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공부를 이룬다(법전스님의 수행기 #1)

다음은 저의 노장님이신 법전 스님의 책 『누구 없는가』에서 ‘죽음의 관문 앞에 선 서른 둘’이라는 글의 전문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고 법문을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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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대승사 윤필암에서 가까운 묘적암은 그리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안온한 도량으로 멀리 사불암이 건너다 보인다. 산에 올라가보면 사방이 탁 트여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곳이다. 1956년 겨울, 나는 그곳에 걸망을 풀고 암자의 문을 걸어 잠갔다. 머리 시원하게 정진하고 싶은 마음에서 떠나온 길이었다.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노장을 모시고 정진하고 있다가 그곳에 적을 둔 채 한 철 선방에서 지내다가 돌아왔더니 노장께선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길 작정이라 하셨다.
종단의 정화가 한창이었지만 성철 노장은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화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진정한 종교개혁은 수행자의 위상에서 찾아야 하며 정화란 안으로부터 내실을 기하면서 이루어져야지, 패를 늘려 사찰을 차지하는 싸움으로 비약하면 불교의 위상만 추락시킨다’는게 노장의 주장이었다. 해인사 주지로 오라는 간곡한 청을 물리치고 성전암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런 소신 때문이었다. 불교의 진정한 개혁은 사람을 키우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나 역시 정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노장을 시봉하던 시자들과 함께 노장이 소유하고 있던 많은 책들을 성전암에 옮겨놓았다. 자재를 직접 짊어지고 올라가 부서진 곳을 수리하고 아궁이도 고쳐놓고 깨끗이 손보는 일을 끝냈다. 바깥 사람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암자 주위에는 철조망을 쳐놓았다. 노장이 공부할 수 있게 월동준비를 마친 뒤 천제, 만수, 상일 등의 행자들에게 시봉을 맡기고 문경 청화산 원적사와 상주 갑장사를 거쳐 묘적암으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이렇게 세월만 보내서는 안 되겠다. 공부에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노장에게 내 뜻을 말씀드렸다. 노장은 처음에는 다른 곳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을 말렸으나 내 결심이 단호함을 알고는 떠나도록 허락해주셨다. 원적사로 공부하러 갈 때는 손수 보약 두 재를 지어주시기도 했다.
대승사 묘적암에 걸망을 내려놓은 나는 함께 있던 도반이 떠나자 바로 암자의 문을 걸어 잠갔다. 비록 무문관無門關이란 팻말을 내걸지는 않았으나 깨치지 못하고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관문 앞에 선 것이다. 그때 나는 수시로 불공을 하러 오던 묘적암 신도 40~50명을 앉혀놓고 선언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불공을 못 해줍니다. 누구든지 나를 쫓아내려면 그렇게 하십시오.” 신도들이 계를 묶어 논을 사서 절에 주고 거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절을 운영했던 터라서 주지도 마음대로 못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신도들은 나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는 더 이상 말을 붙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엌을 살펴보니 쌀이 두어 가마니쯤 있었다.
‘이것을 다 먹도록 마음의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내 발로 이곳을 걸어 나가지 않으리라’
