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사라진 호남 최대사찰, 징광사지

* 요청지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않는이상(촬영금지지역이나 사유지) 꼭갑니다😄
* 출장상황에따라 순서는 아주 뒤죽박죽입니다😅
#보성 #징광사지 #김돈중 #김극기 #녹차
#보성여행 #보성 여행 #보성녹차 #고려 #조선 #폐사지
#역사 #여행 #역사이야기 #사적돌 #답사 #답사여행
#korea #trave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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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된지도
국토지리정보원 www.ngii.go.kr/kor/content.do...
구글맵스 www.google.co.kr/maps/?hl=ko
사용된이미지
문화재청 www.cha.go.kr/main.html
국립중앙박물관 www.museum.go.kr/site/main/home
위키미디어 commons.wikimedia.org/wiki/대문...
사용된음악
Waltz of the Flowers (by Tchaikovsky) - Tchaikovsky
사용된소스
[Video Source Support]
KZread channel "freeticon" : / freeticon
드론 비행/촬영허가 획득 후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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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106

  • @mn-st8xz
    @mn-st8xz9 ай бұрын

    징광리 주민인데 맞지않는 말들이 있어 웃고 갑니다. ㅎㅎㅎ 몇년전에 그곳 기와집 수리하면서 오래된 기와 걷어내면서 버린 파편이네요. 마을 어른들이 부숴 버린 수박다리도 엄연히 사진이 존재합니다. 대웅전이라 하는 곳에 실제로 큰 추춧돌들이 있고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귀부이수가 있는 자리는 94년도에 토지주가 비탈을 깍아서 축대를 싾고 석담을 싾은 곳이고 오래전부터 유기농으로 차나무를 심어 키우고 있는 곳입니다. 비석등이라 불리는데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길 승려들의 무덤들 자리였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촬영한 장소들은 토지주인의 허락을 구하고 촬영을 하셨는지요? 문화재청에서 징광사를 조사한 자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마을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9 ай бұрын

    오 안녕하세요 어느부분이 잘못된 부분인지 알려주시면 게시하겠습니다. 이장님과 할아버님 허락하에 촬영했는데 문제가 된다면 삭제 하겠습니다😌

  • @kirinriki1669

    @kirinriki1669

    6 ай бұрын

    마을주민에게 피해가 될 만한 부분이 있나요?😅

  • @user-bt2lj3zi6x
    @user-bt2lj3zi6x11 ай бұрын

    징광사라는 절이 있다는 거 처음 알았습니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다니.... 마치 덧없는 중생의 인생 그 자체네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심지어 크고 유명한 절이었지요🤔

  • @sebongbro
    @sebongbro11 ай бұрын

    집 가까운곳이라 조만간 가보겠습니다. 표현못할 감동의 영상입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남은게 참 없으니 산세만 기억에 남습니다😌

  • @manson0116
    @manson011611 ай бұрын

    고향이 인근지역인데도 덕분에 처음 알았습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 @user-pv5nd8or3o
    @user-pv5nd8or3o11 ай бұрын

    징광사 처음 듣는 사찰입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방문한 폐사지 중 가장 흔적없는 곳 같습니다

  • @user-fw2hl5vc6n
    @user-fw2hl5vc6n11 ай бұрын

    10여분 영화를 보는듯 했습니다. 비록 남은 것은 없으나 사적돌님 덕분에 상상으로나마 선하게 그려보았습니다. 경전를 간행하고 보관했던 판전, 허리를 숙여 찻잎을 따는 스님들 오고 가는 불자들...기록이 있어 징광사는 사라지지 않았군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더하여 사람들 기억속에 남아있으면 사라지지않겠지요😌

  • @DS-nl5pp
    @DS-nl5pp4 ай бұрын

    전대에 있었던 탑이 생각나네요. 탑이 원래 소장되어 있는 것도 흔적도 없는 사지였는데

  • @사적돌

    @사적돌

    4 ай бұрын

    오 그렇군요😮

  • @user-bt3ke5bu6v
    @user-bt3ke5bu6v11 ай бұрын

    오늘도 하나 배우고 갑니당 ㅎㅎㅎ 다음번에 시간되시면 대구 구지에 있는 비슬산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좀 오래걸릴것 같아 송구합니다😄;

  • @user-bt3ke5bu6v

    @user-bt3ke5bu6v

    11 ай бұрын

    @@사적돌 괜찮습니닿ㅎㅎㅎㅎ 오히려 영광입니당!!

