음악이네요.

  • @ji_hwan_91a
    @ji_hwan_91a3 жыл бұрын

    이제 이거 끝나면 전쟁스토리 한번에 묶어서 영상 만들어 주세요

  • @shinshin367
    @shinshin3673 жыл бұрын

    다음편 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 @user-ec2pm9kq2i
    @user-ec2pm9kq2i3 жыл бұрын

    영상 감사합니다. 진짜 하루에만 전차가...... 역사상 가장 큰 전투이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전투이다.

  • @user-rg8bg7po7e
    @user-rg8bg7po7e3 жыл бұрын

    라시아 쿠르스크 핵잠수함도 있었죠...

  • @militaryduckwho

    @militaryduckwho

    3 жыл бұрын

    근데 침몰했죠

  • @amyjeong6819
    @amyjeong68193 жыл бұрын

    오랜만에전쟁이야기다

  • @user-ib8tt6xg1b
    @user-ib8tt6xg1b3 жыл бұрын

    땡큐!

  • @sunnybang4575
    @sunnybang45753 жыл бұрын

    2:20 저기 우크라이나의 '도네츠'라는 지역 이름은 잘 기억해 두세요. 대조국 전쟁이 끝난 약 70년 후(2014년)에는 예상치 못한 세력(?)이 저기를 공격을 하죠.

  • @El-of7bc

    @El-of7bc

    3 жыл бұрын

    ???: 금독수리를 질르고 골박을 하십시오 korean . 반군에 장갑차를 지원할 돈이 필요합니다

  • @scft5323

    @scft5323

    3 жыл бұрын

    도네츠크공항

  • @sunnybang4575

    @sunnybang4575

    3 жыл бұрын

    @@El-of7bc Feat.러시아 달팽이좌

  • @KSF_Foundation
    @KSF_Foundation3 жыл бұрын

    다음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

  • @user-sm4pe5vg2w
    @user-sm4pe5vg2w3 жыл бұрын

    나중에 김영옥 장군님도 올려주세요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을 많이하신분이죠

  • @Korea_Sony
    @Korea_Sony3 жыл бұрын

    F86세이버소개해주세요!!

  • @sunnybang4575
    @sunnybang45753 жыл бұрын

    7:20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 나온 여인의 이름을 따온 사회주의의 불벼락 BM-13N 카츄샤 다연장 로켓 발사기를 아시나요?

  • @El-of7bc

    @El-of7bc

    3 жыл бұрын

    BM-8-24 로켓 발사기를 아시나요?(자료가 별로 없으니 카츄샤 영상에 같이 소개)

  • @Tyran-rex

    @Tyran-rex

    3 жыл бұрын

    @hot Dog 윾썬더에는 없는게 뭐죠?

  • @El-of7bc

    @El-of7bc

    3 жыл бұрын

    @@Tyran-rex S-51 203mm 자주포, 쿠겔판저,알렉토 자주포 등 많은데 안모씨 는 추가를 하지 않아요ㅜㅜ

  • @nolboo_korea
    @nolboo_korea3 жыл бұрын

    딱 1분만 집중해서 들어봐~

  • @apienss3563

    @apienss3563

    3 жыл бұрын

    딱 10분57초만 집중해서 들어봐

  • @user-mo1oi5dt5o

    @user-mo1oi5dt5o

    3 жыл бұрын

    지식스토리랑 1분만이랑 동일인물임?

  • @nolboo_korea

    @nolboo_korea

    3 жыл бұрын

    @@user-mo1oi5dt5o 동일인 ㅎㅎ

  • @user-uy2ry4sj6u
    @user-uy2ry4sj6u3 жыл бұрын

    Fg42 해주세요 (대강 11달)

  • @Deutschland1914
    @Deutschland19143 жыл бұрын

    노르망디 상륙작전 가나요?(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상륙작전)

  • @chemistry830
    @chemistry8303 жыл бұрын

    미사일 총정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 @M.r-kon1126
    @M.r-kon11263 жыл бұрын

    다음 이야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 @user-eu6fq1xy4q
    @user-eu6fq1xy4q3 жыл бұрын

    너무좋아 매일좋아요해줄꺼야

  • @user-om1bk9bf5u
    @user-om1bk9bf5u3 жыл бұрын

    10:30 그 작전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입니다.