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면 금생을 이곳에서 끝내겠다는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렇듯 절박한 심정으로 정진하는 내게 때맞춰 밥을 해 먹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닷 되쯤 분량의 밥을 한꺼번에 해서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고는 항아리 위에 막대기를 두 개 걸쳐놓은 다음 그 위에 밥을 올려놓고 보자기로 덮어두었다. 때가 되면 찬밥 한 이를 그릇에 담아 김치 몇 쪽 올려놓은 채 끼니를 때웠다. 겨울이었으나 물도 데워먹는 것이 번거로워 샘물 한 바가지 떠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로지 화두 하나와 마주했다.
베개도 이부자리도 없이 옷을 입은 채 두세 시간 눈을 붙이고 참선하고 나무하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매일 방선을 한 뒤에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벌목하고 남은 것을 베어다가 성한 것은 톱질해서 부엌과 담 밑에 차곡차곡 쌓아놓았고 구부러지고 썩은 것으로는 군불을 땠다. 때로는 겨울의 세찬 칼바람이 암자를 뒤흔들며 지나갔고, 밤새 눈이 내리는 날에는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고목들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동도 하지 않고 좌복에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창호 너 머로 먼동이 트곤 했다. 나는 잠이 적어 출가 이후 졸음 때문에 낭패를 보거나 고통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일찍부터 ‘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수좌는 수좌가 아니다’라고 했던 성철 노장의 경책에서 자유로운 나였다.
혼자 있으면 사무쳐 정진하기 어려운데 나는 홀로 오래 살았어도 그렇게 어중간하게 산 적이 없었다. 묘적암에서도 그랬다. 대중 한 사람 없이 홀로 정진하게 되면 대개 게을러지게 마련이지만 죽음의 관문 앞에 선 내게 게으름이란 있을 수 없었다. 홀로 있어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면서 화두 하나에 몰입해 많은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화두에 사무쳐 정진하고 또 정진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시원해지지 않았다. 수행자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지옥의 고통이 아니라 가사 옷 밑에서 대사를 밝히지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마음을 밝혀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지옥의 고통보다 더 괴롭다는 것이다.
‘만약, 이 한 물건을 깨치기 전에 죽게 된다면 들짐승이 될 것인지 날짐승이 될 것인지 모르는 일이다.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 다시 사람 몸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행히 사람 몸을 받아도 불법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불법을 만난다고 해도 최고의 길인 참선 공부를 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 묘적암에서 많이 울었다.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죽으면 법전이란 존재를 태평양 한가운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망망한 일이었다. 반드시 끝을 봐야 할 일 이었다. 죽음까지 생각한 절박한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통곡하곤 했다. 공부하는 수좌에게 공부의 진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마음을 밝히지 못한 채 오늘 호흡이 끊긴다면 이 몸뚱이는 어디로 갈 것인가? 자성을 깨치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행이다.’
더딘 수행의 성취를 자책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가슴에서 뭉쳐 나오는 눈물이었다.