  • @user-fw7zr2mw4n
    @user-fw7zr2mw4n11 ай бұрын

    잘보고 배움니다 최고의 체널이라 생각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좋으말씀 감사드립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 @Ryan-ub1ov
    @Ryan-ub1ov11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덕분에 가봐야할곳이 늘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 @GreatJungba
    @GreatJungba11 ай бұрын

    절에서 스님과 술을 마셨다는 것으로 들리는 시군요...;;;;; 양주 회암사지는 권력다툼으로 소리없이 한순간에 폐사하였죠. 이렇게 오래된 징광사가 갑자기 명맥이 끊길걸보니 왠지 이것도 권력다툼으로 세를 잃고 한순간에 폐사 후 방치되다가 불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조선의 유생들이 절에 불을 자주 질렀다고 하더라구요ㅠㅠ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술은 마실수 있으나 김돈중의 시 배경에는 스님의 말씀을 술로넘기는 과정이있지요 🤔 청탁일수도있고, 쓴소리일수도있고, 하소연일수도 있겠지요

  • @TheJinNK

    @TheJinNK

    11 ай бұрын

    회암사는 권력투쟁으로 불탄게 아니라 유생들이 불질러 버린걸로 알아요 심지어 태조가 기거하고 조선 왕실의 원찰같은곳이고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가 불사를 했던곳이기도 해서 실록에 보면 주동자 잡아서 비록 나라가 불교를 배척하기는 하지만 벌 주자는 상소 기록도 있던걸로 기억합니다

  • @GreatJungba

    @GreatJungba

    11 ай бұрын

    @@TheJinNK 명조때 보우가 실각하고 절세가 기울었고 그 뒤 유생들이 불을 지르죠. 종교가 하지말아야하는 권력에 뛰어들었다가 세가 기울게 된것이니. 이를 권력다툼이라 보는 것이 맞지않을까 합니다

  • @tskk614

    @tskk614

    3 ай бұрын

    @@GreatJungba 본래 싯달타시절의 불교는 정치적인 성향이 많은 종교였습니다. 싯달타도 마가다왕국의 비호아래 종단을 키운것이고, 당시 인도의 제정일치사회를 인간중심의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개혁세력을 두둔하기도 했지요. 오늘날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대승불교의 영향이고, 대승불교는 서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싯달타의 가르침관 무관한, 중국의 승려들이 중국식 논리로 만든 유사불교라고 하지 않습니까? ㅎㅎ 본래의 싯달타 가르침은 유물론(인도유물론)에 기반한 무신론, 무불론으로 한평생 미신을 타파하기위해 노력한 것이지요. 그는 늘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모든 것이 종료되는 것이고, 영혼도, 저승도, 윤회도 없으니,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라고,

  • @user-dc3tk6jh4w
    @user-dc3tk6jh4w11 ай бұрын

    정말 미스테리하네요 구한말 까지 존재했던 수쳔년 거찰이 살아졌는데 아무도 살아진 이유를 모른다니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귀부를 건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좀 이례적입니다🤔 자연재해도 가능할것 같네요

  • @user-pu6ss1fn7o

    @user-pu6ss1fn7o

    10 ай бұрын

    @@사적돌 1700년대 화재로 사라진 것 아닐까요!?

  • @user-eh7kb1se6i
    @user-eh7kb1se6i11 ай бұрын

    여행을 좋아하는데 사적돌 님 영상 보고 강가나 조그만 산도 바닥만 보고 다니고 있습니다 ^^ 가끔 산속 조그만 탑 도 찾아 댕기고 ^^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가시는걸음 안전하고 즐거운 답사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user-uo6yo2jr9x
    @user-uo6yo2jr9x10 ай бұрын

    저도 잘 보았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 @dkrmdkrm
    @dkrmdkrm11 ай бұрын

    1960년대까지 홍교는 남아 있었습니다. 승선교 처럼 단 홍교이고 홍예석만 남아 있었는데 이후에 유실 되었죠. 당시 사진이 전하고 있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오 덧글 감사드립니다😌

  • @user-tr3hf6or8r
    @user-tr3hf6or8r11 ай бұрын

    선생님 덕분에 오랜만에 책장에서 침굉집을 꺼내어 읽습니다 삼전도비를 쓰신 백헌 이경석 선생께 보내신 시를 두런두런 읽어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참으로 멋들어진 이름입니다 침굉집이라니😄

