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도 살생일까, 계율과 인과응보 | 불교 신자는 횟집을 하면 안되나요 | 김성철 교수

불교학자 김성철 교수는 치과의사 출신이다. 서울대 치대를 나와 치과의사를 하다가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불교를 전공했다. 같은 치과의사인 부인에게 “2년만 불교책을 원 없이 보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떠난 길이 본업이 됐다. 2000년부터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불교학회 회장을 지냈다.
그는 서울대 사대 학장과 서울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지낸 선친 김종서 교수가 가끔 모시고 온 탄허 스님을 어린 시절 집에서 만나곤 했다. 김종서 교수는 기독교인이었으나 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탄허 스님의 스승이었던 한암 스님을 만나 오대산에서 공부한 뒤부터 대학교수를 하면서도 평생 불교 수행을 했다. 김 교수는 부친과 인연으로 자주 뵌 탄허스님에 대해 성인의 풍모지만 겸손하기 그지없이 ‘하심’(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일관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고교 2학년 때까지 그림에 심취해 미술반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는 밥 먹고 살기 어렵다. 치과의사는 몇 시간만 일하면 나머지는 원하는 불교책도 원 없이 읽고, 참선도 할 수 있다”는 어른들 말에 치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래서 치대를 다닐 때도, 치과의사로 일 할 때도 틈만 나면 불교책을 보고 참선을 했다. 그렇게 열망했던 공부이기에 그는 삶을 위한 ‘불교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제2의 붓다’로 불리는 용수의 중관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용수는 그에게 직업인으로서 불교학자가 되기에 앞서 삶의 길을 제시해줬다.
김 교수 연구실은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치과의원의 한 귀퉁이에 있다. 부부는 서울대 치대 동기다. 그는 경주의 연구실과 서울의 이 연구실을 오가며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는 이 시대의 오타쿠다.
그는 중관과 화엄뿐 아니라 불교의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로 학술상을 휩쓸었다. 저서로 ‘중관학 특강’ ‘속담 속에 담은 불교, 명쾌하고 쉬운 불교’ ‘화엄경을 머금은 법성게의 보배구슬’ ‘선불교의 뿌리’ ‘불교하는 사람은’ ‘공과 윤리’ ‘중론’, 시집 ‘억울한 누명’ 등이 있다.
#김성철교수 #승랑 #승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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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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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52

  • @katiajeong3557
    @katiajeong35572 жыл бұрын

    불교의 가르침은, 절대로 살생을 하지말라고 가르치는 줄 알았어요 티벳 불교에 대해서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됐네요?! 그래서... 타 종교의 가르침도 제대로 알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user-oq4em3wx2k
    @user-oq4em3wx2k2 жыл бұрын

    피치못할 사정으로 계를 받지 못해도 삼귀의만해도 불자로 살면서 차후에 계를 받아 더 나은 삶을 도모할 수 있는거네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강요하지 않는 부처님. 부처님의 은혜는 끝이 없네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 @user-kc1ty1sw3w
    @user-kc1ty1sw3w2 жыл бұрын

    귀하신 대담 감사 합니다 조기자님 김교수님 건강 길상 하세요🙏🙏🙏

  • @kangbumi8427
    @kangbumi8427 Жыл бұрын

    김성철 교수님, 강의 고맙습니다. 쉽게, 재미있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_()_ 조현 기자님, 좋은 방송 고맙습니다. _()_

  • @user-nq8nq1lg7s
    @user-nq8nq1lg7s2 жыл бұрын

    김성철교수님 존경합니다^^

  • @user-gz4ul5jm7k
    @user-gz4ul5jm7k Жыл бұрын

    제가 진짜 궁금했던 내용인데 듣고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

  • @user-vn5dc4dk1p
    @user-vn5dc4dk1p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 🙏

  • @user-vk7bb3yj3c
    @user-vk7bb3yj3c8 ай бұрын

    김성철교수님극락왕생하시고.어서오소서.슬퍼요.교수님법문들으은영광임니다😢

  • @rimehyang
    @rimehyang2 жыл бұрын

    고맙습니다.