묘적암은 고려 말의 나옹 선사가 스물한 살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무상을 느껴 요연 선사를 찾아와 출가해서 공부한 곳으로, 해방 전후에는 성철 노장과 서암 스님이 함께 머물며 수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나는 때때로 산에 올라가 나옹 스님이 앉아 참선 삼매에 들었다는 눈 덮인 바위 안 장대를 바라보았다. 말의 안장처럼 생겨서 안장대라고 붙여진 그 바위 밑에 있는 천길 낭떠러지는 바라보기만 해도 나옹 스님이 어떤 심정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는지 느껴지곤 했다. 잠시라도 졸음으로 인해 몸이 기우뚱하는 날에는 떨어져 죽는 곳이다.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그곳에 앉을 수 없는 것이니 공부에 대한 그 절절함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지고한 것은 자신을 버리는 데서 이루어진다. 어차피 참선 공부는 생사를 걸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가 아니면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좌복 위에 앉았다. 세수도 하지 않고 양치도 하지 않은 채였다. 물론 목욕도 하지 않았다. 그릇도 씻지 않았다. 입었던 옷 그대로 몇 달을 지냈다. 내 의식 속엔 이미 더럽다. 깨끗하다라는 생각이 없었다. 아침에 한 번 손으로 얼굴을 문지를 뿐 몇 달 동안 씻지 않았다.
닷 되들이 차관에 하나 가득 순두부를 가지고 묘적암에 올라왔던 비구니들은 곧 윤필암으로 돌아갔다. 한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어느 날 좌복에 앉아 있던 나는 순두부가 담겨 있는 차관을 보았다. 비로소 순두부를 먹으려고 차관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곰팡이가 새카맣게 피어 있었다. 물이 얼 정도로 불을 적게 때서 방을 차게 하고 지냈는데 곰팡이가 날 정도였으니까 일주일은 넘었을 것이다.
잠을 잊은 채 좌복에 앉아 있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방바닥엔 눈이 내린 듯 먼지가 쌓여갔고, 그 먼지 위로는 내 발자국이 아침 햇살 속에 선명히 드러났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보면 어느새 짐승들이 서성이다 돌아간 흔적이 보였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나무들이 서서히 물오르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게송을 부르고 있었다.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치니
비치는 것과 그림자가 둘 다 없더라
이것이 또한 무슨 물건이냐
청산이 백운 속이더라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든 정진이었다. 그런 만큼 온몸으로 부딪쳐 실감한 득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무한한 힘이 솟아나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몇백 길이나 되는 함정에 빠져 있던 사자가 언덕을 기어 나온 것 같은 기상이 뿜어지는 듯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천하가 모두 내 손에 들어 있는 듯 자신감이 솟았다. 자신에게 떳떳했고 온 세상에 떳떳했다. 찌꺼기가 말끔히 씻겨나간 듯 가슴이 시원했고 온몸이 환희로 차올랐다. 무엇 하나 걸릴 것 없이 자유로웠다.
비로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스운 것을 보아도 우습지 않고 좋은 것을 보아도 좋은 줄 모르던 나였다. 솔밭 사이로 부는 음력 시월의 찬바람처럼 쌀쌀하게 살았던 나였다. 그런데 묘적암 정진 이후로는 웃기도 잘하고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전에는 내가 웃는 것을 본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사실 화두에 온 마음을 기울인 탓에 웃을 일이 없었다. 묘적암에서의 한 철은 내 생애에서 공부에 가장 절박했던 시기였다. 절박할 때 공부가 되는 것이다. 물론 궁극의 깨달음인 구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어떤 변화를 느끼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혼자 약속한 것이라고 해서 흐지부지 그냥 돌아서지 않으려는 각오였다.
봉암사는 시끄럽던 꿈이 사라지며 정신이 맑아지고 생동감을 얻는 시절이었다면, 묘적암을 거치고 나서는 그만 정신이 번쩍 나고 눈동자가 매처럼 또록또록해지면서 공부가 잘됐다. 어느 누가 와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으며 어떤 선지식들 앞에서도 떳떳했다. 묘적암에서 공부했던 한 철은 내 생애에서 가장 여한 없이 목숨을 내놓고 정진했던 시기였다. 봉암사 시절 이후 또 한 번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시기였으니, 내 나이 서른둘에서 서른 셋일 때였다.
#법전스님 #성철스님 #묘적암 #봉암사 #윤필암 #누구없는가

