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왜 읽어야 하는가 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 STB현장중계 2022 봄 대한국제학술문화제, 가야사광복으로 역사혁명을 시작한다 1일차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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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3

  • @user-ye1fz3kx6u
    @user-ye1fz3kx6u Жыл бұрын

    환단고기라는 위대한 책이 있는 민족입니다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 @ykK18026
    @ykK18026 Жыл бұрын

    유익한 시간, 울림을 주는 강의 감사드립니다🙏👍💓

  • @user-xq4uq5gb8s
    @user-xq4uq5gb8s Жыл бұрын

    본질에서 보면 만물은 모두 하나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gujistone2023
    @gujistone20238 ай бұрын

    21일간의수련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사람되게 하는 방법이라 하심에 공감합니다~^^ 수련문화회복에 엄지척~🎉

  • @awakecho3785
    @awakecho378511 ай бұрын

    잘 들었습니다. 환단고기 읽어봐야겠네요

  • @user-zm8hs7kk2d
    @user-zm8hs7kk2d11 ай бұрын

    이기동 교수님! 강의 잘 경청 하였습니다. 어렵게 지난한 역사를 거쳐 우리들에게 위대한 역사적 자원으로 오롯이 남겨진 참된 역사를 배우게 되어 다행입니다.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거듭나는 수행과 환단고기 탐독에 함께 하겠습니다 아무리 위서라 떠들어도 진서 임에 틀림없는 사실을 두렵다 .. 말하는 것 아닐까요? 교수님 고맙습니다.

  • @user-xd7ch1ey6f
    @user-xd7ch1ey6f Жыл бұрын

    살아있는 귀감의 말씀이십니다.

  • @hwayunshim5161
    @hwayunshim5161 Жыл бұрын

    짐승이 사람이 되는 대중적 방법을 제시한다., 21일간 수련과정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

  • @user-py6sr7tt4p
    @user-py6sr7tt4p Жыл бұрын

    교수님! 희랍의 철학자 세네카가 말했습니다 인간은 육신을 지닌이상 동물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날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수님의 말씀 처럼 사는게 이상향이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ㅎ 이 물질계가 파라다이스는 될수 없습니다 우주생성의 목적이 문제와 시련을 목적으로 생겨났다고 보아집니다 바로 지구가 지옥이지요 ㅎㅎ 그가운데 우리의 영성을 빌더업하며 진리에 다가가는것이 물질계를 벗어나는 길이라 보아집니다 완전히 속세를 등지고 도인처럼 살지않는 이상 티벳같은 나라의 백성으로 살뿐입니다 신라가 초기에 나약했던 이유가 박혁거세를 단군(거서간)으로 사상에 심취한 나라였기에 무력의 맛을 알아버린 고구려, 백제, 가야, 왜로 부터 늘 침략에 시달려야 했고 석씨단군을 모셨지만 역시 그랬고 결국 새로운 김씨 단군에 의해 국가의 틀을 갖추고 삼한일통을 이룩했죠 그러나 민족신앙, 불교, 유교에 심취한 이 나라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잊어버렸고 결국 망국의 길을 걸었고 그러나 지금 이 모든 시련을 겪었기에 대한민국은 영적, 물질적 세상을 리더하는 문명국가로 욱일승천 하고있다고 보이집니다 인류공영을 향하여 .. 정신과 물질이 균형을 이루는 욕망과 양심이 균형을 이루는 광명개천!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세상으로

  • @doremi747
    @doremi7476 ай бұрын

    서구사회는 존재론과 인식론이라는 즉 경험의 세계와 관념의 세계가 공존해왔다. 과거의 근원 즉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 미래에 대한 예언자 역할에도 나선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공부였다면 미래의 시점을 현재에서 보여주는 역할이 선구자들의 역할이자 지성사의 세계이며 예술가들의 활동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조선왕조는 억불숭유정책에 따라 시작부터 한 쪽으로 치우친 구조였다. 과거는 부모로 대체되며 숭배를 요구했으며 배움은 암송의 결과였으며 그 어떤 변화조차도 거부하는 존재 없는 허망한 존재자들을 위한 망념이 방탕하는 세상이었다. 그것은 존재론적 인식론이라 할 만한 불교를 산골짜기로 내 쫓고 경험론적 존재론이라 할 유교를 국시로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남의 생각에다 남의 경험까지 표절했으니 뭐 하나 애쓸 필요도 없이 누리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조상은 신으로 등극했으며 현실은 존재없는 존재자들로 가득했으며 미래는 존재조차 거부당한 인식부재의 망념이 준동하는 세계였다. 도구를 발명해 감나무의 감을 따야 먹기도 하고 미래의 양식으로 저장도 할 것인데 그냥 감나무 밑에 두러 누워 있으면 저절로 감이 떨어지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단지 누가먼저 좋은 위치에 두러 눕느냐 하는 선점의 효과만이 중요했다. 그런 세상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말 빨이 센 사람이 주인(主人 owner)이고 주장이 센 사람이 영수(領袖 leader)였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지만 우리는 차용된 완결의 누림이 전부였다. 갈망이 없는 세상은 욕망이 날뛴다. 선점(先占)을 정당화하기 위해 표절이 횡행(橫行)했다. 지성의 용도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감성의 용도들만이 무한 증식한다. 감성의 활용자인 기분파 양반과 수용자인 눈치파 백성이 반상의 구별로 조화로운 파벌을 지속했다. 백성은 도구요 양반은 그 사용자이니 양반 맘대로의 인간시장이 오백년간 지속된 것이다. 인간도구보다 더 좋은 도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 @hookilpark5437
    @hookilpark5437 Жыл бұрын

    선거때문에시끄러우니까 왕권이좋다는거니?짐승이누군지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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