  • @msk9970
    @msk99702 жыл бұрын

    궁금했었는데 ..감사 ^^

  • @user-vv7zh8vi7c
    @user-vv7zh8vi7c2 жыл бұрын

    교수님 늘 잘 감사히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식축산업과 공장식수산업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워 남깁니다. 지금의 축산업 수산업에서 동물들과 물살이들은 살아있는게 죽는것보다 더 가혹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좁은공간에서 강제 임신. 눕지도 못하고. 쇠창살에서 태어나 수명의 1/10도 못살고 성장호르몬제 항생제 투입해서 햇빛한번 못보고 자기 배변속에 파묻히고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부리를 잘리는 등 지옥보다 더 끔찍하게 살다가 갑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먹을것이 부족하기도 했기에 그럴수 있다고하지만 지금 시대는 채식만으로 영양이 충분합니다. 물론 일부 극지방이나 아프리카등의 경우는 예외겠지요. 세속에서 악을 피하고 살기는 어렵겠지요. 영향력이 큰 교수님께서 공장식 축산업 수산업으로 고통받는 동물들 물살이들 외국인노동자들의 상황을 헤아려 채식문화를 권장해주시면 생명 평화의 시대로 한걸을 더 갈수 있을 거 같아요.

  • @user-vv7zh8vi7c

    @user-vv7zh8vi7c

    2 жыл бұрын

    @@muhyang8389 비건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아기가 비건이 되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세속에서 악을 피할수없다고 분명히 적었고요. 살생은 죽이는것만이 살생이 아닙니다. 먹는다면 어디서 어떤 고통을 받고 자란 음식을 먹고있는지 인식하고 먹어야겠지요. 예전에 동물의 영혼은 넋을 기리고 먹었듯이요. 그리고 의학상식도 주관적이랍니다. WHO 현대영양학에서 단백질 권장량은 50 그램뿐이랍니다. 영양잡힌 자연식물식 비건으로 비염 아토피없이 건강히 자라는 아가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일부 사례 기사를 올립니다 n.news.naver.com/article/036/0000046819?sid=102

  • @Dhammasa

    @Dhammasa

    6 ай бұрын

    옛날 석존께선 삼정육을 허가하셨는 데, 현대에 와선 인조 단백질 공학의 발달로 자연산 못지 않게 맛도, 냄새도 똑같이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옛날식으로 채식만 고집하실 게 아니라, 양심적 과학자집단 지성들의 의견도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 @user-zj6zu2kk8e
    @user-zj6zu2kk8e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 @SoHyun2024
    @SoHyun2024 Жыл бұрын

    평소 궁금했던 것인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chankiepark3613
    @chankiepark36132 жыл бұрын

    선생님, 너무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단지 더 부탁드리는 것은 소리가 좀 작게 잡히는 것 같아 문의 드립니다. 저만 그런가요? 좋은 얘기 잘 듣고 싶습니다.^^

  • @koreainsight

    @koreainsight

    2 жыл бұрын

    커뮤니티에 소리 관련 안내글을 올린게 있는데요. 한번 그 내용에 따라 설정을 바꿔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yty2265
    @yty2265 Жыл бұрын

    존경합니다.선와악을 그렇게 설명하네요.