  • @user-ji4gl4fr8w
    @user-ji4gl4fr8w11 ай бұрын

    한편의 시를 보는 느낌! 고증 이니 역사적. 사실이니 모든 것을 다 잊고. 그제 세월의 무상함 과 덧 없음을 느끼고 갑니다. P.S 드론 쓰시는 법이 고르고 정연하니 부럽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지나간 후면 애닮은 삶이지요 왜그리 고민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슬퍼했던가 폐사지에 서면 항상 드는 생각입니다😌

  • @chn8990
    @chn899011 ай бұрын

    잘보고갑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 @npcmin
    @npcmin9 ай бұрын

    여름답사는 여러모로 어렵군요

  • @사적돌

    @사적돌

    9 ай бұрын

    여름에는 잡풀때문에 토단이나 석물 찾기가 참 힘듭니다😓

  • @user-px1ep5ue8p
    @user-px1ep5ue8p3 ай бұрын

    당당한 위세를 자랑하며 번창하던 징광사도 제행무상의 이치 속에서 스러지고, 푸른 녹빛 아련히 뽐내는 식생만이 그 찬란함의 편린을 대신하고 있군요. 기원정사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오라. 사라쌍수의 꽃잎 빛깔, 성자필쇠의 이치를 나타내누나...

  • @사적돌

    @사적돌

    3 ай бұрын

    세상만사가 차면 비워지고 비어있으면 다시 차는것이 순리인듯합니다😌

  • @chaokaoli
    @chaokaoli11 ай бұрын

    촌로와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자주 찍으러 오시게" 어떤 느낌인지 데쟈부가 느껴지네요. 얼마 전 태국 북부 람빵 지역의 산속에 버려진 사원이 발견되었다 하여 우기가 지나면 다녀오려고, 어찌저찌 그 사원을 이미 알고 있던 산 아래 마을 이장을 소개 받아 친분을 쌓고 있습니다. 발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데라 외부인 출입을 막아두었고 하루는 들어가야 하는 숲인지라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할 듯 해서 말이죠. ㅋㅋㅋ 며칠 전 마을 주변에도 제가 좋아하는 인물의 유적이 있어 동네 학교 선생님과 함께 구경하고 헤어지려는데 몇 번 마주친 마을 할아버지 "밥은 먹고 가는가?" "아니요" "그럼 우리 집에서 먹고 가" 그리고는 "자주 와. 다른 곳도 알려줄게" 라며 관심가져주던 할아버지가 떠오르네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아이고 매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어르신들 마음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 @user-tr3hf6or8r
    @user-tr3hf6or8r11 ай бұрын

    제 고향이 벌교인지라 늘 그리운 절자리입니다 징광사에 오래 주석하신 백암 성총화상, 침굉 현변대사의 글들을 가끔 읽기로 작금의 빈 터가 아쉽고 또 아쉽지만 그것도 적멸의 가르침임을 새겨봅니다 먼 곳까지 오시어 절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자막 중 ‘침광’이 아니고 ‘침굉’스님이십니다 하도 뛰어난 법기인지라 12살 사미시절 고산 윤선도가 양자를 삼으려했다고 하셨다지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오 오류수정 감사드립니다😌

  • @TheJinNK
    @TheJinNK11 ай бұрын

    대웅전자리에 집을 세운거라면 나무 부재같은건 원래 사찰에서 가져다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간차가 조금 있지만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되지요😄

  • @stannum639
    @stannum63911 ай бұрын

    조선 후기까지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기록을 보아 억불시대의 유생들 방화는 피한 것 같으나, 혼란한 조선말기의 동학난이나 개항 이후 일제의 침탈이 가속화 되던 시기 의병의 거점으로 의심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 봅니다. 사격이 높았다 하니, 시굴, 발굴조사가 이루어 지면 금새 많은 것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사돌님의 영상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립니다😌 관에서도 흔적을 찾기위해 노력중인것으로 압니다 암자만 12개라니 그중 세가 되는것을 먼저 찾아 자료를 얻으면 일이 수월하지 않을까요?😄

