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침묵을 보는가

선가에는 침묵에 관한 몇 가지 고칙들이 소개됩니다. 《벽암록》 65칙, ‘세존의 침묵世尊良久’에는 부처님을 찾아온 한 외도外道가 있습니다.
외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없이 한참 계시니, 외도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얻었기에 도에 들어갔다 말하였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려 나가느니라.”
또한 《벽암록》 67칙에는 ‘부대사휘안傅大士揮案’, 즉 경상을 두드린 부 대사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양무제가 부 대사를 초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게 하였다. 부 대사가 법좌 위에서 경상을 한 번 후려치고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 버리자, 무제는 깜짝 놀랐다. 이에 지공 스님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이를 아시겠는지요?”
“모르겠군요.”
“부 대사는 《금강경》 강의를 마쳤습니다.”
사람들은 말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경전이 그러하고 설법이 그러합니다. 경전 속에 무언가 깊은 깨달음이 있고, 설법에 신묘한 도리가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경전과 설법은 말 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일종의 약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약도 엄밀한 의미에서 독입니다. 말에 집착하는 병을 없애기 위해, 경전과 설법이라는 또 다른 말이라는 형태의 독약을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독치독以毒治毒의 원리입니다.
유무에 집착하고 있으면, 침묵은 단지 소리 없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요, 없을 때에도 있고 있을 때에도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침묵입니다. 비록 외도이기는 할지언정, 이 외도는 말 없는 설법을 들을 준비를 잘 마치고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침묵에 곧장 깨닫고 부처님을 그토록 찬탄한 것입니다.
이 공부는 특이합니다. 말과 법이 아닌, 침묵을 들을 수 있어야지 비로소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침묵은 듣는 것만이 아닙니다. 침묵은 또한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 대사는 침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부 대사는 단상 위에 ‘잘’ 올라갔고, 경상을 한 번 ‘잘’ 쳤으며, 단상 위에서 다시 ‘잘’ 내려왔습니다. 부 대사는 이렇게 침묵을 잘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이 침묵의 설법을 보고 들을 줄 알아야지 참된 공부인입니다. 침묵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면 산속에서 천년만년 동안 좌선 수행을 한다 해도 소쩍새 울음에 온갖 망상이 출몰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침묵의 설법을 볼 수만 있다면, 종로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도 여실한 법음으로서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을 것입니다.
◎◎◎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와서 교화하다가 서천(西天)으로 돌아가려고 할 적에, 여러 제자를 모아 놓고 말씀하기를 “이제 때가 되었다. 나의 가르침을 받은 너희들은 각자 얻은 바를 말하여라” 하였다.
그때 문인 도부(道副)가 말하기를 “저의 소견은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써 도를 쓰려고 합니다.” 하니, 달마대사는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하였다.
총지(總持) 비구니는 말하기를 “제가 이해한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본 것과 같아서 한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니, 달마대사는 “그대가 나의 살을 얻었다.” 하였다.
도육(道育)은 말하기를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음(五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달마대사는 “그대는 나의 뼈를 얻었다.” 하였다.
맨 나중에 혜가(慧可) 대사가 나가서 절을 세 번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으니, 달마대사가 “그대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 하였다.
그리고 혜가에게 “옛날 여래께서 가섭에게 부촉하신 정법안장이 전해져 나에게 이르렀는데, 내가 지금 너에게 부촉하노니 그대는 마땅히 잘 보호해 가지도록 하라.” 하였다.
-선문염송 고칙 224
◎◎◎
위산영우스님이 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를 모시고 전좌典座소임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대위산의 주인을 뽑기 위하여 대중을 모았습니다.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가 있으면 주지로 뽑으리라”
그리고는 물병을 가르켰습니다.
“물병이라고 부르지 말지니 그대들은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한마디 일러 보아라.”
이에 수좌가 말했습니다.
“똥막대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백장은 그 견해를 인정하지 읺았습니다. 전좌인 영우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영우스님은 바로 물병을 걷어차 버렸습니다.
“수좌가 전좌에게 졌다.”
#깨달음 #진리 #수행 #선공부 #벽암록 #달마 #출격대장부

Пікірлер: 31

  • @user-si1hg3ip4m
    @user-si1hg3ip4m24 күн бұрын

    '칠보(七寶)로 된 길'에 대한 스님의 해석을 들으면서 格에서 벗어남을 배우게 되고 꽃을 가져다 물병에 꽂음으로써 물병을 화병으로 바꾸어 내는 멋스러운 가풍에서 格을 다루어 유연하게 쓰는 법을 배웁니다🙏 예전에 절에서 새벽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침묵을 듣고 침묵을 보다' 라는 스님 책에 나오는 이 구절이 툭하니 가슴에 들려져서 오전내내 되뇌이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허공을 선명하게 보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홀딱벗고새의 맑고 경쾌한 소리를 들으면서 그때처럼 그것을 감싸고 있는 침묵을 가만히 보고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요함 속에서 더이상 쪼그라들지 않는 활연대오의 인연이 제게도 오기를 서원했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법문 끝자락 스님의 인사가 감사하게 들립니다^^ 매주 이렇게 귀한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user-oh6ku5mc8n
    @user-oh6ku5mc8n18 күн бұрын

    스님법문 참 조아요 감사 합니다 여러가지 지식을 정보를 습득하는 지식정보 마당입니다 과하지 않게 넘치지 않게

  • @user-bs1sd2vv3q
    @user-bs1sd2vv3q20 күн бұрын

    스님 🪷 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

  • @user-xm8vf4eb3o
    @user-xm8vf4eb3o23 күн бұрын

    스님 감사 합니다

  • @user-sp3tq7ml5p
    @user-sp3tq7ml5p21 күн бұрын

    원제스님 삼배올립니다_()_

  • @sage8738
    @sage873812 күн бұрын

    오늘도 하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yeongong_1115
    @yeongong_111524 күн бұрын