  • @Leonora1.
    @Leonora1. Жыл бұрын

    김성철 교수님과의 대담 잘 들어보았습니다. 직접 관련되지는 않지만 아래이 질문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아 래 -- 일반적으로 종교에서는 자신에게 해꿎이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현생의 이 어려움은 내가 전생에 뿌려놓은 씨앗이니 받아들이고 수용하라고 합니다. 내 장래를 위해 선업을 쌓고 카르마를 탕감할 수 있는 기회이니 무조건 용서하라고 합니다. 가령 한 개인의 재산을 부당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강탈해가거나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는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극단적으로 부모나 가족에게 신체적 상해 또는 죽음까지 몰고가는 사람도 용서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혼자 마음을 다스리려는 노력만 하면서 잊혀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요? 그렇게 하다가는 사람에 따라서는 용서 관련 종교적 교리나 높은 가르침을 따르려다가 정신분열증세를 일으킬 수도 있고 우울증이 오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편 또한 이렇게 악행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고 그일로 인한 댓가를 치르지 않게 되다보니 그 사람의 이러한 악행을 더 부추기고 재발시키도록 유도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정신적, 물리적으로 가해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맞서서 행동을 해야하는지요? 일반인들이 용서 관련 종교적 교리나 높은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요? 부당한 일을 당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용서하라’는 종교적 차원에서의 용서 관련 미덕을 어기고 있는 것인지요? 인욕(용서)의 올바른 의미와 방식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 @user-hz9rz2gn7w