  • @tv-kt9ic
    @tv-kt9ic11 ай бұрын

    구전으로 대웅전 위치를 알려주신 어르신이 안계셨다면 그 위치를 어찌 찾았을까요 구전이라는게 이럴때 보면 그 어떤 유산보다 중요해보입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하나하나 단서가 되어 찾아가는것이지요😄

  • @choihd1202
    @choihd120210 ай бұрын

    목소리 정말 좋아요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오 맘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 @user-lt8wz1wt8g
    @user-lt8wz1wt8g11 ай бұрын

    처음 접하게 되네요! 징광사지....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남은것이 거의 없다시피해요🤔

  • @user-lp4mw5vk7s
    @user-lp4mw5vk7s11 ай бұрын

    이런 미스테리한 이야기가 좋아서 자주봅니다 돈만 많으면 저 일대를 사서 발굴에 투자를 해보고싶단 생각도 듭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오! 저도 산성이나 오래된 폐사지를 공원처럼 꾸며놓고 문화재 친화 캠핑장 꾸며 놓는것이 장래희망입니다😄

  • @user-rx9lv6gt4g
    @user-rx9lv6gt4g11 ай бұрын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 타임머신 타고 싶어집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저도 절실합니다😄

  • @user-dn3fv4wk6h
    @user-dn3fv4wk6h10 ай бұрын

    네, '역사여행 사적돌'님, 정말 귀한 영상 잘 봤습니다. 드론을 띄워 '원징광'마을 전체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역사 기록들과 항공사진들을 찾아내어 '징광사'의 내력을 잘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내 경우는 그곳 '원징강' 밑의 마을인 '박강'마을에 사는 사람인데, 그 절터에 대한 호기심으로 내 젊은 때인 83-85년 3년 동안 그곳을 많이 갔었지요. 그리고 그 절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잘 아는 어떤 어르신이 계셔서 많은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을 해놓았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시골에 내려가서 그 기록을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확신은 못합니다. 너무 오래되어서요. 그리고 본 영상 내용에다가 제가 그때 들었던 내용들 몇가지를 추가해 봅니다. 1) 그 '원징강' 마을 입구에 '홍교'의 자리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선암사의 홍교와 비슷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홍교를 고흥경찰서에서 관리를 했었는데, 어느 봄에 너무 가뭄이 들었을 때, 그 홍교를 무너뜨리면 비가 온다는 미신 같은 설화를 어떤 마을 사람이 믿었다고 해요. '원징강'은 쥐이고 '홍교' 앞산은 고양이 인데, 고양이가 홍교를 건너와서 쥐를 잡아먹으니 비가 안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이 선동을 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 홍교를 무너뜨리니 정말로 기적같이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교가 무너졌기 때문에 고흥경찰서에서 당연히 조사를 나왔지만, 마을 사람들이 홍수가 내려 무너졌다고 자연재해라고 말을 해서 그 선동한 사람은 구속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홍교의 돌들은 영험한 돌들로 생각을 해서 '징광정미소' 옆의 '전창군' 묘의 제방돌들로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2) 그리고 지금의 녹차밭이 조성이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80년대에 사업가 한상훈씨가 '원징강'으로 이사를 왔고, '징강옹기공장'을 개설했습니다. 그때 지금의 녹차밭을 조성한 것입니다. 물론 오래 전부터 자연상태에서 자란 자연녹차는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녹차밭은 80년대에 조성이 된 것입니다. 3) 그리고 80년대에는 산속이 지금처럼 나무가 많지 않아서 산길들이 있었는데, 그 산길을 따라서 12개 암자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빗살무늬 기와편들을 많이 발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12개 암자터를 내가 그때 그림으로 기록해 놓왔는데, 이번에 시골 내려가면 그 기록을 한번 찾아볼 생각입니다. 4) 그리고 거북이는 몸통만 남아있고, 거북이 머리는 누군가가 베어갔습니다. 그리고 비석몸통은 어떤 집안에서 그 비석을 가져다가 그 비석 글들을 지우고 자기 집안의 비석으로 새롭게 사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 '원징강'마을 분이나 아니면 주위 마을 분이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비석의 머리돌은 지금 남아 있구요. 그리고 내가 80년대에 봤던 거북이가 놓인 자리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경지정리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 같아요. 5) 그리고 '원징강' 논들을 보면, 논두렁에 석탑의 옥개석도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논두렁에 그대로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6) 그리고 70대말 쯤에 '원징강' 입구 '홍교' 근처의 암자터에서 '금부처'가 발견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문기사도 나온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런데 그 금부처를 발견한 사람이 광주에 올라가서 어떤 '신문기자'라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그 금부처를 빼았겨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후로 많은 도굴꾼들이 '원징강'의 절터에 몰려와서 금속탐지기로 온 마을 전체를 들쑤시고 다녔다고 합니다. 7) 그리고 '원징강' 마을 입구쪽에 아주 예쁜 아담한 폭포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전 큰 홍수로 돌들이 많이 쌓여서 옛날 모습은 찾아볼 순 없지만, 그 돌들만 들어내면 옛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리고 계곡을 따라 차가 다닐 수 있는 길 끝까지 올라가면 8-9m 정도의 폭포(이름은 '벼락폭포')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올라가면 좀 더 작은 귀여운 폭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까지만 해도 '원징강'마을 입구 첫번째 집이 있는 논에서 상당히 많은 수량이 솟아르는 '용천수'가 있었는데, 큰 홍수로 토사가 밀려와서 그 샘을 덮어버려서 지금은 그 용천수가 사라져버렸다고 마을 사람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곳 산은 '존재산'으로 해발고도가 712m여서 주위에서는 거의 가장 놓은 산입니다(그러나 제암산은 800고지). 존재산은 '흙'산이어서 산에 여러 가지 약초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더덕이 많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로쇠나무도 자생합니다. 그리고 특히나 가을에 '원징강' 마을에서 존재산을 바라볼 때 그 단풍든 산모습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이상 영상을 보고서 제 젊었을 때의 기억들을 더듬어 내서 영상내용을 조금 더 보충해 보았습니다. 귀한 영상 잘봤습니다. 감사~~^^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오 장문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 @user-og8bw9xg7w