  • @user-dh3cc5vs3o
    @user-dh3cc5vs3o3 жыл бұрын

    다음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다

  • @dfgnanfnfn4672
    @dfgnanfnfn46723 жыл бұрын

    월탱의 현실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jv5cv5rs2u
    @user-jv5cv5rs2u3 жыл бұрын

    실패작K11복합 소총 해주세요

  • @초코부엉이
    @초코부엉이3 жыл бұрын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쟁스토리가~!! 혹시 다음화는 그 유명한 ㄴㄹㅁㄷ 작전인가여?..

  • @user-mg1pv7nw9e

    @user-mg1pv7nw9e

    3 жыл бұрын

    노ㄹㅁㄷ요??

  • @user-tf3fz6wr9l

    @user-tf3fz6wr9l

    3 жыл бұрын

    ㄴ르ㅁㄷ여?

  • @waswerewere

    @waswerewere

    3 жыл бұрын

    @레시스탄 뇌절

  • @user-tf3fz6wr9l

    @user-tf3fz6wr9l

    3 жыл бұрын

    @@waswerewere 아직임

  • @El-of7bc

    @El-of7bc

    3 жыл бұрын

    노르망디 작전이 아니라 오버로드 작전 노르망디는 프랑스 북부 지역 명이고 당시에는 오버로드(절대군주)작전이라 명명됨 노르망디 라는 말애 들어가면 탑 시크릿 작전이 적군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서...

  • @theo-19
    @theo-193 жыл бұрын

    소련이 밭에서 인력을 수확한다는 것은 비밀

  • @shinkang322
    @shinkang3223 жыл бұрын

    다음 화 노르망디상륙작전인가

  • @kingtiger_kor6752
    @kingtiger_kor67523 жыл бұрын

    쿠르스크 공방전 당시 소련군 생존한 전차가 약 300여대 였다고 하네요

  • @joosegeneral1359

    @joosegeneral1359

    3 жыл бұрын

    하루에만 몇백대 잃는 대참사도....

  • @sunnybang4575
    @sunnybang45753 жыл бұрын

    4:15 만슈타인 사령관이 역할이 가장 크긴 했으나 우리 들소 작전을 성공시킨 폰 클루게 사령관은 또 언급이 안 되네...

  • @iks3322
    @iks33223 жыл бұрын

    노르망디…벌써 가슴이 웅장해진다ㅋㅋㅋ

  • @40apr89
    @40apr893 жыл бұрын

    미국 M46 패튼 중전차 해주세요(39일차)

  • @BlueWingsSuwon
    @BlueWingsSuwon3 жыл бұрын

    드디어 다음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인가

  • @user-ev9fd9hq9b
    @user-ev9fd9hq9b3 жыл бұрын

    일단 첩보전에서도 소련군이 우위를 점했었네...전장에서 첩보전은 승부를결정짓는 강력한 무기인데

  • @Hamzeeeeee7
    @Hamzeeeeee76 ай бұрын

    3차 하르코프 공방전도 나왔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 @REDIN12
    @REDIN123 жыл бұрын

    미국 남북전쟁 도 해주세요

  • @user-tb2rx1wf6k
    @user-tb2rx1wf6k3 жыл бұрын

    한화디펜스. 레드백 자주포. 해주세요!

  • @seoulin6925
    @seoulin69252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습니다! GOOD!!!

  • @dubujorim
    @dubujorim3 жыл бұрын

    클루게와 모델의 활약도 많이 다뤄주셈ㅠㅠ

  • @sunnybang4575

    @sunnybang4575

    3 жыл бұрын

    ㄹㅇ 폰 클루게 원수랑 발터 모델 상급 대장은 둘 다 자결했지만 명장 중 명장이였죠.