    @user-hz9rz2gn7w

    Жыл бұрын

    . . 반갑습니다. 용서라는 종교 행위는 불교보다 기독교와 많이 관계된 것 같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구약성경의 종교관을 대체하는 예수님의 혁명적 가르침이 ‘용서’라고 생각됩니다. 불교의 인욕(忍辱)이 용서와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괴롭힘을 당한 것, 해로움을 당한 것에 대해 보복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용서와 유사합니다. (불교의 경우 인욕의 가르침에서는 “남이 나를 괴롭혀도 인욕하고, 남이 나를 칭송해도 인욕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용서와 인욕이 ‘무기력함’이나 ‘나약함’이나 ‘비겁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괴롭힘과 모욕과 박해에 대한 저항 가운데 종교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것이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투쟁일 것 같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의 부당한 침탈과 박해에 대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식으로 투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국의 잘못을 방관하지는 않았습니다. 불복종 운동, 무저항 운동, 비폭력 투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잘못을 세계만방에 알렸고 그 결과 인도는 독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비폭력 투쟁이란 압제자 역시 우리와 같은 ‘불쌍한 인간’이라는 자각 하에, 압제자를 증오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악행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투쟁입니다.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 역시 ‘불쌍한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그의 입장에서 모든 일을 생각하여 마음에서 용서는 하되,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그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합리적으로,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종교인은 물론이고 모든 갈등 당사자들의 올바른 태도일 것 같습니다. 질문에서 여러 가지 예를 들으셨는데, 인용해하면서 답해 보겠습니다. [한 개인의 재산을 부당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강탈해가거나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는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극단적으로 부모나 가족에게 신체적 상해 또는 죽음까지 몰고가는 사람도 용서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혼자 마음을 다스리려는 노력만 하면서 잊혀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요?] → 이런 일들을 방치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비겁하고 무기력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강탈했을 경우, 합법적 해결방안이 있으면 법적 절차를 밟아서 이를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모욕을 주는 정신적 폭력을 행사할 경우, 내가 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에게 조목조목 따져서 반박함으로써 더 이상 모욕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이라면 합법적으로 그가 처벌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강탈과 폭력을 이렇게 합법적, 합리적으로 가능한 한도까지 해결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증오가 일어날 때, 이를 더 부추기지 않고,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증오심을 가라앉히는 것이 용서일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우, 큰 제국인 코살라국의 비유리왕이 석가족을 전멸시키기 위해 침략해 들어올 때, 병사를 일으켜서 대항하지는 않으셨지만, 이를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비유리왕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길목으로 가셔서, 땡볕에서 잎이 거의 다 떨어진 초라한 마른 나무 아래에 앉아 계셨습니다. 