    @user-og8bw9xg7w

    10 ай бұрын

    예기억이 새록새록 하시겠어요,,,

  • @tskk614
    @tskk6143 ай бұрын

    법흥왕때 창건되었다면, 당시 전남보성이 신라영역이었단 얘기니 좀 맞지 않아 보이네요. 하긴 삼국사기엔 신라가 김제 벽골제를 만들었다는 기사도 있으니, 당시 지리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꽤 되지요....

  • @사적돌

    @사적돌

    3 ай бұрын

    구전을 기록한 책이니 신뢰도는 낮겠지요, 빨라야 신라발해시대 아닐까요🤔

  • @tskk614

    @tskk614

    3 ай бұрын

    @@사적돌 황당고기에 의하면, 당시 신라의 영역이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대륙의 1/3을 지배한 제국이었으니 맞을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ㅎㅎ

  • @Ironwitch-qg9hi
    @Ironwitch-qg9hi11 ай бұрын

    현존했다면 엄청 아름다웠겠죠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세상에 이렇게 흔적이 안남을수도 있습니다🤔

  • @user-qi8ve2tn2s
    @user-qi8ve2tn2s11 ай бұрын

    아틀란티스를 찾는 느낌일까요?? 😢 글에서는 있는데 어디갔오??왜?? 불과 2백여년 전까지....뭐지 그렇게 큰 사찰이...슬프시겠어요 작은 모멘텀으로 시작하는 미스터리한....ㅎㅎ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인간이 만든것은 시간앞에 참 무력한것 같습니다😌

  • @kiryongkim5304
    @kiryongkim530411 ай бұрын

    얼마전 가족여행으로 보성 녹차밭을 가봤는데 그곳에 그런 사연의 절이 있었다니...또 하나 배웠습니다! ps.이번엔 플렉탄 바지네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오! 국가별, 종류별로 있습니다😄

  • @Kevin-br6wd
    @Kevin-br6wd11 ай бұрын

    조선말까지도 위세가 큰 절인데 지금은 위치조차 비정하기 힘들다니...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 찾을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user-qf4po8ir4c
    @user-qf4po8ir4c11 ай бұрын

    😊

  • @user-up3hk3oh5c
    @user-up3hk3oh5c5 ай бұрын

    영상마다 꼭 마을 어르신이나 식당 들어가셔서 구전을 듣곤 하시는데 이런 구전이 항상 존재하는 것 보면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보단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자손들이 사나봅니다?