Пікірлер: 39

  • @user-tt8gb2lu1j
    @user-tt8gb2lu1j2 ай бұрын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 @user-hm7zp2lm7b
    @user-hm7zp2lm7b3 ай бұрын

    🙏🙏🙏 ❤ 감사합니다

  • @user-yz7hd4fc7g
    @user-yz7hd4fc7g3 ай бұрын

    🙏🙏🙏

  • @yeongong_1115
    @yeongong_11153 ай бұрын

    계묘년 11월 법전 어른스님 『누구 없는가』 ☞죽음의 관문앞에 선 서른둘 이 날은 스님께서 코로나 후유증 최고점!!일때라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법문 내용이 췍오👍이셨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다뤄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는데 이리 노을대에서 법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지는 다음 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한 나날들 되시길 발원드립니다🙏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네 그날 영상을 올리지 못함이 아쉬워 다시 한번 법회를 하게 되었고 이렇게 영상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

  • @user-gf6kk6hw6o
    @user-gf6kk6hw6o3 ай бұрын

    "이이가 참 힘들어하는구나..." 그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스님 참 초연하시구나..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부디 법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끼리끼리 모인다.. 가까이서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스님의 모습.. 법전스님처럼 원제스님도 회향을 참 멋지게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 향기나는 분들..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법전스님의 수행기..2편 법문도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mkseo9778
    @mkseo97783 ай бұрын

    법전스님의 결의와 강한 기백이 느껴져 숙연해지는 밤입니다. 경의를 표하며 합장 삼배올립니다. 🙏🙏🙏 소중한 법문 해주신 원제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건강이 너무 회복이 안되어 걱정이 됩니다 빠른 쾌유를 빌겠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항생제를 바꿔 잘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

  • @user-ub2ho5zv8x
    @user-ub2ho5zv8x3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원제 스님 🙏 스님의 노장님이신 법전 스님에 대해 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남긴 글을 먼저 읽어보고 스님 말씀 들었어요. '간절함' 고맙습니다 🙏 💗

  • @user-si1hg3ip4m
    @user-si1hg3ip4m3 ай бұрын

    법전스님의 간절하고 절박한 수행기를 읽고 또 스님 말씀을 통해 들으면서 큰 감동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렇게 절박하게 공부해본적이 있었던가, 당장의 역경계가 없는 평온함에 안일하게 안주하고 있었던건 아닌가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였습니다 법전스님의 이 공부이야기를 도반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랬듯이 법전스님의 간절하고 결연했던 수행기가 도반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아서요^^ 스님의 은사스님 이야기여서인지 옛 조사스님들의 수행담보다 더 가깝게 더 실감나게 다가와 아직 멀었음을 경책해주시네요 감사히 듣고 받았습니다 🙏🙏🙏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도반님들께 좋은 감화가 일어나기를... 🙏

  • @miaechun1383
    @miaechun1383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user-ig6no4vx8n
    @user-ig6no4vx8n3 ай бұрын

    스님말씀에 동의합니다 👍👍👍

  • @user-vu5zj5mz9t
    @user-vu5zj5mz9t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_laon
    @_laon3 ай бұрын

    제가 법문하는 그곳에 없었지만 마치 함께 시공간을 이동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

  • @user-yv8nl3tv4w
    @user-yv8nl3tv4w3 ай бұрын

    🌷🙏🙏🙏🙇‍♀️🙇‍♀️🙇‍♀️

  • @user-cj8wc3zn9i
    @user-cj8wc3zn9i3 ай бұрын

    ”절박함이 이 공부를 이끈다’ 눈앞이 단 하나의 믿음이구나., 터덜터덜 한바탕 북새통을 지났건만 아무 흔적이 없고 무엇을 했다는 생각조차 알수 없으니.. 똑딱똑딱 시계소리 온 허공을 관통하고 하늘엔 붉은 지붕이 솟고 새 소리, 세상 소리 하나로 어울려 땅 위에 허공속 그림자 비추며 가네 스님께 공부를 익혀가며,. 예전에는 공부를 ‘하는’ 것이 동력이 되었다면 지금은 세상의 참모습 그대로 공부가 ‘되는’ 것으로 바탕이 이전이 되었다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가없는 선지식의 인연⭐️오늘도 귀한 말씀 주심에 합장배례 감사인사 올립니다^^😊🙏🌺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참 잘 하고 계십니다. 선재선재~🙏

  • @user-wm3yy9ks1w
    @user-wm3yy9ks1w3 ай бұрын

    스님.감사합니다.❤❤❤

  • @user-ig6no4vx8n
    @user-ig6no4vx8n3 ай бұрын

    어른에게 는예우는 해드려도 혈육도떠나서출가하신스님들이내공부를우선하고시자도하는게 맞는것같아요

  • @user-es6ew8sp7l
    @user-es6ew8sp7l3 ай бұрын

    법문 감사히 들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user-ms6fd1pc4c
    @user-ms6fd1pc4c3 ай бұрын

    법문 감사합니다 간절함!!!!!!!!