비유리왕이 석가족을 몰살하기 위해서 진군하다가, 부처님을 뵙고는 말에서 내려서 예를 올린 후 “부처님께셔는 어째서 그늘이 거의 없는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지” 여쭙자 “친족의 그늘은 서늘하다.”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즉 석가족이 힘이 약하고 보잘것없지만, 나에게는 무성한 잎을 가진 큰 나무 그늘과 같은 코살라국보다 더 중요하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의미를 파악한 비유리왕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회군합니다. (비유리왕은 그 후 한 번 더 회군했다가 결국 석가족을 침공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그를 증오하지 않으면서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게 마땅할 것 같습니다. 이때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그가 악행을 하게 된 이유, 가정사, 교육환경 등을 모두 고려하여 그를 증오하지 않으면서, 그의 행동을 합리적, 합법적으로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를 증오하지 않는 마음’을 강화하는 것이 ‘용서’일 것 같습니다. 요컨대 상대방의 잘못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을 합리적, 합법적으로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에 대해 일어나는 증오심을 녹이는 것이 용서의 마음일 것 같습니다. 불전에 의하면 ‘자비관(慈悲觀)’ 수행을 할 경우 증오심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고, 고통이 없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자꾸 떠올리는 것이 자비관 수행인데, 나에게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여 동서남북으로 마음을 확장하면서 생명체의 범위를 점차 넓혀갑니다. 끝에는 나의 원수로까지 자비관의 대상을 확장합니다. 티벳불교의에서는 자비관이 무르익으면 “그 전에는 그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던 사람인데, 지금은 그의 모습만 보이지 않아도 무슨 변고라도 당했는지 걱정이 된다.”는 식으로 마음이 변한다고 합니다. 자비관을 빠알리어로 ‘메타(Metta)라고 하는데 정확히 번역하면 ’자애(慈愛)‘가 됩니다. 초기불전 가운데 이란 게 있는데, 이 경전을 독경할 경우 분노심이 점차 완화된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을 토대로 현대 말레지아의 불자 가수 이메이 우이가 부른 자비송 영상 링크합니다. kzread.info/dash/bejne/lI6YvMuAk8nZeJs.html 그리고 티벳불교에 로종(마음수련) 수행 때 독송하는 기도문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1천 년 전에 티벳의 까담파의 랑리탕빠 스님께서 저술한 기도문입니다. 티벳 겔룩파 스님들은 이 기도문을 매일 독송한다고 합니다. -------------- 까담1) 스승 랑리탕빠2) 스님의 기도문3) 1. 한량없이 많은 살아있는 존재들 보배로운 여의주보다 더 귀하게 여겨 완전한 깨달음의 뿌리인 이타심으로 내가 변함없이 그들을 공경하게 하소서. 2. 항상 어디에 어떤 이와 있더라도 나 자신을 누구보다 겸허히 낮추고 꾸밈없고 진실한 마음으로 타인을 귀한 존재로 여겨 사랑하게 하소서. 3. 나의 모든 행(行) 마음으로 살피지 않아 독약처럼 무서운 번뇌가 일어나면 바로 나와 남을 해치는 원수임을 알아 굳세게 맞서 물리치게 하소서. 4. 불선(不善)의 과보로 버림받은 존재들 죄로 인해 큰 고통당함을 볼 때 찾기 어려운 보석의 원천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매우 귀한 존재로 여기게 하소서. 5. 누군가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시기하여 욕하고 비방하는 등 불선을 행하여도 그로 인한 손해는 내가 가지며 이득은 오히려 그들이 갖게 하소서. 6. 신뢰와 기대 적지 않았기에 마음 다해 정성껏 도와주었던 그가 오히려 나에게 큰 상처를 주더라도 마음 깊이 그를 참된 스승으로 보게 하소서. 7. 직간접으로 얻은 모든 이익과 즐거움 어머니인 중생들에게 아낌없이 회향하고 그들의 고통과 아픈 상처는 모두 은밀하고 겸허히 내가 짊어지게 하소서. 8. 나의 모든 행들이 번뇌의 표상인 세속의 팔풍(八風)4) 에 물들지 않게 하고 모든 현상이 신기루처럼 헛된 것임을 알아 집착의 얽매임에서 속히 벗어나게 하소서. -------------- 1) 까담(Kadam)파: 의 저자 아띠샤(Atiśa)가 창립한 티벳불교의 종파. 2) 랑리탕빠(Langri Tangpa, glang ri thang pa, 1054-1123): 까담파의 고승으로 랑탕 사원의 창립자. 3) 이를 읽고 생각함으로써 마음을 정화하고, 보리심을 강화하는 ‘로종(Lojong) 수행’에 사용되는 기도문이다. 4) 팔풍(八風) - 이(利: 이익), 예(譽: 명예), 칭(稱: 칭송), 낙(落: 향락)의 사순(四順)과 쇠(衰: 쇠락), 훼(毁: 모욕), 기(譏: 비방), 고(苦: 곤경)의 사위(四違)

  • @Leonora1.