  • @사적돌

    @사적돌

    5 ай бұрын

    저 어릴적만해도 다 집성촌이었지요, 인구이동이 거의 없이 살아왔고, 섞이더라도 기록과 구전은 남아있지요😄

  • @user-qf4po8ir4c
    @user-qf4po8ir4c11 ай бұрын

    ❤❤❤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시청 감사드려요😌

  • @user-yf4kz8bw5x
    @user-yf4kz8bw5x10 ай бұрын

    17살에 상경 했지만 언제나 그리운 고향 보성.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오 시청 감사드립니다😌😄

  • @Mnose23as74
    @Mnose23as7410 ай бұрын

    터부근이 참 좋으네요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좋은 자리지요😄

  • @-joshuaTV-
    @-joshuaTV-10 ай бұрын

    독특한 이름이네요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맑을징 씁니다😄

  • @kristoferkris3538
    @kristoferkris353810 ай бұрын

    정미년 전후로 보성 벌교지역에 의병 활동이 활발했으며 일본군에 의한 토벌이 상당해서 산이 불타고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kristoferkris3538

    @kristoferkris3538

    10 ай бұрын

    할아버지가 보성 분이시라서 명절마다 내려갔는데 그 동네에서 어릴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한 사료를 찾아본 것은 아닙니다;;

  • @사적돌

    @사적돌

    10 ай бұрын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동학군 토벌때 인근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료를 많이 접했습니다. 수만명수준이라고 들었지요🤔 정미의병때도 그러했는가보군요😞

  • @charlesb8116
    @charlesb811611 ай бұрын

    정유재란 때 불탄 사찰을 세종 때 김방이 중창을 했다고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세종과 김방이 훨씬 더 빠르지요. 다른 중창이 있었을수도있고, 전남에 김방의 설화가 많이 남은것을보면 후대 사람들의 이야기일수도 있지요🤔

  • @livil-
    @livil-11 ай бұрын

    세종때 인물인데 정유재란 이후에 징광사를 중창했다? 시기가 안 맞는것 같습니다.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실존인물이긴한데 중창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이전에 중창했던지, 아니면 전남 지방의 신화적존재로 남은것이겠지요😄

  • @user-hi3fi7or2j

    @user-hi3fi7or2j

    2 ай бұрын

    중창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 역사이기에 수십년을 두고 진행되기도 합니다. 화재나 전쟁등으로 소실되었다면 법당 하나 하나를 다시 앉히는 일은 처음 건립 당시의 대공사와 견줄만큼 만큼 많은 경비와 인력이 필요한 일. 존재산 초암산 아래에는 여러 절터자리가 남아있는데 백제 고구려 시대 것으로 보이는 불탑과 불상이 존재. 율어면 칠음리에도 백제시대 창건한 절터와 불상 불탑이 현존하는데 그 절터는 일월사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됨. 덧붙이자면 벌교와 존재산을 맛대고 나뉘어져 있는 율어가 내가 자란 고향. 초암산에 올라 바라보면 벌교 득량 쪽 바다가 발밑까지 달려드는 착각에 빠지곤 함.

  • @minli9406
    @minli940611 ай бұрын

    저기...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진 사찰를 중창한 인물이 '김방' 이라고 하셨는데... 김방이 세종때 인물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아는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시대 맞지요? 세종때 인물이.......... 정유재란(임진왜란)때 불탔던 사찰를 중창 했다는게 좀... 이해가 안가서요... 제가 이해를 못하는건지 ㅎㅎㅎ 몇자 적어 봤습니다요~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김방이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세종 대의 중창일수도 있고요 설화가 많이 남은 인물이기 때문에 후대인들의 설화로 남은것일수도 있습니다😌 kzread.info/dash/bejne/mZahpduIktjMmMo.html

  • @jjuhyung
    @jjuhyung11 ай бұрын

    신기루처럼 사라진거라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예술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종교는 다르지만 여행지마다 사찰을 가 보는데 각 사찰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19세기 후반이면 유교탈레반은 아니고 일제의 수탈??

  • @사적돌

    @사적돌

    11 ай бұрын

    징광사에서 나온 불상도 현존하고있으니 어떠한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 @punggay
    @punggay10 ай бұрын

    지금 까지 남아 있었던들 고스톱이나 포커치는 땡중들이 먹고 놀기 좋은 놀이터 였겠지.

  • @user-ob8kw9rj2s
    @user-ob8kw9rj2s10 ай бұрын

    이것또 남탓으로 돌리겟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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