  • @rzeczpospolitapolska9952

    @rzeczpospolitapolska9952

    3 жыл бұрын

    어쩌면 영웅이 될수도 있었죠...

  • @Mygenderisawashingmachine
    @Mygenderisawashingmachine3 жыл бұрын

    드디어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코앞이다...

  • @user-tx9jt8bw3p
    @user-tx9jt8bw3p3 жыл бұрын

    나치독일 최후의 공세는 아르덴 대공세 아닌가요? 동부전선에서도 봄의 새싹 전투가 있는데..

  • @user-yf9tl9hl6h

    @user-yf9tl9hl6h

    3 жыл бұрын

    맞죠 사실 공세로만 치면 봄의 새싹도 들어가긴하는데 실질적으로 연합군을 위협할만한 대공세는 쿠르스크가 마지막이라고 봅니다. 물론 쿠르스크에서 이겼다고 해도 전황은 여전히 불리했겠지만 만약 대승을 거뒀다면 소련군의 진격을 최소 1년을 미뤘을거라서..다만 아르덴공세는 애초에 성공확률이 없었고 앤트워프 항구를 탈환한다고해도 동부에서는 이미 소련군을 막을 여력이 없었기에 전황에는 전혀 의미없는 공세였죠 봄의새싹도 마찬가지구

  • @user-go9ls4bs8b
    @user-go9ls4bs8b3 жыл бұрын

    걸즈앤판처 가 생각나는 전쟁이로군

  • @El-of7bc
    @El-of7bc3 жыл бұрын

    썸넬 워썬더 월페이퍼 ㅋㅋㅋㅋㅋ

  • @adasewc

    @adasewc

    3 жыл бұрын

    @@googie9554 무슨 애니 사진임?

  • @El-of7bc

    @El-of7bc

    3 жыл бұрын

    @@googie9554뭔 애니프사?

  • @koreaplc39

    @koreaplc39

    2 жыл бұрын

    배필5... 개망작..

  • @J-Jung
    @J-Jung2 жыл бұрын

    800대도 많은데 8000대라니 엄청났군요. 5천 키로 전선이라 그렇지 8천대면 왠만한 중소도시를 가득 채울 숫자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따라가는 보병과 2만문의 대포라니;

  • @Star-ys8wm
    @Star-ys8wm3 жыл бұрын

    재밌겠다

  • @Preston-Garvey
    @Preston-Garvey3 жыл бұрын

    "우리 정보국은 나에게 소련에는 160개의 사단과 3000대의 전차가 있다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400개의 사단과 전차 2만대를 파괴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500개의 사단과 3만대의 전차가 있다...." ㅡ아돌프 히틀러ㅡ

  • @kitae41lee
    @kitae41lee3 жыл бұрын

    다음은 노르망디인가....

  • @user-tt9xo4gw9x
    @user-tt9xo4gw9x3 жыл бұрын

    쿠르스크 전투에서 히틀러가 뻘짓거리를 안하고 일선장군들의 뜻대로 소련군이 방어선을 구축하기전에 쳐들어가서 전투에 이겼다면 과연 이후 판세가 어떻게 되였을지 궁금하네요

  • @The_Blob94
    @The_Blob943 жыл бұрын

    쿠르스크 전투 소재로 한 전쟁영화 반지의제왕 스케일급으로 나와주면 졸라 재밌을것같은데..

  • @user-du3ps7so2x
    @user-du3ps7so2x3 жыл бұрын

    곧 있으면 1분만이 따라잡겠는데

  • @teajung1733
    @teajung17333 жыл бұрын

    그냥 기분탓인가 문단이 넘어갈때 잠시 쉬는 구간이 없어서 그런건가 예전 영상보다 말이 빨라진거 같아요ㅋㅋㅋ

  • @user-zh2gc5qp1g
    @user-zh2gc5qp1g3 жыл бұрын

    여기서 다음 이야기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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