    @Leonora1.

    Жыл бұрын

    @@user-hz9rz2gn7w 정성을 다해 작성해주신 답변에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 @user-vo8zh8ko3p

    @user-vo8zh8ko3p

    7 ай бұрын

    정성을 담아 올려주신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user-gv4de5sc4s
    @user-gv4de5sc4s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hyejue
    @hyejue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고있어요. 고개 숙여 감사해요

  • @user-oy3oj3sn3e
    @user-oy3oj3sn3e Жыл бұрын

    관세음보살 부처님의 은혜로운자비로 새롭게 살아가게 해주세요.사회에서 존재감있게 살아보고싶어요.

  • @user-lc2dr5tx3h
    @user-lc2dr5tx3h7 ай бұрын

    ( 한 암 스승님 탄허 스승님 )덕분송 감사찬양 올리옵니다 만국민 단결 합장

  • @user-lc2dr5tx3h
    @user-lc2dr5tx3h7 ай бұрын

    ( 팔만대장경 범망경 ) 교수님 선생님 말씀 법어 법문 계율 참회정신 법계 온전히 응용힘 님의가피 주옵소서 감사찬양 유유자적 수희찬탄 원융무애 비옵니다 일체인연백성분 계율 합장

  • @user-rj3nd6hk9c
    @user-rj3nd6hk9c Жыл бұрын

    어떤 질문에도 해답이 나와있다는것이 너무 속이 후련합니다 배양육을 먹는것은 살생이 아닌가요?

  • @Dhammasa

    @Dhammasa

    6 ай бұрын

    모든 경우 살생유택의 평상인으로서의 분별심이 요구되고, 모든 불교도들의 공개토론 과제이기도 합니다.

  • @user-rq7xg2xb3x
    @user-rq7xg2xb3x2 жыл бұрын

    영화 밀양에서 엄청 혼란했는데 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fg6bx2zj2n

    @user-fg6bx2zj2n

    Жыл бұрын

    영화 밀양에서의 용서 받았다는 표현도 맞습니다. 행위를 용서한거지요, 하지만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배의 고통으로 온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 @user-rq7xg2xb3x

    @user-rq7xg2xb3x

    Жыл бұрын

    @@user-fg6bx2zj2n 용서와 과보는 다르다는 뜻일까요?

  • @Nirbana
    @Nirbana4 ай бұрын

    3:42~ 4:55~ 9:18~ 15:00~ 16:31~ 17:32~ 17:57~

  • @Leonora1.
    @Leonora1. Жыл бұрын

    교수님~ 기도를 할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서 기도를 하는데 관세음보살은 실존인물인가요? 실존했던 인물인지? 아니면 가상적인 존재로 보아야 하는지 문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user-hz9rz2gn7w

    @user-hz9rz2gn7w

    Жыл бұрын

    미륵 보살은 초기불전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지만, 문수, 보현, 관세음보살 등은 영적 세계에 계신 분, 또는 신화적 인물로 보면 되겠습니다. 30여 년 전에 비트겐슈타인을 전공한 인도 모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서울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를 물으니 힌두교라고 하더군요. 강의가 끝난 후 식사하면서 제가 "힌두교에서는 코끼리 얼굴에 사람 몸을 한 가네샤(Ganesha), 인도 대륙에서 스리랑카 섬을 한 걸음에 건넜다는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 등을 모시는데, 당신과 같이 근대 학문을 전공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허구의 존재를 신앙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정색을 하면서 "그러면 당신이 아는 예수나 부처는 진짜냐?"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과학에서는 사실을 추구하지만,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효능입니다. 종교 성전에서 제시하는 갖가지 스토리와 가르침이 허구라고 하더라도, 나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고 나의 인격을 향상시킨다면, 그 스토리와 가르침은 종교적 가치를 갖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Daum카페가 있는데, 관세음보살의 기원과 관련한 질문이 올라와서 장문의 답글을 단 적이 있습니다. 아래에 링크 소개합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cafe.daum.net/buddhology/TjB9/278