    침묵의 묘리 물병의 물을 컵에 부어 스님께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저는 눈 뜨고 눈 감을때까지 매일 매 순간 찰나찰나 수행 수행 또 수행입니다🙄 이래나 저래나 '선'이 좋은 걸 우짭니꺼🤣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되십시요~스님😍

  • @user-ze5ej7xj2d
    @user-ze5ej7xj2d24 күн бұрын

    🙏🙏🙏

  • @user-gf6kk6hw6o
    @user-gf6kk6hw6o24 күн бұрын

    저는 물병을 꿀꺽꿀꺽 마실래요!^^ 아파트 앞으로 달리는 차가 아스팔트위에 내린 비를 "치~~익"하고 가르는 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아침입니다. 원제스님의 침묵 법문..비와 함께 잘 듣고 보았습니다. 스님 야윈듯 건강해 보이셔서 좋습니다.^^ 오늘도 명랑한 날 되세요. 법문 감사합니다 스님🙏🙏🙏

  • @andro273
    @andro27324 күн бұрын

    스님께서 그동안 꾸준하게 운동하시며 몸을 케어하고 살펴보는 수행을 드러내보여 주시네요. 잘~누리고 계시는 일상에 한 표 보냅니다 👐👐 ※침묵을 듣고 침묵을 보다 침묵이 부려먹고 써먹을 수 있게끔 죽으라(간절히) 공부하는 태도와 자세를 살펴봐주시네요. 법문중에 들려오는 홀딱벗고새의 지저귐! ~🎶~~🎵°° 화려한 침묵으로 떨리는 감성에 감사드립니다 ~^ 🙏🙏🙏

  • @turoedkfndkek
    @turoedkfndkek24 күн бұрын

    5분이상 소리가 안들려서 침묵을 보라고 의도한 오디오 오프인줄알았다가 자막 보면서 이상해서 나갔다 들어오니 스님 말씀 들립니다 뭔가 하나를 깨우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user-tt8gb2lu1j
    @user-tt8gb2lu1j24 күн бұрын

    원제스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 🙏

  • @user-ey9un1uk3r
    @user-ey9un1uk3r24 күн бұрын

    비 그친뒤 이 아침에 스님 설법으로 홀딱벗고에 분별망상의 위험을 감지합니다 나라는 실체의 착각에서 벗어나 눈앞 여여부동한 진리를 준비하고 또 준비해보겠습니다~ 스님의 진리에 두손 모읍니다!!

  • @skysong9588
    @skysong958824 күн бұрын

    오죽 답답했으면 이쁜 새 이름을 그리 지었을까 싶어요. ㅎㅎ 언제 들어도 예쁜 새소리가 숨 쉴 때마다 - - - -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

  • @_laon
    @_laon24 күн бұрын

    방편법을 펼쳐 주시는 원제스님👍 법체 건강하시옵소~서 🎶🎵 감사합니다 🙏 🙏 🙏

  • @user-hm7zp2lm7b
    @user-hm7zp2lm7b24 күн бұрын

    🙏🙏🙏 ❤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user-so4uq5ff5k
    @user-so4uq5ff5k24 күн бұрын

    일요일 아침 법문으로 시작하니 참 좋습니다. 또 스님 책으로 하니 교재도 있어 좋구요. 운동도 수행처럼 하시니 더 맑아보이네요 ㅎㅎ 법문 감사합니다!

  • @user-ub2ho5zv8x
    @user-ub2ho5zv8x24 күн бұрын

    안녕하세요 🍒 원제 스님 🙏 자기 발심에 의해서 스스로 해야된다 묶이면서도 구솝되면서도 부려먹는 자유 침묵을 보고 침묵을 듣다 고맙습니다 🙏 💗

  • @user-vx6wp7eg7y
    @user-vx6wp7eg7y24 күн бұрын

    침묵으로 침묵을 알아차림 ~ 눈한번 찡긋 ~^ 오늘도 더위와 함께 ~ 감사합니다 🙏 🙏 🙏

  • @user-ew9fj5cn9i
    @user-ew9fj5cn9i24 күн бұрын

    습한날씨에 몸조심하셔요 소소한말씀잘듣고 있읍니다^^♡

  • @user-es6ew8sp7l
    @user-es6ew8sp7l23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user-ou4fx4ig5e
    @user-ou4fx4ig5e24 күн бұрын

    운동을 해야해서 빵을 끊으신게 아니군요 스님😊🙏🏻🙏🏻🙏🏻 홀딱뻐꾹 예쁜 소리네요🩷

  • @user-pi5ue5zr2p
    @user-pi5ue5zr2p24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 @user-ew9fj5cn9i
    @user-ew9fj5cn9i24 күн бұрын

    스님 운동의효과가놀라워요 시크한모습 넘조아보여요❤🎉🎉

  • @user-bc7qr9zw8m
    @user-bc7qr9zw8m24 күн бұрын

    🙏

  • @user-je7us6kc8v
    @user-je7us6kc8v22 күн бұрын

    원제스님 예 보고있습니다 못봐요!

  • @skysong9588
    @skysong958824 күн бұрын

    운동때문인지 30대로 돌아가신 듯 함다. ㅎㅎ

  • @user-fw6fv5cy2x
    @user-fw6fv5cy2x24 күн бұрын

    🏯💫🙏🏼🙏🏼🙏🏼

  • @user-rc2ji6vo5v
    @user-rc2ji6vo5v24 күн бұрын

    🙏🏼🙏🏼🙏🏼

  • @user-nh3of2gy6n
    @user-nh3of2gy6n24 күн бұры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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