  • @user-ou4fx4ig5e
    @user-ou4fx4ig5e3 ай бұрын

    🌷🌷🌷🙏🙏🙏🌸🌸🌸

  • @user-vx6wp7eg7y
    @user-vx6wp7eg7y3 ай бұрын

    아직 코로나 후유증이 남아 힘드시는 중인데 법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 @user-ig6no4vx8n
    @user-ig6no4vx8n3 ай бұрын

    원당암혜암큰스님께서는 어름을 물고 참선을하실정도로 간절히하셨다고 들었어요 큰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네 간절함은 기본 요소입니다. 🙏

  • @skysong9588
    @skysong95883 ай бұрын

    법문하실 때 가장 빛이 나시는 원제스님! 간절함으로 열리는 호흡에 힘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 @user-ig6no4vx8n
    @user-ig6no4vx8n3 ай бұрын

    깨달고나면 부처가 따로없는 생명 있는모든것이 다소중하고 부처로보이지않나요🙏🙏🙏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스스로 확인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

  • @shaft_jb
    @shaft_jb3 ай бұрын

    신세대선사. 브이로그선사. 원제대선사. 감사합니다. ()()()

  • @whitelotus12
    @whitelotus123 ай бұрын

    스님, 저도 하트 꾸욱~😂 그래서 댓글 달았어요!😅 스님들은 너무 무서워요! 찬바람 쌩쌩! 후덜덜! 🙏

  • @andro273
    @andro2733 ай бұрын

    불편한 상태인데도 노을대 법문이 다시 또 이어지는군요. 또렷하게 들리는 법문에 감사드립니다. 생사를 거는 공부의 길에서 그 동력, 간절함을 짚어주시네요. 지기를 이겨 명산 명천을 일구어내는 법력, 그 빛은 간절함에서 비롯 되었다고 할 수 있군요. 기적! 마법! 그것은 또한 믿음에서 연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잠재력에 대한 믿음... 거울과 거울이 서로 비치니 비치는 것과 그림자가 둘 다 없더라ㅡ 오로지 빛 밖에~ 비출 것도 없음에 비추는 공(텅 빔)~ 있으나 없는 공의 세계~ 원칙이 있지만 세우지(고집/억지) 않는 원칙~ 명산! 명천 ! 호령(카리스마?ㅡ성품ㅡ성격차이)에 정신 번쩍 차리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 🙏🙏🙏

  • @user-go5jw4io4i
    @user-go5jw4io4i3 ай бұрын

    스님 폐가 건조해져도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고 합니다.코로나 후유증으로 몇달간 기침이 멎질 않아 병원입원이랑 많은 병원 치료를 해 봤지만 효과 못봐 결국 한의원 갔더니 폐 건조 증세라하여 한의원 치료 삼사일후부터 나아지기 시작해 바로 나았다고 도반이 얘기했어요.참고해 보시면 어떨까요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CT 결과가 나오긴 했네요.

  • @2boyeon_lotus
    @2boyeon_lotus3 ай бұрын

    🙏🙏🙏🪷😊

  • @user-ew9fj5cn9i
    @user-ew9fj5cn9i3 ай бұрын

    스님 안녕하세요 인도여행잘다녀오셨어요 스님저도 해외여행은이니고 국내여행다녀오고기침을만이했는데 병원에갖더니 폐렴이걸렸다구해서 4일에한번씩폐사진을찍고2달만에완쾌되었는데 휴유증으로 걸을때마다숨이넘차요 또다시병원약을먹어요 스님감기는키우면절대안되요 스님건강하세요^^♡

  • @monkwonje

    @monkwonje

    3 ай бұрын

    넵 잘 치료중입니다. 🙏

  • @user-ig6no4vx8n
    @user-ig6no4vx8n3 ай бұрын

    🙏🙏🙏

  • @myeonggong
    @myeonggong3 ай бұры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