  • @Leonora1.

    @Leonora1.

    Жыл бұрын

    @@user-hz9rz2gn7w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효능입니다 라는 말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 보다는 "천지신명이시여~"라고 하면 내면에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할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대신에 "천지신명이시여"라고 하고서 기도를 해도 되는지요? 감사합니다..

  • @user-qd5gv1rf3w
    @user-qd5gv1rf3w Жыл бұрын

    세속의. 삶은. 선과. 악의. 양면이. 있다

  • @user-qd5gv1rf3w
    @user-qd5gv1rf3w Жыл бұрын

    인식안된 것은. 과보가 안된다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크다

  • @Leonora1.
    @Leonora1. Жыл бұрын

    비트겐슈타인을 전공한 인도대학교 교수를 언급하시면서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효능입니다 라는 말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관세음보살 보다는 "천지신명이시여~"라고 하면 내면에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할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대신에 "천지신명이시여"라고 하고서 기도를 해도 되는지요? 감사합니다..

  • @user-hz9rz2gn7w

    @user-hz9rz2gn7w

    Жыл бұрын

    김성철입니다. 아래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제게 올리신 질문이기에 간단히 답해보겠습니다. 불교의 기도가 독특한 점은 “같은 행동이나 말을 되풀이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기도를 할 때에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라고 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되풀이하기도 하고,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이라고 하면서 관세음보살 육자진언(六字眞言)을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또 참회기도를 할 때에는 불단 앞에서 티벳불교 방식의 오체투지 또는 동아시아 방식의 절을 수백 번, 수천 번 되풀이합니다. 이런 불교적 기도는 그 효험이 엄청나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 대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경생리학 이론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인지(認知)와 사유(思惟)와 행동은 모두 전기현상입니다.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구심성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 대뇌피질의 시각중추나 청각중추에 회로를 형성하면서 무엇이 보이고 들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또 대뇌의 운동중추에서 발생한 전기가 원심성신경을 통해 얼굴이나 사지의 근육으로 전달되면 말을 하거나 손발이 움직입니다. 불단 앞에서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사지를 굽혀서 절을 올리는 기도를 할 때에도 우리 몸의 신경망에서 전기신호가 흐를 겁니다. 그런데 전기통신공학 이론에 의하면, “같은 패턴의 전기신호가 되풀이해서 전선을 흐르게 되면 전자기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1초 동안에 몇 번 되풀이했는가에 따라서 그 전파(전자기파)의 주파수(사이클 또는 헤르츠)가 특정됩니다. (가설이긴 하지만 전자기파 이론에 의하면, 되풀이하는 전기의 흐름은 자기장을 형성하고, 그 자기장이 다시 전기의 흐름을 만드는 과정이 계속해서 급속히 일어나기에 전파가 허공으로 퍼진다고 합니다.) 오래 전에 전기통신공학을 전공하신 모 교수님께 “불교에서 기도를 할 때 ‘말이나 몸으로 하는 행동의 되풀이’에서 전파가 발생할 수 있는지?”라고 여쭈어 보니까 가능하다고 하면서 파장이 긴 장파(長波)가 발생할 거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장파는 후미진 곳까지 구석구석 전달되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분이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되풀이해서 부르든지, 불단 앞에서 되풀이해서 절을 올리는 방식의 기도를 할 경우, 그 분이 기도를 하면서 품고 있던 발원과 다짐 등이 마치 전파와 같이 사방의 모든 곳으로 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생명체를 가엾이 여기는 영적 존재,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제3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존재가 계시다면, 그렇게 기도하는 분의 지극한 마음에 감응하여 그 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님의 경우 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보듯이 고난에 빠진 중생을 돕겠다는 발원을 하신 분입니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만일 어떤 이가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면, 그가 혹시 큰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때문이며, 혹은 큰물에 떠내려가게 되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되며, 혹은 백천만억 중생이 금ㆍ은ㆍ유리ㆍ차거ㆍ마노ㆍ산호ㆍ호박ㆍ진주와 같은 보배를 구하려고 큰 바다에 들어갔을 때, 가령 폭풍이 일어 그들의 배가 나찰귀(羅刹鬼)들의 나라에 닿게 되었을지라도 그 가운데 만일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여러 사람들이 다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니, 이러한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만일 해를 입게 되었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이 가진 칼이나 막대기가 곧 조각조각 부서져 능히 벗어날 수 있으며, 혹은 삼천대천국토에 가득한 야차ㆍ나찰들이 와서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여러 악귀가 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겠거늘, 하물며 어찌 해칠 수 있겠느냐. 또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거나 죄가 없거나 간에 수갑과 쇠고랑에 손발이 채워지고 몸이 묶였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만 부르면 이것들이 다 끊어지고 풀어져 곧 벗어나리라. 만일 또 삼천대천국토에 도둑이 가득 찬 속을 한 상인의 우두머리가 여러 상인들을 이끌고 귀중한 보물을 가진 채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선남자들이여,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를지니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 이 도둑들을 무사히 벗어나리라’ 해서, 이에 여러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소리를 내어 ‘나무관세음보살’ 한다면 곧 그 난을 벗어나리라. 또 만일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음욕을 여의게 되며, 혹은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마음을 여읠 수 있으며, 혹은 어리석음이 많더라도 관세음보살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면 곧 그 어리석음을 떠날 것이니라. … 또,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 낳기를 원하여 관세음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곧 복덕과 지혜가 있는 아들을 낳게 되고, 만일 딸 낳기를 원한다면 곧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딸을 낳게 되리니, 덕의 근본을 잘 심었으므로 여러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리라. …” 이런 역할을 하는 분이 관세음보살님이기에, 누군가가 관음기도를 할 때 이런 경문을 마음에 담고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되풀이해서 부를 경우, 그 마음이 온 세상에 전달되기에,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특정한 영적 존재가 실재하는가, 아닌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면서, “엄마! 나 살려줘!”라고 외칠 때, 그 사람의 엄마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즉 지나가던 행인 누구라도 밧줄을 던져서 그를 살려줄 수 있듯이, 누군가가 ,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가르침을 믿고서,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지극 정성으로 ‘되풀이 방식의 기도’를 한다면, ‘영적 존재’ 가운데 자비심 가득한 분이 그 분을 적극 도우실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런 ‘영적 존재’가 있다면 그렇단 말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 도움을 청했다고 해서, 이를 들은 나반존자나 보현보살 또는 다른 종교의 영적 존재가 “나를 부른 게 아니구나.” 하고서 “나 몰라라.”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 간단히 답하려다가 길어졌습니다. 요컨대 불교적 기도가 성취되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 불보살의 명호를 되풀이해서 부르거나 되풀이해서 절을 올리는 방식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때 되풀이 방식으로 먼저 기도한 다음에, 그것이 끝나면 소원이나 발원이나 다짐을 떠올려야 합니다. 누군가를 모셔야 그 다음에 부탁할 수 있듯이 ^^) 2. 내가 기도를 올리는 대상이 어떤 분이라는 정체가 분명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경우 그분의 역할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천지신명은 아마 그런 기록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 유튜브 채널에서 이렇게 길게 문답을 나누는 것이 여러 분들께 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라는 다음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혹시 앞으로 불교 관련하여 다른 질문거리가가 있으면, 그곳의 에 올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포탈 등에서 검색을 통해 찾으실 수 있습니다.

  • @Leonora1.

    @Leonora1.

    Жыл бұрын

    @@user-hz9rz2gn7w 이렇게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교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심안이 열려지고 또 많은 가르침을 일반인들에게 전수해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김성철 교수의 체계불학]에서도 질문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 @user-kn5uw5cq8f

    @user-kn5uw5cq8f

    8 ай бұрын

    교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 @user-ku9hj9er6e
    @user-ku9hj9er6e7 ай бұрын

    한사람은 우주의 진리를 깨칠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모든 것은 자신의 우주안에 지구안에 있는것이며 절제와 도를 깨치는 수단이며 부처를 이루는 그길에서 만나는 인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에 동식물을 만나게 되지만 무엇을 먹든 인간과 동일시 해서는 안됩니다. 깨달음이 일면 순하게 스스로 절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법 저런법 이런법 그런것은 본시 없는것입니다. 이제 판도라를 열고 하늘문을 열때입니다. 중천건 부터 모두 를 가르칠것입니다.쉽게 빠르게 하여 모두가 그것을 깨쳐야 합니다. 세계 13개국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 @NaMobuddha88
    @NaMobuddha88 Жыл бұрын

    본생경에 석가모니 부처님 전생에 나무의 정령으로 태어났다는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생명 아닌가요?

  • @Dhammasa

    @Dhammasa

    6 ай бұрын

    식물도 생명의식 있죠. 혼이 땅에서 오고, 움직이는 모든 미물, 동물들은 하늘에서 혼이 오고, 붙박이 식물, 풀/채소/나무등은 ; 감성이 있는 유정체가 아니라도, 살생유택, 분별심이 필요함. 지진인/부처님의 정신은 평상인으로서, 분별하고 살라는 요체임.. "무"니, "공"이니 , "몰라"니 , 그렇게 황탄하거나, 혹은 그냥 "무념무상" 으로 무분별하게 살라는 가르침이 아님. 그런 가르침은 외도의 것임.

  • @user-zp2zq3sw4g
    @user-zp2zq3sw4g Жыл бұрын

    내가 안죽인거니까 괜찮다니.. 남이 과일따주면 괜찮다니ㅜ 그럼 그 행위하는 자는ㅜ 정말 불교도 참 마음이 헷갈리게하는 면이 참많군요ㅜ

  • @Dhammasa

    @Dhammasa

    6 ай бұрын

    허허! 대승철학에 들어와서 애매 모호해짐, 대승/소승/부파 논리를 첨가, 혼합해 비빔밥을 만들다 보니...논리가 정연ㅎ지 못한 경향이 있음..기본 가르침은 이쪽 저쪽 양변을 멀리 하라는 "이변 중도" 의 실재적/실용적인 가르침이, 추상적/사변적인 "중도공" 철학으로 변질돼서 그러함...

  • @user-bs5lq8rv1b
    @user-bs5lq8rv1b Жыл бұрын

    이미모르고받은것은 ㅜㅜ 우짜지요?

  • @vimutea

    @vimutea

    Жыл бұрын

    스님들에게 해당하는 방법으로 환계(還戒)라는 방법이 있는데, 대중스님들에게 이러이러한 계는 지치기 어려우니 내려놓겠습니다하고 말하면 끝납니다. 재가불자님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합니다.

  • @Dhammasa

    @Dhammasa

    6 ай бұрын

    ​​@@vimutea좋은 말씀입니다. 불교의 계율은 타종교처럼 유일신의 지상명령이 아니라, 인도 원어로 "Sikkhapada" 라고 하여, "도덕훈련 목록"입니다. 자기가 모르고 전에 범했으면, 지금부터 계율과목을 앞으로 하겠다고, 서원하고 훈련을 계속 하시면 됩니다. 불교의 모든 계율법은, "열고 닫고" 의 개차법입니다. 그래서 인간 "이성의 목소리" 라고 서양에서 부르죠.

  • @user-z542
    @user-z54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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